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25화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은 변화를 맞이했다.
가장 큰 변화는 일본 국민들의 원전에 대한 인식이었다.
기존의 탈원전과 친원전으로 대립하던 양측의 주장은 도쿄 전력의 악행이 드러나며 탈원전 쪽으로 세가 확 기울었다.
본디 친원전 쪽의 주장은 도쿄 전력이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을 당해서 어쩔 수 없는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폭발 직전의 원전에서 최후까지 복구를 진행하던 직원들이 일급 9천 엔을 받는 비정규직들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도쿄 전력은 물론이고 친원전을 주장했던 전문가들까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됐다.
그 때문에 원전 기술은 믿을 수 있으나, 그를 관리하는 인간은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퍼졌으며, 탈원전을 밀어붙이던 모리 총리의 인기는 한층 더 높아지게 됐다.
이 사건의 여파로 일본 정치계의 흐름도 변화가 생겼다.
본래라면 4월 지방선거에서는 모리 총리의 민주당이 재난대처 미흡으로 아베의 자민당에 완패했어야 했다.
그러나 모리 내각이 재난 초기대처는 미흡했으나 후속 대처는 그럭저럭해냈다는 점. 원전 관련 대응을 깔끔하게 해냈다는 점. 추가로 모리 총리의 압도적인 인기가 시너지를 일으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게 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변화를 겪은 건 닉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난 이전까지의 닉스는 닉스 챗을 서비스하는 외국기업, 한국인 사장이 있는 회사라는 정도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재난 이후의 이미지는 사회에 공헌하는, 일명 엔젤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 때문인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닉스 재팬 본사나 카페 닉스에 붙은 닉스 로고에 인증샷을 찍는 행위가 유행처럼 번져가기 시작했다.
덩달아 인증샷을 올리는 SNS도 닉스에서 서비스 중인 닉스 서클로 유입됐기에, 닉스 서클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따돌리고 처음으로 일본 점유율 과반을 넘기는 쾌거를 이뤄냈다.
닉스의 이미지가 좋아지자 부가적인 이득이 굴러왔다.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모리 내각은 닉스가 이번 지진피해 수습에 공헌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해외 기업으로선 최초로 [최우수 사회 공헌 기업상]을 안겨줬다.
명예뿐인 여타 상들과는 달리, 총리가 직접 수여하는 최우수 사회 공헌 기업상은 세금 혜택과 정부 사업에 우선해서 입찰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된다.
상을 수여 받으며 모리 총리가 살짝 귀띔해주길, 세금이나 공과금 납부를 허가하는 방식으로 핀테크 사업을 장려할 계획인데 그때 닉스 페이를 단독으로 밀어주겠다고 했다.
세금과 공과금 납부를 닉스 페이로 해준다는 건 단순히 사용자 확대를 떠나서, 일본 정부가 닉스 페이를 정식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모리 총리가 준비한 선물 보따리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닉스의 숙원사업이었던 라이드 셰어링 서비스, 닉스 제로를 허용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켜줬다.
사실, 이 부분은 내가 총리에게 직접 요청해서 얻어낸 성과였다.
본래라면 닉스 제로의 아시아 서비스 시범 구역은 한국이 될 예정이었으나, 한국 정치계에서 택시 조합원들 눈치 때문에 차일피일 법안 통과를 미룬 탓에 일본에서라도 우선하여 서비스를 개시하기로 한 것이다.
└채널 여러분. 닉스 제로 써보세요. 진짜 신세곕니다. 왜 이런 서비스를 이제야 허가 내준 거죠?
└당연하지. 닉스 제로가 들어오면 택시 업계가 다 죽으니까. 미국에서도 그거 때문에 난리라는 소리 못 들었어?
└일본이 세계에서도 택시비 비싸기로 소문났잖아. 이참에 택시 기사들이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나도 동의. 택시 기사들 배가 불렀는데 좀 망하면 어때. 고거 참 쌤통이다.
└얘들아…… 우리 아부지가 택시 운전한다.
└오, 미안. 그래도 일본 택시비가 비싼 건 사실이잖아.
└너희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아부지 월급이 20만 엔밖에 안 되는데 욕을 먹으니 좀 슬프다고 할까…… (?ω?`)
└20만 엔? 택시 기사 급여가 그것밖에 안 돼? 작년에 택시 요금도 대폭 올렸잖아.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야. 코이즈미 총리 시절 택시 라이센스를 엄청나게 풀어 대는 바람에 경쟁이 너무 심해졌거든. 참고로 우리 아부지는 아침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월 14일을 일해. ( ˘?ω?˘ )
└월 280시간 근로인가. 이거 현대판 노예나 다를 바 없잖아?
└식사시간을 빼면 250시간쯤 되겠네. 그래도 20만 엔이면 너무 심한데.
└택시 요금이 비싸니 사람들은 택시를 안 타고, 택시 업계의 수익이 떨어지니 요금은 더 오르는 악순환의 반복이야. 상황이 이런데도 택시 조합은 요금의 4할을 징수해가지.
└택시 조합이 300개가 넘으니 예정된 수순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욕해 버렸군. 정말 미안하다.
└너 인마. 힘내라. (? `ω´)?
└그럼 택시 업계를 위해서 닉스 제로를 쓰면 안 되는 건가?
└그건 아닌 거 같아. 닉스 제로는 택시 운행 경력을 제로 드라이버에도 적용해 주더라. 그거 때문에 울 아부지는 바로 플래티넘 드라이버 자격증을 얻으셨어.
└오오, 플래티넘이라니까 뭔가 대단해 보인다.
└별건 없고 배차에 우선권을 주고 최저소득을 보장해주는 정도? 그래 봤자 닉스 제로 사용자가 너무 많아서 최저소득에 미달한 적은 없지만 말이야.
└요즘 닉스에서 닉스 제로 무료 이용권 엄청나게 뿌려대긴 하더라.
└너, 아깐 아버지가 택시 운전하신다며? 언제 닉스 제로로 업종을 갈아탄 거야?
└괜히 사과했잖아! (??ω?´?)
└맞아. 이 거짓말쟁이!
└쉬는 날만 닉스 제로를 운행하셔. 20만 엔으론 생계가 힘들어서 말이지…….
└갑자기 분위기 이상해지는데.
└어이, 뭐 하는 거야. 빨리 사과하라고.
└미안. 내가 경솔했다. 사죄의 의미로 닉스 제로 한번 타고 와서 후기 남겨주마.
└쿠폰 번호 필요하면 말해줘. 아부지가 많이 얻어 왔으니까.
└그거 쓰면 드라이버에 불이익은 없어?
└100% 닉스에서 지원.
└역시나 닉스다운 쿨한 정책이네. 좋아! 바로 타러 간다.
└쯧쯧. 미쳤군, 미쳤어. 닉스 챗에 닉스 서클, 닉스 페이. 이제는 닉스 제로라니.
└마켓N과 카페 닉스도 잊지 말라고.
└트와일라잇과 클립 TV도 닉스와 관련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이러다 닉스가 일본 전체를 차지하는 거 아닐까?
└그럼 어때. 도쿄 전력 같은 블랙기업보다 닉스 같은 엔젤기업이 득세하는 게 백 배는 낫지.
└백 배는 무슨 천 배, 만 배는 낫다.
└만 배는 좀 오버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닉스는 외국 기업인데……. (????)
└우리 동네 후쿠시마다.
└미안하다. 사죄의 의미로 할복하고 오마.
* * *
숨 가쁘게 흘러갔던 1달여의 일본 생활이 끝났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생각난 단어는 평온이었다.
인사를 해오는 승무원과 미소 짓는 공항 직원, 잘 정돈된 도로, 심지어는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까지.
모든 것이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쩐지 숨이 트이는 것만 같다. 이제야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대기시켜둔 차를 타고 닉스 본사로 들어간다.
닉스 본사 1층의 회전문을 지나서자 대리석으로 정돈된 중앙 로비가 나를 반긴다.
이어서 눈에 들어 온 건 로비 좌측 단상에서 모습을 뽐내고 있는 테슬라Z 플래티넘이다.
반파됐던 차를 타고 다니자니 찝찝해서 껍데기만 복원해서 전시해뒀는데, 어느새 닉스 본사의 명물이 된 녀석이다.
승강기를 타고 내 집무실로 올라선다.
매번 타던 승강기였음에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낯선 느낌이다.
[50층입니다.]
승강기에서 내리자 입구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니얼, 무사한 거지? 어디 다친 데는 없어?”
“호우!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보고 싶었어요.”
닉스 소프트의 브릭과 스칼릿이 먼저 호들갑을 떨어댔다. 이어서는 닉스 재무팀인 매형과 엘런이 다가온다.
“드디어 슈퍼 히어로께서 복귀하셨구먼.”
“대표님, 어서 오세요. 그간 어떠셨어요? 앗! 일단 쉬신다고요? 보고드릴 사항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한 명씩 인사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한 여인이 등장한다.
닉스OS팀의 선임개발자이자, 타지 생활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네, 수아야.”
“현우 씨.”
인사를 나눴던 직원들이 눈치껏 빠져주자 집무실에는 나와 수아, 단둘만 들어가게 됐다.
보는 눈이 없어지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내 품에 안겨든다.
“왜 이렇게 늦은 거예요? 저 안 보고 싶었어요?”
“일본에서 나를 좋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놔주질 않더라고.”
방금까지만 해도 그녀의 눈에서는 하트 모양이 뿜어져 나왔었는데, 지금은 공항검색대에서 봤던 빔이 쏘아져 나온다.
“좋다고 한 사람이 누구예요?”
“너희 오빠라는 사람이랑 모리 총리.”
“엣?”
“미국에 가봐야 한다는데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더라니까. 특히 너희 오빠는 왜 그렇게 질척거리냐?”
“아, 뭐예요. 놀랐잖아요.”
이후에도 서로의 근황에 대한 잡담을 이어나간다.
평소라면 내가 이야기하고 그녀가 받아주는 식이었는데, 오늘은 과묵하던 그녀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수다를 쏟아냈다.
물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로 넘어갔지만 말이다.
“어휴, 클라이언트에게 베타 버전을 공개했는데 글쎄, 딱 버그가 터져버린 거예요. 그땐 진짜 눈앞이 새카맣게 변하는 거 있죠?”
“버그는 어쩔 수 없지. 모든 개발자의 숙명 같은 거니까. 버그가 안 나오면 그거대로 좀 이상한 느낌 들지 않아?”
“그걸 현우 씨가 어떻게 알아요?”
“닉스 챗 초기판 만들 땐 나도 같이 개발실에 있었잖아. 그러니까 잘 알고 있지.”
개발실이라는 말에 유수아의 눈이 크게 떠진다.
“개발도 할 줄 아시는 거예요?”
“아니, 난 디자인 쪽만 건드렸어. 사실 개발도 좀 배워볼까 했는데 주변에 어마어마한 사람들 천지라 기가 팍 죽더라니까.”
“에이, 개발도 천천히 배우면 할만해요. 기초인 C와 JAVA부터 차근차근……. 아참, 닉스 챗 초기 멤버라면 브릭과 스칼릿?”
“어, 그 둘 완전 천재잖냐.”
유수아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거린다.
“브릭 사장님은 개발하는 모습을 못 봐서 잘 모르지만, 스칼릿은 진짜 천재예요. 닉스OS팀에서 몇 일간 끙끙거렸던 일을 30분 만에 풀어버리더라니까요.”
“더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 줄까?”
“놀라운 사실요?”
“스칼릿은 원래 제품 디자인 전공이었어. 개발실에서 디자인만 하다가 개발자들이 답답해서 독학으로 개발을 배웠다고 하더라.”
“맙소사! 완전 괴물이잖아요.”
“그치?”
난 옛 추억에 젖어 기억을 돌려본다.
브릭을 만나려고 페이스북 면접장 앞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떨면서 기다렸던 일. 스칼릿이 일하던 퀴퀴한 곰팡이 지하실.
그리고 닉스 챗 초기 개발자를 모집하기 위해 직접 직원들을 모아 PPT를 해줬던 일까지.
지금 생각하면 이걸 어떻게 다 했나 싶을 정도다.
“닉스 설립 때 이야기 자세히 해주세요.”
“그때 해줬잖아?”
“에이. 그래도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예?”
수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망울이 빛나기 시작하자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럽다.
“비하인드스토리라…… 아! 있다 있어. 준오 형 이야기 중에 좀 웃긴 일이 있었지.”
“박준오 부사장님요?”
“응, 준오 형이 미국에 와서 어쨌냐면…….”
이야기는 이어지지 못했다. 집무실 문이 열리고 매형과 엘런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 좋은 시간 보내는 데 미안하다. 지금 좀 급한 일이 있어서 말이지.”
“역시 매형은 양반이 못 되네요.”
“양반? 너 혹시 내 욕하고 있었냐? 뒤에서 욕을 하든 말든 상관없는데 내 앞에서만 하지 마라.”
“욕은 아니고 매형의 흑역사 정도?”
“무슨 흑역사?”
“닉스 설립한다고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술집…….”
점잔 떨던 매형이 번개처럼 날아와 내 입을 틀어막는다.
“어허, 스톱. 우리 처남이 갑자기 왜 이러실까. 일본에서 섭섭한 일 있었어?”
“엄청 섭섭했죠. 저 혼자 일본에서 개고생하는데 누군 고상하게 유럽여행이나 다니고 말이죠.”
“여행이라니. 그거 다 업무차 간 거잖아.”
나와 매형의 대화에 얌전히 있던 엘런이 끼어든다.
“술집에서 무슨 흑역사가 있었어요?”
“별건 아니고 매형이 잘 아는 클럽이 있다기에 따라갔는데 거기가 게이 클럽이더라고요.”
“예?”
순간 두 여인의 시선이 매형에게 집중된다.
“오, 오해다. 오해. 10년 만에 가는 거라 그렇게 바뀐지도 모르고 갔었다고.”
“진짜 웃겼던 건, 만취한 상태라 게이인지 모르고 팬티에 100달러짜리 팁을…….”
“강현우!”
더 이야기했다간 매형이 날 죽일 것 같아서 스스로 입을 막았다.
이 뒷이야기가 진짜 엑기스나 다름없는데. 매형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이쯤으로 끝내야겠다.
매형은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급히 업무적인 이야기를 끌고 왔다.
“자자, 다들 앉아봐. 지금 잡담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닉스의 존폐가 걸린 문제라고.”
우린 집무실 중앙에 마련된 원탁에 빙 둘러앉았다. 매형은 몇 번이나 헛기침해대고 서류를 들었다.
“무슨 일인데 그리 뜸을 들이세요?”
“닉스 챗 관련 동향 보고서 말이다. 거기 첫 페이지를 보면 이번 분기에 사용자 분포가 나오잖아.”
“그게 왜 존폐가 걸린 문젭니까?”
“닉스 챗 카피 앱 관련해서 보고 안 들어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