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45화 (145/206)

기적의 IT 재벌 145화

CES는 전 세계의 전자회사가 자사의 신제품과 기술을 과시하는 홍보의 장이다.

행사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는 컨벤션 센터에는 이번에도 2,000여 개의 부스가 열렸고, 10만 명이 넘는 관계자와 방문객이 몰려들었다.

“부회장님, 어떻습니까. 이곳이 오성전자 부스입니다.”

오성전자 설기정 사장은 허리를 90도로 굽혀댄다.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정용재는, 회장을 쓱 둘러본 뒤 짤막한 평을 내뱉는다.

“부스는 이쯤이면 나쁘지 않군.”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휘황찬란할 정도였다.

오성전자는 전시장서 주목도가 높은 중앙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모자라, 엄청난 규모 덕분에 부스에서 직접 발표회가 가능할 정도였다.

“행사 준비는 어떤가?”

“이번 행사는 전 세계에 실시간 송출되기에 리허설을 세 번이나 했습니다.”

“사소한 실수도 있어선 안 돼. 이번은 아버지도 주시하고 계시니까. 무슨 뜻인지 알지?”

“무, 물론입니다. 이번 CES2012의 주인공은 단연 오성전자가 될 것입니다.”

정용재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곤 전시장을 둘러본다.

그의 시선에, 텅 빈 장식장이 들어왔다. 본디 갤럭시스S3가 디스플레이 돼 있어야 할 곳이었다.

“설 사장, 제품 디스플레이는 아직인가?”

“신제품 발표회에서 디자인을 공개함과 동시에 전시할 예정입니다.”

“궁금증을 유발하겠다는 전략이군. 괜찮은 방법이야.”

설기정 사장은 정용재의 칭찬에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더 깊게 숙이고 말했다.

“애플이 곧잘 하는 깜짝 공개 방식이죠.”

“좋은 건 우리도 따라 배워야지.”

사실, 갤럭시스S3는 디자인은 물론이고 상세 성능까지 이미 퍼질 대로 퍼진 뒤였다.

작년 말부터 오성전자 홍보팀에서 유출이랍시고 은근슬쩍 뿌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제품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건 애플이나 가능한 이야기다.

여타 회사들이 깜짝 공개를 준비한다 한들, 애플폰 정도의 관심은 받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언론 쪽에 연락은 해뒀나?”

“물론입니다. 신제품 발표회가 시작되면 CES 행사장의 모든 기자가 저희 부스로 몰려들 것입니다.”

“그거 말고. 마사지는 좀 해뒀냐고. 여긴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잖나.”

“아, 그 말씀이시군요.”

히쭉 웃은 설기정 사장은 손을 싹싹 비벼댔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번 신제품 발표가 끝나면 모든 언론은 물론이고, 전문 평가단체도 저희 제품을 극찬할 것입니다.”

“암, 그래야지.”

구글이 선언한 타사OS 병행 금지 조치로 인해, 모든 비애플 스마트폰은 안드로이드OS 아래로 모이게 됐다.

애플을 제외하면 모든 기기의 OS가 획일화됐으니, 이제 스마트폰의 차별점은 디자인과 탄탄한 기본기가 전부였다.

KG전자, 소니, 샤프, 모로라, HTC.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전자회사들이 안드로이드OS를 품고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최종 승자는 오성의 갤럭시스S2였다.

디자인은 애플을 모방했던 갤럭시스S를 계승했으며 하드웨어 기본기는 오성의 특기나 마찬가지였다.

2011년도에 갤럭시스S2가 전 세계를 휩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 갤럭시스S3까지 성공시키면 안드로이드OS에서는 우리 오성의 독주다.’

정용재는 그 이후에도 전시장을 산책하듯 둘러 본다.

“설 사장, 저게 소니의 최신 스마트폰인가?”

“예, 내달 출시할 엑스페셜X라고 합니다. 스펙상 저희 갤럭시스S3와 거의 동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쯧쯧, 스펙만 동급이면 뭐하겠는가. 저 상·하단 베젤 사이에 공간은 왜 저렇게 띄워둔 거야? 혹시 기술력이 부족해서?”

“그건 아닙니다. 전해 듣기론 저게 엑스페셜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라고…….”

“웃기고 앉았네. 내 장담하는데 내년엔 저 디자인 포기하고 갈아탈걸?”

소니 외에도 경쟁사들의 부스가 몇몇 보이긴 했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자신감이 붙었다.

좁아터진 부스나 미흡한 준비는 둘째 치더라도, 전시해둔 기기의 디자인부터 갤럭시스S3에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오성전자 부스로 돌아오려는데, 못 보던 커다란 부스가 보인다.

크기만 따지자면 오성전자 부스와 거의 맞먹을 정도였다.

“여기도 부스가 있었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저희 바로 뒤편이라 서로가 잘 안 보이는 위치입니다.”

“규모로 봤을 때 KG? 아니지, 그쪽은 이번에 스마트폰 부문을 불참한다고 들었는데.”

“제가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설기정 사장은 오십이 넘은 나이였음에도, 날다람쥐처럼 달려서 부스를 확인하고 왔다.

“부회장님, 저긴 팬틱 부스라고 합니다.”

“뭐? 한국의 그 팬틱?”

“예, 저희가 아는 팬틱이 맞습니다.”

그 이름이 나오자 정용재는 조건반사처럼 인상이 찌푸려졌다.

오성전자의 갤럭시스S2가 비애플 부문 전 세계를 휩쓸었지만, 딱 두 곳만은 차지하지 못했다.

그곳은 바로, 한국과 일본이었다.

팬틱에서 출시된 베가 레이서N은 가벼운 닉스OS의 빠릿빠릿함과 강력한 게임 지원으로 2030세대를 잠식해 나갔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팬틱의 생산량이 월간 120만 대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옆 나라 일본에서 쓸어가다시피 했기에 내수 1등을 놓치는 불명예만은 피할 수 있었다.

하나, 바꿔말하면 팬틱이 베가 레이서N의 물량만 원활하게 공급했었다면 안방을 내줬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으니.

‘아직까진 우리가 우위지만, 놈들이 중국 공장을 가동해서 가격과 물량을 모두 잡으면 그땐 정말 위험해.’

매년 중순에 출시되던 갤럭시스S 시리즈를 올 3월에 조기 출시하는 이유도, 사실은 닉스OS가 퍼지기 전에 선점 효과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저기도 한 번 들렀다 가지.”

“저기……. 부회장님, 죄송하지만 발표회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저는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다른 직원을 불러올까요?”

이번 갤럭시스S3 발표는 설기정 사장이 맡았다.

정용재의 영어 실력이 직접 발표할 정도로 유창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니, 됐다. 부스만 크면 뭣하겠는가. 팬틱이 출시할 신제품은 보급기라고 알려졌으니 경계할 것도 없겠지. 신용화 그놈, 주제도 모르고 겉멋만 들어선.”

* * *

갤럭시스S3 공개행사엔 준비한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취재진이 몰렸다.

이번 CES에 참석한 기자 전원이 몰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완전히 새로워진. 갤럭시스S3를 공개하겠습니다!]

두둥! 하는 효과음이 깔린다.

이어서 대형 스크린엔 커다란 오성전자 로고와 함께 갤럭시스S3의 모습이 공개됐다.

갤럭시스S3는 유선형의 조약돌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기존 갤럭시스S와 갤럭시스S2의 디자인을 탈피한,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장내에 드문드문 환호성이 나온다.

대부분이 아시아계 사람들로 오성전자 임직원이거나 미리 대기시킨 바람잡이들이었다.

기자들 역시 흥미롭게 발표를 지켜봤지만 큰 호응이 나오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발표된 내용은 이미 공개된 것들과 다른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갤럭시스S3는 그립감 향상을 위해 기존의 디자인을 탈피하고 혁신적인 라운드 디자인을 선택했습니다.]

“넷상에 떠돌던 디자인이 그대로 들어맞았네. 기존 날렵한 디자인을 버리고 둥글둥글한 느낌이라…… 어째, 애매하다?”

“루머로는 기존 디자인이 닉스에서 나온 거라 기기당 3%의 로열티를 내고 있었다더군. 갤럭시스 시리즈가 인지도도 얻었겠다, 이 기회에 털고 갈 생각이겠지.”

“뭐야. 진짜 3G 전용으로 나왔어? 1GB 램에 내장 메모리도 32GB라니. 전작인 갤럭시스S2에서 바뀐 건 디자인밖에 없는 거야?”

“쉿, 조용해 봐. 뭔가 새로운 게 있겠지.”

특종을 바랐던 기자들의 입에선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물론 그 소리는 어디선가 흘러나온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떠밀려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으론 해상도가 기존의 WVGA에서 HD급으로 상승한 슈퍼 아몰레드 액정이 탑재됐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스마트폰으로도 더 생생한 영상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설기정 사장의 발표가 한창인 부스 뒤편.

팔짱을 낀 채로 객석을 바라보는 정용재의 표정이 안 좋다.

기자들의 반응이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시큰둥했기 때문이리라.

이번 전시회가 한국서 하는 행사였다면 아무 걱정이 없었겠지만, 여긴 한국이 아닌 미국이다.

설기정 사장이 여론 마사지했다곤 하나, CES 행사장에 모인 기자들만 수천 명인데 이들을 어찌 다 감당한단 말인가?

‘칫, 아버지도 보고 계시는데…… 아니야. 아직은 괜찮아. 이어서 신기능과 향상된 배터리. 마지막으로 세계 최초 쿼드코어 AP까지 발표된다면 분위기는 반전될 거야.’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분위기는 점차 어수선하게 흘러간다.

기자들은 발표 대신 휴대폰을 쳐다보기 시작했고, 개중에는 발표가 진행되는데 전화를 주고받는 사람도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정용재가 그들을 노려본다.

‘저런 무례한 놈들은 얼굴을 기억했다가 광고를 끊어버리든가 해야지.’

한술 더 떠서, 기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줄지어 자리를 뜨는 것 아니겠는가?

“저놈들 무슨 짓거리야?”

정용재가 소리치자, 무대를 관리하던 스탭이 놀라서 다가온다.

“부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밖으로 나가는 저것들. 어디로 가는 건가?”

“제가 한 번 연락해서…….”

정용재는 무전기를 꺼내려는 스탭을 밀치고 나선다.

“비켜, 내가 직접 확인한다.”

그는 급히 무대를 빠져나가, 기자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은 오성의 무대를 크게 돌아서 뒤로 돌더니, 전시장에서 2번째 큰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팬틱 신제품 전시회]

팬틱의 발표는 이미 막바지에 접어들었는지, 스크린에 제품의 상세 스펙과 출시 일정까지 공개돼있었다.

“와우! 599달러? 팬틱이 베가 레이서N으로 재미 보더니, 이번은 작정했나 봐. 저 가격에 듀얼코어 AP에 램을 2GB나 넣었네.”

“저러고 팔면 남는 게 있을까? 닉스에 지불하는 유통비와 라이센스비가 엄청나다는 소리가 있던데.”

“사용자 측에선 거품 빠진 고성능폰이 나오는 걸 환영해야지. 요즘은 개나 소나 애플폰처럼 799달러를 받으려 든다니까.”

정용재는 다시 오성전자 부스로 돌아가려 했지만 계속해서 밀려드는 기자들로 인해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팬틱의 보급형 스마트폰인 레이서N의 소개를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깜짝 게스트를 모시겠습니다.]

인파를 헤치던 정용재의 발걸음이 멈춘다.

발표장에서 흘러나오는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

[반갑습니다, 여러분.]

정용재는 고갤 돌려 단상을 쳐다본다. 동시에 그의 표정이 경악에 물들었다.

“저건 닉스의 강현우? 저놈이 왜 여기에?”

[닉스의 대니얼 강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것을 이미 예상하신 분도 있는 거 같군요. 사실 이 부스는 닉스와 팬틱의 공동 부스로 기획됐습니다.]

그가 무대에 서자 기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정해진 수학 공식처럼, 그의 발표만 있으면 특종이 터진 탓이다.

“내가 뭐랬어. 팬틱 부스에서 닉스 스탭을 봤다고 했었잖아! 카메라 여기로 다 돌려!”

“뭐 하고 있어. 빨리 팬틱 부스로 넘어와! 대니얼이 나타났다고! 오성전자? 거긴 안 봐도 뻔하잖아. 나중에 짜깁기해서 올리면 그만이야. 자리 맡고 있으니까 빨리 와!”

“오, 맙소사. 여기서 그 폰이 공개되는 건가?”

만약 닉스와 오성전자가 동 시간대 발표회를 한다 했더라면, 언론들은 기자를 추가로 파견했을 거다.

양측 모두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뉴스거리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닉스가 갑자기 끼어든 탓에 인력과 장비는 모자랐고, 그 때문에 기자들은 갤럭시스S3와 닉스폰 중에 어딜 취재해야 할지 선택해야만 했다.

전자인 갤럭시스S3는 정보 대부분이 알려진 물건이고, 후자인 닉스폰은 이번이 처음 공개되는 물건이다.

기자들은 당연히 오성전자 부스를 이탈하고 이곳으로 몰려들 게 뻔했다.

실제로 지금도 그러고 있었고.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발표를 숨겼었구나.”

정용재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머리가 어질거렸다. 증상은 점차 심해지는지 턱까지 덜덜 떨려올 정도다.

이번 발표는 애플의 WWDC 기조연설처럼 전 세계에 실시간 송출된다.

지금쯤이면 오성전자 부스에서 기자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거기엔 당연히 오성의 정희건 회장도 포함돼 있을 것이고.

“강현우, 이 개자식이…….”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닉스의 야심작, 닉스폰을 소개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