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17화
“독점 체제라서 비집고 들어가기가 쉬워졌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는 말이잖아.”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현 독점 체제가 비정상적인 로비의 결과물이라면요?”
“로비?”
아마존이 인터넷 쇼핑과 E-Book 분야를 독점하면서도 미국 독과점 금지법의 칼날을 피해 가는 이유는 어마어마한 로비 때문이었다.
“미국 정계를 찌를 셈이구나.”
“예, 아마존이 정계에 밀어 넣는 로비스트와 정면으로 맞붙을 겁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아마존의 로비스트를 밀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닐걸.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더 문제지. 하루 이틀 만에 가능한 일이 아니잖아?”
“흐흐, 과연 그럴까요?”
닉스는 IPO 당시 버크셔 헤서웨이와 더불어 JP모건, 레드스톤을 끌어들였다.
버크셔 헤서웨이는 투자의 귀재라는 버핏의 후광을 등에 업고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함이었고, JP모건은 IPO의 주관사로서 든든한 후원자가 필요했기에 지분을 나눠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대의 사모펀드인 레드스톤.
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닉스는 역대 최강의 로비스트라 불리는, 일명 [레드스톤 러너]들과 줄을 댈 수 있었다.
이미 레드스톤 러너들은 라이드셰어링을 반대하는 택시 업계의 반발을 막아내고 닉스 제로가 운영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 자신만만한 표정을 본 신용화는 세모 눈을 하고선 말했다.
“분위기를 보니, 벌써 계획을 다 짜둔 모양이구만? 그치?”
“계획이 아니라 이미 로비스트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반응도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고요.”
“허.”
신용화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려댄다.
“정계에서도 아마존 혼자 해먹는 지금 상황보다 닉스와 아마존, 양쪽에서 돈을 받아먹으려 드는 게 이득이라 판단한 거 같더군요.”
“그럼 아마존 앞으로 수백억대 과징금이 나오는 건가? 아니지, 그 정도까지 한다는 건 아마존 돈을 안 먹겠다는 뜻이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고. 내 생각엔 경고 정도로 끝날 거 같긴 한데.”
“그 정도만 나와도 충분합니다. 내년에 마켓N을 필두로 한 닉스가 치고 올라옴과 동시에 독과점 관련해서 말이 나오면 아마존의 입지는 단숨에 쪼그라들겠죠.”
실제로 온라인 쇼핑몰은 독과점일 때와 아닐 때는 실적에서 확고한 차이가 벌어진다.
한국처럼 여럿 업체가 나눠 먹기 식으로 운영된다면 만년 적자를 벗어나기 힘든 것이고, 미국의 아마존이나 중국의 알리바바 같은 경우는 표면적으로 1%대 영업이익을 간신히 유지하는 것 같지만 실지로 연간 2배 이상으로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다.
“아마존이 소극적으로 바뀌고 주가가 하락하면 다시 인수 카드를 꺼내 들겠다는 거구나?”
“아뇨, 정공법으론 이번 같은 실패를 반복할 뿐입니다. 월가의 하이에나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 어쩌려고?”
“마켓N을 미국까지 진출시켜서 아마존 턱 끝에 칼을 들이댈 겁니다. 그들이 놀라서 기겁할 정도로 가까이 말이죠.”
신용화는 닉스가 공룡인 아마존을 무너뜨린다는 계획에 몸이 달아오르는 듯했다.
그 때문인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가만있지 못하고 다리를 달달 떨어댔다.
“이번 아마존 인수를 대비해서 현금을 엄청나게 끌어뒀기에 총알은 충분합니다. 그걸 토대로 아마존 주식을 인수하는 게 아니라 아마존을 위협할 칼을 벼릴 것입니다.”
“돈으로 찍어 누르기엔 아마존은 너무 큰 사냥감이야. 최악의 경우 돈만 날리고 끝날지도 몰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연합군을 구축해야죠.”
“연합군?”
“예, 아마존과 앙숙인 미국 업체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중 대형 오프라인 업체인 월마트와 베스트 바이라면 아마존에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을 겁니다. 그들로썬 닉스가 총대를 메고 아마존과 싸워준다는 데 거절할 이유가 없겠죠.”
내 이야기를 곱씹던 신용화의 표정이 ‘가능한 이야기일까?’에서 ‘이거라면 가능하다!’라는 쪽으로 넘어가는 게 보인다.
“후, 그래. 마켓N과 오프라인 업체가 연합해서 파이를 갉아먹기 시작하면 아마존으로선 골치께나 아프겠지. 독점이 깨지는 순간 주가는 물론이고 영업이익이 급감할 테니까.”
“바로, 그때가 기회입니다.”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긴 후 말을 계속했다.
“이번은 다른 투자자들과 부대끼지 않고 최대주주인 제프 베조스의 주식을 가져오는 딜을 할 겁니다. 딜의 조건은 그의 CEO 자리는 유지하되, 저번 인수에 부정적으로 행동했던 임원들 모가지를 콱!”
내가 손날을 허공에 휘두르자, 신용화가 흠칫 놀란다.
“날리는 거죠. 아마존 내부의 반발만 찍어 누를 수 있다면 남은 주식을 취득하는 건 천천히 하면 됩니다. 최종 목표는 아마존과 마켓N 두 업체가 미국 시장을 양분하는 것이 되겠지요.”
“그게 가능은 해?”
“왜요 어려울 거 같습니까?”
내 물음을 받은 신용화는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어댄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스케일이 너무 커서 실감이 안 난다고나 할까.”
“뭐, 어때요. 목표는 크게 잡는 게 좋잖아요.”
“무서운 놈. 예전에도 말했다만, 너랑 적이 아닌 게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첫 만남부터 악력 자랑으로 선전포고를 하셨던 분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습니다만?”
“그땐…… 어흠. 지난 일은 좀 잊자. 응?”
* * *
일본 시장에서 마켓N 런칭 준비가 한창일 때 즈음.
다른 한편으로는 카페 닉스의 일본지점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카페 닉스는 본디 한국 지점을 우선하여 진행하고자 했으나, 일본에서 런칭되는 마켓N과의 시너지를 위해 일본 시장에 먼저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일본 카페 닉스의 1호점이 될 도쿄 본점.
입구서부터 카페 닉스의 아이덴티티인 LCD 슬라이딩 도어가 인상적인 느낌을 준다.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도 하나같이 LCD 슬라이딩 도어를 한 번씩은 쳐다보고 지나간다.
물론 아직 오픈 일이 아니었기에 [카페 닉스 & 마켓N. 12월 20일 동시 오픈!]이라는 글귀만 번쩍이고 있었다.
“누나가 잘하고 있으려나.”
슬라이딩 도어 앞에 서자, 자동으로 문이 옆으로 열린다.
어슬렁거리며 가게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익숙한 한국어가 들려온다.
“어? 현우 씨?”
갸름한 턱선과 주근깨가 인상적인 동양인.
어디서 봤더라? 아하. 예전 카페 루루 사건 때 증언을 해줬었던.
“김수정 씨……?”
“강수정이에요.”
“아, 그랬나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름을 잘 못 외워서요.”
“아니에요. 그래도 이름은 기억해주셨네요.”
강수정은 낯을 많이 가리는 타입인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 눈을 못 마주친다.
“그런데 미국에서 치프 매니저로 일하시던 거 아니었어요?”
“일본 지점 매니저 교육 때문에 왔어요. 조금이지만 일본어를 할 줄 알거든요.”
“이야. 그럼, 3개 국어를 하시네요?”
강수정은 황급히 손을 내젓는다.
“잘하는 건 아니고 간단한 일상 회화 수준이에요.”
“그렇군요.”
고개를 빼들고 매장 안을 둘러본다.
홀에는 서른 명 남짓한 교육생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는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초반 정도?
하나같이 예쁘장한 여인들이 오와 열을 맞추고 있는 걸 보니 모델이나 아이돌 아카데미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유니폼도 일본 현지화의 일환인지 기존의 유니폼보다 과장된 포인트가 많이 들어갔고 치마도 더 짧아 보인다.
“직원들을 외모로 뽑나 본데요.”
“외모만 보고 뽑는 건 아니고 종합적인 능력을 보고 뽑아요. 물론 서비스업에선 외모도 능력 중 하나니 어드밴티지는 있지만요.”
“채용이 쉽지 않았겠는데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미국 지점 소문이 벌써 났는지 매니저 채용에는 경쟁률이 20대1이 넘을 정도였어요.”
“카페 매니저 채용에 그만큼이 몰렸다고요?”
강수정이 쿡쿡하고 웃는다.
“저희는 모든 지점이 직영점이라 점주가 따로 없어요. 그러니 매장 관리는 매니저가 승격하는 치프 매니저가 담당하게 되죠. 지역을 담당하는 관리자급은 따로 있지만 치프 매니저만 해도 일반 직장인보다는 급여가 세답니다.”
확실히, 그 정도의 유인이 있다면 사람이 몰릴 만도 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수정이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현우 씨는 현경 언니 보러 오셨죠?”
“뭐, 매장도 볼 겸 겸사겸사요.”
“그럼 2층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1층은 보다시피 좀 복잡해서요.”
계단에 올라서자 탁 트인 느낌이 든다.
2층에서 1층 홀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구조였기에 그런 것이리라.
“커피라도 한잔 달라고 할 걸 그랬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자연스럽게 뚫린 아래를 내려다보자 직원들을 교육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교육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매번 강조하는 인사나 친절, 클레임 대처 방식을 반복 주입하는 정도였다.
다만, 직원들이 교육에 임하는 태도는 좀 달랐다.
모두가 사소한 교육을 받는데도 열정이 넘친다고 해야 할까?
보통의 경우, 직원을 인건비가 저렴한 파트 타이머로 채워도 충분하다고 여기겠지만, 미국 시장에서의 결과만 놓고 보면 누나의 직원 중심 운영 방식이 정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를 멍하니 쳐다보던 도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고개를 돌려보자 누나가 커피를 들고 다가와 있었다.
“호출한 사람이 더 늦게 나타나면 어쩌겠다는 거야.”
“내가 요즘 좀 바빠.”
“어련하시겠어.”
누나의 분위기는 카페 운영하고부터 확 달라졌다.
기존에는 주변을 과할 정도로 신경 쓰며 자신을 거기에 맞추는 타입이었다면, 이젠 주변은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은 느낌이다.
변화는 복장을 보면 대번 알 수 있었다.
기존에는 수수한 단색 정장을 즐겨 입었지만, 이제는 과감한 오프숄더나 화려한 원피스 차림을 선호했다.
“우리 바쁜 누나께서 뭐 때문에 한가한 날 부르셨을까?”
“바로 일 이야기부터 하기야? 카페에 왔으면 커피부터 마셔봐야지.”
“예예, 그럽죠.”
나는 가까운 잔을 가져와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적절한 쓴맛과 신맛 그리고 풍미가 더해진. 말 그대로의 적절한 맛이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커피 맛이 평균을 한참 못 미친다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훌륭한 퀼리티다.
“밸런스가 괜찮네.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맛이야.”
“그치?”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특색이 없다는 뜻이고.”
누나가 눈을 흘겨대다가 한숨을 뻑 쉬어 댄다.
“나도 특색을 살리고 싶은데, 그래선 매장마다 균일한 맛이 안 나올 거 같더라고.”
“꼭 일본 현지에서 로스팅하라는 법은 없잖아. 스타벅스처럼 미국에서 원두를 조달하는 건 어때?”
“그럼 원두가 신선하지 못해. 맛이 확 죽는단 말이야.”
“그래도 사람들은 잘만 마시더니만.”
난 남은 커피를 몇 번 더 홀짝이고 말을 이어갔다.
“매장 준비는 잘 되고 있어?”
“글쎄다. 너무 무리해서 진행했는지…… 솔직히 좀 버거워. 이번에 인수한 가게들 인테리어 다시 하고 직원교육도 새로 하려니 몸이 남아나질 않겠어.”
“천천히 해. 굳이 시간 딱 맞춰서 전부 오픈하지 말고 순차적으로 하면 되잖아.”
“헤헤, 내가 욕심이 나서 안 되겠어. 머리로는 좀 쉬고 싶은데, 몸이 가만있질 못하더라니까.”
바보처럼 헤실거리는 모습을 보니, 진짜 일에 재미를 붙였나 보다.
이거, 당분간은 결혼 이야기도 못 꺼내겠는데.
새까만 커피와 매형의 씁쓸한 표정이 겹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후에도 누나의 수다가 이어진다.
예전 같았으면 시시콜콜한 잡담 위주의 이야기가 이어졌겠지만, 이제는 카페나 일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이럴 땐 예전의 누나가 조금 그립긴 하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이거 주려고 했었는데.”
“뭐?”
누나는 가방에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든다. 그리곤 한참이나 뜸을 들이다 내 앞에 내놓는다.
“이게 뭐 게?”
“뭔데 그리 호들갑이야?”
“닉스 페이. 오늘 자로 일본 정부에서 허가 떨어졌지롱. 이제 카페 닉스에서 정식으로 QR코드 결제를 쓸 수 있게 됐어!”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버렸다.
“허가가 벌써 나왔어?”
“이게 빨리 나온 거야? 신청한 지 한참 된 거 같은데.”
카페 닉스의 QR코드 결제 허용은 단순히 카페 닉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은 아직 핀테크와 관련된 법안이 없었기에 한 곳만 허가가 떨어지면 일본 전 국토에 QR코드 결제를 허가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이 미비한 탓에, 아직도 오프라인에서는 현금 위주로 결제가 이뤄졌다.
이런 시장에 QR코드 결제가 들어온다면 그 파급력이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