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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130화 (130/206)

기적의 IT 재벌 130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닉스의 CEO 대니얼 강입니다.”

아론 회장은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내가 악수를 청한 것도 모른 채 말이다.

난 어깨를 으쓱거리곤 시선을 마화텅에게로 돌린다. 그는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한다.

“딱 좋은 타이밍에 오셨군요.”

“그렇습니까?”

“예, 회장님이 이제 막 가시려던 참이거든요. 워낙 바쁘신 몸인지라.”

아론 회장은 그제야 내게 다가와 입을 연다.

“대주주라니? 닉스에서 네스퍼 지분을 모았다는 말인가?”

“네스퍼의 지분이 워낙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어서 모으기가 쉽지 않더군요. 열심히 모았으나 5%를 확보하는 데 그쳤습니다.”

심각했던 아론 회장 표정이 살짝 환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어서 들려온 이야기에 그의 얼굴은 다시 사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주식 공개 매수를 해야겠더군요.”

“뭐, 뭐라고!”

주식 공개 매수는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개적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공개 매수 기간에는 평시보다 웃돈을 주고 주식을 사들이는 만큼 단기간에 다량의 주식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정석적인 M&A 방식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에 적대적 M&A에서 최후의 카드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론 회장님이 보유한 네스퍼의 지분은 23% 남짓이니 저희가 전체 주식 중 10%만 공개 매수할 수 있다면 전세가 역전되는 셈이죠.”

“흥. 말이 23%지 나를 지지하는 세력은 과반이 넘어. 너희들끼리 흉계를 꾸며봐야 헛수고일 뿐이라고”

“제가 왜 10%만 매수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뭐?”

동그래진 눈으로 그가 반문해온다.

“텐센트 때문에 네스퍼의 주가 역시 고점 대비 38%나 떨어졌더군요. 지금이라면 시세차익을 낼 절호의 찬스 아니겠습니까? 공개 매수 프리미엄 20%를 얹어서 사들인다 해도 남는 장사지요.”

“놈…… 얼마나 사들일 셈이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2%만 더 확보하면 마화텅 대표와 함께 50.1%에 도달합니다.”

“미친 소리! 네스퍼 지분 32%를 사들이려면 수백억 달러가 필요하다. 그걸 너희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론 회장은 말을 호기롭게 쏘아붙였으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닉스가 이번 동일본대지진을 예측해서 천문학적인 금융 이득을 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그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을 알게 되실 테니까요.”

“자, 잠깐만. 자네, 이러는 이유가 뭔가? 닉스는 알리바바 그룹과 협상하고 있었잖아. 그 때문에 지분도 취득했다며?”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됩니까?”

난 아론 회장에게 한 걸음 다가선다.

그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다가 다리가 꼬여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찍어 버렸다.

“크윽…….”

“닉스는 처음부터 알리바바 그룹이나 바이두와 함께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럼 알리바바 그룹의 지분을 왜 인수한 게냐?”

“알리바바 그룹은 장래가 밝은 회사니 단순한 투자를 한 겁니다. 그걸 멋대로 뉴스화해서 퍼 나른 건 언론들이고요. 상식적으로 6억 명의 QQ메신저 사용자를 두고 다른 곳과 손을 잡는 건 멍청한 짓이죠.”

엉거주춤하게 일어선 아론 회장의 볼이 푸들푸들 떨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마화텅에게 놀아난 꼴이었으니 뒷골을 잡고 쓰러지지 않은 게 용할 정도다.

옆에서 있던 마화텅이 아론 회장을 부축한다.

당연히 회장은 마화텅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쳤다.

“마화텅, 넌 거둬준 은혜도 모르는 짐승이더냐? 텐센트가 어려울 때 내가 얼마나 도와줬는데,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하다니!”

“그때 일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리 때문에 배가 가라앉는 걸 알면서도 손 놓고 있을 순 없는 것 아닙니까?”

“뚫린 입이라고 막 지껄이지 마라! 네놈이 제대로만 했어도…….”

“반대로 회장님이 억지만 부리지 않았어도 이런 사달이 나진 않았겠죠.”

두 사람이 또 언쟁을 벌이려 하자,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흐름을 끊었다.

“두 분 다 진정하시고.”

“진정은 무슨 진정!”

“아론 회장님. 제 말을 안 들으시면 필시 후회하실 겁니다.”

아론 회장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걸 아는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마화텅 대표가 비유한 대로, 저희는 배가 산으로 가는 걸 막을 생각입니다. 그 방법으로는 키를 쥔 선장을 끌어내리는 방법이 있겠고. 아니면 배의 짐만 다른 배로 옮겨 실을 수도 있겠죠.”

“큭…….”

그는 내가 뭘 원하는지 대번에 알아챘다. 결국, 체념이 섞인 한숨을 토해 낸다.

“자,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시길.”

* * *

지분 현황의 급격한 변화를 맞은 텐센트는 본사 대회의실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었다.

텐센트는 물론이고 중국 IT시장의 대변혁을 맞이하는 자리인 만큼. 각국의 경제지 기자들, 증권사 직원, 대형투자사까지 합세해서 총 500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텐센트의 CEO인 마화텅입니다. 저희 텐센트에 대규모 지분 변동이 있었던 만큼, 대주주분들을 한 번 소개하고 임시 주주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좌석은 좌측에서부터 주식보유 수량대로 마련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마화텅은 빈자리 하나를 지목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먼저 3번째에 있는 빈자리가 제 자리입니다. 다른 소개는 필요 없을 거 같군요. 그리고 그다음 자리에 앉은 분을 소개해 드립니다. 2번째 자리에 앉으신 분은 너무나 유명하신 분이죠. 실리콘밸리의 메시아라고 불리는 닉스의 CEO, 대니얼 강입니다.]

내가 손을 들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장내에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이번에 대니얼 대표님이 텐센트 주식 12.2%를 취득하면서 닉스와 텐센트는 끈끈한 협력관계를 맺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텐센트에 많은 도움을 부탁한다는 의미로 박수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귀가 따가울 정도의 박수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닉스 챗과 알리바바 그룹의 연합으로 텐센트 위기설이 경제지 헤드라인을 장식했었고.

4달러 수준이었던 주가가 장중 2.3달러까지 처박혔었으니, 텐센트의 주주들로선 내가 자신들을 지옥에서 꺼내준 구세주처럼 보일 것이다.

[오늘 최대 주주분은 개인사정으로 불참하셨으니, 새롭게 대주주가 되신 대니얼 강의 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텐센트의 최대 주주는 아론 회장의 지분을 전량 인수한 세계재난구조재단의 이사장인 우리 누나다.

실질적으로 이사장 임명 권한은 내게 있기에 눈 가리고 아웅인 셈이지만 본래 이 바닥 일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마화텅은 단상에서 내려와 내게 귀엣말을 한다.

“주주총회 분위기가 정말 좋군요. 제가 작년 영업이익을 발표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거, 주주분들 기대가 너무 커서 제 어깨가 무겁습니다.”

난 마화텅에게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천천히 단상 쪽으로 걷는데 객석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사람이 닉스의 대표이사구나. 듣던 것보다 더 젊어 보여.”

“젊다고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 돼. 저래 봬도 볼보를 통째로 인수한 야심가야.”

“그 소문이 진짜일까? 이번에 텐센트가 휘청거려서 마 대표가 회사를 닉스에 통째로 바쳤다고 하던데. QQ메신저와 웨이-씬을 아예 접어버리고 닉스로 통합한다더라고.”

“한국의 PC메신저 시장이 닉스에 먹혔듯 QQ메신저도 같은 수순을 밟겠지. 안타깝지만 그게 텐센트의 현실이야.”

내가 단상에 오르자 객석의 잡담이 뚝 끊긴다.

그 대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온다.

진행요원들이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들을 말려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들은 진행요원을 몸으로 막으면서까지 셔터를 눌러 댔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평소 개판이라 생각했던 한국 기자들이 양반처럼 보일 정도였다.

단상에 서서 일 분여를 강제 포토 타임을 가지자, 드디어 셔터 소리가 잦아든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에 텐센트 대주주 자리에 오른 닉스의 대니얼 강입니다. 이야기에 앞서, 닉스와 텐센트의 협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마화텅 대표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자리에 앉은 마화텅을 쳐다본다.

그는 시선을 느끼곤 엄지를 치켜들어 보인다.

[많은 주주분이 이 자리에 참석해주셨습니다. 아무래도 닉스와 텐센트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를 궁금해서 찾아오신 것이겠죠. 맞습니까?]

객석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그 대신 뜨거울 정도의 눈빛이 쏟아진다.

[좋습니다. 먼저 확실하게 못 박아둘 사항은. 닉스에서 텐센트 경영에 관여하는 일은 일절 없을 거라는 겁니다.]

또 한 번 웅성거림이 시작된다.

난 이번에는 기다려주지 않고 마이크를 툭툭 쳐서 시선을 모은다.

[그리고 여러분이 우려하시는 일. 예를 하나 들자면, QQ메신저나 웨이-씬을 닉스 챗에 강제로 통합시킨다거나 하는 일을 단언컨대, 절대, 절대로 없습니다. 닉스는 텐센트의 기술적 지원만 협력하며, 사용자 정보를 공유하게 됩니다.]

“와, 대박. 듣던 거랑 정 반대잖아? 완전 텐센트가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 봤나 봐.”

“경영권 보장에 닉스 기술만 빼 온다니. 노련한 마화텅 대표가 닉스 CEO를 완전히 구워삶았구먼. 이래서 연륜이라는 건 무시 못 한다니까.”

“마화텅 대표가 공안 당국과 줄이 있다잖아. 그러니까 닉스도 어쩔 수 없이 숙이고 들어온 거지.”

“이번 발표로 텐센트 주식이 치솟겠는걸. 빨리 매수하라고 해야겠다.”

“이미 늦었어. 10% 넘게 올랐다.”

객석에서 저마다 떠드는 소리에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마화텅이 유리한 협상을 했다고?

그건 근시안을 가진 자들의 멍청한 소리다.

이번 협상으로 닉스는 QQ메신저를 쓰는 6억 명에 달하는 사용자를 확보했으며, 중국에서 진행될 연계 서비스도 텐센트와 함께라면 프리패스나 다름없게 됐다.

결정적으로, 중국인들의 개인정보를 자유롭게 수집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건 억만금을 주더라도 살 수 없는 최고의 이점이다.

미래에는 인간이 생활하며 발생하는 정보 꾸러미가 기술의 핵심이 된다. 그렇기에 사생활의 자유 따윈 무시하고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중국은, 닉스에 최적의 연구장소가 되는 셈이다.

이삼 년만 지나고 이번 일을 돌아봤을 때, 과거를 두고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오늘을 이렇게 평가할 것이다.

중국 인민의 정보를 해외기업에 팔아넘긴 날이라고 말이다.

난 임시 주주총회가 끝나기 전에 먼저 밖으로 빠져나왔다. 500명이나 되는 사람이 일거에 빠지기 전에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회장의 뒷문엔 샤오후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 대표님.”

나를 발견한 그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왜 그렇게 뛰어다닙니까? 북한에서 미사일이라도 쐈어요?”

“그게 아니라…… 급히 미국으로 돌아가셔야 할 거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미사일 몇 방 쐈다고 전쟁 안 납니다.”

농담을 던졌는데 어째 돌아오는 반응이 이상하다.

샤오후를 돌아본다. 평소 침착하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표정이 안 좋다.

“대표님, 잡스가 죽었습니다.”

* * *

잡스가 죽었다고?

난 처음에 샤오후의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사실 지금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본디 병석에서 나오지 못해야 할 사람이 멀쩡하게 돌아다니며 신제품 발표까지 했었는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니!

내가 알던 미래라면 잡스가 올해에 죽는 건 맞다.

정확히 2011년 10월 5일, 그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췌장암이 재발하여 사망하게 되니까.

하지만 그날이 되려면 시기상 5개월이 넘는 시간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봤던 잡스는 췌장암 환자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 보였는데, 대체 어떻게……?

* * *

난 텐센트를 빠져나와 급히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본사 임원 회의실로 들어서자, 이미 대책 마련에 들어간 듯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현우야, 왔구나.”

먼저 나를 맞이한 건 매형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가 죽다뇨? 진짜예요? 언제 죽었습니까? 어떻게, 뭐 때문에 죽었대요?”

“잠깐만. 네가 혼란스러운 건 알겠는데. 일단 진정하고 좀 앉아라.”

매형은 날 억지로 자리에 앉히고 냉수를 쥐여준다.

물을 꿀떡꿀떡 넘기는데 차가운지도 모르고 단번에 병을 비워냈다.

“잡스가 죽은 건 정확히 3일 전이야. 아직 언론에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주가가 움직이고 있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정보는 새나갔나 보더라.”

“사인은요?”

“뇌출혈.”

뭐? 췌장암이 아니라 뇌출혈이라고?

내가 이해 못 하겠다는 듯 쳐다보자 매형이 설명을 이어간다.

“신제품 준비로 무리를 했었나 봐. 그의 개인 연구소에서 쓰러진 걸 직원들이 발견했다나.”

갑자기 멍해지는 기분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인의 마지막이 이토록 허무할 줄이야.

난 한참 동안 회의실 천장을 응시했다.

보스턴 개발자 포럼에서, 그에게 처음 접근했던 건 내 사익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나를 진심으로 대해줬고, 나 역시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내가 잡스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는 없었을까? 내가 없었다면 그는 더 오래 살 수 있었을까? 내가 그때 다른 판단을 했었다면…… 내가…… 내가…….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눈물을 훔쳐낸다.

“잡스는 3일 전에 쓰러진 겁니까?”

“아니, 한 달은 더 됐다던데. 그걸 애플에서 꼭꼭 숨기고 있다가 이제야 들킨 거지.”

내가 애플 본사에 들렀던 날. 이미 잡스는 거기 없었고 병원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 이상하다 했어. 잡스의 성격이었다면 날 피했을 리 없지. 게다가 이사진 라인인 제프 베이커가 복직된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고.

비틀비틀 걸어가 자리에 앉는다.

심각한 분위기 탓인지 다른 사람들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내려앉은 침묵은 한참이나 더 이어졌다.

눈치를 보던 사람들 중, 대표로 브릭이 내게 다가온다.

“혼란스러울 거란 건 알아요. 보스는 평소, 잡스와 친밀한 사이였으니까요.”

“괜찮습니다.”

“어…… 그럼 이거 한 번 보실래요? 오늘 애플에서 날아온 서류예요.”

브릭은 조심스럽게 서류를 한 장 내민다.

서류는 이번에 출시될 신형 애플폰에 닉스 챗을 선탑재하지 않겠다는 것과 함께, 닉스 챗의 기능을 일부분 제한하라는 통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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