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16화
“너, 이거…… 진짜 할 셈이었어? 주가 때문에 쇼한 거 아니고?”
“쇼라뇨. 전 언제나 전력으로 부딪힙니다.”
“전력은 개뿔. 네 속이 시커먼 줄은 뻔히 아는데, 내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거 같아? 닉스A 주가 방어 때문이 아니라면…… 흠.”
신용화는 날 하나씩 뜯어보기라도 할 기세로 쳐다보더니 손가락을 딱 튕긴다.
“아하, 알겠다. 10번가로 미국 시장 좀 들쑤시다가 아마존 주가가 제자리 찾으면, 그때 가서 짜잔! 하고 먹을 생각인 거 아냐. 그치?”
“50점 정도는 드려도 되겠습니다.”
“엥, 50점? 그럼 나머지는 절반은 뭔데.”
“그건 영업비밀이라. 저를 불신하는 사람에겐 가르쳐 드릴 수 없겠네요.”
내가 한 발을 빼자, 오히려 신용화가 들러붙는다.
“어허, 왜 그래. 누가 안 한다고 했어? 그냥 미리 계획을 알고 싶다는 거지. 그래야 나도 발을 맞춰서 뭘 해볼 거 아냐.”
“그럼 10번가를 넘겨주시는 겁니까?”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쓴다면 플랫폼 정도는 얼마든지 줄 수 있어. 어차피 오픈마켓이라는 건 사용자 확보가 어려운 거지 플랫폼 구축은 금방 하는 거니까.”
“제가 필요한 건. 현 10번가의 개발 운용을 담당했던 핵심인력입니다.”
“칫, 그럴 줄 알았다.”
신용화는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궐련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는 순식간에 불까지 붙이곤 말을 이어나간다.
“후우- 나도 도와주고는 싶다만 솔직히 부담스러워.”
“뭐가 부담스럽다는 거죠.”
“너도 알다시피. 10번가는 국내 오픈마켓 중에서는 후발주자야. 그래서 억지로 통신사 포인트를 끼워 넣고 프로모션을 퍼주면서 2위를 탈환했지.”
고작 오픈 2년 만에 국내 2위까지 오르다니.
국내에서 대기업이 가지는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0번가 서비스하면서 그동안 누적된 손실이 어마어마해. 까놓고 말해서, 10번가를 그룹 차원에서 밀어줬으니 아직 버티고 있는 거지 일반 기업이었다면 벌써 무너지고도 남았어.”
“그럼 핵심인력은 못 주겠다는 말이군요.”
“못 주겠다는 건 아니고. 상황이 좀 나아질 때까진 기다려 달라는 거지. 섣불리 인력을 다른 데로 돌렸다가 폭삭 무너지면 몽땅 내 책임이 된다고.”
신용화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내 오픈마켓 시장이 나아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미래에서는 말이다.
앞으로 몇 년 후면 오픈마켓 3사의 경쟁은 물론이고 소셜커머스 업체까지 가세하면서 극도의 출혈경쟁이 이어진다.
오픈마켓 특성상 시장을 독점할 수만 있다면 투자대비 얻는 이익이 엄청났기에 서로 경쟁사가 나자빠지길 기대하며 버티고 또 버티는 일만 끝없이 이어진다.
굳이 승자를 꼽자면 싸게 물건을 구매했던 소비자가 아닐까 싶다.
치익, 하는 담배 비벼끄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해?”
“10번가의 미래를 내다봤다고 할까요.”
신용화는 실없는 웃음을 툭 흘리더니.
“그래, 미래가 어떻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상태를 고대로 유지하겠네요.”
“뭐?”
“앞으로 10년 넘게 적자에서 허덕일 운명입니다.”
신용화의 인상이 팍 찌그러진다.
“이놈이 사람 못 빼준다니까 저주를 퍼붓고 있네.”
“저주가 아니라 예언입니다.”
“시끄러워 인마.”
신용화는 투덜대며 궐련 담배를 하나 더 집어 든다. 난 그의 손에 들린 담배를 뺏어 들고 말했다.
“물론 지금을 유지한다면 그렇다는 거고. 저랑 같이 작업하면 승승장구할 겁니다.”
“어디서 약을 팔고 있어. 빨리 담배나 내놔.”
뻗어오는 손을 툭 쳐냈다.
“죽어도 인원을 못 빼겠다면 격주로 근무시키는 건 어떻습니까?”
“미국까지 왕복하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비효율적이야.”
“저는 미국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뭐?”
담배를 손 위에서 볼펜 돌리듯 빙그르르 돌린다. 그러다 바닥에 툭 떨어졌지만 아무도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어디서 서비스하려고 그래?”
“제 목표는 새로운 오픈마켓 서비스를 런칭해서 아마존이 위기를 느끼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난이도가 극악인 아마존 본진을 공략하기보다 외곽부터 무너뜨리는 게 정석이죠.”
내가 손가락을 쭉 뻗는다.
그곳엔 신용화가 끌고 왔던 화이트보드가 있었다.
“닉스의 첫 공략 지점은 저기.”
“일본?”
“예, 먼저 아마존 재팬을 무너뜨리고 미국으로 넘어가는 거죠.”
“확실히 본진인 미국에 들이받는 것보다 일본 쪽이 승산은 있지. 일본 시장은 메신저뿐만 아니라 포털도 강세를 보이니 프로모션 하나는 확실하게 밀어줄 수 있어.”
신용화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리곤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방안을 돌아다녔다.
“오랜만에 같이 합을 맞춰 보겠네요.”
“좋아. 현우야, 이건 된다. 무조건 되는 사업이야. 일본은 한국과 가까우니 인력 파견도 수월하겠고, 트와일라잇을 밀어 넣으면서 기반도 스탠바이 상태잖아.”
“플랫폼 디자인과 운영 전반의 틀은 제가 진행하죠. 신용화 씨는 현지 로컬라이징과 프로모션 쪽만 신경 써주시면 되겠네요.”
“그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이미 트와일라잇 때 해봤던 일이니 말이야. 거기다 카페 닉스도 같이 들어가면서 프로모션을 묶어서 진행한다면…… 아! 일본에도 KPOP이 먹히던가? 음원이나 연예인들 방면으로도 알아봐야겠어. 이번 일본 진출에 쓸모 있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또…….”
“천천히 진행하세요. 너무 서두르다간 스텝이 꼬입…… 뭐야, 안 듣고 있나.”
오픈마켓의 일본 진출은 신용화의 열정에 불을 붙였나 보다. 그는 벌써부터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어, 김 팀장. 난데. 팀에서 똘똘한 애들 추려. 묻지 말고 일단 추려서 30분 안에 보고해. 어, 그래 진짜 중요한 일이니까. 최정예로 모아. 알겠어?”
* * *
닉스의 오픈마켓 시장 진출은 속전속결이었다.
먼저 닉스와 SG컴즈의 합작으로 닉스 재팬이 설립됐다.
관리자는 닉스 코리아와 SG컴즈 일본지사에서 차출하고 경력직 직원들은 현지에서 채용했다.
인재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트와일라잇으로 이름을 날린 SG컴즈와 닉스챗으로 유명한 닉스의 이름값 덕분에 경력직 지원자는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기틀이 잡히자 목적을 분명히 세웠다.
닉스에서 서비스하는 새로운 오픈마켓의 이름은 마켓N.
서비스 개시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린 12월20일로 잡았다
“지금부터 마켓N 프로젝트의 중간보고를 진행하겠습니다. 보고자는 닉스 재팬 운영팀의 배기태 팀장님이 맡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배기태가 벌떡 일어선다. 이런 자리에서 발표는 긴장될 법도 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는 상석에 앉은 나와 신용화를 한 번씩 쳐다보곤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닉스 재팬 운영팀의 배기태입니다. 지금부터 프로젝트 마켓N의 진척상황을 보고해드리겠습니다. 먼저 보고드릴 점은, 두 대표님이 가장 궁금해하실 프로젝트 완료 시일입니다.”
배기태는 손에 쥔 리모콘으로 벽면 프로젝터의 화면을 전환했다.
그곳에는 우리가 처음에 못 박았던 12월 20일 오픈이라는 글귀가 그대로 쓰여 있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마켓N의 서비스 개시는 12월 초부터도 가능합니다.”
화면의 글씨가 [12월 초 오픈!]으로 바뀌었다.
“인프라는 SG컴즈에서 트와일라잇을 서비스하며 깔아뒀던 걸 그대로 썼고, 플랫폼의 기본 틀은 한국의 10번가를 그대로 가져왔기에 가능한 결과입니다.”
회의가 시작했을 때부터 팔짱을 끼고 있던 신용화가 한마디를 툭 던진다.
“오픈마켓 서비스에서 중요한 건 그것들이 아닐 텐데요.”
“신 대표님은 어떤 부분이 궁금하신지요?”
“판매자가 있어야 소비자가 찾아오죠. 가판대에 물건도 안 올리고 홍보만 하면 뭐 하겠습니까?”
신용화의 호통에 배기태가 움찔거린다. 그의 얼굴에 자신감이 도망가고 당황이 찾아왔다.
녀석, 이런 건 여전하구나.
신용화의 업무 스타일은 좋게 말하면 꼼꼼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아랫사람을 쥐 잡듯 잡아서 완벽한 결과를 내는 타입이다.
실제로 이번 오픈마켓 프로젝트는 신용화가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한 탓인지, 작업 진척도가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덕분에 마켓N 팀원들은 매일 죽는소리를 해댔지만 말이다.
배기태는 급히 노트북을 조작해서 다른 화면을 불러왔다.
“입점 업체 정보는 여길 보시면 됩니다. 입점 공고를 내고 1주일 만에 12만 건의 입점 신청이 왔고, 그중 3만 건 정도는 처리를 끝낸 상태입니다.”
“벌써 12만 건이나 신청이 왔다고요?”
“그렇습니다.”
신용화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배기태는 설명을 이어갔다.
“마켓N은 닉스와 SG컴즈의 이름값 때문에 초기부터 주목도가 높았습니다. 그리고 사업자 전용 마켓N앱을 선공개하자 입점 신청이 배는 뛰었고요.”
“사업자 전용 앱?”
“예, 바로 이겁니다.”
프로젝터의 화면이 넘어가고, 시원스럽게 생긴 모바일 앱이 나타난다.
일명 [닉스N 사업자 케어] 앱이었다.
“사업자 케어 앱은 일일 판매부터 사용자의 피드백, 결제, 반품, 기타 상품 관리까지 한 곳에서 가능케 만들었습니다. 기존 오픈마켓이 사업자 고객의 니즈를 맞추지 못했다는 판단에…….”
“잠깐, 이건 누구 아이디어입니까?”
“강현우 대표님이십니다.”
신용화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왜 쳐다봅니까.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사업자 전용 앱을 만든다는 거. 내겐 왜 비밀로 한 거야?”
“비밀은 무슨. 사소한 것까지 계속 보고하면 일을 어찌합니까? 각자 맡은 바 임무만 잘하면 되는 거죠.”
녀석은 입을 삐죽거린다.
자기가 생각지 못한 걸 내가 만들었다니 분한가보다.
쯧쯧, 네가 날 따라오려면 한 번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할 거다.
분위기를 살피던 배기태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앞서 말씀드린 브랜드 파워와 사업자 케어도 한 몫을 차지했지만, 입점업체가 늘어난 결정적인 요인은 투명한 결제입니다. 기존 오픈마켓 업체들이 최대한 결제를 늦췄던 반면, 마켓N은 소비자가 수취 확인을 함과 동시에 대금이 지급되게 했습니다.”
또 신용화의 태클이 들어온다.
“그게 큰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 봐야 고작 한두 달일 텐데.”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흑자가 나더라도 대금 지급일이 늦어져서 부도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걸 못 버텨서 부도가 나다니.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어디서 한 설문조사예요?”
“그러니까…….”
쩔쩔매는 배기태를 구원하기 위해 내가 끼어들었다.
“그런 걸 설문조사를 해야 압니까? 척하면 딱 하고 아는 거지.”
“현우 네가 몰라서 그렇지 지급일을 딱 한 달만 늦게 줘도 거기서 들어오는 이자 수익이 어마어마해. 10번가도 그거 아니었으면 벌써 나자빠졌다고.”
누가 재벌가 놈 아니랄까 봐. 생각하는 게 딱 그쪽 마인드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고요. 신용화 씨가 어떤 물건을 파는데, 엄청나게 잘 팔렸어요. 속칭 대박이 난 거죠. 그런데 다음 달이 되니까 물건 매입할 돈이 없네요? 그럼 어떡하시겠어요.”
“당연히 돈을 빌려서라도 매입해야지. 대박이 났다며?”
“혹시 은행에서 돈 빌려 본 적 있어요?”
“내가 돈을 왜 빌려?”
신용화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날 쳐다본다. 어휴 이러니 평생 도련님 소리나 듣는 거지.
“오픈마켓 입점 업체의 9할은 영세업체입니다. 그들이 돈을 빌리러 은행에 가면. 아, 고객님 돈 보따리 여기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또 오세요. 이럴 거 같습니까?”
“아니면 어쩌는데?”
“영세업체. 특히, 전자상거래 업체엔 일반 은행들이 대출을 안 해주려 합니다. 툭하면 폐점하고 사라지니까요. 그러니 영세업체들은 이자가 높아도 제도권 밖에서 돈을 조달하곤 하죠.”
“제도권 밖이면…… 사채?”
“예, 그러니까 고작 한두 달 때문에 엄청난 이자를 부담해야 하니,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거죠.”
그제야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린다.
“확실히 서민 출신 대표니까 이런 건 빠삭하네.”
“이쯤은 상식입니다, 상식. 앞으로도 상위 1%를 위한 사업을 할 게 아니라면 제발 사회 공부 좀 하시죠?”
“이놈은 입만 열었다 하면 잔소리야.”
그 후로는 신용화의 딴지가 없었기에 순조로운 보고가 이뤄졌다.
발표자인 배기태는 우리가 회의실을 빠져나갈 때, 내게 큰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고놈의 스타일 좀 바꾸면 안 됩니까?”
“내 스타일이 왜?”
“직원들 쪼아 대는 거요. 그거 때문에 저한테 죽는 소리하러 오잖습니까.”
“누가 그래?”
여기서 이름을 댔다간 그 사람의 원망으로 명이 단축될 것이다.
내가 입을 꾹 다물자.
“너처럼 오냐오냐해서는 얕잡아 본다.”
“닉스에서 저를 얕잡아 보는 사람은 없는 거 같은데요.”
“그건 네가 일을 괴물처럼 해내니까 그런 거고. 나처럼 젊은 놈이 경영자랍시고 앉아있으면, 틈만 나면 기어오르려 든다고.”
“그럼 직원을 잡지 말고 본인의 능력을 키우시는 건 어떠신지?”
“쳇, 말은 쉽지.”
신용화는 이후에도 나를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결국은 참았던 말을 꺼낸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뭡니까?”
“이번 일본 오픈마켓 진출 말이다. 일본의 아마존 재팬을 노린 거라며.”
“일단은 그렇죠.”
신용화는 복도에 누가 있나 고개를 돌려 훑어본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리 둘러봅니까?”
“아니, 별 이야기는 아니고. 그러니까…… 네 최종 목표는 미국의 아마존이잖아. 그치?”
“예.”
“내 생각엔 이번에 일본 아마존을 우리가 꺾는다 해도, 미국 아마존이 반응할까 싶어서. 일본 시장과는 달리 미국은 아마존의 독주 체제잖아.”
“난 또 무슨 말이라고.”
내가 별거 아니라는 듯 대하자 신용화가 옆구리를 툭 찌른다.
“인마, 난 걱정돼서 하는 소리야.”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제가 어련히 알아서 안 할까요.”
“너,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하다간 한순간에 훅 간다. 내가 통신사 경영하면서 할 말은 아니다만, 독점을 뚫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어?”
나는 앞서서 걷다가 신용화를 홱 돌아본다.
“오히려 아마존이 미국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음? 독점인데 다행이라고?”
“그 때문에 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겼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