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27화 (127/206)

기적의 IT 재벌 127화

터보 제트기 G650이 태평양을 가로지른다.

목적지는 중국 선전(深圳 · 심천).

광둥성 해안에 위치한 선전은 1984년 경제특구로 지정되고부터 급격하게 성장한 대도시다.

선전의 이미지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홍콩을 들르고 거치는 배후도시, 짝퉁의 천국 정도로 여겨졌으나,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푸시로 현재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초거대 도시로 탈바꿈했다.

창밖에 선전의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신도임이 으레 그렇듯 완벽하게 계획 건설된 탓에,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느낌이다.

“끄으.”

8시간의 긴 비행 탓에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난다.

평소였다면 안락한 안마의자에 앉아서 잠을 청했겠지만, 이번은 생각이 복잡해져 잠들 수 없었던 탓이다.

내 소리를 들었는지 건너편 의자에서 쉬던 류 샤오후가 이쪽을 쳐다본다.

“샤오후, 안 잤습니까?”

“근무시간에는 잠들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샤오후에겐 융통성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순도 100%의 원리원칙만이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함에도 대화는 거의 이어지지 못했고, 그의 개인사 역시 아는 바는 거의 없었다.

아, 그의 고향이 홍콩이라고 했었지.

문득 떠오르는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샤오후는 고향이 홍콩이라고 돼 있던데. 바로 옆 동네에 온 셈이네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홍콩에서는 무슨 일을 했어요?”

웬만하면 표정 변화가 없던 그였지만 이 질문에는 조금 난처하다는 기색이 스친다.

“아, 내키지 않으면 노코멘트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저는…… 노예였습니다.”

21세기. 아니, 20세기 말에 노예라니. 아무리 중국이 막장이라 해도 그건 좀 너무 나간 말이 아닌가?

답변을 요구하는 내 눈빛에 샤오후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사실, 제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릅니다. 고향에서 팔려왔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죠.”

“팔리다뇨?”

“인신매매를 당했는지, 아니면 부모가 저를 팔았는지, 자세한 건 저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기억하는 부분은…… 저는 어릴 적부터 싸움꾼으로 사육당했고 매번 경기장에서 싸워야만 했다는 겁니다.”

“혹시 그게 몇 살 때죠?”

“6살입니다..”

6살이면 이제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다. 그런 꼬마애를 데리고 경기장에서 싸움을 시킨다고?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샤오후는 내 표정을 보고선 쓴웃음을 짓는다.

“인간은 보기 드문 광경에 기꺼이 돈을 내는 법이죠. 흐릿한 기억이지만 경기장은 매번 만석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판돈도 제법 컸던 거 같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뒷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러자 샤오후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계속했다.

“어찌 됐든, 저는 계속해서 경기장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친구들을 밟고 올라서며 말이죠. 가끔은 꼬챙이 하나를 쥐여주고 투견들과 싸워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잠시였지만 그의 눈에서 많은 감정이 스쳤다 사라진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저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습니다. 11살이 되던 해, 공산당 간부에 팔려서 경기장을 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그는 자기 아들을 지척에서 경호할 또래의 경호원을 원했고, 저는 그 조건에 걸맞은 꼬마였습니다. 미국 생활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아.”

그의 이야기는 중간중간에 뭔가가 많이 생략된 느낌이었지만 그것까진 캐묻진 않았다.

이 이상 그의 과거를 들춰보는 건 예의가 아닐 거 같아서였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깔린다.

샤오후는 평소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입을 여는 법이 없었으니. 이 침묵은 내가 몰고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이례적으로 샤오후가 말을 걸어온다.

“대표님.”

“예? 아, 예. 말씀하세요.”

“죄송하지만…… 저희 어디로 가는 겁니까?”

순간 황당한 표정이 나와버렸다.

“제가 말을 안 했던가요?”

“선전으로 간다는 말을 하셨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말씀하신 바 없습니다.”

“아, 이런. 제가 좀 정신이 없었나 봐요. 이번 목적지는 선전시에 있는 텐센트 본사입니다.”

“텐센트라면 QQ메신저로 유명한 그 회삽니까?”

“호오, QQ메신저를 아십니까?”

“차이나타운의 중국인들이 많이 쓰기에 저도 그들과 연락할 때만 QQ메신저를 쓰고 있습니다.”

QQ메신저는 중국의 MSN, 세이트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이점이 있다면 대륙의 특성상 사용자 규모가 어마어마했는데, 가입자가 7억 명, 동시 접속자는 1억 명이 넘어갈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다.

“텐센트는 사용자 숫자로 짭짤한 돈맛을 봤으니, 필시 모바일 메신저 사업에도 박차를 가할 겁니다. 성공만 한다면 중국 7억 명의 QQ메신저 가입자가 그대로 모바일 메신저로 옮겨 가는 게 되니 안 할 이유가 없겠죠.”

“혹시 대표님이 텐센트 방문의 목적이 QQ메신저에 닉스 챗을 결합하려는 생각이신지요?”

“가능하면 그럴 생각입니다.”

QQ메신저 사용자 풀을 그대로 땅겨올 수만 있다면 그 가치는 천문학적인 이익으로 돌아온다.

실제로 텐센트는 QQ메신저의 사용자를 토대로 모바일 메신저를 운영해서 아시아 최대기업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대표님, 텐센트에선 이미 QQ메신저와 연계 중인 웨이-씬이라는 모바일 메신저가 나온 거로 압니다.”

“출시는 했지만, 중국 현지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낮아서 별 힘을 못 쓰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사견입니다만 지금 상태라면 중국 시장도 닉스 챗이 장악할 수 있어 보입니다.”

“아뇨, 닉스 챗은 중국에 진출하지 않습니다.”

샤오후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상식적으로 14억 명의 사용자를 포기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리라.

“자, 닉스가 다른 나라에서처럼 공격적으로 프로모션해서 닉스 챗을 중국에 밀어 넣었다고 칩시다. 그걸 당국에서 가만둘까요?”

“아무리 공산 당국이라 해도, 상식적으로 이미 자리 잡아버린 메신저를 어찌할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나도 한때는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바탕으로 중국의 검색시장까지 퍼졌을 때,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 공안국은 해외업체들이 검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구글 서비스는 물론이고, 해외 모바일 메신저, SNS까지 몽땅 싸잡아서 차단해버린다.

그 틈에 자국의 말 잘 듣는 기업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중국은 상식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샤오후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요.”

“걱정되시면 당의 고위 간부와 다리를 놔줄 사람을 찾아보겠습니다.”

난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국의 정보 사업은 개개인이 어찌할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작년에는 온라인 핀테크 사업에 해외 기업 참여를 막아버렸죠. 그래서 페이팔, 아마존 페이들이 전부 철수했습니다. 왜 그럴 거 같습니까?”

샤오후는 미군 정보장교 출신이다.

그는 한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핀테크로 공안 당국이 어떤 일을 벌일지 추리해냈다.

“자국민의 자금흐름을 추적하기 위해서…… 맞습니까?”

“짐작일 뿐이지만 그게 맞을 겁니다. 공안 당국은 자국민의 모든 정보를 언제든 열람할 수 있길 원하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핀테크를 시작해서, 포털, 메신저를 비롯한 모든 정보산업은 말 잘 듣는 자국 기업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샤오후가 90도로 고개를 숙여온다.

제 딴에는 진심을 담은 행동이겠지만 나로선 당혹스러울 뿐이다.

이 녀석은 매사에 너무 진지하단 말이지.

“흠흠, 어쨌든, 닉스는 직접 중국에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대신 대리기업으로 텐센트를 내세워 독자적으로 당국과 줄다리기를 하도록 만들 생각입니다.”

“쉽지 않겠군요.”

“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중국 시장을 먼저 장악해야 한다.

중국만 어찌 잡아낼 수 있다면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을 거쳐까지 서남아시아 일대를 싹쓸이하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 될 테니까.

잡스, 두고 보십시오. 저는 당신이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 * *

텐센트의 대표이사인 마화텅은 어젯밤부터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닉스의 CEO가 직접 텐센트 사옥에 방문한다고 연락해왔기 때문이다.

“이걸 어찌한다. 이걸 어찌한다.”

두 가지 감정이 그의 안에서 싸워댄다.

첫 번째는 호승심이다.

업계 최고라 불리는 디자이너이자 IT기업의 경영자. 동류의 사람인만큼 직접 대면해보고 싶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리라.

두 번째로 찾아온 감정은 열등감이다.

최근 자사에서 만들었던 웨이-씬.

닉스 챗을 거의 카피하다시피 만들었지만, 자국에서도 참패했지 않던가? 하다못해 기존 QQ메신저 사용자만이라도 끌어왔으면 좋으련만, 그들까지 웨이-씬을 외면해버렸다.

지금 같은 시기에 그와 마주한다는 건 IT기업 경영가로서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방금 걸려온 전화 역시 마음에 걸렸으니.

-마화텅, 분명히 말하건대. 저희는 당신이 닉스 CEO와 만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것을 믿습니다.

전화는 텐센트의 최대주주인 네스퍼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통화 내용을 되새김질하자 입에서 욕지기가 튀어나온다.

“차오! 경영권을 보장해준다고 떠벌릴 땐 언제고.”

네스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거대 미디어 회사로, 그들이 보유한 텐센트 지분은 40%가 넘었다.

창업자이자 현 CEO지만 겨우 10%를 보유 중인 마화텅과는 4배나 많은 수치였다.

그 때문에 네스퍼는 텐센트가 새로운 사업을 벌이려고만 하면 사사건건 간섭해서 신경을 긁어댔다.

이번 모바일 메신저, 웨이-씬 사업도 마화텅은 자신의 주도하에 모든 일을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중간에 끼어든 네스퍼가 자사의 이클립스 엔진을 탑재하라고 강요한 바람에 완벽하게 일이 꼬여버렸다.

‘웨이-씬에 그 개똥 같은 이클립스를 강제로 넣는 것도 모자라 로열티까지 내놓으라고 하다니.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녀석들.’

이가 빠드득 갈린다.

닉스 챗의 성공 이후, 전 세계 모두가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 눈독을 들였다. 그건 미디어 그룹인 네스퍼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화텅은 재킷을 들고 일어선다.

그러고는 대표실을 나오려는 차에, 비서와 맞닥뜨리게 됐다.

“마 대표님, 출타하십니까?”

“그래, 답답해서 안 되겠다.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마시고 와야지.”

“말씀하셨던 닉스의 CEO가 찾아 왔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부재중이라고 전했습니다만 대표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린다고 합니다.”

마화텅의 눈썹이 사선으로 휘어진다.

청개구리 심보라고 할까? 자존심 때문에 피하고 싶었던 닉스 CEO를 어째선지 만나보고 싶어졌다.

‘네스퍼 놈들에 끌려다니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 내가 왜 그래야 해? 여긴 내 회사라고. 내가 설립하고 경영해서 끌어 올린 내 회사.’

텐센트의 사옥은 예상보다 평범했다.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직원들의 창의력 증진이라는 명목으로 이리저리 꾸며 놓은 것과는 달리, 텐센트 사옥은 절대적으로 실용성을 추구한 모습이었다.

“경호원분은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비서가 중국어로 말하자, 샤오후는 내게 그대로 통역해준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랍니다.”

“마화텅 대표가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봐 주세요.”

통역할 필요는 없었다. 비서가 영어로 답해줬으니까.

“마 대표님과는 영어로 대화하시면 됩니다.”

“좋습니다. 샤오후는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난 그를 두고 비서를 따라 미로 같은 통로를 한참 동안 걸었다.

얼마 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짝이는 금색 글귀가 박힌 문이 나타난다.

[CEO 마화텅]

비서가 노크하자, 푸근한 인상의 중년인이 문을 열고 나온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외모는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중년 사내였지만, 행동거지에선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반갑습니다, 닉스의 대니얼 강입니다.”

“저는 마화텅입니다. 소개는 이쯤하고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는 호쾌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안으로 손짓한다.

대표실 역시 실용성을 추구한 듯 3대의 PC와 책상이 붙어 있었다. 그 외에는 흔한 장식장 하나 없이 단조로운 풍경이다.

우리는 대표실 구석에 마련된 탁자에 마주 앉았다.

마화텅은 자신이 직접 차를 따르며 이야길 시작한다.

“갑자기 오신다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미리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말이죠.”

“경황이 없을 정도로 오셨다면 급한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중국까지 말입니다.”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내 속내까지 뒤집어 탐색하고 있는 듯했다.

내 의도가 그렇게 궁금하시다면 대놓고 말해주지.

난 찻잔을 내려놓고선 말했다.

“중국이 아니라 정확히는 이곳, 텐센트에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텐센트엔 무슨 일로…….”

“최근 모바일 메신저를 내놓으셨더군요. 웨이-씬이라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만?”

웨이-씬 이야기가 나오자, 마화텅의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목소리가 살짝 거세진 듯하다.

아마도 경계하고 있는 거겠지.

“텐센트에 뭔가 따지거나 하러 온 건 아닙니다. 그저,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온 것뿐이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닉스의 대표님이 직접 찾아와서 하실 제안이라…… 혹시 닉스 챗을 웨이-씬에 탑재하러 오신 겁니까?”

마화텅의 목소리에는 경계를 넘어서 적의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느낌이 싸늘하다.

어째, 일이 쉽게는 안 풀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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