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14화 (114/206)

기적의 IT 재벌 114화

묵직한 은색 세단이 호텔을 빠져나온다.

세단의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나와 엘런은 한참 동안 벙어리처럼 차창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은 한참이나 더 이어졌다.

참다못한 엘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대표님.”

“예.”

내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하자 엘런의 목소리가 더 작아진다.

“죄송합니다. 모두 다 저 때문이에요.”

“……아닙니다.”

재깍 아니라는 말이 튀어나와야 했었는데 잠시지만 머뭇거리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 걸 엘런 탓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역겨운 내 속내에 자조적인 미소를 지어진다.

“엘런,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안일했어요.”

“하, 하지만…….”

버핏 회장의 대리인인 메이슨 파인즈의 최종 결정은 판단 보류였다.

승자도, 패자도 없던 결정이었지만, 승리를 확신하던 우리에겐 충격적인 결과였다.

사실 처음부터 답을 정해두고 미팅을 주선했을 것이다. 그러니 버핏 회장 대신 그의 대리인이 나왔겠지.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버핏 회장에게 손을 벌리지 말고 독자적으로 움직일 걸 그랬나?

아냐. 그건 있을 수 없어.

내가 아마존에 관심을 가지기 전부터 버크셔 헤서웨이는 아마존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포트폴리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마존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으면 당연히 그가 알아차렸을 터.

월가의 정보통인 그를 배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내 눈치를 보던 엘런이 슬쩍 말을 꺼낸다.

“버핏 회장이 왜 보류를 택했을까요?”

“엘런은 왜 그랬을 거 같아요?”

질문을 똑같이 돌려주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아마존과 우리 사이를 저울질하며 심판 행세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심판?”

“심판인 척만 하는 거죠. 그러다 더 많은 이득을 제시한 쪽 손을 들어주면 그만이니까요. 버핏 회장이 우리 쪽에서 바라는 건…… 아마 닉스의 지분이겠죠.”

버크셔 헤서웨이는 예전부터 노골적으로 닉스 지분을 노렸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추론이다.

“이번에 아마존 인수 자금을 주식으로 투자를 받으면 버크셔 헤서웨이의 닉스 지분이 어떻게 되죠?”

그녀는 이미 계산을 해뒀는지 즉시 답을 꺼냈다.

“이번 추가 획득분만 계산해도 30%가 넘어요. 합산하면 약 57% 남짓. 닉스A의 총 지분에서 과반을 훌쩍 넘는 수치예요.”

닉스A는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기에 과반이 넘어도 경영권은 일절 넘볼 수 없다.

다만, 주가를 버크셔 헤서웨이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에 우린 그들의 눈치를 계속 봐야만 했다.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지분 30%를 내놓으라고 하진 않을 겁니다. 우리가 그런 조건을 받을 리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뭘 노리고 이러는 걸까요?”

“제가 버핏 회장이었다면, 이번 같은 기회에 의결권이 있는 닉스B를 내놓으라고 할 겁니다.”

“아하! 닉스B는 비상장 주식이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을 테니, 이번에 최대한 확보할 생각이겠네요.”

“그렇겠죠.”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마존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 주식을 긁어모을 테고, 소문이 퍼지면 일반 투자자들까지 끼어들어 주가는 폭등에 폭등을 반복할 것이다.

위기감이 몰려오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건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불리한 싸움이야.

차라리 버크셔 헤서웨이를 찾아가서 담판을 지어버릴까?

아니, 그래 봐야 답은 안 나온다.

아마존 주가가 오를수록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부채는 많아지고 버핏 회장 손에 들어가는 닉스 주식은 많아진다.

가만있어도 버핏 회장에겐 이득인데 뭣 한다고 나와 담판을 지으려 들겠는가?

버핏 회장은 당분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어댈 공산이 크다.

상대의 다음 수가 뻔한 데 어쩔 방도가 없다니.

오랜만에 찾아오는 무력함에 입에서 쓴맛이 느껴진다.

내가 생각지 못한 묘안이 없을까?

한참 동안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는 와중에 엘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대표님. 꼭 아마존 지분을 인수해야 하는 건가요?”

“될 수 있으면 인수하고자 합니다.”

말은 될 수 있으면 이라고 했지만, 속내는 무조건, 꼭, 하늘이 두 쪽 나도 인수하고 팠다.

앞으로 몇 년 만 지나면 오프라인 상점이나 백화점은 줄줄이 문을 닫거나 규모를 축소하고, 그나마 버티는 월마트 같은 공룡들마저 인터넷 쇼핑에 뛰어들 게 된다.

그 결과, 아마존의 주가는 전 세계 시가 총액 1위인 애플을 제칠 수준까지 치솟는다.

그런 꿀단지를 알면서도 포기하라니. 내 것이 아님에도 억울함이 몰려온다.

“대표님, 인수를 포기 못 하겠다면 차라리 정공법으로 부딪혀 보는 건 어떨까요?”

“정공법이라면 뭘 말하는 거죠?”

“버크셔 헤서웨이를 제하고도 아마존 주식을 쥐고 있는 업체들, 그러니까 골드만 삭스나 블랙펄 캐피털. 그 외의 대주주들에게 접근해서 웃돈을 주고 지분을 넘겨받는 거죠.”

난 대뜸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이미 주가가 치솟았는데 웃돈까지 주면 출혈이 너무 큽니다.”

“그래도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에요. 지분 비율을 착실히 늘려나간다면 소액 주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경영권 정도는 빼 올 수 있을 거예요.”

“저기 엘런, 제가 필요한 건 경영권이 아니라 아마존이라는 기업 자체입니다.”

“한국 속담에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워왔어요?”

“사장님이 가르쳐 주셨어요.”

사장님이면, 누나?

최근 들어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내더니만 속담을 배워올 줄이야.

그녀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싱긋 웃는다.

“이제 좀 표정이 풀리셨네요.”

“흠흠,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하던 말이나 계속해 봐요.”

“간단히 말해서 목표를 너무 높게 잡지 말고, 경영진 교체를 최우선으로 공략하자는 거죠. 닉스가 아마존 지분 인수를 하는데 부정적인 현 경영진만 교체할 수 있다면 그 이후는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요.”

“확실히 그렇긴 한데.”

내가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하면 주가는 지금보다 더 뛴다. 그러니 이걸 버핏 회장이 예상했다면 당연히 주식을 미리 매입해뒀을 거고.

어? 잠깐.

순간 머릿속에 전구가 팟, 소리와 함께 켜지는 기분이 든다.

“엘런.”

“말씀하세요.”

“지금 아마존 주가 확인해줘요.”

“알겠습니다.”

미리 준비를 해뒀는지 순식간에 주가 정보가 내게 넘어온다.

현재 아마존의 주가는 233달러.

개장가보다 15% 이상 급등해 있었다.

“미팅을 마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죠.”

“음, 30분 정도 지났으려나요.”

“그런데 벌써 15%나 올랐다? 이거 좀 비정상적인 흐름 같은데요.”

주가가 급등한 타이밍이 공교롭게도 미팅을 시작하기 직전부터다.

마치, 미팅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난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구린내가 진동해서 코가 썩겠네요.”

“어쩌면 아마존 주식을 미리 매입하던 사람이 버핏 회장일지도…….”

물증만 없다뿐이지 심증으론 100%다.

버핏 회장은 의결권이 달린 닉스 지분을 노리는 것으로 모자라 아마존 주식으로 차익까지 먹을 생각이었구나.

나중에 닉스가 아마존 주식을 매수할 때가 되면, 선심을 쓰듯 시장가보다 20% 이상 프리미엄을 얹어서 넘겨버리겠지.

생각만으로도 뚜껑이 열리는 상황이다.

“후- 이대로라면 주가가 얼마나 오를 거 같아요?”

“여기 거래량 몰린 거 보세요. 이 정도면 기관은 물론이고 개미들까지 몽땅 몰려든 추세예요.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출렁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승장이 이어질 거 같네요.”

“엘런이 아마존 주식을 모으는 입장이라면 지금 가격으로도 계속 매수하겠다는 소리죠?”

“당연하죠. 우리가 아마존 인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주가는 지금보다 훨씬 뛸 게 뻔하니까요.”

“흠…….”

지금까지의 대화를 차곡차곡 정리해 나간다.

버핏 회장은 의도적으로 아마존 주가를 띄웠다.

그가 그린 그림대로 이제 와서 닉스가 따라가기엔 가랑이가 찢어질 게 뻔하니, 유일한 방법은 버핏 회장에게 손을 벌리는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그의 계획을 비틀어 버리면 어찌 되는 걸까?

* * *

[닉스, 아마존닷컴 경영권 기웃? 다윗은 골리앗을 넘어뜨릴 수 있을 것인가.]

[M&A 기대감으로 아마존 주가 역대 최고치 경신.]

[골드만 삭스 “당분간 아마존 주식 내다 팔 생각 없어.” 닉스, 아마존 지분 획득 또 실패.]

[닉스 CEO 대니얼 강 “닉스가 아마존과 협업할 수 있다면 모바일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 줄 수 있을 것.” 아마존 주주들 일제히 환영]

[특집! 아마존과 닉스의 협업으로 바라본 미래.]

닉스의 아마존 인수설을 시작으로 미국 증시는 롤러코스터처럼 등락을 반복했다.

인수설이 처음 흘러나왔을 때, 아마존과 닉스의 주가 온도 차는 극명하게 갈렸다.

아마존은 닉스와 협업의 기대감으로 장중 46%까지 주가가 치솟았지만, 반대로 닉스A는 M&A의 불확실성을 근거로 30달러 선까지 무너져 상장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많은 투자자의 관심은 뉴스의 홍수로 이어졌다.

양 사의 큰 이슈는 물론이고 아주 사소한 것까지 경제란을 차지할 정도였으니.

한 번은 아마존의 CEO가 닉스 서클을 쓰는 모습이 포착되자, M&A가 임박했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1시간 만에 주가가 20달러나 뛰어올랐다.

반면에 아마존의 대주주인 버크셔 헤서웨이와 골드만 삭스가, 최근 닉스의 행보에 부정적인 인터뷰를 하자 아마존의 시가총액이 한 방에 100억 달러나 증발하는 사건도 있었다.

하늘을 뚫은 기세로 치솟은 빌딩의 최상층.

입구부터 중세풍의 검과 방패를 틀어쥔, 갑옷이 전시돼 있고 바닥엔 최고급 양모로 만들어진 카펫이 깔려있다.

그런 사무실 소파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신문을 보는 노인은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인, 워렌 버핏이었다.

그는 오늘 조간신문의 경제면을 들춰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일주일 만에 주당 270달러라. 허허허, 이거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쉽구먼.”

옆에 홍차를 마시던 메이슨 파인즈가 바짝 상체를 숙이곤 말을 받는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메이슨, 우리가 아마존을 얼마에 매입했지?”

“저희가 아마존을 최초 매입할 때가 130달러 선이었으니, 벌써 2배 이상 오른 셈입니다.”

“이봐, 최초 매입가는 중요한 게 아니잖아. 최근까지 계속 매수세를 유지했으니 평단가가 얼마냐는 거야. 척하면 알아들어야지, 쯧쯧.”

버핏은 방금까지 콧노래를 불렀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인상을 써댔다.

그러나 파인즈는 그런 버핏의 행동이 익숙한지 눈 하나 깜짝 않고 리모컨을 조작한다.

잠시 후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초대형 LCD 패널이 번쩍하고 켜진다.

복잡한 그래프와 실시간 주가 정보.

다채로운 비교군까지 나열된 전문 트레이딩 화면이었다.

“표면상으로 버크셔 헤서웨이가 매입한 아마존 주식의 평단가는 153달러입니다.”

“음. 좋아 좋아.”

버핏이 고개를 끄덕이자, 파인즈가 리모콘을 다시 조작했다.

“이번은 비공식적인 루트로 모은 주식의 현황입니다. 어제 자로 총 12%를 매입했으며, 평단가는 235달러입니다.”

이번은 버핏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235달러? 생각했던 것보다 평단가가 높군.”

“종합 평단가는 192달러 수준입니다. 이슈가 터지기 전에는 거래량이 많지 않아서 매입하기 쉽지 않았고, 이슈가 터진 후에는 주가가 너무 빨리 튀는 바람에…….”

“뭐, 좋아. 평단가가 높다고 해도 거기에 웃돈까지 얹어서 사줄 꼬맹이가 있으니까.”

버핏이 끌끌 거리며 웃자, 눈치를 보던 파인즈가 질문을 던진다.

“계속 매수할까요?”

“지금은 주가가 너무 올랐지. 물건을 사고파는 인터넷 사이트 하나에 천억 달러라니. 쯧쯧, 어쩌다 세상이 이리됐는지.”

“그럼 이대로 홀드 하는 것으로…….”

파인즈가 말하는 도중 버핏이 말을 끊는다.

“아니, 이걸로 끝내긴 너무 아까워. 나중에 뉴스 하나 터뜨릴 테니 그때 싹 주워 담아서 평단가 200달러 선만 유지 시켜. 닉스와 다음 미팅 약속도 잡아서 분위기 적당히 조절하는 거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파인즈가 리모컨을 다시 집어 들려는 바로 그때.

버핏의 날카로운 고함이 들려온다.

“잠깐!”

“예?”

“지금 이거, 아마존 실시간 시세 맞지?”

“그렇습니다만…… 헛!”

깜짝 놀란 파인즈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주, 주가가 왜 갑자기?”

뒤늦게 자신의 안경을 찾아 쓴 버핏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다. 방금까지만 해도 지지부진하게 횡보하던 차트가 새빨갛게 변해 바닥에 처박히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건 단기적인 조정 정도를 넘어섰다.

마치, 쏟아지는 폭포수를 연상케 하는 차트였다.

“지금 놀라고 있을 때야? 빨리 전화 돌려서 상황 파악해!”

“아, 알겠습니다.”

파인즈가 허둥지둥 인터폰을 집어 들려는 데, 먼저 전화가 걸려온다.

“파인즈입니다. 예? 아니 잠깐만요. 그게 무슨…….”

버핏은 답답한 나머지 인터폰을 낚아챈다.

“무슨 일이야?”

-회, 회장님?

“무슨 일로 전화했냐고!”

회장의 윽박 소리에 인터폰 너머에서 기어들어 가는 소리가 넘어온다.

-그게 그러니까…… 닉스가 보유했던 아마존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전량 매도라니? 뭐 때문에?”

-닉스는 자체적으로 인터넷 쇼핑몰 개발에 착수한다고…….

이야기는 이어지지 못했다.

버핏이 인터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부셔 버렸으니 말이다.

“메이슨!”

“예, 회장님.”

“전용기 대기시켜. 지금 당장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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