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11화 (111/206)

기적의 IT 재벌 111화

작년 말쯤, 닉스OS팀은 노키아의 엘다OS의 기술이전을 위해 핀란드로 떠났다.

그들의 목표는 엘다OS를 베이스로 만들어내는 닉스의 독자적인 모바일OS였다.

닉스OS팀은 애플OS와 안드로이드OS를 잡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핀란드로 떠났지만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엘다OS는 개발진의 잦은 변경으로 베이스 코딩부터 누더기처럼 엉망이었고, 응용프로그램을 구동하고자 하면 방대한 에러 코드를 뿜어댔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고나 할까.

엘다OS에 한 달여를 매달렸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대로는 시간만 허비할 게 뻔한 상황.

결국, 닉스OS팀은 엘다OS를 뿌리부터 갈아엎는 방식으로 재설계에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를 인식하고, 그걸 개선해 나가는 과정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흔히 겪는 일이니까.

진짜 문제는 스마트폰의 성장세로 위기를 느낀 노키아 경영진이 신제품 조기 출시라는 강수를 두면서 시작됐다.

노키아는 본디 7월 말에 출시될 엘다OS 탑재폰을 4월로 앞당긴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닉스OS팀으로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개발 일정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닉스OS가 탑재된 노키아NN6699, 역대 최악의 스마트폰으로 선정.]

[노키아NN6699, 옴레아2와 함께 컨슈머리포트의 최하점 기록.]

[노키아의 짐 캐럿 부사장 “차기작은 심비안OS를 다듬어서 나올 것.” 사실상 NN6699의 실패를 인정한 셈.]

[NN6699 환불 요청 쇄도.]

[일부 인터넷 판매점 노키아NN6699 판매 중지.]

준비되지 않은 모험은 재앙으로 돌아왔다.

부족한 개발 일정으로 최적화가 엉망인 닉스OS와 한 세대 뒤처진 하드웨어. 거기에 허접스러운 마감까지.

노키아NN6699는 닉스의 이름을 달고 나온 제품 중, 처음으로 완벽하게 망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 당시 닉스OS팀을 이끌던 유정석 팀장과 팀원들은 실패를 책임을 지겠다고 전원 사표를 제출해 왔다.

당연히 사표는 반려했다.

대신 그들에게 근신이라는 명목으로 1개월간 휴가를 줬고, 닉스OS팀은 지금도 새로운 모바일OS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유수아와는 그 사건 이후로 단 한 번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 * *

“현우 씨, 오랜만이에요.”

“수, 수아 씨?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오직 이 세상에 나와 그녀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순간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참 오랜만이네. 그녀는 여전히 예쁘구나. 그런데 그녀가 왜 여기에 있지?

아…… IT에 관심이 많으니 WWDC를 보러 왔겠구나.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난 게 4월쯤이었으니 대략 5개월 만의 만남인가?

내 눈을 마주친 유수아가 황급히 시선을 내리깐다.

찰나의 마주침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선 복잡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하지?

잘 지냈어요? 뭐 하고 지내세요? 이건 너무 상투적이잖아. 그렇다면…… 왜 연락 피한 거예요? 무슨 일 있었어요?

젠장, 이런 말을 하고픈 게 아닌데.

영겁처럼 이어지던 공간에서 우릴 끄집어내 준 건 신용화였다.

“어이, 두 사람. 재회한 것도 좋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 * *

전용 통로로 들어가는 데 인식표는 필요 없었다. 스탭들이 내 얼굴만 보고도 길을 터 줬으니까.

텅 빈 행사장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우린 한마디의 대화도 없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먼저 말을 튼 건, 이번에도 신용화였다.

“수아야, 뭐 해? 계속 묵언 수행만 이어 갈 거야?”

“아, 그게…….”

유수아는 어쩌지도 못하고 입만 우물거렸다.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신용화는 가슴을 두드려댄다.

“평소에 똑똑한 척은 다 하던 것들이 이런 데는 어찌 이리 맹탕일꼬.”

그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현우, 너도 사내 새끼가 돼서 뭐 이리 꽁하게 있어?”

“그게 무슨 말이신지…….”

신용화는 내가 쥐고 있던 인식표를 빼앗아 들더니.

“무슨 말이긴 무슨 말이야. 수아가 왜 여기까지 왔겠어? 이 답답한 자식아. 으휴, 난 빠질 테니까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결해라”

신용화는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고는 저만치 걸어가 버린다.

드넓은 행사장은 텅 비어 있고 나와 유수아만 남았다.

그녀는 결심을 굳힌 표정으로 내 앞에 선다.

“현우 씨, 미안해요.”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녀가 눈물이 쏟아내기 직전이라는 건 알겠다.

그래서인지 머릿속으로 준비했던 많은 말을 뒤로하고 이 한마디가 먼저 나온다.

“괜찮아요.”

“저 정말 바보 같죠? 멋대로 사라졌다가 멋대로 나타나고.”

“정말 괜찮아요. 계속 기다렸으니까.”

“아, 아아…….”

넘치기 직전인 눈물샘에서 결국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눈물을 손으로 막아보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양이었다.

한참이나 훌쩍이던 그녀는 간신히 입을 연다.

“제가 망쳐 버린 프로젝트요.”

역시 그거였나.

그녀는 닉스OS의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마다 실패를 털어내는 방식은 다르다.

다음번은 성공할 수 있다고 오뚝이처럼 곧장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자신을 자학하며 껍질 안으로 숨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수아 씨가 망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뇨, 저 때문에 완전히 망했어요. 노키아에서 조기 출시한다고 했을 때.”

그때 일을 떠올린 것만으로 울컥하는지 그녀는 잠시 숨을 집어삼키곤 말을 잇는다.

“일정을 맞출 수 있다고 팀원들을 부추긴 게 저예요. 누가 봐도 무리한 일이었는 데 말이죠. 그 멍청한 선택 때문에 닉스는 세계의 조롱거리가 돼 버렸어요. 현우 씨가 그렇게 믿어 줬는데…….”

“흠, 그거 너무 오만한 생각 아닐까요?”

갑자기 오만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녀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날 바라본다.

퉁퉁 부은 눈이 커다랗게 떠진 모습이 퍽 웃긴다. 마치, 도토리를 놓친 다람쥐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왜 오만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모르겠어요? 닉스OS의 경쟁 상대는 애플의 애플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OS였어요. 그들을 6개월 만에 KO 시킬 생각을 하다니. 그게 오만이 아니면 뭐예요.”

“하,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자 그녀가 쩔쩔맨다. 이게 아닌데 싶은 표정이다.

난 그녀를 앞질러 먼저 걸어가며 말을 잇는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지고 오면 뭐라고 해주는 줄 아세요?”

“예?”

“졌지만 잘 싸웠다. 가능성이 보이는 패배였다. 아쉬운 석패다. 저도 닉스OS의 실패를 딱 이 정도로 평가하고 싶군요. 상대가 너무 강한데 어쩌겠어요? 다음에는 더 칼을 갈고 나가는 수밖에 없죠. 그러니 그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생각 안 해요. 아시겠어요?”

그녀의 눈망울엔 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미안해요. 말도 없이 사라져서.”

“마음의 정리는 끝났어요?”

“정리는 예전에 끝냈는데 다시 돌아올 염치가 없어서 못 오고 있었어요. 저 진짜 바보 맞는 거 같아요. 이럴 거면 왜 도망쳤는지 참…….”

난 대답 대신 두 팔을 활짝 폈다.

유수아는 기다렸다는 듯 품에 안겨 왔다. 그러곤 남았던 눈물을 모두 흘려보낼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다시 울어대기 시작했다.

* * *

입장이 시작됐다.

기자들과 VIP들이 먼저 입장했고 그다음이 일반 관람객들 차례였다.

나는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객석에 앉아 행사 시작을 기다렸다.

어느새 사라졌었던 신용화도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이야기는 잘 끝났나 보네.”

“그런 셈이죠.”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그가 툭 치며 말했다.

“강현우, 잘해라.”

“뭘요?”

“수아 울리지 말라고.”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신용화 씨는 수아 씨와 무슨 관계입니까? 소꿉친구? 아니면 TV 드라마 같은 데서 나오는 가문의 약혼자 같은 건가요?”

“약혼자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그럼요?”

그는 흠흠 하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동생이야. 친동생.”

“두 사람은 성이 다르잖습니까.”

“우리 집안이 콩가루라서 그런 거니까. 더는 묻지 마라.”

그의 꾹 다물어진 입을 보니 묻는다고 가르쳐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지랖 부리는 취미는 없었기에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잠시 후, 화장실에 간다던 유수아가 돌아왔다.

눈물 자국은 다 사라졌지만 부은 눈은 그대로였다.

신용화가 그걸 콕 집어서 놀려대자 유수아가 사정없이 꼬집어 대는 것으로 응수한다.

저런 걸 보면 영락없이 오빠 동생 사이가 맞는 거 같다.

[잠시 후 WWDC를 시작하겠습니다.]

갑자기 흘러나온 목소리와 함께 행사장 조명이 꺼진다.

객석에선 잠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지만, 이내 고요한 숨소리까지 사라진다.

[반갑습니다. 애플의 CEO 스티븐 잡스입니다.]

스티븐 잡스의 등장과 함께 무대 뒤편의 대형화면이 켜진다.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애플의 새로운 스마트폰, 애플폰4S.]

터져 나오는 환호와 함께, 2010년 WWDC가 시작됐다.

열광적인 반응에 잡스는 말을 아끼고 바로 신형 애플폰을 꺼내 든다.

등장한 스마트폰은 애플폰4S.

기존의 애플폰4와 같은 디자인이었지만 같이 표시된 스펙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 빨리진 모바일AP.

더 길어진 배터리 타임.

더 쨍해진 디스플레이.

더 커진 내장 스토리지.

더 정밀해진 카메라 센서.

그리고 세상에 없던 음성 비서.

객석에서 흥분한 관객들이 호들갑을 떨어댄다.

사실 뭐가 바뀌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새로운 애플폰. 그것만으로도 그들을 열광시키기엔 충분했으니 말이다.

* * *

핀란드에서 근무하던 닉스OS팀 전원이 철수했다.

철수의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엘다OS를 베이스로 새로운 모바일OS를 만드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바일OS 사업을 접는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할까.

핀란드에서 귀환한 닉스OS팀 전원은 샌프란시스코 닉스 빌딩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들이 서울의 닉스 코리아가 아니라 샌프란시스코로 근거지를 정한 건, 모바일OS 방면의 인재 수급이 필요해서였다.

기존의 KG전자 출신의 멤버는 우수했지만 모바일OS를 개발한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부족한 경험을 미국에서 수혈하고자 했다.

인재를 모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세가 한풀 꺾인 블랙베리OS와 팜OS 개발자들은 물론이고 애플과 구글의 개발자까지 닉스에 문을 두드렸다.

과거, 닉스 챗만 돌리던 닉스였다면 메이저 업체에서 인력을 빼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겠지만, 지금의 닉스는 달랐다.

성공적인 뉴욕 증시 상장과 더불어 볼보까지 깔끔하게 흡수했으며, CEO의 위상도 예전과는 천지 차이였으니까.

“닉스OS팀의 구성은 거의 마무리 단계예요. 이제 새로운 OS의 방향을 잡고, 전력으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거죠.”

유수아가 뾰족한 뿔테 안경을 매만진다.

다시 일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번 모바일OS는 엘다OS에서 배운 교훈을 반면 교재 삼아, 기초공사부터 착실히 해나갈 생각이에요. 리눅스 커널을 사용하는 완벽한 모바일OS를 만드는 게 목표죠.”

“수아 씨, 처음부터 너무 힘을 주는 거 아니에요? 차라리 빠르게 프로토 타입을 만들고 고쳐 나가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요.”

“완성도와 개발 속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거예요.”

“그게 가능해요?”

“새로 합류한 개발진과 합이 잘 맞아요. 그들은 능력도 출중하고 의욕도 넘치죠.”

“다행이네요.”

“그리고 저희에겐 엘다OS를 만든 경험과 실패라는 값진 데이터도 있잖아요. 이번은 꼭 성공할 테니 기대하세요.”

그녀는 굳은 의지가 묻어나는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어 보인다.

“다음으로 보고 드릴 부분은…….”

그때 대표실에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세요.”

삐죽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한껏 멋을 부린 여인이 들어온다.

재무 책임자인 엘런 페이지였다.

“대표님, 드디어 연락이 왔습니다.”

테이블에서 먼저 보고를 하고 있던 유수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는 표정을 평상시의 그것으로 바꾸고 돌아본다.

“페이지, 미안하지만 지금은 제가 대표님께 보고하고 있어서요. 나중에 다시 오시면 안 될까요?”

“그러기엔 너무 급한 볼일이네요. 실례할게요.”

내게 다가서려는 엘런을 유수아가 손을 들어 막는다.

두 여인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무슨 볼일이 그리 급한 걸까요.”

“아주아주 중요한 연락이에요.”

“그러니까 무슨 연락인데 중요하냐니까요.”

“또 엎어질지도 모르는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것보단 중요한 내용이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 둘의 분위기는 항상 이런 식이다. 만나기만 하면 그르렁대는 개와 고양이라고나 할까?

이대로 두면 또 한 차례 폭풍이 몰아치겠지.

이럴 때일수록 내가 단호하게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

“수아 씨.”

“예, 현우 씨.”

“엘런은 재무를 총괄해요. 그녀가 직급상 수아 씨보다 윗사람이니 사내에서는 그러시면 안 됩니다.”

유수아의 표정이 싹 굳는다.

얼핏 보면 무표정 같지만 저건 분명 화가 났다는 신호다. 난 거기에 한마디를 툭 끼얹었다.

“회사 밖에선 수아 씨가 특별한 존재지만 사내에서도 그런 대접을 바라는 건 아니겠죠?”

특별한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유수아는 순순히 엘런에게 고개를 숙였다.

“페이지, 제 생각이 짧았어요. 다음부터는 주의할게요.”

“……알겠습니다.”

어째선지 사과를 받은 엘런의 표정이 더 처져 있다.

난 옅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엘런, 무슨 일입니까? 연락이 오다니요?”

“아.”

주제가 일 이야기로 넘어가자 미묘하던 분위기가 재깍 제자리로 돌아온다.

“버크셔 헤서웨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버핏 회장이 일전의 그 건으로 대면을 요청하더군요.”

“그 건이라면?”

“예, 맞습니다. 아마존 인수 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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