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24화
뚜우- 뚜우-.
전화 너머에서 신호음만 반복해서 들려온다.
초조한 나머지 입이 바싹 말라와 연신 침을 꼴딱 삼켜댄다.
“받아라, 제발 빨리 좀 받아라.”
진정이 안 돼 전화기를 들고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걸어 다닌다.
옆에서 지켜보는 코너도 속이 타는지 두 손을 파리처럼 싹싹 비벼대고 있다.
“코너, 이 번호가 모리 총리 직통 번호가 맞습니까?”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쓰라고 받은 핫라인입니다.”
닉스가 재난구조에 메인으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재난구조책임자에게 없는 번호를 줬을 리는 없다.
이 번호가 총리 쪽 핫라인이 아니라면 최소한 그 아래 보좌관이라도 연결돼야 할 텐데.
젠장, 기내에서 명함이라도 받아 놨어야 했나? 차라리 정계에 줄을 대고 있는 신용화에게 전화하는 게 나을지도.
총리와 연결할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차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넘어온다.
-모리 총리입니다.
“총리님! 저 방금 뵀던 닉스의 강현웁니다.”
-아, 강 대표님입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혹시 총리님이 후쿠시마 원전 재가동 지시 내리셨습니까?”
-아뇨, 그런 적은 없습니다만. 왜 그러시는지?
“지금 후쿠시마에서 원전 1호기를 복구 중인 거 같습니다.”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닙니까? 해수가 들어간 원전은 복구할 수 없습니다. 염분은 내부 시설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리니까요.
“도쿄 전력에서 해수를 투입하지 않았다면요?”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뚝 끊긴다.
드문드문 고함치는 소리가 새 나오는 걸 보니 모리 총리가 수화기를 막고 뭔가를 지시하는 듯했다.
-저기 강 대표님.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들은 게 아니라 직접 봤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쪽에 영상을 입수했거든요. 바로 10분 전에요.”
-후, 어째서 이 나라에는 이기적인 인간들 천지인지…….
“어딜 가나 그런 자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총리인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군요. 방금 말은 못 들은 거로 해주십시오.
수화기 너머였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씁쓸한 그의 표정이 짐작될 정도다.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리 총리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도쿄 전력에서 회신이 왔습니다. 원전 3호기, 4호기는 정상적으로 가동을 중지시켰고, 원전 1호기, 2호기를 복구 중이라고 합니다.
“복구 중이라면 역시 해수를 안 넣었다는 말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다.
모리 총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온다.
터져 나오기 직전의 분노를 억지로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전해진다.
“원전을 살리려면 냉각시설이 돌고 있어야 할 텐데, 전력이 복구된 겁니까? 그런 이야기는 못 들은 거 같은데요.”
-3호기, 4호기에 있던 비상 배터리를 떼와서 1호기, 2호기의 냉각시설을 돌리고 있답니다.
“그거, 말이 안 되는데요. 배터리를 하나씩 추가해봐야 버틸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잖습니까?”
-냉각시설 출력을 낮춰서 버티는 중이겠지요.
냉각 출력을 낮추면 배터리는 더 버티겠지만 온도는 서서히 올라가기 마련이다.
만약, 원전 고로의 온도가 임계치를 넘거나 배터리가 방전된다면…… 후쿠시마 멜트다운은 확정이다.
다가올 대재앙을 생각하자 등골이 서늘해져 몸이 부르르 떨린다.
다른 것도 아니고 원자력 발전소 폭발을 걸고서 외줄 타기를 하다니. 이게 인간이 할 짓이란 말인가?
-도쿄 전력에서 전해오길 원전 1호기는 이미 복구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은 배터리를 2호기에 몰아줬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1호기 복구 중이라는 영상이 도착한 지 이제 10분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새 1호기가 복구됐다고요? 그들의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후쿠시마는 물론이고 도쿄까지 위험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주제넘은 말인 건 알지만, 총리님이 결단을 내리셔야 할 거 같습니다.”
-일본의 총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옳은 판단을 내리겠습니다.
나는 모리 총리가 도쿄 전력 본사로 향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지금으로선 도쿄 전력 사장 멱살을 휘어잡고 해수를 투입하라고 명령하는 게 최선의 판단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내 생각을 뛰어넘는 행동력을 보여줬다.
총리가 탄 헬기가 향한 곳은 도쿄 전력 본사가 아니라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였다.
모리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에 도착해서 직접 방진복으로 갈아입고 복구 작업현장으로 달려갔다.
처음엔 직원들이 사태파악을 못 하고 원전 복구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총리가 직접 왔다는 말에 기겁하고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리 총리의 전공이 응용물리학이라 내각에선 원자력에 가장 빠삭하게 아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직원들은 꼼짝없이 원전에 해수를 투입해야만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인지한 도쿄 전력 사장이 원전에 도착했지만, 그땐 이미 원전이 해수에 잠겨 쓸 수 없게 된 뒤였다.
* * *
3월 2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정확히 열흘 후.
지진 피해 복구는 순조롭게 이뤄졌다.
패닉에 빠졌던 일본 정부는 늦게나마 닉스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조와 보급에 나섰으며, 시가지를 중심으로 끊여졌던 도로와 전기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열흘이 지난 지금에도 드문드문 여진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위험지역의 주민들은 임시거주지로 모두 대피한 뒤였기에 추가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망 6,503명.
실종 1,271명.
대지진이 발생하고 열흘 만에 받아 든 통계치였다.
본디 1만 5천 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으나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순 없었을까? 라는 생각은 당분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숨죽이고 있던 고름 덩어리들도 고개를 쳐들고 나섰다.
고름 덩어리란, 이번 후쿠시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 도쿄 전력을 뜻하는 말이다.
도쿄 전력은 후쿠시마 1호기, 2호기를 망가뜨린 총리를 고소하겠다고 언론플레이를 시작했다.
그들은 모리 총리가 해수를 밀어 넣지 않았어도 지금쯤 후쿠시마의 모든 원전이 깔끔하게 복구됐을 거라는 주장을 해댔다.
도쿄 전력의 주장은 들을 가치가 없는 헛소리였다.
상식적으로 시한폭탄이나 다를 바 없는 원전을 살리겠다고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하지만 놀랍게도 원자력 전문가들과 우익 언론들은 도쿄 전력의 주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들은 평소 탈원전을 주장했던 모리 총리를 이참에 찍어 내릴 심산이었다.
실제로 대지진 이후, 일본은 전력난을 겪고 있었기에 도쿄 전력을 옹호하는 국민도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 슬그머니 동영상 하나가 업로드된다.
영상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헬기가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헬기에서 내린 사람은 도쿄 전력의 사장인 시미즈 마타카였다.
시미즈는 육중한 몸을 뒤뚱거리며 원전 안으로 뛰어간다.
하지만 원전은 이미 멈춘 뒤였고,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바로 그때, 원전에서 방진복을 입은 사람이 걸어 나온다.
그는 원전에 해수 밀어 넣고 나온 모리 총리였다.
총리는 도쿄 전력 사장을 보더니“이 벌레 같은 새끼야!”라는 고성을 내지르며 분노의 발차기를 날리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됐다.
당연히 영상이 공개되고 일본은 난리가 났다.
기존부터 물어뜯던 우익 언론은 물론이고 중도를 지키던 언론들까지 모리 총리가 경솔했다고 한 발을 빼는 포지션을 취했다.
[날아차기 영상의 주인공은 모리 총리!]
[도쿄 전력 사장 “원전을 살리기 위해 방진복도 입지 않고 뛰어들어 갔으나 그땐 이미 모리 총리가 일을 벌인 뒤였다.”]
[전문가들 “원전 복구 가능성 충분했다.”]
[비전문가의 헛발질. 모리 총리, 후쿠시마 일대 전력공급 차질의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총리의 발차기는 [원전 파괴 킥]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도쿄 전력 측도 이때다 싶었는지 모리 총리를 폭행죄로 걸고넘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 동영상은 닉스에서 푼 독이라는 것을.
* * *
[모리 총리와 닉스의 CEO 간의 통화 내역 유출. “일본의 총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옳은 판단을 내리겠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그대로 담겨.]
[원전 폭발 가능성 없다던 도쿄 전력. 3차례에 걸쳐서 정부에 거짓 보고 올린 정황 포착.]
[미국 원전 전문가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시 최악의 경우 도쿄를 포기해야 했을 수도.”]
[일본 국민을 위해 헌신한 닉스. 일본 국민을 담보로 도박한 도쿄 전력. 통화 내역 공개 후 도쿄 전력 사장 잠적.]
SG컴즈 일본지사 대표실.
신용화는 읽던 신문을 탁탁 털어서 내 앞에 내려놓는다.
“이야, 며칠 사이에 모리 총리의 평가가 대악당에서 대영웅으로 승격했네? 이거 냄새가 나는데. 안 그래 강현우 씨?”
“냄새는 무슨 냄새요.”
“무슨 냄새긴 조작의 냄새지.”
그는 신문의 1면을 콕 짚어댄다.
그곳엔 [원전 파괴 킥]이라 불렸던 모리 총리의 발차기가 [히어로 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언론에 실려있었다.
“이거, 네가 작업 한 거지?”
“글쎄요.”
“안 봐도 뻔하지. 네가 일본에 들어와서부터 언론사들 뒤집고 돌아다녔잖아. 생전 안 하던 짓을 하길래 죽을 때가 다됐나 싶었는데, 이런 작업을 치려고 준비한 거였어?”
신용화의 말대로 난 일본에 들어와서 언론사와 우호 관계를 맺는 데 주력했다.
이유는 이번 지진사건을 겪어보면서 느낀 건데, 내가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접근하려 해도 언론에서 포장을 개떡같이 해주면 받는 사람도 개떡 같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제가 조금 돕기는 했지만 모리 총리가 옳은 결정을 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흐흐,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너, 언론이나 정계 쪽과 연결되는 걸 싫어했잖아?”
“그렇긴 했는데…… 아무래도 혼자선 힘들더라고요.”
혀를 끌끌 차는 신용화 녀석.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
난 화제를 돌리기 위해 TV를 켠다.
“모리 총리가 이번 도쿄 전력 사태 입장 발표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 그랬었지. 벌써 시작했을걸?”
TV에 비친 곳은 도쿄 전력 본사 입구였다.
그곳에선 수천 명의 시민이 운집해 있다.
그들은 벌써 사흘째 도쿄 전력 경영진 퇴진이라는 팻말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시위문화가 생소한 일본이었지만, 도쿄 전력의 막장스러운 행보는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기 충분한 사건이었다.
다시 TV 영상이 전환된다.
이번은 모리 총리가 있는 발표장이었다.
단상에 선 모리 총리는 마이크를 툭툭 건드리더니, 준비해온 입장 발표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총리대신을 맡고 있는 모리 나오토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일으킨 도쿄 전력에 대한 중대 발표를 하기 위해섭니다. 발표하기에 앞서, 도쿄 전력의 감찰 결과 드러난 추가 사실을 먼저 전해드리겠습니다.]
모리 총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간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천재가 아닌 인재였다는 것입니다. 도쿄 전력은 원전 건설 당시, 해발 35m였던 부지를 정부에 보고도 없이 10m 깎아서 건설했습니다. 이번 쓰나미가 20m가 안 됐던 것으로 비추어 볼 때, 원전을 정상적으로 건설만 했더라면 쓰나미 피해를 보지도 않았겠죠.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발표장이 소란스러워진다.
개중에는 도쿄 전력 사장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그뿐만 아닙니다. 비상 발전기가 침수됐을 때 사용했을 펌프는 고장 나 있었으며, 비상시 전력을 공급할 콘센트와 코드는 모양이 달라서 결합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조사단이 조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하소연하더군요. 이런 기업이 세상에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이죠.]
발표문을 읽어가는 총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건 듣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실려 있었다.
[모든 사항을 고려하여, 정부는 고심 끝에 도쿄 전력을 해체하고 국유화시키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TV를 지켜보던 신용화가 입을 떡 벌린다.
난 일본어를 몰랐기에 그의 반응이 어떤 이유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모리 총리가 뭐라고 발표했습니까?”
“어? 아…… 도쿄 전력을 해체하고 국유화시키기로 했단다.”
“사기업을 강제로 국유화시키다니. 그게 가능해요?”
“평시였다면 어림없는 소리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지. 전 국민이 도쿄 전력을 증오하고, 모리 총리의 인기는 역대 최고를 달리고 있잖냐.”
“하하, 모리 총리가 생각보다 강단이 있네요.”
“강단이라기보다 머리를 쓴 거지. 이번 발언으로 그의 인기는 더 치솟을 거다. 곧이어 돌아올 지방선거는 민주당이 싹쓸이할지도 모르겠는데.”
신용화는 말을 하던 도중 날 게슴츠레 쳐다본다.
“왜요?”
“혹시 이것도 네가 작업 친 거냐?”
“절대, 절대로 아닙니다. 이건 모리 총리가 단독으로 진행한 일입니다.”
“그럼 그 앞에 일들은 네가 작업 친 게 맞다는 거네?”
“뭐, 아니라곤 못 하죠.”
내가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어 버리자.
“그런데 좀 이상하단 말이지…….”
“또 뭐가요?”
“내 생각엔 이번 일을 잘만 핸들링했다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네가 받았을 텐데. 어째서 모리 총리에게 공을 다 밀어 준거야?”
“흠…… 글쎄요.”
내가 확답을 안 줬지만, 그는 뭔가 알아챘다는 듯 손가락을 딱 튕겨댄다.
“너, 모리 총리에게 뭔가 받아 내기로 했구나. 그렇지?”
“제가 신용화 씨처럼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줄 압니까?”
“네가 나보다 독했으면 독했지 순하진 않잖아. 빨리 말해봐. 뭘 약속받은 거야? 좋은 거면 한 숟가락 얹자. 응?”
“약속받은 거 없다니까요.”
“너, 진짜 그러기냐. 혼자 먹으려다 체한다.”
모리 총리에게 감사 인사는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뭔가 얻어낸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를 도운 이유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원전에 돌진하는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하면 경영자로서 실격이려나?
그럼 모리 총리가 사임하면, 이어서 총리가 될 아베 꼬락서니가 보기 싫었다는 것 정도로 변명을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