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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142화 (142/206)

기적의 IT 재벌 142화

“월간 1000만 대라……. 우리 강 서방이 진지한 표정으로 농담하는 걸 좋아하는구만.”

“저는 농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입니다.”

신용화의 웃는 표정이 싹 가신다.

“진심으로 꺼낸 말이라고?”

“예, 어려울 게 뭐 있습니다. 1000만 대든 2000만 대든, 공장 세우고 설비만 들여다 놓으면 찍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그는 어이없다는 헛웃음을 내뱉은 후 말을 잇는다.

“내가 팬틱을 인수하고 월간 1000만 대 생산설비를 완성시켰다 치자. 그걸 어디에다 팔 거야?”

“여기에 통신사 사장님이 계시는 데 뭐가 걱정입니까?”

신용화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즉각 반박해댄다.

“내수는 100만 대만 팔려도 선방이야. 나머지 900만 대는?”

“해외도 팔아야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말이 쉽다. 작년에 갤럭시스S가 1000만 대 팔렸다며. 네 계획이라면 그만큼을 매달 찍어낸다는 건데, 그걸 어디에, 어떻게 팔 생각이야? 응?”

“어디에 팔긴요. 우리 바로 옆에 14억 명의 잠재 구매자가 있잖습니까.”

“중국?”

“예, 중국 시장만 뚫는다면 매달 1000만 대씩 찍어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습니다.”

“중국 시장을 노리겠다는 건, 공장도 중국에 세우겠다는 뜻?”

“그렇죠. 물론 한국 공장도 지금보다는 증설해야 합니다.”

그는 내 의도를 파악할 셈인지 한참이나 말을 곱씹다 입을 연다.

“중국 시장은 포텐셜이 있지. 무엇보다 인구가 그걸 증명하니까. 하지만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부분이요?”

“당국의 입김이 너무 센 건 둘째치고, 조건이 너무 복잡해. 우선, 절반은 자국 기업과 합작을 해야 하고, 공장 설립 조건에 기술 이전이 꼭 들어간다. 합작 기업을 잘못 고르면 기술 다 빼 먹히는 건 둘째치고, 중간에 퍼질러 앉아서 투자를 더 해달라고 협박해대는 놈들도 있어. 완전 쌩 양아치 새끼들이지.”

“와우, 그쪽 사정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벌써 까먹은 거야? 몽골 쪽에 SG텔레콤 선로, 그거 전부 내가 깐 거야. 그 당시 설비는 전부 중국에서 끌어 썼으니 모를 수가 없지.”

이 부분까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적임자 하난 제대로 고른 거 같다.

내가 피어나는 미소를 숨기지 않자. 신용화가 책상을 톡톡 두드려댄다.

“어이, 강 서방. 웃을 일이 아니야. 어지간한 대기업도 중국 들어갔다가 개털되고 나오는 거,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대기업이랍시고 한국에서 사업할 때처럼 안일하게 시작하니까 그렇죠.”

“우리도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 아냐? 중국에 아무런 기반도 없잖아.”

“제가 텐센트 최대 주주라는 거, 모르세요?”

순간, 신용화의 입에서 ‘아!’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주름졌던 그의 미간이 확 펴진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고 말이다.

“텐센트가 합작사를 맡아주면 한시름 놓는 거지. 합작사 설립 과정에서 잡음도 없을 테고, 텐센트쯤 되는 기업이라면 공안 당국과 꽌시도 당연히 튼튼하겠지?”

“그 동네는 꽌시가 없으면 기업이 안 굴러가니 그건 당연하겠죠.”

“좋아. 이대로만 굴러가면 중국에 공장 짓는 것쯤은 문제없겠어.”

그는 벌써 팬틱을 인수하기라도 한 듯, 다음 계획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남은 건 1000만 대를 팔아먹을 판매망이로군. 국내서 100만 대 이상 파는 건 문제 없어. 국내 시장은 통신사가 직접 판매하는 방식이니까. 남은 건 중국과 그 외에 시장에 유통하는 건데…….”

“잠깐만요. 팬틱 인수는 가능한 겁니까?”

“팬틱은 워크아웃 상태야. 채권단만 잘 보듬어주면 경영권 먹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쉽지.”

“제가 말한 건 그런 뜻이 아닙니다. 국내법상 통신사가 제조사를 가지면 문제가 있는 거로 아는데요.”

내가 이 말을 꺼냄과 동시에 신용화의 콧잔등이 팍 구겨진다.

“알고 있어. 우리가 그 법으로 손해 입은 당사자니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SG텔레콤은 자회사로 제조사를 두고 있었다.

SG텔레텍.

SKY라는 브랜드를 필두로, 한때는 국내 시장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구축했던 기업이다.

하지만 통신사를 끼고 파는 제조업체를 오성전자가 가만 둘리 없었으니.

그들의 로비로 통신사를 낀 제조사는 연간 판매량의 한도가 걸리게 되고, SG텔레콤은 할 수 없이 SG텔레텍을 팬틱에 매각하게 된다.

“내가 같은 걸 2번이나 당할 정도로 바본 아냐. 당연히 생각해둔 방법이 있지.”

“그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든, 국내법으로 발목만 안 잡히게 처리해주십시오. 우린 갈 길이 머니까요.”

“발목?”

픽 웃은 신용화가 턱을 치켜들어 보인다.

과도한 자신감이 표출된 행동이었지만, 어째선지 오만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참에 내가 일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잘 봐두라고.”

* * *

팬틱의 채권단 대표들은 송태석 사장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해임 사유는 배임과 횡령.

경쟁사의 청탁으로 생산물량을 줄였다는 의혹과 함께, 일부 기기를 빼돌려 일본 판매점에 넘기는 대가로 리베이트까지 챙겼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언론 보도가 나오자, 여론은 기름에 물을 부은 마냥 끓어 올랐다.

전문 경영인에 대한 불신과 함께,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절대 불가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베가 레이서N을 사려던 예비 구매자들도 화난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물량이 없던 건 생산문제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장이 물량을 제한하고 일본에 빼돌리고 있었다니 기가 찰 수밖에.

여론이 극도로 험악해졌을 때, 팬틱의 채권단은 공식 기자회견을 연다.

[SG텔레텍 화려한 부활? 팬틱 채권단 “SG그룹과 접촉 중. 이번 협상 결렬되면 정부 지원 불가피할 듯…….”]

[SG텔레콤 신용화 부사장 “SKY 브랜드 다시 살리고 싶으나 관련 법안이 발목.”]

[팬틱 인수 가로막는 관련 법안 재조명. 전문가들 “글로벌 시대에 뒤떨어진 법. 빠른 개정 필요.”]

[팬틱 노조, 시위 5일째. “기업회생 막는 악법, 즉각 개정하라!”]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포털 일면을 장식한다.

대부분의 국민은 팬틱이 어떻게 되든 간에 세금을 지원하지 않는 방향을 원했기에 SG그룹을 지지했다.

그러나 요란한 기사들과는 달리, 팬틱은 정부의 지원이 시급한 기업이 아니었다.

그저 SG그룹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채권단, 안정적인 대기업 산하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노조, 경영권을 삼키려는 신용화. 이 트리오가 이뤄낸 인위적인 여론이었을 뿐이다.

SG텔레콤 부사장실.

말이 부사장실이지 사장실은 몇 년째 공석이었기에 사실상 이곳이 사장실이나 다름없었다.

중역 의자에 몸을 뉜 신용화는 책상에 다리를 얹은 채 발을 까딱거린다.

그가 태블릿으로 보고 있는 건 포털 뉴스란.

그곳엔 워크아웃 기업인 팬틱을 인수한 SG그룹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탓인지 입에선 흥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법안 폐기부터 팬틱 인수, 공장 증설까지 딱 2달 걸렸어. 흐흐, 이쯤이면 너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

잠시 후.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세요.”

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오는 사내는 배현식 이사다.

그는 SG텔레텍 시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팬틱의 이사 자리까지 버티고 버틴 베테랑이다. 물론 SG그룹 내에서는 이제 전입해 온 신병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신용화 부사장님.”

“배 이사님 잘 오셨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예.”

신용화는 말만 하고 시선은 여전히 보던 태블릿PC에 가 있었다.

배현식 이사는 눈치껏 자리에 앉아 허리를 곧추세운다.

SG그룹의 막내아들 성격이 까칠하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기에, 타사에서 넘어온 그로선 특별히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팬틱의 내달 생산 예정량 보고가 들어 왔던데요.”

신용화의 시선이 배현식 이사로 옮겨간다. 놀란 그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내달 예정 생산량이 115만 대로 잡혔더군요.”

“그, 그렇습니다.”

“이게 최대치입니까?”

“팬틱의 다른 기종 생산설비를 모두 베가 레이서N으로 돌렸습니다. 그 덕분에 기존보다 생산량이 30%로 늘었으며, 모든 공정은 24시간 3교대로 가동 중입니다.”

“제가 물은 건 그게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무표정하던 신용화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눈치를 보던 배현식 이사는 아차 싶어서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설비로는 최대치가 115만 대입니다만, 불에 탔던 설비가 복원되는 만큼 예상치는 상향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증설이 완료될 때까지는 계속 이대로 진행합니다.”

“저기…… 대표님. 설비가 증설되면 추가로 숙련직이 필요할 테니, 직원을 미리 뽑아두는 건 어떻습니까? 현행 24시간 근무에는 직원들의 피로가 심한 탓도 있고요.”

“그런 걸 왜 제게 묻습니까?”

“예?”

“직함만 이사지, 지금 팬틱의 경영자는 배 이사님입니다. 제겐 회사가 잘 굴러가는 재깍재깍 보고만 하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계속 쳐다보던 태블릿을 책상에 내려놓는 신용화.

그러곤 배현식 이사 바로 앞까지 다가가 어깨를 두드린다.

“배 이사님은 제가 뽑은 사람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그, 글쎄요.”

“모든 경영 전권을 이사님께 위임했다는 말입니다. 곧 사장 직함도 다실 거고요. 안 그렇습니까?”

“예, 맞습니다.”

“저는 다른 재벌들처럼 세세한 경영까지 관여할 생각 없습니다. 모든 건 실적. 오직 실적 하나만 제게 보고하고 그걸 토대로 상벌을 내릴 것입니다. 이해했습니까?”

신용화 부사장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이름만 전문 경영자랍시고 앉혀두고 마음대로 회사를 주무르는 재벌들이 얼마나 많던가?

배현식 이사는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온다.

“믿어주신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중국 공장 설립 건에 대한 보고 받을 때 다시 뵙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안색이 확연하게 밝아진 배현식 이사가 집무실을 떠난다.

그가 나가자 신용화는 습관적으로 궐련 담배를 꺼내 든다.

“뭐? 직원을 더 뽑아도 되냐고? 옘병. 할 일이 많아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데 저런 걸 사장 후보랍시고…… 어휴 말을 말아야지.”

그의 말처럼, 회사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룹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SG텔레콤을 중심으로 SG컴즈의 대표 포털인 트와일라잇에 동영상 서비스인 클립TV.

거기에 이번에 떠맡은 팬틱까지 합치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업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그의 형인 신석호가 건드리고 있는 하이넥스 인수까지 견제해야 했으니, 신용화로선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신경질적으로 궐련을 비벼 끄던 바로 그때, 휴대폰이 찌르르하고 울렸다.

[#576645]

발신자 번호가 이상하게 뜨는 걸 보니 전속 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신석호 부사장님이 움직이셨습니다.

“이번엔 어디로 갔습니까?”

-예상 목적지는 닉스 코리아로 보입니다.

일전의 거래가 있던 뒤부터 닉스는 하이넥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블러핑만 할 줄 알았던 닉스는, 예상을 깨고 SG그룹보다 더 많은 돈을 써내기도 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최고가를 써낸 닉스가 하이넥스를 인수할 줄 알았지만, 정부 측에서는 국내 기업에 가산점을 준다는 둥,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이상한데. 벌써 2번이나 퇴짜 맞았으면서 또 닉스에 간단 말이야?’

신용화가 고갤 갸웃거리는 와중에 전화 너머로 목소리가 이어서 넘어온다.

-거기다 신석호 부사장님이 타고 계신 차에 동승자가 한 분 타셨습니다.

“동승자라면 비서라도 탄 거 아닙니까?”

-차량이 본가에서 나온 터라 정확한 파악은 안 됩니다만……. 신성호 회장님께서 타고 계실 가능성이 큽니다.

“뭐요?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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