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31화 (131/206)

기적의 IT 재벌 131화

신형 애플폰에 닉스 챗 선탑재를 거부할 거란 건 예상했던 바다.

그건 자사의 모바일 메신저를 밀어 넣으려면 당연한 결정이었으니까.

하지만 닉스 챗의 기능을 제한한다는 건 대체?

나를 쳐다보던 브릭이 서류 뭉텅이를 하나 더 가져다준다.

“이건 통보서 다음으로 들어온 추가 내용입니다.”

“서류량이 상당하네요.”

“주절주절 길게 써놓긴 했지만, 요점은 닉스의 앱들이 배터리를 많이 잡아먹는다는 겁니다.”

“애플의 말이 사실입니까?”

“닉스 챗은 독자적인 푸시 서버를 쓰고 있습니다. 그때 문에 직접 푸시를 받는 앱들보다는 배터리를 적게 쓰죠. 하지만 부가적인 애드온이 많은지라 총량을 따지자면 적다고는 볼 수 없어요.”

개발 쪽 지식이 옅은지라 브릭의 말을 전부 이해하는 건 무리였다.

내가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옆에 있던 스칼릿이 대신 나섰다.

“잘 들어. 내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게. 닉스 챗은 초기 설계 때부터 저사양 기기도 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에 자원 소비가 적어. 타 모바일 메신저들보다 압도적일 정도로.”

내가 여기까진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자, 그녀가 설명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이후 추가된 애드온들. 예를 들자면 닉스 제로나 닉스 페이, 닉스 비콘 같은 애들은 이야기가 달라. 닉스 비콘이야 시도 때도 없이 GPS를 쓰는 거로 유명하고, 닉스 페이는 24시간 스탠바이 상태나 다름없는데 배터리 소비량이 적은 게 이상한 거지.”

“닉스 페이를 안 쓸 땐 꺼두면 되잖습니까?”

“말이야 쉽지. 항상 스탠바이 시켜둘 때와 아닐 때의 구동 속도 차이는 어마어마해.”

“말씀하신 어마어마한 시간이 얼마 정돈데요?”

“짧으면 5초, 기기 컨디션에 따라 최장 9초까지 늘어나.”

5초에서 9초.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초 단위를 다투는 QR코드 결제 서비스에는 치명적인 딜레이다.

QR코드 결제서비스의 경쟁자는 동종 업계의 핀테크 서비스가 아니라, 쓱 긁으면 결제가 끝나는 신용카드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마트 계산대 앞에 섰는데, 결제 앱 실행이 굼떠서 끙끙대고 있는 모습을.

답답하다는 듯 쳐다보는 캐셔와 뒤에 줄지어 밀려 있는 손님들. 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등에 식은땀이 흘렀을 거다.

당연히 다음부터는 닉스 페이를 실행하는 일도 없어지겠지.

“닉스 페이보다 더 난감한 건 GPS를 상시로 켜야 하는 닉스비콘이야. 이쪽은 애플의 지시를 따른다면 서비스를 접어야 할 수준이라고.”

“그 앱들을 닉스 챗에서 분리하면 안 되는 겁니까?”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이긴 한데 지금처럼 닉스 챗과 깔끔한 연동은 안 될 거야. 접근성 면에서 확연히 차이가 날 테니까. 앱을 하나 새로 까는 데는 거부반응이 엄청나거든.”

“흠…… 애플이 이걸 노렸을까요?”

“100%지. 이 비겁한 놈들. 정면으로 닉스 챗과 경쟁하면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이런 꼼수를 쓴 거야.”

그녀는 화가 나는지 주먹으로 손바닥을 퍽퍽 두들겨댄다.

“분해도 어쩔 수 없죠.”

“뭐? 그게 끝이야?”

“그럼 어쩌겠어요. 애플폰과 애플OS는 그들이 만든 생태곕니다. 쉽게 말해서 건물주나 마찬가진데 세 들어 있는 우리보고 하지 말라면 못하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기본 매너라는 게 있는 거지!”

뜬금없이 등장한 매너 타령에 피식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와 버렸다.

당연히 그걸 보고 스칼릿은 미간을 찌푸렸고 말이다.

“아, 미안해요, 스칼릿. 그런데 작년 닉스 챗 수입이 얼만지 아세요?”

“난 개발만 하지 그쪽은 잘 몰라.”

“광고 수입만 50억 달러입니다. 미국의 3대 완성차 업계의 영업이익을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라고요.”

“그, 그게 어쨌다는 거야.”

“이런 큰돈이 굴러다니는 시장에 매너 같은 걸 따지고 있겠습니까? 제가 애플 경영진이라도 자사에서 대체재를 만들었다면 닉스 챗을 찍어 내렸을걸요.”

그녀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지, 화난 고양이처럼 그르렁대기 시작했다.

“그럼 애플이 하라는 대로 당하고만 있겠다는 거야?”

“아뇨, 우리도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죠.”

“어떻게?”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까지 귀를 쫑긋 세운다.

“혹시 적군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 * *

잡스의 장례식은 그의 가족들만 참석하여 비공개로 치러졌다.

장례식은 물론이고 그의 무덤 위치까지 비밀에 부쳐졌기에 부고 소식은 나흘이 지나고서야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평소 잡스에게 매료돼 있던 애플 팬들에게는 그의 죽음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애플 본사 역시 추모 분위기에 동참했다.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검은 옷을 입고 왔으며 사내에는 그를 추모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슬픔과는 별개로 애플 경영진들 사이에선 직책 변동이 이뤄졌다.

CEO였던 잡스의 자리는 이인자였던 톰 쿡이 차지했고, 그가 있던 CFO 지위를 한 단계 낮추면서 CMO였던 제프 베이커가 자연스럽게 이인자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린다.

본디 잡스의 자리였던 책상에 발을 걸치고 있던 쿡은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는 제프 베이커였다.

“뭐야, 제프였나.”

“축하합니다, 쿡. 드디어 CEO 자리에 오르셨군요.”

흥분한 제프와는 다르게 쿡은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도 축하해. 단숨에 나 다음 자리까지 올랐군.”

“기쁜 표정이 아닌 거 같습니다?”

“기쁘긴 한데 이제 잡스가 없다니 어딘지 허전해서 말이야. 그의 깐깐한 성격 때문에 피곤할 때도 많았지만 어느새 정이 들었었나 봐.”

“추억은 항상 미화되게 마련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분은 의견이 안 맞아서 사사건건 충돌했지 않습니까.”

쿡은 과거를 회상하는 듯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래, 그랬었지.”

제프는 집무실 중앙에 놓인 소파에 엉덩이를 밀어 넣는다.

“오오. 이게 이렇게 푹신한 소파였나요? 잡스가 있을 땐 나무로 만든 것처럼 딱딱했던 거 같았는데요.”

“자네가 거길 앉아 있을 땐 잡스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 말곤 없었으니 그렇겠지. 시간이 흐르면 그 잔소리도 그리워질걸?”

“장담하는데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쿡은 픽 웃으며 제프의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나저나. 이사회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을 하다니요?”

“잡스가 쓰러지기 무섭게 미국 본사로 복직되질 않나, 그것도 모자라 CFO보다 더 많은 권한을 쥐여주다니.”

“아아, 그거요.”

제프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아일랜드 지사로 쫓겨났던 거. 뭐 때문인지 잊으신 겁니까?”

“잊을 리가 있나. 제프 자네가 닉스 챗을 복제하려다가 덜미를 잡혀서 그렇게 됐잖아.”

“흐흐, 그렇죠.”

“웃을 일이 아니야. 그때 대니얼 강이 넘어가 줘서 다행이지. 여론몰이라도 같이했다면 자네는 좌천이 아니라 파면당했을 거야.”

“그런 짓을 제 독단으로 했다고 생각합니까?”

쿡이 자세를 앞으로 당기고 말했다.

“혹시, 이사진 지시로?”

누가 듣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비밀을 나누는 것처럼 줄어들어 있었다.

“제안은 제가 했지만, 최종 승인은 이사진의 뜻입니다.”

“미쳤군. 미쳤어.”

개인의 일탈과 이사진 차원에서 직접 지시한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만약 이 일이 그때 밝혀졌다면 기업의 도덕성 문제로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을 거다.

“그러니까 제가 총대를 멘 거 아닙니까.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그때 작전이 성공했다면 지금 닉스 챗이 가진 파이는 오롯이 애플이 접수했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

제프는 쿡이 동의하자 더 득의양양해진 표정을 짓는다.

“그땐 단순히 재수가 없어서 일이 꼬인 것일 뿐. 이번은 다릅니다. 저는 아일랜드 깡촌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닉스 챗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우리가 차지할 수 있을지를요.”

“그 방법이라는 게 닉스 챗의 기능을 제한하고 선탑재를 막는 건가?”

“그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애플 메신저는 선탑재와 문자 메시지 연동이라는 강점을 앞세워서 신흥국부터 자리를 잡아 갈 겁니다. 그렇게 파이를 늘리다 어느 정도 안정화 됐다 싶을 때.”

제프는 허공을 낚아채듯 손을 확 휘두른다.

“닉스 챗의 모가지를 잡고 앱스토어에서 끄집어 내릴 겁니다.”

“닉스 챗은 이미 세계 점유율 1위 메신저야. 우리가 독단적으로 결정 내리면 사용자들의 반발이 심할 텐데?”

“우리 쪽에 명분이 확실하다면요?”

자신만만한 제프의 반응에 쿡도 설마 하며 질문을 던진다.

“닉스 챗에 뭔가 흠결이라도 있는 거야?”

“이유야 붙이게 마련이죠. 닉스 챗에 음란물이나 매춘, 마약 거래를 엮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개인 채팅 내역이 유출됐다고 보안 핑계를 댈 수도 있습니다.”

쿡이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오히려 제프는 그런 반응을 좋다고 웃어댄다.

“흐흐흐, 제가 말했잖습니까. 아일랜드 깡촌에서 닉스 챗을 무너트릴 생각만 했다고요.”

“닉스를 너무 몰아세우다간 다른 곳과 연합할 수도 있어. 예를 들면 구글이나…….”

“모바일 메신저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건 세상에 다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구글은 물론이고 노키아, MS, 페이스북까지 자체 메신저를 준비 중인데 누가 닉스와 손을 잡겠습니까?”

그의 말처럼 구글은 다음 버전의 안드로이드OS부터 자체 메신저를 선탑재한다고 발표한 상태였다.

“확실히, 다른 업체들도 지금의 닉스 챗을 받을만한 메리트가 없긴 하지.”

“애플에 기반을 뒀던 닉스는 잡스가 힘을 잃은 순간부터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닉스는 천천히 고립돼서 말라 죽을 겁니다.”

* * *

서울 홀리데인 호텔의 프라이빗 비즈니스 센터.

사방의 방음이 철저하고 매번 3회의 도·감청 검사를 시행했기에, 기업 간 비밀스러운 대화를 하긴 최고의 장소였다.

프라이빗 비즈니스 센터로 이어지는 복도를 걷는 한 사내. 그는 오성전자의 부회장인 정용재였다.

호텔 복도를 성큼성큼 걷는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뒤따르는 비서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은 정용재 부회장이 한 달 만에 떠나는 휴가 날이었는데, 이유도 모르는 일정이 갑자기 잡혔기 때문이다.

“김 비서, 딱 2시간이다.”

“2시간 말입니까?”

“그래, 2시간. 2시간 만에 이번 일을 끝내고 몰디브로 떠날 거야. 시간이 1분도 지체되지 않게 준비해놔.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비서는 꽁지가 빠지라고 뛰어간다.

정용재는 그런 부하의 모습까지 짜증 났다.

“전화기는 뒀다가 어디 쓰려고 저러는 거야. 이놈이나 저놈이나 쓸만한 놈이 없어요. 쯧쯧.”

그는 혼자서 복도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약속장소에는 두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형님, 오셨군요.”

정용재가 방으로 들어서자, 신입사원 같은 모습의 청년이 인사를 해온다.

그는 KG전자의 진승모 차장이었다.

“네가 왜 여기 있냐?”

“초대를 받았으니 왔죠. 형님도 초대받고 오신 거 아닙니까?”

“형님은 누가 형님이야.”

“어, 음…… 그럼 호칭은 어떻게 부를까요? 부회장님으로?”

“너 꼴리는 대로 해.”

“그럼 계속 형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용재 형님.”

정용재는 넉살 좋게 웃어대는 진승모를 보자 속이 더 끓어 올랐다.

그와는 최근 들어 전기차 부품 사업으로 부딪힌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속 진승모를 밀어주는 이유가 뭐야? 놈의 생각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니까.’

정용재는 짜증스럽게 의자를 빼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재빨리 다가온다.

“반갑습니다, 부회장님.”

“누구시더라?”

“전 팬틱의 송태석 사장입니다. 일전에 한 번 뵀던 거 같은데…….”

“아. 그랬었지.”

정용재가 성의 없이 내민 손을 송태석 사장은 황공하다는 듯 두 손으로 맞잡는다.

“송 사장님, 언제 한번 찾아오세요. 차나 한잔하죠.”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 차가 아버지와 아들뻘이었지만 인사받는 정용재와 굽실거리는 송태석 사장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한국에서 일하는 월급쟁이 사장의 최종 목적지가 오성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까.

“아, 그런데 팬틱에서 전기차 부품 사업도 하던가요?”

“그럴 리가요. 저희는 휴대폰 사업을 유지하기도 벅찹니다.”

“그럼 어떻게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저도 그게 잘…….”

정용재의 미간이 꿈틀거리며 좁아진다.

‘전기차 부품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럼 계기판 디스플레이 쪽인가? 젠장, 시답잖은 일이기만 해봐라.’

갑자기 불러낸 것도 짜증 나는데 어떤 이유로 불렸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니, 정용재는 짜증을 넘어서 울화가 치밀었다.

“어이, 승모.”

“예, 형님.”

“오늘 무슨 이야기 한다고 하디?”

“글쎄요. 저도 장소랑 시간만 통보받은 터라.”

“모르면 알아보고 왔어야지. 무슨 생각으로 여기 앉아 있는 거야?”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진승모는 허허 웃어넘긴다.

“제가 한번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진승모가 일어서려는 바로 그때.

문 쪽에서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그곳엔 커다란 방음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사내 한 명이 있다.

이 자리에 세 사람을 불러모은 당사자.

닉스의 CEO인 강현우였다.

“벌써 다 모이셨군요. 제가 늦은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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