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37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만들어 보죠, 닉스 폰을요.”
직접 스마트폰을 만든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릴 지경이었지만, 매형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별로 내키지 않는데.”
“앞으로는 애플이 뒤로는 구글이, 저희는 사면초가에 진퇴양난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봐야죠.”
“네 뜻은 알겠는데…… 지금은 좀 그렇다. 너도 알잖아. 상황이 어떤지.”
닉스의 독자적인 스마트폰, 일명 닉스 폰 프로젝트는 작년 말부터 은밀하게 진행된 프로젝트다.
스마트폰 설계에 필요한 인재들을 전 세계에서 끌어모으는 것을 시작으로, 반도체 설계업체들과도 활발한 인수합병 논의가 진행됐다.
그때 당시를 회상해보자면, 정말이지 당장에라도 닉스 폰을 출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으니.
프로젝트는 인재 영입부터 난항을 겪었다.
닉스의 인지도가 소프트웨어에 국한돼 있었기에 설계 쪽 인재들은 스카우트를 거부했으며, 인수합병마저 금액이 맞지 않아 지지부진하게 흐르고 있었다.
프로젝트 진행이 미진한 걸 뻔히 알면서 다짜고짜 결과를 내자고 해대니, 매형의 반응이 시큰둥할 수밖에.
“넌 닉스 폰 출시를 언제로 잡을 생각이야?”
“마음 같아선 애플폰5가 나오기 전에 출시하고 싶지만 두 달밖에 시간이 없으니까, 현실적으론 힘들겠죠?”
“그걸 말이라고 해? 애들 장난감 만드는 것도 기한 2달 만에 하라고 하면 다 도망갈 거다.”
“그게 힘들면 데드라인을 올해까지로 잡죠.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리면 딱 맞네요.”
지금이 7월이니, 12월 말까지 치면 5개월쯤 남은 셈이다.
개발 대상이 스마트폰인 걸 생각하면 일정이 빠듯하다 못해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매형이 천천히 입을 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일러.”
“정확히 어떤 부분이 이른 거 같으세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매형은 머리를 짚으며 말을 이어간다.
“자금이 넉넉한 덕분에 설계업체 쪽 인수합병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어. 인재영입도 순조롭지. 기존 연봉대비 3배를 제시했고 닉스OS의 성공으로 닉스 인지도에도 탄력이 붙었으니까.”
“다 잘 되고 있으면 된 거네요.”
“반대로, 닉스 폰 프로젝트는 아직 시작도 못 했다는 뜻이야. 넌 그런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5개월 안에 내라고 말하는 거고.”
“역시 무리일까요?”
“당연히 무리지. 억지로 출시를 강행했다 한들, 졸작이 나와서 이미지만 깎아 먹을 거다. 차라리 시일을 넉넉하게 잡고 내년 중순에 갤럭시스 신작과 대결하는 게 어떠냐?”
“흠…….”
매형은 내가 다른 의견을 꺼낼세라, 급히 말을 이어갔다.
“내년 중순이라고 하면 길어 보이지만 설계 팀 꾸려서 제작 들어가고 QC, 마케팅까지 동시에 진행한다 해도, 그거 순식간이다. 다 하려면 토 나올걸?”
“여유 있는 게 아니란 건 저도 잘 알죠.”
“알면 됐네. 그러니까 괜히 조급해하지 말고 내년 중순까지만 기다려 봐. 우리가 돈이 없어 인지도가 없어? 한 방에 멋진 놈으로 뽑아 보자고.”
매형의 제안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평소의 나였다면 흔쾌히 매형 제안을 받아들였겠지만, 문제는 지금 시기가 스마트폰 시장의 향후 10년을 결정지을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거다.
이 시기에 앞서 치고 나갔던 오성전자는 갤럭시스 시리즈를 필두로 승승장구해 나갔지만, 피처폰에 집중한다는 헛짓을 하던 KG전자, 노키아 같은 부류나. 자국의 갈라파고스 같은 시장에 안주한 일본 제조사들의 끝은 처참했다.
세계 휴대폰 판매 1위였던 누키아는 휴대폰 사업을 매각했으며, 샤프, 블랙리, 모로라 같은 유명 제조사들이 팔려나간 것도 스마트폰이라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여파였다.
난 생각을 충분히 정리하고선 입을 열었다.
“매형.”
“이제야 마음을 고쳐먹을 거냐?”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매형의 미간이 좁아진다.
“야, 강현우. 고작 6개월이야. 6개월 앞당기자고 돈을 퍼붓는 거도 모자라, 제품 퀄리티가 엉망으로 나올 리스크까지 짊어지겠다고? 그러다 닉스 이미지만 깎아 먹으면 어쩌려고 그래?”
“지금 6개월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요?”
매형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자세한 부연 설명을 바라는 눈치다.
이번에도 될 수 있으면 대충 얼버무리고 가는 걸 택하고 싶었다.
미래에 일어날 사실을 누설하지 않고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는 것만큼 곤욕스러운 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매형의 분위기를 봤을 때, 이번은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휴, 알겠습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드릴게요.”
“진작 이러면 좋잖아.”
매형은 싱글거리며 메모할 준비를 해댄다.
“준비 끝나셨습니까?”
“오케이.”
“좋습니다, 시작하죠. 우선은 방금 매형의 발언인, 고작 6개월이라 하셨는데요. 스마트폰 업계에선 고작이 아닙니다. 지금에도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사고 있겠죠. 그것도 생애 첫 스마트폰을요.”
“선점 효과를 말하는 거냐?”
“그거죠. 첫 스마트폰의 선점 효과, 이게 중요합니다. 거기 밑줄 쫙 그으세요.”
난 발표회 때 단상에 섰을 때처럼 손짓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현대인들은 익숙한 걸 좋아하죠. 익숙한 장소, 익숙한 음악, 익숙한 사람들까지.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과 관련된 부분 외에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서예요. 이미 현대인들은 박 터지게 바쁘거든요.”
“그래서 스마트폰도 익숙한 것만 쓸 것이다?”
“아직은 아녜요. 하지만 곧 그렇게 되겠죠. 지금은 애플폰에서만 할 수 있던 일들이, 안드로이드폰에서도 가능케 될 날이 올 겁니다. 그렇게 모든 기기에 상향 평준화가 이뤄지면 남은 경쟁 수단은 뭘까요?”
“코스트, 단가 경쟁이지. PC처럼 전체적인 가격이 내려갈지도? 어랏, 잠깐. 그걸 생각하면 스마트폰 제조 시장엔 안 들어가는 게 이득 아냐?”
매형 말도 일리는 있다. 나 역시 이 시기에는 스마트폰이 PC와 비슷한 길을 걸을 거로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생각이었으니.
“스마트폰과 PC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다릅니다. 바로, 휴대성이죠”
“휴대성이 왜?”
“스마트폰은 손에 쥐고 다니는, 나를 뽐낼 수 있는 사치품입니다. 시계나 가방, 명품 의류처럼요. 사치품의 가치는 기능이나 질보다는 브랜드가 결정짓게 될지도 모릅니다.”
필기해 나가던 손이 멈추고, 아!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매형 얼굴엔 이제야 이해했다는 표정이 지어진다.
“그전까지 브랜드 가치를 정립했다면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 겁니다. 하지만 브랜드 가치 정립에 실패했다면 평준화된 시장에서는 가격을 낮추는 수밖에 없겠죠.”
“판매량이 적으니 가격을 낮추고, 가격을 낮추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져서 판매량이 적어진다는 말이구나. 악순환의 연속이로군.”
“낙오한 브랜드는 중국폰과 가격 경쟁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중국폰 제조사가 브랜드 자체를 인수하겠죠.”
끔찍한 상상을 했는지 매형은 몸을 부르르 떤다.
닉스 딱지를 붙이고 파는 중국 업체 스마트폰이라도 생각한 건가?
“아무튼,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봐야 합니다. 아직은 스마트폰보다 피처폰을 쓰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래도 12월 말은 너무 촉박해. 5개월 동안 뭘 할 수 있겠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어서라도 출시해 내야죠. 두고 보세요. 제가 어떻게 하는지.”
* * *
닉스 폰 프로젝트는 쌍방으로 진행됐다.
매형이 기업 인수합병 쪽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난 헤드헌터를 대거 고용하여 공격적으로 인재를 쓸어 담았다.
이전까진 몰래몰래 스카우트를 해왔다면, 이젠 눈치 볼 것도 없었다.
OS개발이나 하드웨어 설계 쪽은 물론이고 앱 개발자까지,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 엮어서 닉스에 입사시켰다.
특히 안드로이드 앱 개발자의 지원이 폭주할 정도로 많았다.
이유는 안드로이드 유료 앱 구매빈도가 너무 낮아서 수익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입사 요청자 중엔 지도 앱인 YOUR맵 팀이나 미디어 플레이어인 MX비디오플레이어 개발자도 속해 있었기에 잽싸게 닉스 소프트로 보내 버렸다.
그렇게 정신없는 7월이 지나고 폭염과 함께 8월이 고개를 내밀 때 즈음.
본디 안드로이드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발표될 구글의 타사OS 병용 불가 정책이 열흘 앞서 뉴스를 타게 된다.
웃기게도 이 시점부터 매일같이 걸려오던 닉스OS 문의와 입사 지원자가 뚝 끊겨 버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만, 입맛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삐롱- 삐롱-
“예, 강현웁니다.”
-대표님, KG전자의 진승모 상무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집무실로 올라오라고 하세요.”
-올려보내겠습니다.
그 소식이 전파를 타고 이틀이 지났다.
지금쯤이면 KG전자 내부에서도 충분히 논의가 이뤄졌을 거다.
과연 그들의 결정은 어떻게 났을까? 닉스냐 아니면 안드로이드이냐.
초조하게 기다리길 1분여가 지났을 때, 얌전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바짝 긴장한 진승모가 들어온다. 그는 언제나처럼 깍듯하게 인사부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강현우 선배님!”
“어서 오세요, 진 상무님.”
우린 악수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예의를 차렸는데, 평소와는 살짝 느낌이 다르다.
조금 더 조심한다고 해야 하나?
내가 입을 닫고 있자, 진승모가 먼저 이야길 시작한다.
“제가 오늘 방문한 건 다름이 아니고 안드로이드OS 때문입니다. 혹시, 선배님도 소식을 들으셨는지요?”
조심스럽게 내 안색을 살피는 진승모.
“듣다마다요. 이 바닥에는 소문 퍼지는 거 순식간이잖습니까. 아주 싹을 자르려고 작정을 했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서로 눈만 껌뻑이며 차를 마시길 10초가량 흐르자, 어색한 침묵을 견디다 못한 진승모가 질문을 던진다.
“혹시 팬틱에서는 어떻게 결정했습니까?”
“안드로이드냐 닉스냐 말입니까?”
“예.”
“팬틱은 해외 판매로 짭짤하게 실적을 냈잖습니까. 그래선지 닉스OS로 완전히 갈아탈 의향을 밝혔습니다. 회사가 워크아웃 상태니 도박이라도 해볼 심산이겠죠.”
“도박이라…….”
되뇌는 그에게 내가 히쭉 웃으며 직구를 던진다.
“어찌, KG는 도박이 아니라 안정을 택한 거로 보입니다?”
진승모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인다. 혹시가 역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최대한 닉스OS 쪽을 밀었는데, 회사 사정이 사정인지라…… 최종 결론은 안드로이드OS를 택하게 됐습니다.”
“사정이 얼마나 안 좋기에 우는 소리를 합니까?”
“당분간 적자가 계속될 거로 보입니다. 임원 회의에서는 유상증자가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도 간간이 나오고요.”
오성전자가 R&D에 40조가량을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판국에 경쟁사인 KG전자는 유상증자를 하느니 마느니 하고 있을 줄이야.
난 앞으로도 이 둘의 격차가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혀지질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절로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찌 잘 설득했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진승모는 내 표정의 의미를 착각한 모양이다.
난 얼른 미소를 거두며 입을 열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KG전자의 경영진은 닉스OS가 쫄딱 망하면 나중에 안드로이드OS로 돌아갈 수 없을까 봐 이런 결정을 내렸겠죠. 제 말이 틀렸습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전부 맞습니다.”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진승모.
“죄지은 것도 아니고 승모 씨가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습니다. 결정은 경영진이 했을 거 아닙니까?”
“이런 소식을 들고 온 주제에, 제가 어찌 선배님 앞에서 고갤 들겠습니까? 아니, 이제는 선배님이라 부를 면목도 없습니다.”
사람이 착한 거야? 아니면 연기력이 발군인 거야?
몇 번을 봐도 파악이 힘든 녀석이다. 차라리 뱀 같은 정용재나, 황소 같은 구현민이 대화 상대로는 더 편할 정도다.
녀석은 이어서 뭐라 말을 할까 말까를 한참이나 고민한다.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똥 마려운 강아지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러다 결국 말을 토해냈는데.
“선배님, 혹시 오늘 저녁 괜찮으십니까?”
“저녁에 일정이 비긴 하는데,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제가 좋은 양꼬치집을 압니다. 같이 맥주라도 한잔하시죠.”
워낙 뜬금포인지라 한 박자 쉬고 풋 하는 웃음이 터진다.
“아, 웃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고민해서 꺼낸 말이 꼬치집 같이 가자는 겁니까? 혹시 저를 위로라도 해주시려고요?”
“아니, 그게. 그러니까…….”
“위로주가 아니고 축하주면 기꺼이 같이 가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위치에서 경영진의 결정을 번복하는 건 무립니다.”
“KG전자 제품에 닉스OS를 넣어 달라는 게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막 나가는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어떤……?”
난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다. 그러곤 그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꺼냈다.
“KG전자에서 닉스 폰 만들어 볼 생각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