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21화 (121/206)

기적의 IT 재벌 121화

3월 11일 14시 36분.

미야기현 외곽 주거지역.

“아빠,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난다니까요. 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 가요.”

“큰일은 무슨 큰일이야. 지금까지 우린 잘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스즈키 시노는 다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일본까지 왔건만, 자신의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해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사가 싫으시면 잠시 휴가라도 다녀오는 건 어때요? 저번에 오사카에 친구분 만나고 싶다 하셨잖아요. 엄마도 같이 가요. 네?”

그녀의 아버지인 스즈키 곤조는 이제 말하는 것도 귀찮아졌는지 신문에 얼굴을 파묻어 버린다.

다급한 그녀가 시선을 자신의 어머니인 스즈키 카오리에게로 향한다.

“엄마가 아빠 좀 설득해봐요.”

“시노야, 여긴 우리 집이야. 여길 두고 어딜 간단 말이니?”

“아, 엄마! 진짜 큰 지진이 나면 어떻게 해요?”

“이 집은 마을에서도 명공으로 이름난 노무라 씨가 지은 집이야. 어지간한 지진에는 끄떡도 없단다.”

시노는 어떻게 하면 꽉 막힌 부모님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신문을 보던 곤조가 말을 툭 던진다.

“너, 그 한국인 놈의 말 때문에 그러는 거냐?”

“한국인 놈이라고 불릴 분이 아녜요.”

“그 대니얼인가 하는 닉스 사장 놈, 사기꾼이라고 벌써 뉴스에 다 났다. 일본을 위하는 척하면서 일본을 장악할 공작을 펴고 있다더구나.”

“아빠! 또 가판대에 있는 신문 같은 거 보신 거예요? 그거 우익들이 없는 말을 지어내는 거라고요!”

“시끄럽다. 네가 뭐라 하든, 우린 이사할 생각이 없으니까. 가려면 너 혼자 떠나라.”

그녀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하면 서로 감정만 상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곤조가 방에 들어가 버리자, 카오리가 살짝 다가와 말했다.

“그러지 말고 다음 소식을 기다려보자꾸나. 기상청에서는 조짐이 없다고 하지 않았니.”

“언제는 기상청에서 지진을 예보해줬어요? 그제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항상 지진이 일어난 뒤 떠들어 대는 것뿐이잖아요. 전 두 분이 이해가 안 돼요. 왜 이런 곳에서 불안하게 사는 거예요? 예?”

“시노야, 여긴 우리의 고향이잖니.”

그녀는 카오리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돌아섰다.

미국서 가져와서 열어보지도 않은 캐리어를 챙겨 들었다. 그러곤 신경질적으로 현관 앞에 끌어다 놓는다.

“전 다시 미국으로 갑니다. 아빠나 엄마, 지진으로 어떻게 돼도 전 모르는 일이에요.”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몰라요!”

하이힐을 신으려 발을 치켜들었는데. 몸이 한쪽으로 휙 하고 기운다.

“어, 어?”

순간, 눈앞에서 신발장이 와르르 무너진다.

문짝이 비틀어지며 떨어져 나갔고, 창은 찢겼으며, 주방의 식탁이나 집기들이 일제히 부서져 내린다.

이어서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는 사람들의 비명도 들려온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은 눈을 한 번 깜빡할 정도의 찰나에 불과했으니.

“시노! 괜찮은 거야?”

카오리의 날카로운 고성.

그녀는 대답하려 했으나 물속에 있는 것처럼 말이 토해지지 않았다.

아직 땅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간다.

“엄마!”

한 걸음 발을 내딛는데 땅의 흔들림이 더 심해졌다.

간신히 손을 맞잡은 모녀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꽉 부둥켜안고 주저앉는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지옥 같은 현실이 한시라도 빨리 끝나길 말이다.

지진은 일 분여간을 더 이어진 후에야 진정됐다.

계속해서 귀를 때리던 굉음 역시 멎었고, 남은 건 바깥에서 들려오는 요란스러운 자동차 경보음이 전부였다.

시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집은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온전한 곳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붕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을까.

“시노, 시노야 괜찮니?”

“저, 저는 괜찮아요. 아빠는요?”

“방으로 들어가셨는데…….”

시노는 자리서 벌떡 일어서 걷기 시작했다.

집이 뒤틀릴 정도였기에 마루는 군데군데 솟아 있었고, 벽면에는 섬뜩한 금이 길게 간 상태였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집.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야만 했다.

“아빠! 아빠!”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아니, 열렸다는 표현이 아니라 뒤틀려서 부서져 있었다는 게 맞겠지.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앉아 있는 곤조가 보인다.

“아빠?”

“시노야…… 다친 데는 없니?”

“저랑 엄마는 괜찮아요. 아빠, 빨리 집에서 나가요. 벽이 전부 금 갔어요.”

시노가 급히 그를 부축하려고 했을 때, “끄윽!” 하는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다리를 좀 다친 거 같구나. 천천히, 천천히 일으켜다오.”

자세히 보니 무너진 원목책장이 곤조의 다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제가 책장을 밀어볼게요.”

기를 쓰고 책장을 들어보려 했지만, 책장은 미동도 없었다. 그때, 카오리가 들어온다.

“시노야, 네 휴대폰이…….”

“그보다 책장을 치워야 할 거 같아요. 엄마 빨리요!”

“어머머, 당신!”

카오리가 휴대폰을 내팽개치자, 얼떨결에 시노가 휴대폰을 받아든다.

“엣? 긴급 메시지?”

닉스 챗 메시지가 평소와는 다르게 붉은색과 하얀색이 번갈아 가며 점멸하고 있었다.

긴급 쓰나미 경보 발령!!!

도호쿠 지방 산리쿠 해역에서 지진 발생으로 높이 10m+의 쓰나미 발생.

지진 피해 지역의 주민들은 즉시 고지대로 대피하기 바랍니다.

그녀는 눈앞이 새하얘졌다.

당장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자신의 아버지는 책장에 깔려 있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시노야, 도와줘. 책장이 꿈쩍도 안 해!”

지금 시노의 귓가엔 카오리의 고함이 들리지도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살려줄 수 있을 만한 사람, 딱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 * *

3월 14일 14시 12분.

동일본 대지진 발생 72시간이 지난 후 닉스 본사 대회의실.

회의실 한쪽에 대형 TV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실시간 영상에는 지진과 쓰나미가 휩쓸고 간 동일본 지역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난 중앙 테이블에 앉아 영상을 훑는다.

영상에 비친 지역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건물들.

기괴하게 비틀린 교량과 절반을 뚝 잘라 놓은 듯한 종합경기장.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바다.

이곳은 본디 주택가였지만 지금은 바닷물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일 뿐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광경이다.

난 결국 눈을 감고선 고개를 돌려버렸다.

“씁…….”

강도 9.1이라는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닉스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쓰나미 경보를 전파했다.

닉스 챗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 대형 방송사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했으나 쓰나미 경보를 제때 전파한 곳은 지방의 라디오 채널과 동사무소 한 군데가 전부였다.

대형 방송사는 연이어 오보를 쏟아내면서도 쓰나미 대피 방송은 정부의 지시를 기다린다고 했으며, 일본 정부는 긴급상황임에도 절차를 따지다가 쓰나미가 밀려오기 30분 전에야 정식으로 대피 방송을 내보냈다.

골든타임 30분을 놓친 결과는 처참했다.

미리 대피했거나 고지대 근처의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지만 뒤늦게 대피에 나선 주민들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몰라 건물로 기어 올라가다 쓰나미에 쓸려 나갔다.

지금까지 발표된 실종자 수는 무려 4만 명으로 숫자는 계속 늘어가고 있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대책을 마련한들, 부질없는 짓이었단 말인가.

상념에서 빠져나와 다시 눈을 떴을 때, 탄탄한 근육질의 사내가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는 이번 재난 대비팀의 팀장인 숀 코너다.

“대표님, 재난 구조 작업 경과를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입술이 붙은 채로 바싹 말라 버린 것만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코너가 보고를 시작했다.

“현 시각 닉스에서 자체적으로 확보한 헬기 80대가 구조물자를 수송하고 있습니다. 고립된 지역을 중심으로 식수와 식품, 비상 약품과 생존 물품을 현장에 투하하는 중입니다.”

“어, 잠깐만요. 배급이 아니라 투하를 한다고요? 그 투하가 제가 아는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투하가 맞습니까?”

“예, 모포나 다른 완충재로 꽁꽁 싸서 투하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거기다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도 불가능하잖습니까?”

“일단은 착륙지점이 정비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코너는 자신도 이 말을 하는 게 어이가 없는지 뒤통수를 벅벅 긁어대며 남은 말을 내뱉었다.

“일본 정부에서 정식으로 구호 허가를 내주지 않아 헬기가 착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중에서 투하하거나 헬기의 무게를 줄인다는 핑계로, 물자만 내려놓고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대외적인 시선 때문에 이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날 줄이야.

이젠 쏟아낼 욕이 바닥나 버렸다.

“코너.”

“예, 대표님.”

“접근 방식을 바꿉니다. 구조대는 이제부터 마켓N의 직원으로 물품을 판매하러 가는 겁니다.”

“재난 현장에서 물건을 판다고요?”

어이가 없는지 코너가 날 뚫어지라 쳐다본다.

“구호 물품을 종류 불문하고 1엔에 판매하세요. 구호행위를 하지 말라고 했지 장사를 하지 말란 말은 없었잖습니까. 결제 방식은 현금, 카드, 닉스페이로 하면 되겠네요.”

“그럼 사재기가 심해질 텐데요.”

“형식상으로만 판매 형태를 띠는 겁니다. 배급처럼 사람 수대로 물자를 배분하고 1엔도 없는 사람은 정식 차용증을 받아두세요.”

“알겠습니다.”

“아, 판매 시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전후 사정도 꼭 알려야 합니다.”

90도로 고개를 숙인 코너가 떠나자, 바톤을 이어받듯 엘런이 나타났다.

회의실 내의 모두가 전무후무한 대재앙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는 가운데, 그녀 하나만 빛을 잃지 않고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 든다.

“음, 엘런? 무슨 일입니까?”

“일전에 대표님이 말씀하신 내용요.”

“예?”

내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엘런이 볼을 부풀려댄다.

“역시, 까먹고 계셨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그녀가 내게 서류뭉치를 억지로 떠넘긴다.

보고서의 이름은 [동일본 대지진을 예측하고 진행하는 공격적인 투자]였다.

“아!”

이번 사건이 터지기 이틀 전, 그러니까 닉스 챗으로 첫 재난 메시지를 보냈던 날.

지나가는 말로 “이번 재난구조 프로젝트에 돈이 많이 필요할 거 같아요. 그러니 일본에서 대지진이 난다고 가정하고 투자 좀 부탁해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설마, 도쿄 전력 풋옵션이라도 사둔 걸까?

서류를 한 장 넘기자 깨알 같은 글씨들이 보인다. 최근 신경을 많이 쓴 탓인지 글씨가 일렁거리기 시작한다.

“아, 이런.”

눈을 비비고 깜빡거리자, 엘런이 다가와 말했다.

“많이 피곤하신가 보네요. 제가 읽어드릴까요?”

“그래 주시겠어요?”

서류를 받아든 그녀의 입에서 보고서 내용이 흘러나온다.

“우선 닛케이 지수를 중심으로 파생상품을 주력으로 투자했습니다. 또한, 지진에 확정적 피해를 볼 도쿄 전력과 해당 지역에 생산 라인이 있는 도요타, 혼다. 그리고 피해 보상에 나설 보험사 주가에도 베팅했습니다.”

나도 닛케이 지수나 도쿄 전력은 예상했지만, 제조업체와 보험사까지 생각하다니. 확실히 금융계 사람들은 생각부터가 남다르다.

“아울러 닉스 투자팀은 이번 대지진이 날 것이라고 확정짓고 투자를 진행했기에 공격적인 포지션을 취할 수 있었으며…….”

“아, 잠깐만요. 그 확정이라는 걸 어떻게 지은 거죠? 닉스 지질 연구소의 발표?”

“아뇨, 대표님에 대한 완벽한 믿음이죠.”

믿음이라는 말에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 신뢰받고 있었구나.

물론 이런 기분은 다음에 이어질 말로 와르르 무너진다.

“저희에겐 투자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대표님이 책임져준다는 믿음이 있잖아요.”

“예?”

내가 눈썹을 치켜들고 쳐다보자, 엘런이 쿡쿡대며 웃기 시작한다.

“당연히 농담이에요. 예상시간까지 지진이 안 나면 잽싸게 포지션을 청산할 생각이었어요. 투자팀이 얼마나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고요.”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된 겁니까?”

“음…… 결과부터 말하자면”

사락사락하는 서류 들추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어서 살짝 격양된 목소리가 이어진다.

“초기 투자금은 현금 보유량인 59억 3천 달러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5일이 지난 지금 수익률은 총 1,446%로.”

“아니 잠깐. 뭐라고요?”

“수익률은 총 1,446%라고요.”

“…….”

내가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고 있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린 뒤 보고서를 마저 읽어간다.

“현재 투자 평가액은 857억 4천만 달러입니다. 오늘 자 아마존의 시가총액이 800억 달러에 조금 못 미치니 지분 100%를 인수하고도 잔돈이 남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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