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12화
카페 닉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지역 프랜차이즈 카페다.
판매 메뉴는 평범했다. 에스프레소에서 파생된 대중적인 커피류와 그에 어울리는 조각 케이크와 쿠키류가 전부다.
굳이 메뉴의 특이점을 찾자면 매일 한두 종류의 스페셜 티를 직원이 직접 드립으로 내려준다는 것 정도일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흔하디흔한 프랜차이즈 카페라 생각하겠지만, 이 흔한 카페는 어느새 미국 전역으로 지점을 늘려가고 있었다.
100호점은 LA 시가지에 들어섰고, 이어서 200호점은 라스베이거스 호텔 라운지에 입점했다.
지점이 늘어나는 속도는 눈덩이가 불어나는 것처럼 가속도가 붙었다.
서부에 집중됐던 지점이 보스턴에도 들어서면서 점차 세를 넓혔고,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카페 닉스가 들어서면서 상징적인 의미도 확보했다.
그리고 내일.
카페 닉스의 500호점이 닉스 빌딩 맞은편에 개장할 예정이다.
“벌써 500호점이라니 감회가 새롭네요. 100호점 파티 갔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말이죠.”
엘런의 재잘거림에 내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의 경영 능력은 가족력인가 봐요. 사장님도 이렇게 경영을 잘하시는 거 보면요.”
사장님은 누나를 지칭하는 말이다.
“카페 하나로 그런 평가는 너무 후한 거 아닐까요?”
“에이, 카페 하나라뇨. 1년 만에 점포가 500개나 늘어났는데요. 거기다 전부 직영점이라던데요.”
카페 닉스는 100% 직영점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가맹점주 시스템이 세를 불리긴 좋지만, 운영적인 퀼리티 유지 면에서는 직영점이 최고였으니 말이다.
엘런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매장 입구를 둘러본다.
입구에 설치된 강화유리 도어 사이에 대형 스크린이 삽입된 형태라 끊임없이 카페 닉스의 영상이 흘러나온다.
그 때문에 첫인상부터 일반 카페와는 느낌이 달라 보인다.
문을 찬찬히 관찰하던 엘런이 날 돌아본다.
“대표님, 이거 은근히 비싸 보이네요.”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비싸요.”
“얼마길래요?”
내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자.
“5000달러면 예상보다 살짝 비싼 정도네요. 분위기가 확 사는데 사무실에도 하나 달아두죠.”
“0이 하나 부족합니다. 문짝 하나에만 5만 달러예요.”
“컥! 문짝 하나에요? 부서지면 어쩌려고요.”
“보험을 들었든지 했겠죠.”
난 카페 닉스 운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이미 잘 굴러가는 사업에 뭣 하러 훈수를 두겠는가?
입구에 한 발을 내딛자, 값비싼 문이 스르르 열린다.
“반갑습니다, 카페 닉스입니다.”
“카페 닉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직 정식 오픈 전이었음에도 직원들이 인사를 해온다.
이제 매장에 첫발을 디뎠음에도 직원 교육이 철저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것이 누나가 밀고 있는 백화점식 고객 응대.
커피 추천부터 시작해서 프로모션 홍보, 주문, 결제까지. 카페치곤 황송할 정도의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것도 귀여운 닉스의 마스코트를 코스프레한 직원들에게 말이다.
물론 응대는 딱 거기까지다.
음료가 나간 뒤는 오직 개인만의 시간을 보장했기에 직원을 따로 호출하지 않는 이상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매장 뒤따라 들어온 엘런이 눈을 빛낸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직원들 유니폼이 너무 귀여워요. 저기 움직이는 토끼 귀랑 고양이 수염 페인팅은 저도 해보고 싶을 정도예요.”
“빌려서 회사에서 입고 다니지 그래요. 엘런이 하고 다니면 인기폭발일걸요.”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엘런은 저 옷을 입고 사무실에 돌아다니는 상상 했는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진다.
“오, 오늘 사장님은 안 계시는가 보네요. 내일이 오픈이라 계실 줄 알았는데요.”
급히 화제를 돌리는 그녀.
“누나는 아마 한국에 갔을 겁니다.”
“한국요?”
“거기도 진출할 거래요.”
“드디어 카페 닉스가 해외에도 진출하는 거군요. 아니지. 사장님이나 대표님 입장에선 국내가 맞는 표현이죠?”
잡담을 나누는 도중 호주머니에서 띠링-! 하는 메시지 소리가 들려온다.
휴대폰엔 닉스 챗 메시지가 하나 도착해 있다.
[강현우 님, 카페 닉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닉스 비콘 서비스를 사용하시면 다채로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GPS와 연동하는 위치기반 서비스인 닉스 비콘.
카페에 들어가면 진행 중인 프로모션과 주문 예약 서비스는 물론이고 결제까지 한 방에 끝낼 수 있다.
그 때문에 응대받는 걸 즐기는 손님은 카운터로, 그와 반대로 대화를 피하는 손님은 비콘 서비스로 간단히 음료만 받는 환경이 정착됐다.
직원들은 모바일 결제 덕분에 일손이 줄어드니 여유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고객 응대도 더 좋아진다고 한다.
나 같으면 직원을 덜 고용하겠지만, 누나는 직원 수가 줄면 응대에 질이 떨어져서 안 된단다.
최근 들어 다른 프랜차이즈인 버거킹이나 맥도널드, 던킨도넛 같은 곳에도 닉스 비콘 서비스에 러브콜을 보내왔다.
닉스 비콘에 대한 반응은 솔직히 의외다.
세월이 흘러 스마트폰 서비스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이 무언가 알림이 뜨는 걸 꺼리게 됐고, 자연스럽게 잊히는 콘텐츠라 신경을 끄고 있었는데. 이런 열렬한 반응이 나올 줄이야.
아직 스마트폰 초창기라서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탓일까?
커피를 주문한 우리는 2층으로 향했다.
그곳엔 모바일 결제서비스를 개발 중인 닉스 페이 개발팀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날 보자 어정쩡하게 자리서 일어서는 직원들. 동시에 엘런이 나를 째려본다.
“우리, 그냥 커피 마시러 나온 거 아니었어요?”
“커피도 마시고, 겸사겸사 일도 같이하는 거죠.”
엘런은 속았다는 불만의 표시로 볼을 부풀려 보인다.
난 그녀를 뒤로하고 직원들이 기다리는 테이블로 향했다.
아직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들이었기에 날 대하는 걸 낯설어하는 게 티가 날 정도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팀장인 피터가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반가워요, 피터.”
팀원들은 피터가 앉자, 그제야 자리에 앉는다.
어찌 하나같이 잔뜩 긴장된 표정이다.
이럴 땐 내가 농담 따먹기를 해봐야 소용없다. 그럼 분위기가 더 얼어붙거든.
난 거두절미하고 바로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전해 듣기론, 일부러 카페 개장 전에 브리핑 일정을 잡았다고 하던데. 맞나요?”
“맞습니다.”
“어떤 걸 보여주려고 날 불러냈는지 기대됩니다.”
피터는 대답 대신 씩 웃어댄다. 저건 자신 있다는 미소였다.
“좋습니다. 한 번 해보시죠.”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브리핑이 시작됐다.
그는 서류도 없이 닉스 페이 프로젝트에서 만든 결과물을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 나간다.
브리핑은 자세했지만 늘어지지 않았고, 내가 필요한 부분이 뭔지를 말하지 않아도 콕 집어서 설명해 준다.
“오프라인 결제는 시연회를 준비했습니다.”
“오호, 그래서 카페에서 보고하겠다고 했군요.”
“그렇습니다.”
우린 우르르 1층으로 몰려가 계산대 앞에 섰다.
긴장된 표정의 직원 두 명이 앞으로 나와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직원들이 단계적으로 시연에 들어가면 피터의 부연설명이 이어진다.
스마트폰으로 닉스 페이 앱을 실행시킨다.
자동으로 카메라가 켜지고 QR코드를 스캔한다.
계산대에서 가격을 입력한다.
스마트폰에 결제 금액과 계좌 정보가 뜬다.
비밀번호 6자리 입력.
완료.
첫 시연에서는 내게 설명을 하느라고 천천히 진행했지만 이어서 진행한 실전 테스트에서는 순식간에 모든 과정이 끝났다.
그 속도는 신용카드 결제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새로운 결제 시스템을 옆에서 지켜보던 엘런이나 카페 직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궁금증을 못 참겠던지 결국 엘런이 질문을 던졌다.
“이걸로 결제가 끝난 거예요?”
“예, 완전히 끝난 겁니다. 일반 신용카드 결제처럼요.”
그녀는 피터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계산대를 이리저리 쳐다본다.
“결제에 필요한 장치가 따로 있는 거죠?”
피터는 고개를 가로젓고 QR코드 샘플을 꺼내 든다.
“통신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대신하기 때문에 다른 기기가 필요 없습니다. 오직 QR코드를 비치하는 것으로 준비는 끝이죠. 그러니 전기가 없는 노점상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요.”
“와우! 닉스 페이만 활성화되면 지갑을 안 들고 다녀도 상관없겠네요?”
“장기적으로 봤을 땐 그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피터는 다른 질문을 기다린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브리핑 과정이 너무 깔끔해서 내가 딴지를 걸고 싶어도 그럴 만한 여지가 없을 정도다.
발표 실력이면 발표 실력, 결과물이면 결과물.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만점짜리 브리핑이었다.
피터는 브릭이 직접 추천했던 인재였지?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브릭이 사람 보는 눈 하나는 탁월한 거 같다.
“좋습니다. 닉스 페이 팀이 열심히 했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의 결과물이네요.”
피터는 칭찬에 긴장이 풀렸는지 짧은 숨을 토해낸다. 난 잠시 기다려줬다가 말을 이었다.
“닉스 페이는 언제부터 실전 투입이 가능한 겁니까?”
“기술적으로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당장 사용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단지 특허 건이 좀 걸립니다만.”
“특허라면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아마존 원클릭 시스템입니다.”
“아…….”
아마존 원클릭 시스템이란 미리 정보를 다 입력하고 클릭 한 번으로 결제가 마무리되는 시스템이다.
말 그대로 클릭 한 번이면 결제와 배송요청까지 끝나버리기에 충동구매가 미덕인 온라인 쇼핑에는 킬러 시스템 중 하나였다.
“저희가 다른 방향으로 우회해서 구현은 해놨습니다만, 아마존 측에서 걸고넘어지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계속 밀어붙일까요?”
모든 결제 정보가 저장된 닉스 페이 특성상, 비밀번호 없이도 한 방에 결제한다는 원클릭 결제 서비스를 포기하긴 아쉬웠다.
“일단 원클릭 결제 부분은 대기해 보세요. 이건 제가 수를 쓰든지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난 시선을 돌려 엘런에로 향했다.
“엘런, 드디어 우리 쪽 준비가 끝난 거 같네요.”
“일정 잡을까요?”
“예, 바로 진행해주세요.”
* * *
버크셔 헤서웨이가 아마존 인수 건으로 미팅을 요청해 온 건 지난달 말쯤이었다.
당사자인 우리 측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는데 먼저 미팅을 요청해 온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상대측에서 아마존 인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시그널이겠지만…… 어딘지 찜찜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지난 IPO 때 버핏 회장의 반응이었다.
그때 버핏 회장의 떨떠름했던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서 생생할 정도다.
닉스가 성장하면 지분이 많은 버핏 회장에겐 득이 될 텐데, 대체 그때의 애매한 표정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 때문에 닉스는 버크셔 헤서웨이의 미팅 요청을 즉각 응하지 않고, 닉스 페이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 * *
나와 엘런은 약속 장소인 브릿지 시티 호텔에 1시간 일찍 도착했다.
호텔 라운지에서 각자 커피를 하나 씩 집어 들고 선 최종 작전 타임에 들어갔다.
“대표님, 버핏 회장이 어떻게 나올까요?”
“글쎄요. 갈피를 잡기 힘든 스타일이라.”
“또 엄청난 조건을 내걸어서 우릴 곤란하게 만들면 어쩌죠?”
“그런 짓을 못하게 하려고 닉스 페이 완성을 기다린 거 잖습니까.”
난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아마존 지분 비율을 다시 한번 불러주세요.”
엘런은 즉각 서류를 펼친다.
“아마존의 CEO인 제프 베조스가 19.5%. 그 뒤로 골드만 삭스가 7.5%, 버크셔 헤서웨이가 7.5%, 블랙펄 캐피털이 6.2%. 마지막으로 저희가 2.8%를 매입했습니다.”
“음? 베조스 주식이 예전보다 줄어든 거 같네요.”
“예, 최근 지분 변동이 좀 있었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16.7%만 더 확보하면 최대 주주에 오르게 됩니다.”
우리로썬 호재일까? 악재일까?
예전 계획처럼 CEO인 베조스의 주식을 끌어오는 게 힘들어졌으니 악재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주식을 끌어 올 수 있다면 호재가 된다.
“어, 그리고…….”
엘런이 고민하다가 말을 잇는다.
“우리 말고도 아마존 주식을 매입하는 곳이 있는 거 같습니다.”
“버핏 회장 쪽입니까?”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그 때문에 최근 아마존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어요.”
상황이 안 좋아질수록 버크셔 헤서웨이가 보유한 7.5%의 주식이 탐난다.
꼭 그들의 주식이 아니더라도 버핏 회장이 중간에서 중재만 잘해준다면 주식 교환으로 쉽게 아마존에 입성할 수 있으리라.
난 끓어오르는 흥분감에 손을 쥐락펴락 했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메신저와 결합 된 핀테크 서비스의 파괴력은 코흘리개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을 터.
이거라면 버핏 회장의 속내가 어떻든 간에 아마존 인수를 도울 수밖에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