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22화
[팩트로만 말한다. 팩트 뉴스의 야마구치 타츠야입니다. 오늘로써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사흘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끔찍한 대재앙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요. 그런 와중에 국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하며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현장을 연결해보겠습니다. 이시하라 기자?]
[예, 도쿄의 대형 할인점에 나와 있는 이시하라입니다.]
[이시하라 기자, 사재기가 얼마나 심각한 겁니까?]
스튜디오를 채우고 있던 화면이 대형 할인점으로 전환된다.
기자 뒤편에 보이는 계산대에는 박스를 짊어진 사람의 줄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보시다시피 대형 할인점에는 발 디딜 틈 하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다시 지진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더불어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다는 루머 때문에 사재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더 늘어갈 전망입니다.]
[주민들이 어떤 물건을 사재기하는 겁니까?]
[주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통조림이나 레토르트식품을 사재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휴대폰을 개통하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선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휴대폰을요?]
[그렇습니다.]
[사재기와 휴대폰. 뭔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 같은데요.]
[이번 대지진이 발생하고 도호쿠 지방에는 모든 통신이 먹통이 됐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쓸 수 있는 메신저 앱인 닉스 챗으로는 통신할 수 있다는 소식이 퍼지자, 너도나도 스마트폰 개통에 나서고 있습니다.]
[통신 두절은 일시적인 현상 아닙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복구될 통신망 때문에 휴대폰까지 바꾸는 건 좀 유난스러워 보이는데요.]
[통신뿐만이 아닙니다. 3월 11일 14시 48분. 그러니까 대지진이 일어나고 정확히 2분 후. 여기 보시면 휴대폰 메신저 앱인 닉스 챗에서 재난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쓰나미 경보로군요.]
[그렇습니다. 정부에서 보낸 쓰나미 방송보다 무려 28분이나 빨랐던 것입니다.]
[에에, 대단하군요. 28분이나 빨랐다니.]
[그뿐만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앱의 주소를 터치하면 쓰나미 피해가 예상되는 지점과 함께 근처의 안전지대와 대피소까지 안내해줍니다.]
[실제로 앱을 보고 대피소까지 피난한 사람이 있습니까?]
[이미 SNS상에선 메신저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제보가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또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은 닉스 챗에 내장된 GPS 조난신호를 이용해서 구조대에 신호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 닉스 챗이라는 앱은 처음부터 재난용으로 만들어진 앱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올해 초부터 닉스에서 진행한 AEP의 일환으로 재난전용 기능을 급하게 추가했다고 합니다.]
[정부에서 하지 않는 일을 민간 기업이, 그것도 해외 기업이 해버렸군요.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 * *
후이다 마을은 이번 쓰나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동북 해안가에 있는 마을 중 하나다.
동북 해안가에 있는 다른 마을들은 쓰나미에 초토화됐으나 후이다 마을은 15m에 달하는 방조제 탓에 큰 피해 없이 재앙을 피해갈 수 있었다.
근방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마을이었으니 마을은 자연스럽게 피난했던 사람이 몰려드는 거점이 됐다.
도로가 끊겼기에 헬기가 30분 단위로 보급 물품을 실어 날랐고 마을 뒤편 공터에는 피난민들을 위해 대형 텐트까지 설치됐다.
[현재까지 실종자는 4만여 명에 달하며, 당국은 아직도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찌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가 텐트 안을 울린다.
대형 텐트 내부에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앉아 있었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모두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다.
[닉스는 이번 동일본대지진에 2,000억 엔 규모의 지진 방지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이번에는 3조 엔을 추가로 지원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닉스 소속의 헬기 100여 대가 구조 작업과 물자보급에 나서고 있고…….]
닉스 이야기가 나오자 스즈키 곤조는 인상을 팍 구기곤 말했다.
“그놈의 닉스, 닉스. 귀에 딱지가 앉겠다.”
그의 말에 꺼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시노가 따지고 든다.
“아빠는 대체 왜 닉스를 싫어하는 거예요? 누구 덕에 우리가 살아 있는지 몰라서 그래요?”
“녀석들이 오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이 와서 우릴 구해줬을 거다.”
“그 다른 사람이 누군데요?”
“옆집의 다카다 씨나.”
“다카다 씨는 제가 갔을 때 벌써 피난가고 없었어요.”
“그럼 자위대가 왔겠지.”
“자위대요? 그들이 우리가 집에 있는 걸 어떻게 알고요? 닉스의 구조 헬기가 안 왔으면 우린 실종자 4만 명에 포함됐을걸요.”
곤조는 딸의 말이 언짢은지 입을 우물거리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어디서 어른이 말하는 데 말대꾸하는 거냐? 내가 널 이렇게 가르쳤어?”
“으으…… 정말이지 꽉 막힌 사람.”
“뭐?”
시노는 텐트 밖으로 뛰쳐 나가 버렸다.
똥 씹은 표정으로 텐트 입구를 바라보는 곤조. 그때 그의 아내인 카오리도 거들고 나섰다.
“당신, 억지 부리지 말아요. 그때 시노가 닉스 사장님께 연락하지 않았다면 헬기도 안 왔을 거고 우린 선택을 해야 했을 거예요.”
“무슨 선택?”
“당신을 두고 가거나. 아니면 가족 모두가 쓰나미에 휩쓸려 죽거나.”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곤조는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든 말든 카오리는 말을 이어 간다.
“닉스에 감사하는 것까진 안 바라니까 험담만은 하지 마세요. 당신 옆의 우리 얼굴이 화끈거리니까요.”
“흥,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야. 보나 마나 무슨 꿍꿍이가 있겠지. 혹시 알아? 나중에 일본 정부에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할지 말이야.”
“배상금을 요구하든 어쨌든, 중요한 점은 닉스 때문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다는 거잖아요. 아니에요?”
“그건 뭐…….”
“일본의 그 어떤 기업도 못 한 일을 그들은 해냈다고요.”
그녀의 말은 조목조목 다 맞는 말이었지만 곤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뀐다.
“어찌 운 좋게 맞아 들었을 뿐이야. 이번 일 때문에 나라를 한국 놈들에게 넘길 셈이야?”
“아까부터 듣자 하니. 말이 너무 심하구먼?”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텐트의 구석이었다.
근육질의 중년 사내는 자리서 벌떡 일어서더니, 곤조의 바로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형씨, 진짜 그렇게 생각해?”
“뭐, 뭐 말이요?”
“진짜 운이 좋아서 닉스가 우리를 구했다고 생각하냐고.”
곤조는 사내의 덩치에 위압감을 느꼈으나, 마누라 앞이었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렇소만? 마침 그 자리에 그들이 있었을 뿐. 다른 일본 기업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요.”
“나, 이거 참. 어이가 없어서.”
사내는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더니, 곤조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다.
“잘 들어. 닉스는 이번 사태를 운이 좋다거나 해서 진행한 게 아니야. 당신네를 살려줬던 닉스 챗이라는 앱, 거기 재난대비 프로그램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거 같아?”
“그러니까 운이 좋다고 하지 않았소.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자마자 지진이 일어났으니까.”
“운이 좋다라…….”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잇는다.
“내가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땐, 10만 명이 버틸 수 있는 식자재와 생존 용품, 텐트까지 쌓여 있었어. 후이다 마을은 고작 3천 명이 사는 마을인데 말이야.”
“그게 어떻단 말이요?”
“만약 지진이 안 났으면? 그랬다면 닉스의 평가가 어떻게 됐을까?”
“그건…….”
사내는 곤조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말을 이어간다.
“이 물품들이 폐기되는 건 둘째치고, 닉스의 사장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겠지. 쓸데없는 망상으로 돈을 낭비했다고 말이야. 그렇지 않나?”
“…….”
“뭐, 형씨가 삐딱한 시선을 하는 이유는 잘 알고 있어. 우익들이 장악한 언론에서는 매일같이 떠들어 대는 게 한국인은 믿지 못한다는 이야기니까. 아, 참고로 말하자면 난 산케이 신문 기자 출신이야.”
“사, 산케이 신문?”
산케이 신문은 대표적인 우익, 반공 성향의 신문사다.
지금은 좀 수그러든 편이지만,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가장 가열차게 닉스에 부정적인 보도를 했던 곳이었다.
“이번 지진이 없었다면 나도 그중 하나로 남았겠지. 그러니까 형씨도 상대의 진심 정도는 파악하려 노력해보라고. 그럼 시야가 조금은 넓어질 테니까.”
사내가 자리를 뜬다.
카오리 역시 시노를 찾으러 밖으로 나가 버렸다.
혼자 남은 곤조는 텐트 구석에서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상대의 진심…….”
그때 매번 같은 소식을 떠들어 대던 라디오에서 속보가 흘러나온다.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번 대지진 구호 활동에 적극적인 닉스의 CEO, 대니얼 강이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닉스의 CEO, 대니얼 강이 나리타 공항에…….]
조용했던 텐트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닉스 사장이 무슨 일로 일본에 오는 거지?”
“구조에 돈을 3조 엔이나 썼다고 하니. 직접 지휘하러 오는 거겠지. 우리로선 좋을 일이야. 직원들은 사장이 있으면 더 열심히 일하잖아?”
“흥, 안전해지니 이제야 들어오시는군.”
“어이. 뭔가 착각하나 본데. 닉스 사장은 한국인이야. 다른 외국인들이 도망가기 바쁜데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 * *
닉스 전용기가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활주로에는 들어오려는 비행기는 드물고 나가려는 비행기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다.
“일본이라. 결국, 와버렸네.”
미국에서 모니터로만 일본을 지켜보던 내가, 직접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탄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건 돈을 너무 많이 벌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닉스 투자팀이 번 금액은 800억 달러가 넘는다. 아니지, 지금도 그 돈들은 계속해서 증식하고 있으니 100억 달러 정도는 더 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수백억 달러의 돈은 나라 하나를 뒤흔들 수 있는 막대한 돈이다.
그런 돈을 주식시장에서 빼먹었으니, 이건 소문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는 액수다.
내가 걱정하는 건 자칫 재수 없게 소문이 퍼지면 닉스가 지진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AEP를 시작했다는 오명을 덮어쓸 수도 있다는 거다.
그 때문에 닉스로썬 면피용으로라도 일본 재난구조 활동에 돈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어휴, 직원이 너무 유능해도 문제라니까.”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맞은 편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숀 코너가 고개를 쳐든다.
“무, 무슨 말씀 하셨습니까?”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아, 예…….”
코너는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아 내곤 뻘쭘했는지 옆에 둔 노트북을 챙겨 든다.
“혹시 후쿠시마 쪽에서 연락 들어 온 거 없습니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는 노트북을 본격적으로 두들겨 대기 시작했다.
“3시간 전에 들어온 위성사진이 있습니다.”
“어디 한 번 보죠.”
노트북에서 불러온 후쿠시마 원전 사진에선 별다른 특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
지진 전 사진을 일부러 꺼내서 대조까지 했지만 다른 점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혹시 방사능 유출 같은 소식은 없었습니까?”
“루머는 돌고 있지만 아직은 별문제 없이 가동 중이라 합니다. 내부 직원들도 정상적으로 근무 중인 거로 파악됐고요.”
난 이번 재난을 막고 싶었기에 당연히 후쿠시마 원전에도 방책을 세우려 했다.
방사능 유출 문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에 쓰나미 방비를 하게 만드는 건 돈을 때려 부어도 성공할 수 없었다.
원전을 운영 중인 도쿄 전력이 원전 이야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아직 원전이 멀쩡하다니. 하늘이 일본을 도와서 쓰나미에 버틴 걸까? 아니면 어떤 방법을 써서 멀쩡한 것처럼 보이게만 만든 걸까?
난 노트북을 돌려주며 다른 질문을 꺼냈다.
“후쿠시마 원전 직원 중에 포섭한 사람이 있습니까?”
“직원 중 10명 정도는 우리 사람이라고 보면 됩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분들에게 원전 내부 영상을 찍어서 전송해달라 하세요. 돈은 얼마를 줘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창밖을 바라본다.
활주로에선 분주히 돌아다니는 공항 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뭘 하기에 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걸까?
창밖을 구경하길 십여 분 정도 지났을까? 잠시 자리를 비웠던 코너가 자리로 다가온다.
“저기, 대표님.”
“무슨 일이죠?”
“죄송합니다만, 공항 측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직 활주로 정비가 안 됐나 보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정부 측에서 내려온 지시라고…….”
코너는 자신 없는 듯 말을 흘려버린다.
“정부에서 우리 입국을 막은 겁니까?”
“그게, 자세한 이야기를 안 해주고 있습니다. 그저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해서 한다더군요.”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망할 일본 정부는 날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걸까? 화가 나는 대신 온몸에 힘이 쫙 빠진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씁.”
옆에서 코너가 내 눈치를 보고 있다. 그도 일본 정부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입국 허가가 안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비행기를 다시 돌리는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하하…… 이거 참.”
그때였다.
털컥, 하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 좌측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천히 들어오는 사람은…….
“대, 대표님. 저 사람 모리 총리입니다.”
모리 나오토 총리.
일본의 최고 통수권자이자, 이번 사태의 총 책임자.
지진과 쓰나미 문제로 한창 바쁠 사람이 날 만나러 여기까지 왔다고? 대체 무슨 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