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29화 (129/206)

기적의 IT 재벌 129화

선전에 온 지 정확히 나흘째 되던 날 아침.

내가 묵고 있는 호텔 스위트룸에 손님이 찾아왔다.

“다시 뵙는군요, 마화텅 대표님.”

“예, 반갑습니다.”

우린 최소한의 인사만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찾아온 당사자 쪽이 먼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그는 앞에 놓인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아직 선전에 계신 걸 보니, 저를 기다리셨나 봅니다.”

“한국에선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뜬금없는 말을 꺼내자 마화텅이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다.

“IT 기업을 경영하는 제겐 선전의 전자상가가 방앗간이라는 말이죠.”

“재미난 말씀이군요.”

경직됐던 분위기가 살짝 풀리는 게 느껴진다. 직구를 던질 땐 바로 지금이다.

“물론 이것도 슬슬 질려가던지라, 베이징이나 광저우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헛.”

베이징에는 중국 포털 70% 점유율을 가진 바이두 본사가, 광저우에는 오픈 마켓 1위인 알리바바 그룹 본사가 있었다.

텐센트로썬 닉스가 바이두나 알리바바 그룹과 연합해서 메신저 시장에 진입하면, 안방에 호랑이가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말을 툭 던지곤 마화텅의 반응을 살핀다.

과연, 저번처럼 화를 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숙이고 들어올 것인가.

한참이나 말을 고르고 고르던 그는 체념했다는 듯 한숨을 뻑 내쉬고 말했다.

“대니얼, 당신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우린 인연이 아닌 거 같군요.”

엥? 뭐라?

예상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난 반응이 나왔다. 직구를 너무 세게 던졌나?

“그 말은 제시한 조건을 거절한다는 뜻입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다시 터져 나오는 한숨.

저건 거절 의사를 전하러 온 사람의 표정이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협상으로 닉스에게 뭔가를 더 얻어 내겠다는 건가?

내 반응을 의식한 듯 마화텅이 이유를 설명해 나간다.

“저희로썬 닉스가 내건 조건이 파격적이기도 했지만, 타 업체와 연합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제안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거절하는 겁니까?”

“제 의지가 아닙니다.”

“대표이사의 의지가 아니라면…… 네스퍼가?”

마화텅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잠깐만요. 닉스가 텐센트와 협업하면 주가는 가파르게 뛸 겁니다. 투자 기업의 가치가 오를 절호의 기횐데, 이걸 최대주주가 걷어찬다고요? 이건 납득이 안 되는 일입니다만.”

“상식적으론 그렇지만, 네스퍼는 자체 제작한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길 원합니다. 자사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대에 밀고 있는 이클립스라는 모바일 메신저죠.”

“아.”

이제야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겠다.

네스퍼는 기업 투자로 유명한 기업이지만 본업은 언론과 통신, 방송을 주력으로 서비스하는 종합 미디어 그룹이다.

그들로썬 닉스가 모바일 메신저를 중심으로 파생 서비스는 물론이고 광고 시장을 싹쓸이하는 것을 봐왔기에, 무리해서라도 자사의 메신저를 중국 시장에 넣으려 했을 거다.

“우린 그 때문에 엉성한 이클립스 엔진을 웨이-씬에 욱여넣어야만 했습니다. 세계 점유율 2%도 안 되는 모바일 메신저와 연동을 위해서 말이죠.”

마화텅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실려 있었다. 그는 한층 더 격양된 듯한 모습으로 말을 이어나간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멍청한 메신저는 멀티 플랫폼을 지원하지 않아, 중국 점유율 50%가 넘는 심비안OS 사용자를 모두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되지도 않는 엔진을 강요한 것도 어이없는데 로열티까지 뜯어 가겠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어쩐지 뭔가가 이상하다 했다.

내가 아는 웨이-씬은 출시 초기부터 극도의 최적화를 무기로 한, 가벼운 모바일 메신저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내의 10% 남짓한 애플폰 사용자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저가 안드로이드폰이나 노키아의 심비안폰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스퍼는 이런 중국 시장의 특이점을 무시하고 억지로 자사의 이익을 위해 이클립스를 밀어 넣었으니. 지금의 웨이-씬이 중국 시장에서 참패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제가 직접 아론 회장과 담판을 지으러 갔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클립스가 닉스 챗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혹시, 마화텅 대표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마화텅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부정하고 나섰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데이터가 쌓인 닉스 챗과 이제 막 서비스를 개시한 이클립스의 기술 격차는 일이 년으로 메꿀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왜……?”

“네스퍼의 아론 회장은 IT업계에 문외한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는 닉스 챗 같은 메신저를 돈만 투자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죠.”

“미디어 그룹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단 말입니까?”

“그는 미디어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돈을 따라 움직이는 투자자일 뿐이죠.”

마화텅은 속이 타는지 테이블에 놓인 음료를 단숨에 들이마시고 말을 잇는다.

“제가 네스퍼 본사까지 가서 설득해봤지만, 그 늙은이는 오히려 저를 가르치려 들더군요. 메신저와 미디어의 결합이라던가? 걸음마도 못 뗀 메신저를 가지고 장밋빛 미래만 좇으려 드는 꼴을 보니 가증스럽기까지 합디다.”

본디 네스퍼는 텐센트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는데.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간 걸까? 이것 역시 내가 몰고 온 나비효과일까?

“경영권에 간섭하지 않는다 해서 투자를 받았건만, 비전문가가 회사를 쥐고 흔드는 결과가 될 줄은…….”

“그가 비전문가라서 그런 게 아닐 겁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모바일 메신저를 출시하는 건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까요.”

“그런 허황한 꿈도 정도가 있는 겁니다. 이클립스 기반의 웨이-씬이 닉스 챗을 따라잡으려면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그때까지 닉스가 중국 시장을 장악하는 건 뻔하디뻔한 일이고요. 상황이 이럴진대 똥오줌도 구분 못 하고 닉스에서 내미는 손을 거절하다니!”

마화텅은 한탄에 가까운 말을 토해낸다.

그건 분노와 억울함이었다.

자신이 설립하고 키워온 회사가 타인의 선택 때문에 수렁에 빠지게 생겼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흐흐, 흐. 참, 내가 여기까지 와서 무슨 말을 하는지.”

그는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자리서 일어선다.

“휴우- 어째선지 당신은 저를 이해해줄 거 같아서 찾아왔는데…… 분위기에 휩쓸려서 실언을 해버렸군요. 이 자리에서 제가 보인 추태는 잊어 주십시오.”

“추태라뇨. 제가 마화텅 대표님 자리에 있었다 해도 같았을 겁니다.”

“말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씩 웃은 마화텅이 비적비적 방을 걸어 나간다.

문 앞까지 도착한 그는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본다.

“대니얼. 다음에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언제든 환영합니다.”

* * *

[닉스 챗, 중국 현지 업체와 협약 후 정식 서비스 개시 예정.]

[닉스, 알리바바 그룹 지분 12.5% 획득.]

[닉스 챗 중국 서비스 초읽기? 닉스 CEO 대니얼 강 “중국은 중요한 시장. 현지 파트너사와 조율 중.”]

[바이두 사장 리옌홍, 닉스에 러브콜 “바이두는 닉스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알리바바, 바이두. 첨예한 눈치싸움.]

[닉스와 협업을 거절했던 텐센트. 주가 2주간 40% 하락. 주주들 패닉 상태.]

선전의 텐센트 본사.

그곳에서 신문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중년인, 그는 네스퍼의 아론 회장이었다.

“쯧, 이놈이나 저놈이나 호들갑 떨어 대긴.”

아론 회장은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투자자다. 그는 닉스의 제안을 거절했을 때부터 단기적인 주가 하락쯤은 예측하고 있었다.

거기다 텐센트의 가치는 이미 500배나 올라 있었으니, 단기적으로 40%가 하락했다 한들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느긋하게 보이차를 한입 머금는다. 그리곤 홍콩경제신문 대신 뉴욕에서 발행된 신문을 집었다.

[QQ메신저 아성 무너지나? 텐센트의 모바일 메신저 웨이-씬, 출시 5개월이 지났지만 시장 점유율은 8%에서 정체 중.]

[텐센트 CEO 마화텅 “지금으로썬 닉스 챗과 격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당분간 QQ메신저에 집중할 것.” 그의 발언으로 텐센트 주가가 급락…….]

기사를 읽던 아론 회장은, 결국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마화텅 이놈.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게냐.”

텐센트의 주가가 내려간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주식들이 으레 그렇듯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가 진짜 화난 것은 마화텅의 최근 행보 때문이었다.

모바일 비중을 줄이고 PC에 집중한다는 발언에 주가가 폭락한 건 애교 수준이었고. 뜬금없이 8박 동안 유럽 여행을 떠나거나 마카오 도박장에서 파파라치에게 사진을 찍혀 온 적도 있었다.

“마화텅! 마화텅! 이놈, 이 사달을 내놓고 어딜 간 게야?”

아론 회장의 고함에 헐레벌떡 쫓아온 것은 마화텅이 아니라 그의 비서였다.

“대표님이 거의 다 오셨다고 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뭐? 30분은 지났을 텐데, 아직도 오고 있다고?”

“그게, 저…… 그러니까…….”

쭈뼛거리기만 할 뿐 답을 못내 놓는 비서.

그 모습에 아론 회장의 복장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빨리 오라고 해. 빨리!”

“알겠습니다.”

* * *

마화텅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여유 있게 콧노래까지 부르며 말이다.

“오랜만입니다, 아론 회장님.”

그의 부스스한 머리가 떡 져 있는 것으로 보아, 조금 전까지도 자다가 왔을 게 분명했다.

평소 그에게 존대하던 아론 회장이었지만 지금은 다짜고짜 욕설부터 튀어나왔다.

“마화텅, 이 새끼야! 너 요즘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어허, 말이 심하십니다. 이 새끼라뇨.”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아론 회장은 이를 악물고 말을 정정했다.

“그래, 내가 말이 심했던 건 인정하지. 그러나 자네도 너무 나간 거 아닌가?”

“뭐가요?”

“뭐가요라니! 마화텅 자네가 한 말 때문에 주가가 오늘만 5% 넘게 빠졌어.”

“할 말을 했을 뿐입니다.”

아론 회장은 느낌이 이상했지만, 일단 하고자 하는 말을 이어나갔다.

“대세가 PC시장에서 모바일로 넘어갔다는 건 코흘리개도 아는 사실이야. 그런데 투자자들을 모아두고 PC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하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어쩔 수 없잖습니까. 지금의 웨이-씬으로 닉스 챗을 이기려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는데, 그전에 알리바바 그룹과 연합한 닉스 챗이 시장을 다 먹어 버릴걸요? 그럴 바엔 차라리 기존 QQ메신저에 집중하는 낫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진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

마화텅은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며 책상 위를 쳐다본다.

그곳엔 아론 회장의 휴대폰이 놓여 있다. 5년 전 모토로라에서 만든 폴더폰이었다.

“이클립스와 닉스 챗의 차이를 못 느끼셨습니까? 설마, 아직도 닉스 챗을 안 써보신 건 아니죠?”

아론 회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지금은 이클립스가 밀릴 수도 있지. 하지만 인력을 보강하고 수정해 나가다 보면…….”

아론 회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화텅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크큭……. 아, 정말이지. 모바일 메신저는 애플OS, 심비안OS, 안드로이드OS. 저마다의 최적화 방식이 다릅니다. 거기다 기기마다 해상도와 AP마저 천차만별인데 그걸 어떻게 단기간에 따라간단 말입니까?”

“하루아침에 하란 말이 아니네. 시간을 갖고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되는 거야.”

“그동안 닉스는 놀고 있습니까?”

아론 회장은 무례한 마화텅의 행동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말이 너무 심하군.”

“제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습니까. 모바일 메신저 시장은 그 어떤 것보다 선점 효과가 큽니다. 사용자들이 어지간해선 익숙한 걸 바꾸려 들지 않기 때문이죠. 회장님이 아직도 폴더폰을 쓰는 것처럼요.”

“그건 나도 아네만…….”

“진짜 그걸 아는 분이 시장 점유율 1위인 닉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점유율 2%짜리 이클립스를 밀어붙였습니까?”

“인제 보니 웨이-씬에 이클립스를 쓰게 만들었다고 내게 시위를 하는 거였구먼.”

“아뇨. 이건 시위 따위가 아닙니다. 구시대와의 결별을 위한 쿠데타죠.”

“무슨…….”

“제가 최근에 놀러 다닌 거 같습니까?”

마화텅은 놀란 아론 회장에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전 세계를 돌며 야금야금 네스퍼의 지분을 모았습니다.”

“마화텅 너, 이 자식.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저는 무능해서 배를 침몰시킬 게 뻔한 선장을 내쫓을 생각입니다.”

험악하게 마화텅을 노려보던 아론 회장. 하지만 이내 비웃음을 흘린다.

“흥, 그래 봤자다. 네가 용을 쓴다 한들 확보할 수 있는 네스퍼의 지분은 5%도 안 될 텐데?”

“그보단 더 모았습니다. 제가 꼬불쳐둔 개인 재산이 제법 됐거든요.”

“그 정도로는 날 막지 못해. 네가 어찌하기도 전에 텐센트 CEO에서 해임되는 게 빠를걸?”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입니다.”

두 사내가 노려보며 으르렁거린다.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분위기.

바로 그때.

문 쪽에서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비서의 목소리에 마화텅이 답했다.

“들어오시라 하세요.”

아론 회장은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미 자신이 손님으로 와 있는데 다른 사람을 들어오라 하다니, 이건 대놓고 나가라는 말 아니던가?

아론 회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회장님 벌써 가시려는 겁니까?”

“넌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후회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기다렸다가 시죠.”

“웃기고 앉았군.”

아론 회장이 떠나려는데, 마화텅이 뒤에 대고 한 마디를 툭 던진다.

“네스퍼의 새로운 대주주 얼굴은 보고 가셔야 할 거 아닙니까.”

“뭐라?”

발걸음을 멈춘 아론 회장의 시선이 문 쪽을 향한다.

입구에서 천천히 들어오는 사내.

그를 본 아론 회장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럴 수밖에, 그는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아는 인물이었으니까.

“반갑습니다, 아론 회장님이시죠?”

“자, 자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닉스의 CEO 대니얼 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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