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38화
KG전자에서 닉스폰을 만든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진승모는 눈이 커진 채로 굳어버렸다.
“진 상무님.”
“아, 아…… 예?”
“KG측에선 위탁 생산도 곤란하십니까?”
그는 이제야 굳었던 머리가 다시 돌기 시작하는 듯,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지금처럼 회사가 힘들 때, 위탁 생산 물량이라도 들어오면 감지덕지죠. 그런데 위탁 생산이라 하시면 어떤 방식을 말씀하시는지요?”
“디자인과 부품만 닉스에서 지정하는 ODM 형태로 진행할까 합니다.”
위탁 생산처를 지칭하는 단어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흔히 알려진 OEM은 원청에서 설계를 내려주면 제조사는 제품 생산만 담당하는 형태다.
쉬운 예로, 애플이 애플폰 설계하고 제조사인 폭스콘에 내려주면, 폭스콘은 제조만 해서 애플에 납품한다.
다른 하나인 ODM은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든 공정을 제조사가 진행하고 원청은 상표만 제공하는 형태다.
당연히 전자보다는 후자가 이윤이 많이 남는 일이었기에 진승모의 굳었던 표정이 실시간으로 펴지고 있었다.
“발주량은 얼마 정도로 생각하시는지요?”
“우선 초도물량 300만 대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300만 대나요?”
예상을 뛰어넘는 발주량에 진승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KG전자의 야심작 옵티무스2X의 판매량이 고작 50만대였으니 이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300만 대나 생산하는 건 불가능합니까?”
“불가능할 리가요. 저희 KG는 오성 다음 가는 생산라인이 있습니다. 300만 대쯤은 우습게 가능하지요.”
“그것참 다행이네요. KG에서 못한다고 했으면 대만의 폭스콘에 의뢰할까 생각했거든요.”
집무실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하지만 그 표정이 이어지는 건 잠시뿐이었다.
“납기는 연말까지 해주셔야 합니다.”
“헙!”
놀란 진승모는 헛숨을 들이 삼켰다. 그와 동시에 웃음기도 사라진다.
“말씀하신 연말이 올해 연말을 뜻하시는지요?”
“출시일이 올해를 넘겨 버리면 자연스럽게 내년 스마트폰들과 대결하는 꼴이 됩니다. 첫 스마트폰을 내놓는 닉스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만 연말까지면 5개월이 채 안 남았습니다. 설계부터 시작해서 부품 수급과 생산라인 배정까지. 처리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연말까지는 일정이 너무 촉박한 게 아닌가 싶은…….”
눈치를 살살 살피며 말을 흘려댄다.
“그래서 KG에선 못 하겠다는 뜻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일정을 좀 조정해 주시면 어떨까 싶어서 말씀드리는 거죠.”
“일정을 못 맞추면 타사에 위탁 의뢰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진승모는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라서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이구, 이 답답아. 이럴 땐 무조건 된다고 하고 바짓가랑이를 잡고서라도 매달려야지.
진짜 내 후배였으면 꿀밤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다.
“진승모 씨, 입사하기 전에는 뭐 하셨습니까?”
“예? 아, 스탠퍼드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았습니다.”
“MBA 과정 밟았으면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셨겠네요?”
“이제 일 년 하고 조금 넘었습니다.”
엑, 고작 일 년?
진승모의 어설픈 모습이 연기가 아니라 진짜배기 초짜였단 말인가?
어쩐지 처음부터 재벌가 아들이 차장으로 시작하더라니.
갑자기 탁하고 힘이 풀린다. 동시에 헛웃음까지 흘러나왔다.
“혹시 닉스까지 찾아오신 이유가 KG전자 스마트폰에 닉스OS 탑재 불가 통보를 위해서 오신 겁니까?”
“그럴 리가요. 양 사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협업을 이어나가지 못하지만, 글로벌 트랜드를 발맞춰서 다른 분야에서 여러모로…… 어, 그러니까…….”
말이 횡설수설 길을 잃고 갈피를 못 잡는다. 장담컨대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르고 있으리라.
가만 보니 이마에 식은땀까지 송골송골 맺히고 있다. 전형적인 햇병아리 영업사원의 모습이다.
그의 모습에서 내 신입사원 때가 오버랩되면서 측은함이 밀려올 정도다.
“승모 씨.”
갑작스럽게 호칭이 진 상무님에서 승모 씨로 바뀌자, 당황한 듯 날 쳐다보는 녀석.
“닉스에 그 말 하려고 비싼 차비 들여가며 왔습니까? 전화나 팩스도 있는데요?”
“그럴 리가요.”
“그죠? 까놓고 말해봅시다. 진짜 방문 이유는 이번에 닉스OS 건으로 물 먹인 거 살살 달래고 다른 방면, 예를 들면 전기차나 디스플레이 쪽으로 영업하러 온 거 아닙니까?”
“…….”
“그래서 제가 물건 팔아준다고 했잖습니까. 그런데 영업사원이 NO라고 해요?”
할 말을 잃은 진승모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댄다.
“휴, 영업맨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일단 YES라고 해서 물량 받아두는 게 먼저고, 해결책을 찾는 건 그다음입니다. KG전자 경영진도 300만 대 발주가 들어왔는데 설렁설렁 하겠습니까? 납기를 분할로 처리하든, 다른 수를 쓰든, 일정을 맞춰보려고 하겠죠. 제 말이 틀립니까?”
“아뇨. 맞습니다.”
“일단 물량 질러 놨다고 회사에서 욕할 거 같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제가 장담컨대 조건이 안 맞다고 대량 발주를 캔슬 내고 돌아왔다고 하면 욕을 한 사발 먹는 건 기본이고.”
내 시선이 그를 아래위로 쓱 훑는다.
“승모 씨가 재벌가 사람이 아니었다면 다음 날 출근했을 때 책상이 사라져 있을 겁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제가 이런 일에 익숙지 않아서요.”
“처음부터 업무에 익숙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후, 이대론 안 되겠네요.”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그는 놀라서 허리를 곧추세운다.
“가시죠.”
“어딜 말입니까?”
“아깐 한잔하러 가자면서요.”
진승모는 반사적으로 시계를 쳐다본다.
현재 시각은 3시 20분.
당연한 소리지만 술잔을 나누기 좋은 시간은 아니었다.
“승모 씨는 제가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좀 해줘야겠습니다.”
“인생 선배요?”
“아, 말이 헛 나왔네요. 인생 선배가 아니라 업계 선배로 정정하죠. 어찌 됐든, 싫으면 지금 싫다고 말하세요. 억지로 끌고 가는 취미는 없으니까.”
눈치를 보던 진승모는 잽싸게 자리서 일어선다.
“아닙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기회를 놓칠 순 없죠. 가시죠, 선배님.”
* * *
[안드로이드OS 개발자 컨퍼런스 개최, 구글 CEO 애덤 슈미트 “안드로이드OS에 집중한 업체에겐 더 나은 개선환경을 선사할 것.” 타사OS 배척 루머, 사실상 인정.]
[안드로이드OS의 벽은 높았다. 닉스OS 탑재 예정이던 스마트폰 줄줄이 출시 포기 선언.]
[구글 행보에 위기 느낀 닉스, 닉스OS에 이은 닉스폰 출시 준비? 관련 업계 종사자 싹쓸이.]
[닉스, 모바일 AP 시장에서 95% 점유율을 기록 중인 ARM홀딩스 176억 파운드에 인수. 하드웨어 쪽 진출에 박차.]
양대 모바일OS 중 하나인 안드로이드OS를 구글이 쥐고 흔들자, IT업계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우선 심비안OS, 블랙베리OS, 바다OS 등이 개발 중단을 선언했으며, 애플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조사가 구글의 안드로이드OS 아래로 집결했다.
구글의 엄포 한 번으로 모바일OS의 춘추전국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노키아가 그래서, 그…… 윈도우를…… 그렇게 됐다.
“예? 노키아가 어쨌다고요? 매형, 잘 안 들립니다.”
-상황이…… 됐다고. 전화…… 들리냐?
독일의 명차라도 내리치는 폭우 앞에선 어쩔 수 없나보다.
매형의 목소리 반, 쏟아지는 빗소리가 반이다.
다행이라면 목적지인 닉스 연구소에 거의 다 도착했다는 거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막 쏟아지네요.”
-한국은 한창 그럴 시즌이지. 여긴 완전 봄 날씨다.
“좋으시겠습니다.”
-좋긴 뭐가 좋아. 나도 집에 가서 쉬고 싶거든? 어쨌든, 나중에 다시 걸게.
“아뇨. 이제 다 왔습니다. 잠시 만요.”
차가 멈춘다. 난 잽싸게 우산을 펼쳐 들고 연구소 건물 아래까지 뛰어간다.
우산을 쓴다 한들 장대비가 몰아치고 있었기에 머리만 멀쩡하고 그 아래는 비에 맞은 생쥐 꼴이 됐다.
“아우, 비 다 맞았네. 그래서 노키아 쪽은 어떻게 됐다고요?”
-어떻게 되긴. 닉스OS 써달라니까 신임 CEO라는 놈이 콧방귀를 끼더라. 작년에 닉스OS 탑재 노키아폰이 어쨌다느니 헛소리까지 해대면서 말이다.
“아니, 그게 우리 잘못입니까? 자기들이 재고떨이 부품 때려 박아 놓고선. 와, 진짜. 어이가 없네.”
-인마, 왜 나한테 틱틱거려. 나도 열 받아 죽겠다.
“그건 그렇고, 노키아는 진짜 안드로이드 버리고 윈도우 모바일로 간답니까?”
-어, 그런 다더라.
“와우.”
대안이 없으면 모를까, 닉스OS라는 모바일OS가 생겼는데도 윈도우모바일을 택했다고?
내가 허허하는 헛웃음을 흘리자, 매형도 거들고 나섰다.
-나도 그 소식을 듣고선 어이가 없더라. 윈도우가 잘나가는 건 PC 시장이지, 모바일에서는 완전 망했잖냐. 그걸 빤히 알면서도 윈도우모바일을 택하다니. 신임 CEO이름이 스테판 엘롭이었던가? 그 녀석의 생각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단 말이지.
“아마도 안드로이드OS의 주도권이 이미 타사에 넘어갔다고 판단했겠죠. 그게 아니라면…….”
-아니라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보낸 첩자거나요.”
-그거 설득력 있네.
“농담인 거 아시죠?”
-아냐, 엘롭의 전 직장이 마이크로소프트였잖아. 노키아 망하게 만들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해 버리는 거 아냐? 그리고 놈은 당당히 마이크로소프트로 복귀하는 거지. 야, 진짜 소설로 써도 잘 팔리겠는데? 이름은 IT업계의 트로이 목마.
매형. 그거 소설 아니고 실화입니다. 엘롭이 진짜 첩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헛소리는 속으로 삼키고 이야길 이어나간다.
“노키아가 닉스OS 라인에 합류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게 됐네요.”
-차라리 잘됐어. 노키아 녀석들, 한물갔으면서 어찌나 목 빳빳하게 세우고 거만하게 굴던지. 거기서 일했던 닉스OS팀이 왜 실패했는지 알겠더라.
“다음은 어디로 가시게요?”
-모로라.
수화기 너머에서 의외의 이름이 넘어오자, 내 목소리 톤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갑자기 모로라는 왜요?”
-왜긴 왜야. 구글이 이번에 인수한다고 공들이고 있잖아. 그러니 중간에 내가 인터셉트 하려고. 인수를 하면 좋은 거고 못 하면 재나 좀 뿌리는 거지. 네 생각은 어떠냐?
“나쁘지 않습니다. 모로라가 가진 특허만 해도 본전은 뽑고도 남습니다. 그러니 예상가보다 조금 더 쓰셔도 됩니다.”
-걔들이 쥐고 있는 특허 가치가 그렇게 커? 내가 훑어봤을 땐 별거 없어 보이던데.
“특허만 빨고 그 외에 본사, 생산공장, 브랜드는 재매각해야죠. 모로라 정도의 브랜드라면 갖겠다는 중국 업체들이 줄을 설 겁니다. 중국폰 이미지를 희석 시킬 최고의 아이템이니까요.”
-너, 정말 지독한 놈이다.
“지독하게 하지 않으면 닉스도 모로라와 같은 길을 걸을 겁니다.”
-부정을 못 하는 현실이 서글프네. 어쨌든, 다음엔 좋은 소식으로 연락하마.
“알겠습니다.”
휴대폰을 집어넣자, 반사적으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내가 알던 미래처럼 모바일OS는 애플OS와 안드로이드OS로 양분됐으며, 노키아까지 예정대로 윈도우모바일을 택했다.
독자적OS까지 만들어 역사의 흐름을 어찌 비틀어 보려했지만…… 역시나 개인의 힘으론 역부족인가보다.
“후, 기분 참 꿀꿀하네. 비가 오니 센치해져서 그런가?”
“센치가 무엇?”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서 뒤를 돌아본다.
그곳엔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연구소장 무자파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무자파?”
“대니얼, 오랜만이다. 연구소엔 어쩐 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