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35화 (135/206)

기적의 IT 재벌 135화

닉스 게임 컨퍼런스의 분위기는 시시각각 변해갔다.

발표를 시작하기 전에는 ‘닉스에서 게임산업에 진출한다고?’라는 의문이 주를 이뤘다면, 이어서 공개된 게임들의 인플레이 영상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반반씩 섞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닉스에서 질 높은 게임을 만들어 주는 건 좋지만 3D 게임이 주류인 시대에 흐름을 역행하는 2D 도트 게임을 내놨으니, 객석의 애매한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들은 이어서 진행된 발표에 쏙 들어가게 된다.

[닉스 스튜디오의 다음 파트너는 NTD!]

메시지와 함께 NTD사의 캐릭터만 등장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주는 강렬함은 그 어떤 시네마틱 영상보다 컸다.

객석에선 일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기립해서 박수를 쳐대는 사람, 의자 위로 올라서서 괴성을 질러대는 사람,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 것처럼 닉스를 연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타사 플랫폼 진출을 완강하게 거부하던 NTD사의 게임들이 초고퀼리티 2D 그래픽으로 구현되는 것으로 모자라, 모바일 환경에서 즐길 수 있다는 건 정말 꿈 같은 일이었으니까.

무대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개발 중인 게임의 클립 영상들이 줄지어 흘러나온다.

언제부턴지 들려오던 환호 소리가 사라졌다.

업계 종사자든, 기자든, 너나 할 것 없이 영상에 집중한 탓이었다.

난 그때를 틈타 살짝 무대 뒤편으로 들어간다.

제일 먼저 달려온 건 이번 행사를 오매불망 기다렸던 배기태 팀장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러십니까. 진짜 수고는 기태 씨가 했죠.”

이번 NTD사의 라이센스를 따낸 건 배기태 팀장이다.

그는 작년 말, 닉스 재팬에 발령받고서부터 매주 교토의 NTD 본사로 찾아가 라이센스 협상을 진행했다.

타사 플랫폼에 거부감이 있는 NTD는 그가 찾아갈 때마다 거절 의사를 표했으나, 배기태는 포기하지 않고 교토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끈질긴 배기태의 방문에 NTD 본사는 그를 블랙리스트로 지정할 정도였는데 그러던 와중에, 그 사건이 터지게 된다.

바로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이때 닉스의 헌신적인 구조 활동에 감명을 받은 NTD의 이와타 사장은 결국 닉스에 독점 라이센스를 허가하게 된다.

겸연쩍은 듯 뒷머리를 쓱쓱 긁던 배기태가 입을 연다.

“솔직히 대표님이 게임을 만든다고 했을 때, 살짝 발만 담그고 나올 거로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죠?”

“까놓고 말해서, 모바일 게임이라고 해봐야 지금의 닉스에겐 너무 작은 시장이잖습니까. 그러니 대표님이 취미 수준에서 끝낼 거라 어림짐작했던 거죠.”

모바일 게임 시장이 작다고?

지금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는 아니었다.

미래에 모바일 게임 시장은 PC게임 시장을 추월하는 거로 모자라, 그 3배 수준인 700억 달러 급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 때문에 온라인 게임에 집중하던 국내 거대 게임사들도 모바일로 방향을 선회할 정도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고픈 말을 속으로 눌러 담고선 그의 어깨를 툭 두드린다.

“닉스OS를 위해서라도 닉스의 게임산업 진출은 필수적입니다. 플래그십 스마트폰 구매층인 20대에서 40대를 잡으려면 게임만 한 컨텐츠가 없으니까요.”

“허, 그럼 앞으로도 이 정도 규모의 투자를 이어나간다는 말씀이신지요?”

“이왕 시작한 거, 닉스 스튜디오를 최고의 게임사로 만들어 봅시다. 자신 있습니까, 배기태 팀장?”

“대, 대표님…….”

이 말이 그리 좋았을까?

감동한 듯 눈시울까지 붉어지는 녀석.

그는 갑자기 90도로 고개를 푹 숙인다.

“저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하고, 또 일해서 닉스를 최고로 만들겠습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사내의 진심이 느껴진다. 내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기태 씨.”

“예, 대표님!”

“서프라이즈 이벤트 준비는 끝났습니까?”

“언제든 스탠바이 완료입니다.”

“좋습니다. 바로 진행하세요.”

준비됐던 클립 영상은 순식간에 끝을 맞이했다.

영상을 관람했던 관객들은 기대감이 최고조로 올라, 서로 열띤 토론까지 벌이고 있었다.

“NTD사 게임을 스마트폰에서 만날 수 있다니. 올해 들은 소식 중에 가장 충격적이야. 기사가 나가면 난리가 나겠지?”

“이미 기사 떴어. 지금 게임 포럼에는 이 이야기밖에 없을 정도야.”

“아으, 드래곤RPG 기대된다. 언제쯤 해볼 수 있을까?”

“닉스라면 신형 애플폰 출시인 석 달 뒤로 일정을 맞추지 않을까? 아무래도 다른 게임들처럼 앱스토어에 우선해서 출시될 테니까.”

“저기 닉스 대표, 다시 올라왔어. 다른 발표도 하려나 봐.”

소란스럽던 발표장은 내가 올라서자 일순간 고요해졌다.

모두의 기대 어린 시선이 내게 몰려 있다. 난 시선을 즐기며 마이크를 오버스럽게 쳐들었다.

[이로써 닉스 게임 컨퍼런스의 일정이 끝났습니다. 자리를 빛내주신 업계 관계자, 기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퇴장하시면서 닉스의 협력사에서 출시한 최신 스마트폰을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최신 스마트폰을 준다는 말에도 객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라고 할까?

이런 행사장에서 자사의 제품을 나눠주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사람들 눈빛이 희뜩 변해 버린다.

[나눠드릴 스마트폰에는 앞서 소개했던 4종의 모바일 게임이 탑재돼 있습니다. 앞으로도 닉스 스튜디오의 게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이 짐을 싸고 일어선다.

한시라도 빨리 닉스 게임을 해보고 싶어서 출구로 달려나가기 위함이었다.

순식간에 사람들로 채워진 출구는 압사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었다.

비상구까지 개방해서 총 6개의 출구를 쓰지 않았다면 정말로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닉스 게임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기자들은 고스란히 바로 옆, WWDC 행사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웃긴 점은 행사장에 갔던 기자들이 애플 행사장에서 베가 레이서를 들고 닉스 게임을 했다는 거다.

기자들이 군데군데 모여서 게임을 즐기자, 자연스럽게 구경꾼들도 모인다.

마치, 어릴 적 학교에 휴대용 게임기를 가져오면 모두가 몰려서 구경하는 것처럼 말이다.

애플 관계자들은 자사의 행사에 타사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기자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봤지만, 개인이 쓰는 스마트폰을 어찌 제재하겠는가?

그저 속만 썩어들어 갈 뿐이었다.

이런 진풍경은 바로 포털 기사에 실렸다.

[WWDC를 장악한 타사 스마트폰. 이번 행사의 주인공은 애플폰5가 아니라 닉스 게임이었다?]

* * *

닉스 게임 컨퍼런스가 끝나고 정확히 한 달째 되던 날. 닉스OS 기기들은 첫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됐다.

팬틱의 베가 레이서N이 94만 대.

KG의 옵티무스2N이 50만 대.

애플폰의 월간 판매량이 900만 대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턱없이 모자라는 수치였지만, 안드로이드OS가 탑재된 베가 레이서가 두 달간 10만 대밖에 팔리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판매량이었다.

게다가 6월 말부터는 입소문을 탔는지 세계적으로 닉스OS용 단말기가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판매점에서 웃돈을 주고 파는 일이 생길 정도였다.

* * *

닉스 코리아 대표이사 집무실.

한 달 만에 다시 모인 송태석 사장과 진승모 상무는 얼굴에 웃음꽃이 펴있었다.

“두 분, 어서 오십시오.”

“어이쿠, 강 대표님 뒤에서 후광이 보이는 거 같습니다.”

송태석 사장이 먼저 다가와 호들갑을 떨어댄다. 이에 질세라 진승모도 내게 들러붙어 선물을 건네온다.

“선배님,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이건 100년 묵은 귀한 산삼입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닉스OS 성공에 확신이 없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 은근히 기세 싸움을 해대고 있다.

흘러나오는 웃음을 속으로 갈무리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분 모두 표정이 밝으신 거 보니, 생산량이 제법 나왔나 봅니다.”

먼저 말을 낚아챈 건 팬틱의 송태석 사장이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족족 팔린다는 말이 과언이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작년의 갤럭시스S 판매량을 뛰어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갤럭시스S가 1000만 대쯤 팔렸던 거로 아는데, 팬틱에서 그만한 물량을 소화할 수 있던가요?”

송태석 사장은 민망한지 콧잔등을 매만진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솔직히 지금의 설비로는 매월 45만 대를 찍어내는 것도 빠듯합니다.”

“그럼 증설을 하면 안 됩니까?”

“그러고 싶어도 증설에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지라…… 막상 증설했는데 판매량이 떨어지면 그것 또한 큰일이잖습니까.”

이런 걸 두고 줘도 못 먹는다고 하던가?

기회가 왔음에도 그걸 잡지 못하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다.

송태석 사장은 이 주제를 끌고 나가기 껄끄러운지 재빨리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강 대표님 말씀대로 램과 저장소를 업그레이드하고 가격을 올려 팔았던 게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만약, 성능을 유지하고 600달러대에 팔았다면 얼마나 배가 아팠겠습니까? 하하하.”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최고 수준의 부품을 넣고 만들어야 합니다. 스마트폰 초창기에 완성된 이미지는 앞으로 10년이 넘도록 이어질 테니까요.”

“백 번, 천 번 옳은 말씀입니다.”

내가 입을 딱 다물자 이야기가 잠시 끊어진다.

그 틈을 타고 진승모가 날렵하게 치고 들어온다.

“저희 KG전자는 증설 여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달부터는 매달 60만 대를 추가해서 110만 대씩 생산하기로 했죠.”

“오호, KG도 판매실적이 제법 괜찮았나 보네요?”

“괜찮다마다요. 시범적으로 50만 대만 생산했던 물량이 전월에 매진됐습니다. 지금은 옵티무스2N 물량을 내려보내 달라고 얼마나 연락을 해대는지. 오랜만에 공장이 24시간 돌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닉스OS 폰에 매달렸던 팬틱과는 달리, KG는 다소 미온적으로 닉스OS 폰에 접근했다.

그 때문에 초도 물량, 딱 50만 대만 생산하고 말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50만대는 한 달을 못 버티고 동나버렸다. 경영진의 시장 예측에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지금은 옵티무스2N이 언제 재생산되나 발만 동동 구르는 처지다.

“일전에는 초도 물량을 100만 대로 맞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갑자기 50만 대로 물량이 변경된 겁니까?”

“저는 초도 물량 100만 대를 요청했었으나 경영진에서 절반으로 떨어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스마트폰 사업부에 적자가 심해지다 보니…… 휴. 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진승모는 자기 입으로 말하고도 안타까운지 쓴웃음을 짓는다.

만약 브랜드파워가 있던 KG에서 옵티무스2N 물량을 쭉쭉 뽑아냈다면, 지금보다 200만 대는 더 팔았을 거다.

난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양 사가 닉스OS 탑재 폰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니 저도 기쁩니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여러분들에겐 안 좋은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내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이어질 발언에 한껏 긴장한 듯 송태석 사장은 연신 이마에 땀을 닦아 냈고, 진승모는 마른침을 꼴깍 삼킨다.

“무슨 소식입니까?”

“아시다시피 닉스OS 탑재 스마트폰의 시장 반응이 좋았잖습니까? 그 때문에 다른 제조업체에서도 줄지어 닉스OS 탑재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

올 것이 왔다는 뜻을 내포한 진승모의 탄식이 들려온다. 그 옆에서 당황한 표정의 송태석 사장이 물었다.

“어디서 요청을 해왔습니까?”

“기존 파트너사인 노키아부터 시작해서, 일본 기업인 소니, 샤프, 도시바 등등. 거의 모든 제조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 확실히 SNK나 NTD 게임이 들어갈 예정이니 일본 쪽에서 반응이 좋겠군요.”

“그 외에도 화웨이, ZTE, LeEco 같은 중국 업체도 적극적으로 협상을 요청해오더군요.”

흙빛이던 송태석 사장 얼굴색이 이제는 잿빛으로 변했다.

지금 팬틱의 베가 레이서가 이리 잘 팔리는 이유는 세계에 닉스OS 탑재 스마트폰이 2종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안드로이드OS처럼 너도나도 닉스OS를 탑재하고 나온다면 베가 레이서의 판매량이 한순간에 고꾸라지리란 건 불 보듯 뻔했다.

진승모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스마트폰 사업으로 연일 죽을 쑤던 KG전자도 이제 막 옵티무스2N를 추가 생산하면서 빛을 보나 했는데, 닉스OS를 다른 제조사에도 풀어버린다면 다시 도루묵이 될 분위기 아닌가.

신나서 떠들던 두 사람의 입이 닫히자, 집무실에는 침묵이 내리깔린다.

말 없는 고요의 시간이 흐르고.

불편한 흐름을 끊어준 건 집무실의 인터폰이었다.

“예, 강현웁니다.”

-대표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중요한 미팅 중이니까 나중에 약속 잡고 방문하라 하세요.”

-저 그러니까…….

인터폰 너머의 비서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왜요? 대통령이라도 왔습니까?”

-그게 아니라 오성전자의 정용재 부회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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