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23화 (123/206)

기적의 IT 재벌 123화

모리 나오토.

임기 8개월 만에 역대급 재난을 겪게 된 불운의 총리가 내 바로 앞까지 걸어온다.

난 천천히 자리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반갑습니다. 저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인 모리 나오토입니다.”

당황스럽게도 그의 입에서는 능수능란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그 때문에 영어를 하려던 내가 한 타이밍 늦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다.

“닉스의 강현웁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강 대표님.”

손을 맞잡으며 그의 얼굴을 훑는다.

피로로 안색이 흙빛임에도 강렬한 눈빛은 바래지 않는다.

확실히 거물 정치인이라 전해져오는 분위기부터가 남다르다.

우린 전용기 내부에 마련된 간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승무원이 눈치껏 커피 2잔 내왔고, 그제야 모리 총리의 입이 열린다.

“우선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강 대표님은 이번 사태의 피해 당사자도 아니고 일본에 연고가 있으신 분도 아닙니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재난 수습에 나서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알면서 사사건건 태클을 걸어 댔냐? 라는 말이 턱 끝까지 튀어나왔다가 다가 다시 들어간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듣던 대로 겸손하시군요.”

“겸손이 아닙니다. 제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재난이 일어나는 걸 알고 있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막기 위해 노력은 했을지도 모르지만, 피해 복구에 3조 엔이라는 거금을 기부하진 않았을 거 같은데요.”

언론을 통해 3조 엔이라고 홍보는 해뒀다만, 실제로 3조 엔이 들어가는 곳은 닉스 재난 구조 재단이라는 저금통 안이다.

재단에 기부하는 것도 기부가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재단의 자금 운용은 닉스가 인수할 업체의 주식이나 의결권을 사는 데 쓰일 것이기에 사실상 면피용이나 마찬가지였다.

일국의 총리나 되는 자가 그걸 모르진 않을 터.

“이렇게까지 저를 치켜세워주시는 걸 보니, 뭔가 부탁을 하러 오셨나 보군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모리 총리는 책상 앞으로 당겨 앉는다.

이제부터가 재난 수습으로 한창 바쁠 총리가 공항까지 달려온 진짜 이유가 흘러나올 차례이었다.

“닉스에서는 메신저, SNS, 포털, 결제 서비스까지 모든 방면의 데이터를 분류해서 보유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저희는 닉스가 수집한 재난 데이터를 공유해 주셨으면 합니다.”

협조가 필요할 땐 실컷 방해하더니 인제 와서 손을 벌려댄다. 이런 걸 보고 뒷북친다고 하던가?

그가 직접 찾아 왔을 때부터 예상은 했다만, 직접 이 말을 전해 들으니 기분이 떨떠름하다.

내 표정을 살피던 모리 총리가 말을 보탠다.

“염치없는 소린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기민한 구조 활동을 위해서는 닉스의 데이터들이 꼭 필요합니다.”

“혹시, 재난 데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구조 활동에 필요하기보다는…… 정부의 체면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까?”

체면이라는 말에 모리 총리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재난 구조 시스템은 닉스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닉스는 닉스 챗으로 사용자의 GPS 데이터 수집하고 있으며, 보급으로 1엔을 결제받았기에 피난민의 개인정보를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일본 정부는 이제 막 피해 상황을 접수하고 있었으니, 정보 면에서 닉스와 일본 정부는 상대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모리 총리는 체념한 듯 한숨을 토해낸다.

“솔직히 부정은 않겠습니다. 각국 정부들도 자국민 생존 여부를 저희가 아니라 닉스를 통해서 알아갈 정도니까요.”

“그러니까 진즉에 협조를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간 쌓인 게 많았던 탓인지 내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상대는 일본의 총리. 척을 져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지만…… 어쩌겠는가. 내 주둥이가 그렇게는 못 하겠다는데.

하지만 모리 총리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 대표님이 왜 이런 말을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닉스에서 구조 활동을 하려 해도 정부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겠죠.”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피난민들이 굶고 있는데도 보급 계획 혼선이라는 말 같잖은 말로 보급을 금지하던 일이나, 중국에서 헬기를 추가로 들여오는데 입국 절차만 사흘이 걸렸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한국서 수입한 비상 식품은 통관이 언제 될지 기약도 없으니. 이거 참.”

요 며칠간 일본 정부에 쌓인 게 많았던 탓에 참았던 애로사항들이 속사포 랩처럼 터져 나왔다.

“저희도 사태의 심각성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상사태니 절차를 따지기보다 일을 쳐내는 걸 우선시하라고 귀가 따갑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왜 처리가 안 되는 겁니까?”

“담당 공무원들은 책임회피를 위해 서로 일을 떠넘기기 급급했습니다. 책임을 져야 할 관료들 역시 사건을 덮거나 축소해서 보고하기 바빴죠. 저희로썬 별거 아니라고 전해 들은 일이 실제로 현장에서 확인해 보면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 뒤더군요.”

말을 하는 내내 그의 눈빛에 한가지 감정이 스친다. 그건 어떤 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무력함이었다.

이 사람…… 나와 비슷해.

내가 미래를 알고 있었음에도 재난을 막지 못했기에 좌절했었다면, 그는 일국의 총리임에도 재난에 대처할 수 없음에 무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 원전도 그것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겁니까?”

내 질문에 모리 총리의 눈이 크게 떠진다.

슬쩍 떠본 것뿐인데, 아무래도 정답인 모양이다.

“휴우- 원전 쪽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쓰나미가 덮쳤던 그때, 정부는 가장 먼저 후쿠시마 원전을 관리하는 도쿄 전력에 연락을 넣었습니다.”

“도쿄 전력은 원전이 이상 없다고 했겠군요.”

“그랬었죠. 실제로 직원을 파견해보니 후쿠시마 원전 1, 2호기는 쓰나미 때문에 비상 발전기가 완전히 침수된 상태였습니다. 지진과 쓰나미로 냉각 기능에 필요한 전기가 끊겼는데 비상 발전기까지 먹통이 됐으니…….”

“원전의 냉각 기능이 멈추면 멜트다운이 시작되는 거 아닙니까?”

멜트다운. 원전의 냉각이 멈춰 우라늄이 노심을 녹여버리는 것을 뜻한다.

내 입에서 전문용어가 나오자 모리 총리가 깜짝 놀란다.

“그런 내용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예. 뭐…… 이쪽에 조금 관심이 있어서요.”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 1호, 2호기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멜트다운이 돼서 대규모 방사능이 누출됐었다.

그런 미래를 아는 나로선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 단어가 멜트다운이었다.

모리 총리는 생각을 더듬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길 이어나간다.

“그 당시 보고를 받았는데 아주 황당하더군요. 도쿄 전력은 터지기 직전인 원전을 비상 배터리 의지해서 잡아두며 복구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원전이 비싸긴 하다만 실패했을 때를 생각하면 완전히 미친 짓이었죠.”

“배터리로 냉각을 진행했다면…… 원전이 얼마 버티지 못했을 텐데요.”

그는 갑자기 날 빤히 쳐다본다. 그러다 뭐가 웃긴지 피식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올해 초, 원전의 비상 배터리를 리튬 에어 배터리로 교체했습니다. 그 배터리는 대표님이 개발하신 거 맞죠?”

난 얼떨결에 고개를 상하로 끄덕였다.

“그 덕분에 비상 배터리 가동시간이 7시간에서 30시간으로 대폭 늘어나서 최악만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늘이. 아, 아니지, 강 대표님이 일본을 살린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확실히 산소를 주재료로 쓰는 리튬 에어 배터리라면 안정성이 뛰어나므로 위험시설에 쓰기 딱 좋다.

그런데 그게 후쿠시마 원전에 들어갔을 줄이야.

지진 피해를 막겠답시고 사방으로 뛰어다닌 효과는 미미했던 반면에 돈을 벌겠다고 개발한 배터리가 원전 사고를 막아내다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일각에 떠도는 소문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길. 지금은 해수를 투입해서 원전 자체를 냉각시키라 지시했습니다.”

“해수를 끌어오면 원전을 못 쓰게 되지 않습니까?”

“그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원전이 터졌을 때를 생각하면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국민의 안전을 걸고 도박할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일본 정부가 막장 짓을 일삼는 걸 보고 총리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총리는 멀쩡하다. 아니지, 이 정도면 이번 정부에서 에이스급 아닐까?

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훌륭한 결정입니다. 모리 총리님.”

“흠흠, 원전 이야기는 이쯤하고. 주제를 처음으로 돌려서 아까 말씀드렸던 닉스 데이터 말입니다.”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할 수 있다면 닉스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모리 총리의 얼굴이 활짝 편다.

“감사합니다. 정부는 이번 일을 잊지 않겠습니다.”

* * *

짙게 선팅된 은색 벤츠가 공항을 빠져나온다.

도로가 엉망일 거란 예상과는 달리 도심의 도로는 깔끔하게 정비돼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멈춘 곳은 닉스 재팬 본사 앞.

내가 차에서 내리자 맞닥뜨린 것은 눈이 따가울 정도의 플래시 세례였다.

“강현우 대표님, 이번 일본 방문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닉스가 독자적으로 재난 구조를 진행하게 된 계기가 뭔지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지진을 언제부터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3조 엔을 기부한 의도가 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적게 잡아도 마흔 명이 넘는 기자의 무리는 저마다 어색한 한국어로 질문을 해오고 있었다.

상황을 보던 경호팀장, 류샤오후가 다가온다.

“대표님, 길을 열까요?”

“글쎄요.”

기자들을 한번 쓱 훑어본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한국 방송사들도 드문드문 끼어 있다.

이쯤 되면 저쪽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다는 말이다.

“기자들이 언제부터 여기서 기다렸대요?”

“저희가 미국서 떠날 때부터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럼 적당히 인터뷰해 주고 들어가죠. 억지로 열다가 누가 다치면 피곤해집니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샤오후는 능숙하게 교통 정리를 진행했다.

기자들을 2열로 줄 세우고 분필로 줄을 그어 못 넘어오게 만든다. 그러자 시장 바닥 같던 건물 입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자, 그럼 질문받겠습니다.”

모든 기자가 손을 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딱 한 사람만 손을 들어 질문해온다.

“첫 번째 기자분. 질문해 주세요.”

“아사히 신문의 다니 히사오입니다. 대표님이 일본에 온 이유가 재난 구조를 직접 지휘하기 위해서라고 하셨는데요. 굳이 지금 같은 시기에 오실 필요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직접 지시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는 일도 있으니까요. 자, 다음 질문받습니다.”

이번은 방금 질문했던 바로 옆 기자가 손을 든다. 난 그를 콕 집어서 말했다.

“예, 질문해 주세요.”

“닛폰 게이지 신문의 오다 에이지입니다. 닉스에서 이번 재난 구조 작업에 3조 엔의 자금을 투입한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3조 엔이면 닉스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금액인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3조 엔은 닉스 재난 구조 재단에 기부될 것이며, 장기적으로 재난 피해 복구에 쓰일 것입니다.”

답이 끝나자 다시 한 사람이 손을 든다. 그는 내가 지목하지도 않았는데 마이크를 집어 들고 질문을 던진다.

“닉스가 이번 재난 구조 작업에 쓰이는 비용을 나중에 청구할 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사실무근입니다.”

“그럼 닉스는 보상을 포기하겠다는 말씀이신지?”

의도가 빤히 보이는 질문이다.

여기서 답을 못하면 닉스가 보상을 노리고 재난 구조에 나섰다고 떠들어 댈 것이다. 보나 마나 우익 쪽 언론에서 나온 사람이겠지.

난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닉스의 대표로서 분명히 밝힙니다. 닉스는 보상을 바라고 재난 구조에 임한 적 없습니다.”

“그 말은 일본 정부에서 보상을 준다고 해도 포기하신다는 말입니까?”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하는 모습에 역겨워서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다.

난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마이크를 빼앗는다.

“기자님은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보상을 생각하며 구합니까?”

“아니. 그렇다는 게 아니고…….”

“지진에 피해당한 사람 중엔 기자님의 친인척이나 지인이 포함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

“인생을 똑바로 사세요. 그러다 천벌 받습니다.”

기자들을 돌려보내고 승강기에 오른다.

승강기 문이 닫히자, 인터뷰를 지켜보던 코너가 엄지를 치켜든다.

“대표님 멋졌습니다. 방금 그 기자 놈 얼굴이 시뻘게져서 가는데 어찌나 통쾌하던지.”

“통쾌했습니까?”

“그럼요. 저런 벌레 놈들은 꽉 밟아 줘야 합니다.”

“저는 좀 슬프던데요.”

코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다.

“슬프다고요?”

승강기가 43층에 멈춘다.

난 승강기에서 내리며 말했다.

“정치나 이념 때문에 자신들을 돕는 사람까지 물어뜯어야 하는 족속들. 저들은 앞으로도 평생 저렇게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그렇겠죠.”

“지금이야 힘이 있으니 사람이 따르겠지만, 분명 늙은 다음엔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을 겁니다.”

성큼성큼 집무실 방향으로 걸어간다.

빌딩이 제법 컸기에 같은 층을 이동하는 것도 한참이 걸린다.

집무실 앞에 도착할 때쯤, 뒤에서 휴대폰의 알림 소리가 연속으로 들려온다.

“대표님, 후쿠시마 발전소 쪽에서 영상이 왔습니다.”

“폭발하거나 그러진 않았죠?”

“모리 총리 말대로 잘 수습된 거 같습니다. 내부가 아주 깔끔합니다.”

“특별한 코멘트는 없습니까?”

메시지를 다시 훑은 코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시 복구를 진행 중이라는 말 말곤 별다른 코멘트가 없습니다.”

“뭐라고요?”

“다시 복구 중이라고…….”

그의 휴대폰을 빼앗듯 가져와 영상을 돌려본다. 영상에는 수십 명의 엔지니어가 원전을 조작하고 있었다.

영상에 달린 코멘트는 [1호기 복구 진행 중]이다.

“혹시 뭐가 잘못 됐습니까?”

“많이 잘못 됐죠. 원전에 해수를 밀어 넣으면 복구는 불가능합니다.”

“모리 총리가 그렇게 말했었죠. 어, 잠깐. 설마? 해수를 안 넣었…….”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쳐다보는 코너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난 당황한 그의 어깨를 흔들어대며 말했다.

“시간 없습니다. 빨리 모리 총리 연결하세요.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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