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20화 (120/206)

기적의 IT 재벌 120화

3월 9일 오전 11시 45분.

예상했었던 대재앙은 없었다.

지진은 규모 7.3으로 내륙에서 30㎞ 정도 떨어진 바다에서 발생했다.

일대에 혼란은 있었지만, 주민들은 언제나처럼 다시 생업으로 돌아갔고 이번 일도 으레 그렇듯 흔한 일본의 지진 정도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3월 9일 오후 2시 08분.

미국 서부 지진 관측소.

“어, 누나. 절대, 절대로 거기론 가면 안 돼 알겠지?”

-알았다니까. 몇 번을 말해.

“허투루 듣지 마. 진짜 심각하니까. 아, 아니지. 차라리 한국으로 가는 건 어때? 한국에도 카페 닉스 런칭해야 하잖아. 바로 투자해줄 테니까 일단 한국 들어가서 준비하고 있어. 응?”

-이왕 일본에서 시작했으면 완벽하게 매듭을 지어야지 얼렁뚱땅 넘어 가버리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리고 네가 시켜서 일본 서부 쪽에서만 활동했지만 이제 동부 쪽에도 진출해야…….

“제발 내 말 좀 들어!”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전화 너머에서는 침묵이 돌아온다.

눈을 세 번 깜빡일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조용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현우야, 조금 있다가 통화할까?

“아냐, 미안해 누나. 내가 요즘 힘들어서 그런가 봐.”

-그래, 그럴 만해. 너 요즘 들어 무리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 그리고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해.

“…….”

-특히 지진 이야기만 나오면 더 예민해지는 거 같더라. 사실,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내 주변에서도 네가 너무 그쪽으로 신경 쓰는 거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

“누나도 내가 이상해 보여?”

-아니, 절대로 아냐. 내가 아니라도 강현우라는 사람을 겪어본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하하, 빈말이라도 고맙네.”

-빈말로 하는 거 아니거든? 우리 동생, 힘내.

코끝이 찡해진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곁에서 끝까지 날 지지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아무튼, 거기 근처에만 있어. 알겠지? 매형이나 주변에 친한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전하고.”

-그래, 알겠어.

전화를 마치고 다시 연구소로 돌아간다.

그곳엔 닉스 소유로 바뀐 서부 지진 관측소 연구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던 이야기 계속할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전문가들.

그중 연구소장이 프로젝터 앞에 섰다. 그는 새하얀 머리가 듬성듬성 나 있는 일본인이었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산리쿠 해역은 30년 주기로 지진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1978년에도 규모 7.4의 지진이 일어났었고, 오늘 오전에 났던 지진은 규모 7.3짜리였죠.”

“주기적이라는 말은 이번 지진이 예상했던 지진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우리 연구소 예측으로는 규모 7.5 정도를 예상했습니다만 그보다는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이어서 지진이 날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번이 주진(主鎭)이라는 가정하에 이어서 발생할 여진은 이번 것과 비슷하거나 더 작은 규모가 올 것이라 예상합니다.”

연구소장의 말대로라면 동일본 대지진은 발생하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끔찍한 결과가 나오고 만다.

“그 여진이 언제 발생하는지 파악은 됩니까?”

“여진을 예측하는 건 무립니다. 워낙 변수가 다양하니까요. 다만 과거의 데이터로 비추어 볼 때, 이틀에서 사흘 사이에 비슷한 규모로 지진이 또 났었습니다.”

그는 날 슬쩍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진원지는 육지에서 30㎞나 떨어진 바다입니다. 규모 7 정도의 지진이 몇 번 더 일어난다 해도 큰 피해는 없을 겁니다. 게다가 근방인 도호쿠 지방은 내진 설계를 철저히 하기로 유명한 곳이니까요.”

“만약에 이번 지진이 큰 지진이 일어나기 전의 전진(前震)이라면요?”

내 계속된 질문에 소장은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해댔다.

물론 닉스의 돈을 받고 운영되는 만큼, 어쩔 수 없다는 듯 답을 꺼내놓는다.

“험험, 그럴 가능성은 작습니다. 대표님의 말씀대로라면 이번 규모 7.3보다 더 큰 지진이 온다는 이야긴데, 그 정도의 조짐은 찾을 수 없거든요.”

“이틀 뒤부터 여진이 이어진다는 건 확실한 겁니까?”

“과거에 그랬다는 거죠.”

오늘은 3월 9일. 이틀 후면 3월 11일이다.

어째선지 안갯속에 가려져 있던 디데이가 3월 11일이라는 확신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내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던 날짜가 떠오른 걸까? 아니면 불안감이 허구의 기억을 만들어낸 걸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전문가들도 진짜 대지진을 예측 못 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이대로 흘러가다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뿐이다.

“소장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말씀하시죠.”

“이곳의 지진 예측 정확도는 얼마나 됩니까?”

지금까지 언짢은 내색을 숨기고 있던 연구소장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저희를 못 믿겠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아니라 너무 상반된 예측치가 나와서 그럽니다.”

“무슨 말이신지?”

“최근에 설립한 닉스 지질 연구소에서는 이번 일본 지진을 대규모 지진의 전조로 보고했습니다. 이어질 지진은 최소 규모 9.0 이상이 될 거라더군요.”

“뭐, 뭐라?”

연구소장이 다른 연구원들을 쳐다본다.

시선을 받은 연구원들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당연히 아무도 모를 수밖에 없지. 닉스 지질 연구소는 내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연구소였으니까.

연구소를 등록하고 정기적으로 지진 데이터를 발표하며, 슈퍼컴퓨터를 매입했던 건 내 발언이 공신력을 얻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난 그가 다른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고 들어갔다.

“기분 나쁘게 들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질문을 드렸던 건 규모 9.0의 지진이 일어나는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규모 9.0의 지진이 일어나면 바다라고 해도 엄청난 일이 벌어집니다. 지진에 의한 사망자도 많겠지만, 진짜는 그 이후 몰려오는 쓰나미죠.”

그는 빠른 걸음으로 화이트보드 앞에 서더니 단숨에 동일본 지역을 그려냈다.

“이곳이 오늘 지진이 일어난 센다이 지역 바다입니다. 동일한 곳에서 9.0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다면 해안선에 자리 잡은 지역은 쓰나미로 초토화된다고 보면 됩니다.”

“방어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마커로 화이트보드를 탁탁 두드리던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연다.

“미리 높은 제방을 쌓아 두거나 하는 방법이 있지만, 규모 9.0의 지진이라면 쓰나미 높이는 적어도 10m가 넘습니다. 그게 해안가를 덮친다면…….”

그는 10m의 쓰나미 다가오는 상상을 했는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대피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겠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지진 예측만으로 피해 예상 지역에 사는 주민을 모두 대피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만에 하나 대피를 지시했다 해도 예측이 빗나간다면 누가 책임을 진단 말입니까?”

책임 소재를 떠나, 이번 지진 예측에 실패해서 사람들이 지진 예보를 불신하는 것도 문제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처럼 나중에 진짜 지진이 몰려오면 피해만 더 커질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뻔히 대재앙이 일어나는 걸 아는데 아무것도 안 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난 결의를 다지고 연구소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의 손을 꽉 붙잡는다.

“소장님, 방금 했던 쓰나미 예측. 그걸 공식적으로 전파해도 되겠습니까?”

“그건 규모 9.0 이상의 지진이 났을 때의 예측입니다. 지진 규모가 작아지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만이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 * *

3월 10일 16시 45분.

닉스 본사 37층 CEO 집무실.

원형의 집무실 한편에는 초대형 모니터가 걸려 있다.

그곳에는 닉스의 부사장인 박준오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일본 기상청은 당연히 그럴 권한이 없다고 상급부서로 넘기더라. 그래서 국토교통성과 내각 쪽에도 요청해봤는데…….

대답을 미루는 그의 표정이 안 좋다.

“거절당했습니까?”

-거절은 아니고 생각은 해보겠다더라.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오늘 일이 터질지도 모르는데!”

-일본 정부에선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아. 그게 그들의 사는 방식이지.

뭔가를 하려는 의지도 배짱도 없는 일본 관료들의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무것도 모른 채 쓰나미에 쓸려 나갈 주민들만 불쌍할 뿐이다.

-그러지 말고 내가 직접 가서 담판을 지으마. 브로커가 아니라 닉스 부사장 직함을 들이밀면 그놈들도 들어 주는 척은…….

“아뇨, 그러실 필요까지 없습니다. 이렇게 된 거 저 혼자 힘으로 해보죠.”

-그래, 알겠다. 무리하지 말고.

툭.

화상 통화가 끝나자 한숨이 쉬어진다. 최근 들어 한숨을 쉬는 빈도가 늘어 난 것만 같다.

“쯧,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건지.”

처음에는 내 힘닿는 데까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내가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줄 요량으로 말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손가락질해 대기 시작하자, 이젠 오기로 이 일을 끌고 가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손을 인터폰으로 뻗는다.

잠시 신호음이 흐르고, 철컥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예, 브릭입니다.

“브릭, 지금 바로 해줄 일이 있어요.”

-어떤 일이죠?

“저번에 만들어뒀던 비상 경보 메시지 있죠? 그걸 일본 닉스 챗 사용자 전체에 전송해주세요.”

-예?

“못 들었어요?”

-아, 잠깐만요. 그거 일본 정부와 협의가 끝난 사항이에요? 한번 보내면 되돌릴 순 없다고요.

“협의는 안 했지만 통보는 할 겁니다.”

-이런 맙소사.

잠시 끊겼던 목소리가 한참 뒤에나 흘러나온다.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자칫 잘못하면 일본 정부에서 손해배상은 물론이고 닉스 챗 사용을 금지할지도 몰라요.

“대의를 생각하세요. 이번 지진 예측대로 규모 9.0 지진이 일어나면 대재앙이 벌어집니다.”

-예측이 실패하면요?

“그럼 저 혼자 덮어쓰는 거죠.”

-하…….

고뇌하는 브릭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난 조용히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어휴, 까짓것 해보죠.

“믿어줘서 고마워요, 브릭.”

-제가 보스를 안 믿으면 누가 믿겠어요.

* * *

3월 11일 08시 12분.

닉스 챗으로 일본 전역에 비상 경보 메시지를 보내고 15시간 지났다.

닉스 본사 대회의실에는 임시로 꾸려진 재난대비팀이 한데 모여 있다.

그중 중앙에 앉은 브릭의 표정이 무겁다.

“예상했던 대로 일본 정부에서 항의가 있었습니다.”

“뭐라던가요?”

“그냥은 안 넘어간다고 하더군요. 당장에라도 닉스 챗 사용을 금지할 기세던데요.”

“후…….”

한참이나 내 말을 기다리던 브릭이 참다못해 다시 말을 꺼낸다.

“이제 어쩌죠?”

“어쩌긴요.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으아…… 내가 무슨 짓을 해버린 거야.”

머리를 감싸쥔 브릭이 책상에 머리를 처박는다.

“제가 지시한 거니까 책임도 제가 집니다. 그보다 경보 지역 주민들이 대피하는 움직임은 보입니까?”

“그게…… 일본 정부에서도 이어서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뭐라 보냈는데요?”

“이거 한 번 보세요.”

일본 기상청에서 알려드립니다.

금일 메신저 [닉스 챗]으로 전송된 지진 예보는 정확한 사실 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메시지입니다. 기상청의 지진 예보에는 조짐이 관측되지 않았으니, 국민 여러분은 혼동하지 마시고…….

“이런 썅!”

엄한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친다.

도와주진 못할망정 이런 식의 대응이라니.

역겨운 관료 놈들 꼬락서니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이 문자 때문에 대피하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가고 있다 하네요.”

“하…….”

“저기, 보스? 어떻게 할까요. 지금이라도 정정 메시지를 보낼까요?”

힘이 풀려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이게 나란 놈이 할 수 있는 최선이던가?

그에 대한 답은 아니다였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믿고 싶다.

다시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곤 의식적으로 손뼉을 쳤다.

“정정 메시지는 없습니다. 2차 재난 메시지를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재난 대비팀은 긴급 통신망과 비상 헬기, 구조 물자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우리는 우리 대로 지진에 대비합니다.”

“일본 정부에서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가만있지 말라고 하세요. 누가 정답인지는 시간이 흐르면 알 게 될 겁니다.”

* * *

3월 11일 14시 46분.

서부 지진 관측소에서 예측했던 대로 도호쿠 지방에 지진이 발생했다.

문제는 그들이 예측했던 규모 7.3의 지진이 아니라 규모 9.1의 지진이 일어났다.

재난 문자를 받고 피난을 떠난 사람은 극소수.

현지에 남아 있던 대다수 주민은 혼란, 충격, 공포, 절망을 순서대로 느꼈다.

대비하지 못한 자연재해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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