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13화
이게 무슨 상황일까?
당연히 버핏 회장이 있을 거로 생각했던 미팅 장소에는 버핏 회장 대신 깡마른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반갑습니다. 버핏 회장님의 대리인인 메이슨 파인즈입니다.”
“아, 예. 대니얼 강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기에 맞잡긴 했다만 표정 관리가 안 된다.
버핏 회장을 상대로 칼을 갈고 나왔는데 정작 당사자가 불참해 버렸으니 맥이 빠진다고나 할까.
이번 건과 같은 빅딜은 당연히 그가 직접 나설 것으로 생각했는데. 당최 감을 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파인즈의 인사가 끝나자 이어서 옆에 앉은 사내가 다가온다.
“저는 아마존의 COO 올리버 루소입니다. 실리콘밸리의 메시아를 직접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헛!”
옆에서 놀란 엘런의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자신을 루소라고 소개했던 사내는 능글능글한 미소를 머금곤 엘런에게 다가갔다.
“닉스의 CFO께서도 같이 오셨군요. 실물이 더 아름다우십니다.”
“제가 닉스의 재무관리를 하는 건 맞지만 CFO는 아닙니다.”
“닉스의 CFO 자리는 공석이라 들었는데, 페이지 양이 차지하는 건 시간문제 아닐까요?”
“그, 글쎄요. 그건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서.”
난처하게 웃고 마는 엘런.
내겐 두 사람의 대화가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방금 아마존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버핏 회장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기 때문이다.
기업의 지분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지분을 보유한 개인이나 단체와 거래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거나, 기업 간 지분을 맞교환하는 우호적 M&A가 있고.
두 번째로는 당사자 몰래 지분을 늘리다 나중에 주식 공개 매수를 걸어서 자본의 힘으로 넘어트리는, 일명 적대적 M&A라는 방식이 있다.
일이 잘 풀리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당연히 전자가 좋다.
기존 경영진과의 마찰도 없을뿐더러 깔끔하게 기업의 소유권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게 그리 쉽게 되란 법은 없다. 기업에서 평화적인 방법을 거절하면 어쩔 수 없이 후자인 과격한 방법을 택해야만 했다.
그런데 아마존의 COO인 올리버 루소라는 자가 나와 버렸으니. 이 자리에서 후자의 적대적 M&A의 전략을 논하기엔 곤란해진 셈이다.
간단히 인사말이 오간 뒤 자리에 앉는다.
네 명이 앉은 테이블에는 잠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이번 자리를 주선한 버크셔 헤서웨이의 파인즈였다.
“먼저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버핏 회장님은 일정상의 문제로 불참하셨기에 제가 대리인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한 번씩 싹 훑더니 말을 잇는다.
“이번 미팅의 주제는 닉스의 아마존 지분 인수 건입니다. 본디 이 자리는 버크셔 헤서웨이와 닉스, 두 업체의 미팅이 예정돼 있었지만, 당사자인 아마존 측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서 올리버 루소 씨를 참석시켰습니다. 혹시 닉스 측에선 불편하신 건 아니시죠?”
불편하신 건 아니냐고? 지금 장난치나.
적진의 참모를 눈앞에 앉혀두고 무슨 회의가 되겠는가? 마음 같아선 명치에 스트레이트라도 한 방 꽂아주고 싶을 정도다.
물론 속내만 그렇다는 거지, 진짜 그럴 수는 없었기에 표정을 관리하며 말을 받았다.
“누가 참석해도 상관없습니다. 닉스는 이번 지분 인수 건에 자신 있으니까요.”
“좋습니다. 바로 안건을 진행하도록 하죠.”
파인즈는 나와 루소를 한 번씩 쳐다보곤 이야길 시작했다.
“닉스 측에서는 아마존닷컴의 지분 인수의 이유를 단순한 소유라고 밝혔습니다. 맞습니까, 대니얼 씨?”
“예, 그래서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좋습니다. 이에 대해 아마존의 입장을 한 번 들어보도록 하죠.”
모두의 시선이 아마존에서 나온 루소에게로 향했다.
그는 마른기침을 한 번 하고선 입을 연다.
“아마존은 닉스가 경영권에 관여하지 않는다 해도, 이번 제안에 응해줄 의향이 없습니다.”
“반대의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파인즈의 질문에 루소는 격양된 표정으로 말한다.
“닉스가 당장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차후 사업 영역이 겹치면 어찌 될 거 같습니까?”
“흠, 글쎄요.”
”분명 아마존의 경영진은 닉스의 눈치를 봐야 하기에 해당 분야 진출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존은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지분을 방어하는 포지션을 취할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군요. 버크셔 헤서웨이도 아마존 지분의 7.5%를 보유한 주주로서, 기업 가치에 손실 가능성이 있다면 이번 지분 인수 건을 반대할 것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도중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져 있었다.
순탄치 않을 거라 생각은 했다만, 이리 대놓고 반대할 줄이야.
“잠시만 제 말을 들어보시죠.”
파인즈와 루소의 시선이 내게 모인다.
난 준비해 온 말을 꺼내 들었다.
“닉스가 아마존 지분을 취득하는 건 단순히 보유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번에 인수될 지분은 양 사의 굳건한 협업을 위한 징검다리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협업이라면?”
“모바일 시장에서 굳건한 플랫폼을 구축한 닉스에 아마존 서비스를 결합할 수 있습니다.”
“메신저 서비스와 인터넷 쇼핑몰이라…… 듣기만 해서는 잘 상상이 안 되는데요.”
“그래서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내가 눈짓하자, 엘런이 미리 준비해온 서류를 테이블에 올린다.
서류는 닉스가 아마존과 연계하면 얻을 수 있는 미래의 비전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오호, 준비를 많이 하셨군요.”
“흠…….”
흥미롭다는 듯 서류를 훑는 파인즈와 여전히 삐딱한 자세의 루소.
사락거리는 서류 넘어가는 소리만이 실내에 울려 퍼진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꾹 다물어져 있던 파인즈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오! 닉스 챗 내에 아마존 서비스를 넣는다는 게 이런 뜻이었군요. 단순히 마켓 링크를 넘어선 상품 배송이나 기타 정보를 문자 메시지가 아닌, 닉스 챗에서 확인할 수 있을 테니. 확실히 아마존 서비스에는 득이 될 듯합니다.”
그의 말을 내가 받았다.
“그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아마존은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서 도서나 영화, 음악, 게임 같은 콘텐츠도 같이 팔고 있잖습니까? 그걸 닉스 플랫폼에서 연계할 수 있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닉스가 모바일 아마존의 중간 플랫폼이 되는 거군요.”
“양사가 협업하게 되면 주가는 지금보다 서너 배는 더 뛸 거라고 장담합니다.”
서너 배는 무슨. 10배다 10배.
향후 10배가 넘게 오를 아마존에 닉스의 모바일 생태계가 끼얹어지면 주가는 지붕을 뚫고 우주까지 날아오를지도 모른다.
그때, 인상을 쓰고 있던 루소가 치고 들어온다.
“잠깐만요. 아마존은 이미 독자적인 모바일 앱을 출시했습니다. 굳이 닉스가 아니라도 아마존만의 플랫폼을 꾸려 나갈 수 있단 말입니다.”
“루소 씨, 아마존의 모바일 앱이 언제 출시됐죠?”
내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답을 꺼내 든다.
“앞으로 2달만 지나면 출시 1년이 되겠군요.”
“그럼 설치율은 어떤가요? 아마존에서 출시한 앱이니 제법 많겠죠?”
“그러니까…… 한 20% 정도는 설치했을 겁니다.”
루소의 입에서 자신 없는 대답이 흘러나온다.
“20%? 확실한 데이터입니까?”
“그쯤 될 거 같다는 말이죠. 정확한 데이터는 없습니다.”
“저희에게는 데이터가 있을 거 같은데요. 엘런, 혹시 자료 조사해 둔 거 있습니까?”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서류 뭉치에서 한 장을 뽑아내 건넨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류를 보자 내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곳에는 20%와는 거리가 먼 데이터가 적혀 있었다.
“저번 달까지 아마존 모바일의 설치율은 4%군요.”
“4%? 말도 안 돼. 그게 어디서 나온 통계치입니까?”
“애플에 직접 요청해서 받은 전 세계 애플폰 설치 앱 통계입니다. 아직 안드로이드나 여타 OS용으론 앱이 출시조차 안 됐으니 전체 스마트폰으로 치면 그보다 더 낮겠죠.”
“아니, 미국 내 설치를 비교해야지 전 세계와 비교하면 어찌합니까?”
그 말을 들은 내 입가에 미소가 스친다.
“흐음, 아마존은 미국 시장에만 물건을 파나 보죠?”
“아니, 그렇다는 뜻은 아니죠. 사람 말을 그렇게 곡해해서 들으시면…….”
난 그의 말을 자르고 들어간다.
“전 세계 애플폰 4%에만 설치된 아마존 앱에 의존하는 것보다 전 세계 스마트폰 80%에 설치된 닉스챗이 중간 다리를 놔주는 게 성장 기대치가 높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죠. 여기에 반박하실 말씀 있습니까?”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루소는 습관적으로 마른기침을 해댔다.
그 후에도 이야기는 비슷하게 흘러갔다.
닉스에서 이러이러한 연유로 아마존과 협업하면 득이 된다고 설명하면 루소가 반박한다.
하지만 그의 논리는 종잇장처럼 얄팍할 수준이었다.
나중에는 엘런까지 가세해서 아마존의 재무 현황과 1% 남짓한 영업이익을 걸고넘어지며, 아마존의 주가가 고평가됐다고 후벼 파기 이르렀다.
그쯤 되자 루소는 코너에 몰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결국, 보다 못한 파인즈가 중재에 나섰다.
“양 측의 논리는 이만하면 된 거 같습니다.”
승자의 미소를 머금은 우리 쪽과 인상을 잔뜩 구긴 루소. 이건 누가 봐도 승패가 갈린 싸움이었다.
“아마존에서는 이번 이야기를 듣고도 지분 인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십니까?”
“방금 이야기를 들으셨잖습니까! 닉스는 아마존을 삼키려는 야욕이 있습니다. 그 증거는 방금 떠들어 댔던 이야기들입니다. 닉스 페이? 그딴 게 제대로 돌아 갈 거 같습니까?”
“그건 차후에 검증해보면 될 문제 아닙니까.”
루소는 날 뚫어버릴 기세로 노려보곤 말을 이었다.
“아무튼 아마존은 절대 반대입니다!”
칫, 그럼 그렇지.
아마존의 지분을 쥔 CEO대신, 임원인 올리버 루소가 나왔을 때부터 설득시킬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기업의 주인이 바뀌면 임원들부터 갈려 나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니 COO인 루소가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 하는 것이고 말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볼 포인트는 버크셔 헤서웨이 쪽이다. 그들이 자금만 투입해 준다면 아마존이 반대하든 어쩌든 물량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
곤란하다는 표정의 파인즈가 나를 쳐다본다.
“대니얼,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평화적으로 지분을 넘겨받긴 힘들 것 같습니다만.”
“평화가 없으면 전쟁을 해서라도 입성해야죠.”
난 선전포고를 하는 것처럼 루소를 한 번 쳐다보곤 말했다.
“닉스는 아마존 지분 20%를 공개적으로 매수할 예정입니다.”
“허, 20%나요?”
“그것도 최소로 잡은 겁니다. 저는 경영권이 목표가 아니라 아마존이라는 기업 자체를 소유하고 싶은 거니까요.”
파인즈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좋습니다, 계속 하시죠.”
“닉스에서 예상한 인수 비용은 약 230억 달러입니다. 그중 160억 달러는 아마존 주식을 담보로 잡은 담보부사채로 발행하겠습니다. 버크셔 헤서웨이에서 그 사채를 전량 매입해 주십시오.”
“잠깐! 제 말을 좀 들어 보시고…….”
즉각 루소가 반발하고 나섰으나, 파인즈가 손을 들어 그를 저지한다.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습니다. 이쯤에서 결과를 발표해야 할 거 같군요.”
모두의 시선이 파인즈의 입에 모인다.
지금까지 흐름상 닉스의 승리가 확연해보였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아마존에서 어떤 수를 썼으면 결과가 어찌 나올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입이 바짝 말라온다.
난 파인즈보다 루소의 표정을 먼저 관찰했다.
떪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
그것으로 승리를 확신했다.
“자, 그럼 버크셔 헤서웨이의 CEO인 워렌 버핏을 대신하여, 저 메이슨 파인즈가 최종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