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26화 (126/206)

기적의 IT 재벌 126화

2011년 1분기까지의 모바일메신저 시장은 닉스 챗이냐, 닉스 챗이 아니냐로 구분됐다.

먼저 닉스 챗은 명실공히 세계 1위 모바일 메신저로 전 세계 스마트폰 설치율 80%. 실사용률 92%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그에 반해 노키아가 단독으로 출시한 썬넷. 한국의 NEVER가 베타 버전을 낸 라임. 한일 통신사가 합작으로 개발 중인 ZOY가 지지부진한 성적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바일 메신저는 먼저 깃발을 꽂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시장이었기에 후속 주자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추격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동향은 저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핀란드 쪽은 노키아가 썬넷을 밀고 있으며 한국에선 라임이 프로모션을 퍼붓고 있더군요.”

“호오, 알면서도 표정에선 자신감이 넘치는데?”

“당연하죠. 후속 메신저들이 기존의 닉스 챗을 밀어내려면 혁신적인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들 빼다 박은 인터페이스에 비슷한 기능, 거기에 만듦새까지 어설프니 멀쩡하게 닉스 챗을 쓰던 사용자들이 넘어가겠어요?”

“저도 현우 씨 말에 동의해요.”

수아도 내 말을 호응하고 나섰다.

“제가 최근에 닉스OS 호환성 문제를 검토한다고 메신저란 메신저는 다 써봤거든요. 그러면서 느낀 점이 닉스 챗은 정말 잘 만든 메신저구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우리 회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그랬어요.”

우리 이야기를 경청하던 매형은 대답 대신 가져왔던 보고서를 내 쪽으로 넘겨준다.

“못 보던 보고서네요.”

“오늘 아침 자로 나온 따끈따끈한 녀석이다. 한 번 훑어봐.”

“무슨 내용이 쓰여 있길래 존폐니 뭐니…… 헙!”

한 장짜리 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닉스 챗을 선탑재해서 출고시켰던 애플이 자사의 독자적인 메신저 앱을 만들고 있으며, 닉스를 견제하기 위해 선탑재에서 닉스 챗을 제외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거…… 어디서 나온 소스입니까?”

“SPI에서 가져온 애플 내부 문건. 이거 한 장에 200만 달러나 줬다.”

“후우-”

SPI는 허위 문서를 200만 달러나 받고 팔아먹을 조직이 아니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애플이 메신저를 만들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뒤통수를 치면서 들어오다니.

내가 말없이 관자놀이만 눌러대고 있자 매형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미 애플폰이 풀릴 만큼 풀린 곳은 닉스 챗이 꽉 잡고 있으니 상관없지. 문제는 아직 애플폰이 안 풀린 지역이야. 그 틈새시장에 애플이 선탑재로 밀고 들어가면 우린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아직 아시아 쪽에 닉스 챗 사용이 저조하죠?”

“어, 특히 중국이나 동남아 쪽은 거의 전멸이야. 그쪽은 이제 막 스마트폰이 풀리기 시작하는 추세니까.”

중국은 14억 명의 잠재적 소비자가 있는 곳이다.

14억 명이 얼마나 많은지 감이 안 잡힌다면 다른 빅마켓들과 비교해 보면 간단하다.

우선 스마트폰의 메카인 미국의 인구가 3억 명이며, 유럽 연합을 다 합쳐도 5억 명이 고작이다.

그 때문에 세계 시장을 포기하고 중국 내수만 먹어도 업계 3위가 돼버리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동남아는 상관없는데, 중국은 좀 걸리네요.”

“동남아도 중요해. 베트남이나 싱가포르 쪽이 휘청거리면 근방에 있는 인도 시장까지 잠식될 수 있어.”

“인도…… 그쪽은 스마트폰이 들어가려면 멀었을 텐데요. 그리고 천하의 애플이라 해도 그쪽을 다 먹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나도 처음엔 너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게 아니더라.”

매형은 걱정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말을 계속한다.

“이번에 애플에서 만든 메신저가 문자 메시지와 통합해서 작동하는 거 같더라.”

“이런.”

한국이나 일본처럼 변화가 빠른 시장이 아니고서야 아직은 피처폰의 시대다.

당연히 메시지 사용비율은 모바일메신저보다 일반 문자 메시지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신흥시장인 중국, 동남아, 인도 쪽은 그 쏠린 정도가 더 심했는데, 이런 시장에 모바일 메신저가 일반 문자 메시지와 연동된다는 건 닉스 챗의 모든 장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무기가 된다.

머릿속이 복잡한 나머지 애먼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 댔다.

내게서 답이 나오지 않자, 매형은 준비했던 질문을 던진다.

“이참에 닉스 챗도 문자 메시지와 통합시켜 버리면 안 돼?”

대답은 내가 아니라 수아의 입에서 나왔다.

“모바일 메신저와 문자 메시지를 통합하려면 모바일OS를 새로 뜯어서 작업해야 해요.”

“불가능한 건 아니네?”

“어, 그게…… 그러려면 제조 때부터 탑재를 시키던가, 그게 아니면 구글, 애플처럼 자사 모바일OS가 있어야 가능해요. 사실 현우 씨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예전부터 독자적인 모바일OS에 힘을 실었던 거고요. 그죠?”

확답을 묻는 시선들이 내게 꽂힌다.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고 말했다.

“수아 말이 맞습니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모바일OS를 개발하려 했던 겁니다. 일단 플랫폼이 자리를 잡으면 그 아래에 종속되는 서비스들은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니까요. 이번의 애플과 닉스의 관계처럼요.”

“우리에게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야?”

“애플과 맺은 계약서를 가지고 걸고넘어지는 방법이 있습니다. 거기엔 선탑재 앱에 대한 항목이 있으니까요. 대신 그렇게 되면 완전한 전쟁 선포나 다름없으니 애플OS에서 닉스 챗을 밴할지도 모릅니다.”

애플폰에서 닉스 챗을 못 쓴다면 북미나 일본에서의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끔찍한 가정에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애플이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리진 못할 겁니다. 플랫폼에서 앱을 카피하는 것으로 모자라 강제로 찍어 내고 잡아먹는 꼴이니까요.”

“그럼 네 생각은 소송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거네?”

“일단은 그렇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다만 솔직히 자신 없다.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이 가지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그런 애플이 메신저를 내놓고 닉스 챗을 밴을 했다고 치자.

처음엔 개발자들이 반발하고 잡음이 날 수도 있겠지만, 애플은 충성도 높은 팬보이를 바탕으로 비난 여론쯤은 뭉갤 힘이 차고도 넘친다.

소송을 택한다 해도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악독한 오성의 법무팀마저 무릎 꿇린 게 애플의 파워 아니던가? 당연히 닉스 정도는 어린애 손목 비틀 듯 제압할 것이다.

우호적일 땐 그 어떤 곳보다 믿음직하던 애플이, 적으로 돌아선다 생각하자 버거운 걸 넘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 정도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이걸 어쩐다.

애플 메신저 소식이 우리에게까지 넘어올 정도면 이미 개발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소리다.

공개 시기는…… 아마도 애플폰5가 소개될 예정인 6월의 WWDC가 될 터.

넉넉하게 잡아도 남은 시간은 2달 남짓이다.

이 안에 무슨 수를 내지 않으면 기껏 구축해둔 모바일메신저 시장을 애플에 빼앗길지도 모른다.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침묵을 지키던 엘런이 슬그머니 손을 든다.

“엘런, 왜요? 할 말 있어요?”

“대표님,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요.”

“무슨 의견이든 있으면 해보세요.”

“예.”

원탁의 모든 시선이 엘런에게로 향한다.

그녀는 그게 너무 부담스러운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 그렇게 대단한 의견은 아닌데.”

“사소한 거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말은 해보세요.”

“그게…… 대표님은 애플의 CEO인 잡스와 친분이 있잖아요. 그러니 만나서 담판을 짓는 게 어떨까 해서요.”

“담판요?”

“예를 들면 애플만 할 수 있는 문자 메시지와 모바일 메신저 연동을 닉스 챗에도 열어 달라는 요청을 하는 거죠. 당연히 그냥 해줄 리는 없으니 저희도 뭔가를 내줘야만 하겠지만요.”

칼을 갈고 나온 상대에게 칼을 내려놓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진데 쉽게 승낙할까?

그래도 해봄 직한 일이긴하다.

닉스가 내주는 게 많더라도 문자 메시지를 통합시킬 수만 있다면 스마트폰 보급률이 낮은 아시아 쪽 공략에 큰 힘이 될 테니 말이다.

“성사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거 같네요.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모바일 메신저가 돈이 된다는 걸 애플이 알아버렸으니까요. 물론…….”

내가 자리서 벌떡 일어서자, 엘런이 화들짝 놀라 “꺅!” 하는 소리를 낸다.

“가만 앉아서 끙끙대는 것보다, 일단 부딪혀 보는 게 나은 판단이겠죠.”

“미팅 일정은 언제로 잡을까요?”

“일정 잡을 필요 없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일 거니까요.”

엘런은 군인처럼 경례를 붙인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다음 회의는 제가 애플에 다녀온 다음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좋은 아이디어 하나씩은 꼭 생각해두세요.”

* * *

닉스 본사에서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까지 이동시간은 30분이면 충분했다.

차에서 내린 나와 샤오후는 곧장 애플 본사 건물 안으로 향한다.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된 애플의 리테일 샵과는 달리, 직원들에게만 허용된 본사 건물 입구 쪽에는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하, 너무 계획 없이 와버린 모양이네요. 잡스는 전화도 꺼뒀고.”

내 중얼거림에 샤오후가 말했다.

“대표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너무 오랜만에 왔나 봐요. 길이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내가 애플 본사에 마지막으로 왔던 때가 애플폰4S의 디자인 최종점검이 있던 날이었으니, 벌써 1년이 다 된 셈이다.

“제가 직원들을 시켜서 알아보게 하겠습니다.”

“아뇨. 그런 수고를 하실 필욘 없습니다. 잘 보세요. 여기서 이렇게 휴대폰을 들고 내부를 찍는 척하면…….”

바로 뒤에서 삑! 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낸 사람은 애플의 보안직원이었다. 샤오후가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난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기 두 사람. 여기서 뭣들 하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길을 잃어서요.”

“길을 잃었다고요? 여긴 직원이 아니면 안으론 들어갈 수 없습니다. 관광은 입구의 리테일 샵까지만. 어, 어라라?”

보안요원은 눈을 쓱쓱 비비곤 나를 다시 쳐다본다.

“혹시 닉스의 대니얼 강 아닙니까?”

“제대로 알아보셨네요.”

“오우.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실리콘밸리의 메시아여.”

그는 내 손을 맞잡곤 세차게 흔들어 댄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잡스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런데 건물 위치가 너무 많이 바뀌어서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럴 겁니다. 여긴 분기마다 건물이 들어섰다가 사라지곤 하거든요.”

“혹시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따라오시죠.”

먼저 걸음을 옮기던 보안요원은 두어 걸음을 더 걷더니 뒤로 돌아선다.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안으로 들어가시려면 보안카드가 있어야 합니다.”

“이거면 될까요?”

“이건 작년 보안카드네요. 지금은 IC칩이 달린 신형으로 교체됐습니다.”

내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자.

“신원이 철저하신 분인데 보안카드가 대수겠습니까.”

우리는 보안요원의 안내를 받아 애플 본사 2층의 복도 끝자락에 도달했다.

[CEO 스티븐 잡스]

어째선지 CEO 집무실 입구에 마련된 비서실은 비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직접 문을 노크하기로 한다.

똑똑.

다시 한번 똑똑.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잡스는 자리를 비운 거 같습니다.”

“그러게요. 이거 난감하게 됐네요.”

잡스의 전화는 여전히 꺼져 있었기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려는 차에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잡스는 방금 나갔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곳엔 어딘지 낯이 익은 얼굴이 있었다.

“실례지만 어디서 뵀더라…….”

사내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제프 베이커다.”

“아!”

애플의 전 CMO 제프 베이커.

닉스 챗이 애플폰에 선탑재되는 걸 방해하면서 몰래 대만에서 닉스 챗 카피 앱을 만들던 녀석이다.

그는 계획이 들통나는 바람에 아일랜드 지사로 쫓겨났을 텐데, 어째서 본사 임원구역에 있는 거지?

녀석은 쿡쿡대며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기울인다.

“이제야 생각났나 보군.”

“당신이 왜 여기 있습니까?”

“왜긴 왜겠나? 다시 CMO로 복직됐으니 여기 있는 거지. 이사진들이 나처럼 유능한 인재를 아일랜드 깡촌에 처박아 둘리 없잖아.”

“유능한 인재가 아니라 좀도둑이겠죠.”

그는 눈을 이글거리며 날 노려봤지만 바로 옆에 머리통 하나는 더 큰 샤오후가 있었기에 행동으론 어쩌질 못했다.

“뭐, 옛날 일은 접어두자고. 다 지난 일이니까.”

“그럼 가던 길 가시죠.”

“가기 전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주지. 잡스는 방금 방을 떠났어. 왜 그런 줄 아나?”

녀석은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는지 곧장 말을 계속했다.

“네가 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뭐요?”

“왜? 네가 오면 잡스가 덥썩 만나 줄 거 같았어? 천만의 말씀이야. 보나 마나 잡스러운 소리를 하러 왔을 텐데 뭣 하러 널 보겠나?”

“제가 누구랑은 달라서 개가 짖어대는 소리를 들어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난 그를 무시하고 떠났지만, 짖는 주둥이는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애플의 모바일 메신저 때문에 온 거지? 네가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그 잘난 닉스 챗만 무너지면 넌 아무것도 아닌 애새끼가 될 테니까!”

난 복도를 빠져나갈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뒤를 돌아볼 생각이 들지도 않더라. 지금 주어진 일들만으로도 머릿속이 터지기 직전이었으니까.

닉스 챗을 노리고 만든 애플의 모바일메신저, 카피 앱을 만들던 제프 베이커의 복직 그리고 나를 피하는 잡스의 행보까지.

잡스. 이렇게 나오시면 제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난 뒤따라 걸어오는 샤오후를 돌아본다.

“전용기 준비시키세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목적지는 중국 선전, 최대한 빠르게 준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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