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18화 (118/206)

기적의 IT 재벌 118화

마켓N의 일본 진출은 무자비한 광고 폭격으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의 양대 포털인 트와일라잇과 야후 재팬의 전면 배너에는 24시간 마켓N과 카페 닉스의 광고가 걸렸다.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닉스 챗과 SNS 1위를 달성한 닉스 서클은 물론이고 TV, 라디오, 잡지, 대중교통 등의 광고란에도 마켓N의 광고가 집행됐다.

광고란 광고는 다 때려 박은 탓인지 마켓N은 오픈 첫날부터 기록적인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럼에도 사이트의 접속이 끊어지거나 느려지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닉스 재팬의 핵심 직원들은 닉스 서클 오픈 때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베테랑들이었으며, 플랫폼 관리자는 거대 오픈마켓인 10번가를 운영하다가 끌려온 경력직들이었으니 사고가 나려야 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마켓N은 오픈 열흘 만에 일본 인터넷 접속 순위 TOP10에 자리를 잡았으며, 8위인 아마존 재팬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형세가 됐다.

같이 연계시킨 카페 닉스 역시 흥행에는 청신호가 켜졌다.

카페 닉스는 닉스의 브랜드 파워와 귀여운 유니폼을 입은 직원의 서비스,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은 커피 맛 덕분에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중 가장 큰 호응을 끌어낸 것은 단연 닉스 비콘이었다.

타인과 대화를 꺼리는 일본 문화 특성상, 비대면 주문을 가능케 하는 닉스 비콘의 실시간 주문 결제 서비스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어이, 여기서 마켓N 써본 녀석 있냐?]

└안 써본 사람이 드물지 않을까? 첫 구매는 할인폭이 커서 한 번은 다들 써본 거 같던데.

└할인보다는 편의성이 너무 좋아서 문제지.

└맞아, 닉스 ID가 있으면 별도로 가입할 필요도 없더라. 복잡한 인증을 요구하는 다른 쇼핑몰은 반성해야 해.

└그건 닉스처럼 종합 ID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니, 그것만으론 변명거리가 안 되지. 결제까지 클릭 한 번으로 가능하게 만들었잖아.

└망할, 한국 녀석이 만든 닉스를 죽어도 인정하기 싫지만, 일본 서비스와는 상대가 안 되잖아. 힘을 내 아마존!

└(웃음) 아마존은 미국 기업입니다.

└미국이 차라리 낫지. 한국 기업인 닉스는 아웃이다. 아웃!

└(웃음) 닉스는 뉴욕 증시에 상장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소재지를 둔 미국 기업입니다.

└시끄러워! 한국인이 사장이면 한국 기업인 거야. 닉스 아웃! 일본에서 어서 사라지라고!

└그러면서 채팅은 닉스 챗을 쓰고 있는 멍청한 우익 녀석.

└닉스챗 따위 안 쓰면 그만이야. 넷상에서 이야기하는 거로 충분하잖아?

└현실에는 같이 대화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닐까?

└어이, 집 밖에 진짜 세상이 있다고.

└네가 첫 화면으로 쓰는 트와일라잇과 애니메를 보는 클립TV도 한국 회사라는 걸 알면 까무러치겠군.

└클립TV가 한국 회사라니. 나도 처음 알았다.

└클립TV 모회사 이름이 SG컴즈였던가? 심지어 거기도 닉스가 2대 주주라지.

└나도 한국이 싫지만, 닉스의 플랫폼은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 얼마 전까지 닉스 챗이 없을 때를 생각해 봐. 상상만으로 끔찍해.

└엿 같은 메일을 썼었지. 그때는 왜 메일이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걸까?

└가끔 닉스 챗 안 쓰는 사람들에게 메일 보내는 데 너무 불편해. 제발 닉스 챗 좀 쓰라고. 꽉 막힌 녀석들. 신문물을 받아들이란 말이다!

└신문물이 전부 한국 회사에서 파생된 것이라니. 어째, 씁쓸한 기분이야. 이대로는 소니나, 파나소닉 같은 전자분야처럼 IT분야도 한국에 패배할지도…….

└이봐, 애초에 일본 기업 중엔 패배라고 할 만한 IT기업도 없다고. 그들에겐 자국민을 빼먹겠다는 생각밖에 없어.

└그런 쓸데없는 생각보다 닉스가 사생활에 너무 깊게 관여하는 거 같지 않아? 뭐라고 할까... 감시당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그거 느꼈어. 어제는 내가 사고 싶었던 물건을 콕 집어서 추천해 주는 거 보고 닭살이 돋았다니까. 닉스는 이런 걸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 거야?

└평소 접속하는 홈페이지나 검색어, 닉스 서클 게시글을 수집해서 필요한 상품을 제시하는 거지. 예를 들어 닉스서클에 ‘나나세 쨩의 콘서트에 다녀왔어요.’라는 글을 쓰면 연계 서비스인 마켓N에는 나나세 3집 앨범이 추천 목록에 추가돼. 이미 구글이나 야후 광고에도 흔히 쓰이는 기술이야. 별다를 것도 없다고.

└정말 별다른 게 없는 일일까?

* * *

다사다난했던 2010년이 가고 2011년이 찾아왔다.

시간이 흐르자 마켓N 운영팀의 날카롭던 사내 분위기도 한풀 꺾였고, 매번 비상 대기하던 직원들에게도 여유라는 게 생겨났다.

그렇게 마켓N 운영팀의 새해 첫 회식 날.

1차는 근처 식당에서 경영진들의 격려 인사가 있었고, 2차부터는 자발적으로 흩어져 술자리를 이어갔다.

내가 속한 곳은 당연하게도 팀장급 간부들이 모인 그룹이다.

회식 자리에 나와 신용화가 껴 있어서 분위기가 딱딱해질 거로 생각했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끄으…… 신 대표님 너무 하쉼다. 저를 맨날 구박하는 게 재미있으세요?”

혀가 꼬일 대로 꼬인 배기태가 신용화 옆에 딱 달려 붙어서 술잔을 채운다.

“이 친구가 왜 이래. 내가 언제 구박했어?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네.”

“아, 증말. 매일 아침 불러서 혼내시잖아요. 으…… 저 운영팀장입니다. 운영팀장. 그 외에 서버나 프로모션 업무까지 파악하라는 건 너무 벅참돠. 저, 오픈하고 하루도 집에 못 갔어요. 살려주세요. 신 대표님. 으엉어어어어어엉.”

갑자기 펑펑 울어대는 배기태.

다 큰 사내놈이 눈물을 쏟아대는 탓에 신용화는 당황해서 어쩌지도 못하고 있다.

“내가 배 팀장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배 팀장도 언제까지 팀장에서 머물 거야? 임원 한 번 달아봐야지.”

“임원? 진짜 임원 시켜 주는 겁니꽈? 상무 이사 배기태 되는 겁니꽈?”

“당장 해준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능력을 보이면 고려해 보겠다는 거지. 까놓고 지금 배 팀장만큼만 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진짭니까. 신 대표님?”

“다, 당연하지.”

“싸랑합니다! 대표님. 그런 의미로 한 잔 더 받으시죠.”

이후에도 배기태는 신용화를 거머리처럼 따라붙어서 술을 권했다.

지금 상황만 보면 신용화가 불쌍해 보이지만 평소 그가 배기태를 들들 볶아 대던 걸 생각하면 자업자득이었다.

“배 팀장,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냐?”

“이 좋은 날 안 마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 밤새도록 마셔보죠.”

“아, 아니. 잠깐만. 반만 따라, 반만.”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한 편의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듯하다.

신용화 녀석.

평소라면 칼같이 잘라 버렸을 텐데 술자리에서만큼은 직원들 푸념을 들어주네.

이런 모습을 보면 다른 재벌 집 아들내미들보단 확실히 난 놈이긴 하지.

내가 있는 테이블은 SG컴즈 측 임원들이 있는 곳이다.

대부분이 일본 현지에서 스카우트한 직원들이었기에 일본어를 못하는 나로선 술을 마시는 것 말곤 할 일이 없었다.

뭐,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고 할까.

혼자 술을 반쯤 따르고 단숨에 흘려 넣는다. 그러자 알싸한 사케의 뒷맛이 혀끝을 따라 맴돈다.

“크으.”

회를 몇 점 집어넣는데, 옆에서 대뜸 못 보던 직원 하나가 와서 술잔을 채운다.

“반갑습니다, 강현우 대표님.”

“누구시죠?”

“SG컴즈의 김현성 팀장입니다. 이번에 서버를 담당했던…….”

“아하.”

이번 마켓N의 숨은 공로자는 SG컴즈의 서버 팀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1위 포털인 트와일라잇을 운영하던 능력을 바탕으로 이번 마켓N 오픈을 단 한 번의 문제없이 성공해냈다.

난 집어먹던 회를 마저 삼키곤, 그의 잔에 술을 채워준다.

“마켓N 런칭에서 서버팀 득을 크게 봤습니다. 실력이 아주 좋으시더군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나중에 SG컴즈서 일하는 게 지겨워지거나, 신용화 씨가 너무 쪼아대면 닉스로 오세요. 김 팀장님 같은 인재는 언제든지 환영이니까요.”

그때, 배기태에 집중 마크당하던 신용화가 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야! 강 대표! 남의 회사 직원 빼가기냐?”

아무튼, 지 욕하는 건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니까.

난 못 들은 척하고 김 팀장과 술을 나눴다. 확실히 혼자 마시는 것보단 둘이 마시는 게 낫다.

술이 한 번씩 돌고, 다시 술잔을 채우려 할 때 휴대폰이 찌르르 울어댄다.

“음?”

발신지는 미국의 엘런 페이지.

난 자리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여보세요.”

-아, 대표님. 아직 안 주무셨네요.

오랜만에 듣는 엘런의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톤이 올라간다.

“직원들과 회식하러 나왔습니다.”

-그럼 스시?

“예, 일본 현지에서 먹는 거라 그런지 입에서 살살 녹네요.”

-부럽다. 나도 일본 가고 싶은데.

“휴가 쓰고 놀러 오세요.”

-아! 정말요?

“물론 지금 하는 일은 끝내고 와야겠죠?”

-피이.

휴대폰 너머의 시무룩한 표정의 그녀가 보이는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실실거리는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왜 전화했어요? 이 시간에 정기보고를 할 것도 아닐 테고.”

-그게, 월가에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예상은 했다. 이번 마켓N의 일본 진출은 단순히 오픈마켓 서비스를 런칭하는 것을 넘어서, 닉스와 아마존이 미국에서 맞붙기 전에 펼치는 전초전 성격이 강했다.

그 때문에 이번 마켓N의 성패 여부는 일본 현지보다 미국의 아마존이나 월가에서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아마존의 멀티인 일본에서 우리가 성공했으니 좀 놀랐겠군요?”

-놀란 정도가 아니에요. 대주주였던 골드만 삭스가 주식을 던지면서 아마존 주가가 17% 하락했고, 시가총액이 오늘 하루만 156억 달러가 증발했습니다.

“와우, 덩치가 크니 하락의 스케일도 어마어마하군요.”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단순히 마켓N의 일본 시장 성공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되진 않을 텐데요. 아마존에 다른 악재라도 있는 걸까요?

“악재는 있죠. 아마존이 곧 독과점위반으로 얻어맞을 테고, 그 말은 공고했던 미국 시장 독점체제가 흔들린다는 이야기니까요.”

-잠깐만요. 그 소식은 정계에서 정식 발표도 안 된 사항이잖아요. 그런데 골드만 삭스는 그걸 어찌 알고 움직였다는 건지…….

“장사 하루 이틀 해봐요?”

-서, 설마. 내부자 정보로 미리? 그건 범죄잖아요!

월가의 대형 투자사들이 정계에서 흘러나온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월가와 워싱턴의 은밀한 밀월 관계는 법대로 따지면 내부자 정보 거래 위반으로 명백한 위반이지만, 그 누가 그들의 비리를 들춰낼 수 있단 말인가?

미국이든 한국이든 주식 시장은 공룡들이 개미 돈 빼먹는 놀이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범죄라도 증거가 없는데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 당장 버크셔 헤서웨이가 뒷주머니로 아마존 주식 매입한 거, 엄밀히 따지면 불법이잖아요. 그런데 뭐 있었어요?”

-그렇긴 한데…… 정말이지 화가 나네요.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없는 자들을 수탈하다니. 그거 완전 악당들이나 하는 짓이잖아요.

“공고하게 엮인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건 본래 쉽지 않습…… 어, 어?”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몸이 휘청거리며 앞으로 쏠린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그럴 리가. 아직 한 병도 안 마신 거로 아는데……?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어, 엘런. 잠시만요.”

몸을 곧추세우려는데 다시 한번 몸의 중심이 기울어진다.

근처 난간을 잡아서 넘어지는 건 막았지만 이번 흔들림으로 벽에 걸려 있던 거울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거울에서 왜?”

가만 보니 거울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거, 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땅이 흔들린 거였어?

-대표님, 거울이라뇨?

“엘런, 일이 생겼어요. 나중에 전화하죠.”

휴대폰을 움켜쥐고 화장실 밖으로 튀어 나간다.

젠장할. 지진이 나면 건물 밖으로 도망가야 하던가? 아니면 어디 숨어야 하나? 일단, 일단은 직원들이 있는 곳까지는 나가자.

이미 술은 다 깬 지 오래다.

놀란 심장만이 연신 쿵쿵하는 소리를 질러댄다.

비적비적 걸어서 1분 만에 왔던 거리를 10초 만에 돌파했다.

가게 안으로 딱 들어가자,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진다.

“음?”

가게의 손님들은 별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몇몇은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전부 마켓N 소속의 한국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도 주변 분위기 때문에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방금 지진 아니었습니까?”

내 물음에 김현성 팀장은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예, 조금 흔들리더라고요. 진도 3쯤 되려나? 일본에서는 별거 아닌 흔들림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거울이 떨릴 정도였는데 별거 아니라고?

내 납득 못한 표정을 읽었는지, 김 팀장이 이어 말했다.

“한국서 전쟁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 없듯, 일본에서도 이 정도 지진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답니다.”

“한국에서 북한과 전면전이 일어난 적은 없지만, 일본은 큰 지진이 몇 번 있었잖아요? 고베 대지진이나 후쿠시마 대지진 같은…….”

“후쿠시마 대지진요?”

김현성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참, 동일본 대지진이라고 불렸던가요?”

“최근 들어 후쿠시마 인근에서 지진이 잦긴 했지만 고베 지진과 비교될 만한 지진은 없었습니다. 혹시 다른 지진과 착각한 건 아니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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