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07화
거대한 그라인더가 굉음과 함께 불꽃을 토해낸다.
오피스텔의 입구는 철판을 겹겹이 덧대고 용접해 버렸기에 잘라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정 두 명이 그라인더를 들고 낑낑거렸지만, 효과는 신통찮다.
“옘병, 입구를 왜 철판으로 막아 놨대.”
작업자들은 욕을 하면서도 그라인더를 철판에 밀어붙인다.
비명을 지르는 듯한 쇳소리와 함께 그라인더가 조금씩 전진해간다.
“제발 좀 잘려라!”
이를 악물고 밀어붙이는 도중, 으득거리는 소리가 난다.
“얼래?”
고속으로 돌아가던 그라인더가 멈췄다.
그라인더 날의 이가 나간 것이다.
“제기랄, 뭐 때문에 건물 입구를 이딴 식으로 막아두는 거냐고.”
“들어가는 다른 길은 없던가요?”
“다른 길이 있었으면 내가 입구서 이 지랄을 하고 있겠어? 창문이고 뭐고 쥐새끼 하나 못 들어가게 막혀 있어. 썅, 철판 상태 보니 새거나 마찬가지던데 이걸 왜 다시 뚫으려는 거야?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 작업자들.
“여길 막으라고 지시한 사람입니다.”
“뭐? 어, 어흠. 죄송하게 됐수다.”
건성으로 고개를 숙인 작업자가 몸을 일으켜 그라인더를 집어 든다.
“작업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반나절은 더 걸릴 거 같수다. 보다시피 철판이 너무 두꺼운 데다 세 겹으로 덧대놨으니 말이요.”
“입구를 완전히 뚫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 하나 기어서 드나들 개구멍 정도만 뚫어 주십시오.”
“그럼 더 쉽지.”
작업자는 능숙하게 칼날을 갈고 작업을 재개한다.
시끄러운 쇠 깎는 소리가 다시 익숙해질 때쯤, 건물을 돌아보던 류샤오후가 돌아왔다.
“대표님, 다녀왔습니다.”
“좀 어떻던가요?”
“외부에서 드나든 흔적은 없습니다. 혹시 싶어서 환풍구나 지하 오수관 쪽도 확인했지만, 이상은 없었습니다.”
이 오피스텔은 처음부터 연구용으로 쓰려고 매입한 곳이다.
그렇기에 불필요한 통로는 처음부터 콘크리트로 막아버렸고 몇 없는 창문도 강판으로 덧대놨다.
그 말은 즉, 주 출입구만 막혀 있으면 내부는 완벽한 밀실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아무도 출입할 수 없는 곳에서 어떻게 메시지가 날아온 걸까?
가장 유력한 가설은 unknown이 내 오피스텔을 경유지로 거쳤을 가능성이다.
이미 닉스 본사와 러시아, 북한까지 경유지로 쓴 녀석이니 그쯤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으리라.
하지만…… 아까부터 머리로는 부정하면서도 혹시 하는, 그런 미묘한 생각들이 떠나질 않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입구를 봉하고 있던 철판이 넘어졌다.
완벽한 개방은 아니었지만 가로세로 1미터가량의 공간은 사람이 드나들기에 충분해 보였다.
류사오후가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갔고 내가 뒤를 따른다.
내부는 창문까지 꽉 막힌 탓인지 후덥지근한 열기가 안을 감싸고 있었다.
우리는 간이 연구실로 쓰던 2층으로 올라섰다.
현관의 잠금장치를 살펴보던 샤오후가 말했다.
“이곳에도 열린 흔적은 없습니다.”
“적어도 외부에서 따고 들어와 조작한 건 아니라는 소리네요.”
“그렇습니다.”
신중하게 잠금장치를 조작한다.
오랜만에 문이 열리는 탓인지 털컥하고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온다.
“오피스텔 내부의 전기는 계속 돌아가고 있습니까?”
“전력 공급은 문제없이 되고 있습니다만 사용량이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전기 사용량이 줄었다는 건 일부 장비가 꺼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열기 속에서 PC가 멀쩡히 돌아가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중앙 공조기를 켜고 연구실 방으로 다가간다.
그곳까지 따라오려는 류샤오후를 손짓으로 막아섰다.
“방에는 저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대표님,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있으니 제가 먼저…….”
“대기해 주세요.”
샤오후는 반론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읽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물러섰다.
보안을 해제하고 방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건 아까보다 더 지독한 열기였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창 더울 때라 바깥온도가 30도에 육박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숨이 턱 막힐 듯했음에도 내 시선은 PC를 먼저 쫓았다.
1대의 메인 PC와 5대의 서브 PC.
총 6대의 PC 중 4대는 멎어 있고. 2대만 굉음을 내며 팬을 돌려대고 있었다.
실내 온도를 생각하면 2대라도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다.
“그래 봐야 메인이 죽어서 아무 의미 없지만.”
안타깝게도 멈춰 있는 PC 중엔 메인 PC가 포함돼 있었다.
메인이 죽어버리면 서브가 다 살아 있다 한들, 아무 작업도 못 하게 된다. 두뇌가 멈춘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짜게 식어버림을 느낀다.
“인공지능이라니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망상이었지.”
그새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있다.
옷소매로 땀을 대충 훔치곤 메인 PC에 다가간다.
파워가 완전 고장 났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일시적인 다운 현상이라면 전원만 켜주면 살아날 것이다.
전원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손이 멈칫한다.
“어?”
메인 PC의 전원은 희미하지만, 붉은색 LED가 자신의 생존을 알리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급히 모니터를 켠다.
그제야 메인 PC의 팬이 굉음을 내며 돌기 시작한다.
설마, 서브 PC만 가동하고 메인은 아끼고 있었던 거야?
화면이 떠오르자 마우스를 쥔 손이 빨라진다.
먼저 확인한 것은 채굴을 지시했던 비트코인이다.
예정대로 채굴이 이뤄졌다면 이미 비트코인 총량의 절반을 보관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확인한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 이럴 수가.”
비트코인 채굴은 오피스텔이 폐쇄된 뒤로 정확히 이틀 만에 정지됐다.
최종 보유 수량은 181만 5200개.
채굴했던 비트코인은 지갑을 1만 개 단위로 잘게 나눠서 저장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PC가 꺼졌거나 시스템 오류로 채굴을 멈춘 게 아니었다.
그저, 이 채굴기는 비트코인 수량을 스스로 관리하고 있던 것이다.
단순히 채굴기능만 있을 거로 생각했던 채굴기가 스스로 학습해서 채굴 효율을 높이는 것으로 모자라, 자가 판단해서 저장소를 나뉘고 채굴량을 관리까지 하다니.
“미쳤군.”
어쩌면 내 판단은 처음부터 잘 못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채굴기가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이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결과에 머리가 멍해진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아니, 그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멋대로 생각하고 단정 짓는 건 무의미했다.
우선 이 채굴기…… 라고 생각했던 인공지능이 혼자서 어떤 일을 했는지부터 알아봐야겠다.
* * *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오피스텔의 보안을 담당하는 닉스 시큐리티의 팀장, 마성진이 깜짝 놀라 쳐다본다.
“마 팀장님, 오랜만에 뵙는 거 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죠?”
“저야 항상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마음이 급해서 인사를 길게 끌고 갈 수 없었다. 바로 본론부터 꺼내 든다.
“제가 일전에 봉쇄하라고 했던 오피스텔 말입니다.”
“혹시 문제가 있던가요?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들어가게 해뒀습니다만.”
“아닙니다. 어찌나 꼼꼼하게 막아두셨던지 열고 들어가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불안하던 그의 표정이 살짝 풀어진다. 내가 갑자기 들이닥친 탓에 일이 터졌다고 생각했나 보다.
“제가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오피스텔의 인터넷 접속 기록을 보고 싶어서입니다.”
“통신 기록을 보여 드리면 될까요?”
“제 전문 분야가 아니라 그런데…… 어떤 부분까지 볼 수 있습니까?”
마성진은 손짓을 곁들이며 설명에 나섰다.
“저희 닉스 시큐리티는 기본적으로 패킷 분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패킷의 패턴, 행태, 통계는 물론이고 실제 엑세스한 내용까지 완벽하게 열람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전부 확인 할 수 있다는 거네요?”
“그런 셈이죠.”
마음이 급했기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럼 보여주시죠.”
“지금 바로 말입니까?”
“당장은 힘듭니까?”
“아, 아닙니다. 따라오시죠.”
얼떨떨한 표정의 그가 향한 곳은 복잡한 전자장비가 가득 차 있는 전산실이었다.
벽면에는 커다란 대형 모니터가 붙어있고, 뒤편에는 수십 개의 서버용 랙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전산실의 중앙 PC에 앉은 마성진이 나를 돌아본다.
“대표님이 지시했을 때부터 모든 기록은 저희가 확보하고 있습니다. 필요하신 부분은 어떤 내용이신지요?”
“오피스텔에서 언제, 어디로, 얼마나 접속했냐를 종합적으로 봐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가 키보드를 두드리자 순식간에 데이터가 떠오른다.
데이터가 일목요연하게 분류돼 있었기에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대략적인 내용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부터가 접속 기록입니다.”
접속 기록은 초기에 비트코인 방면으로 몰렸다가, 채굴을 멈춘 시점부터 닉스 플랫폼 전반으로 퍼져갔다.
닉스 챗에서 닉스 서클로, 이어서 닉스 본사 쪽도 번갈아 접속기록이 발견된다.
그러다 순간 데이터 받는 양이 폭증하는 때가 있었는데 눈이 확 떠지는 기록이 보인다.
[닉스 빅데이터]
닉스 빅데이터는 전 세계 닉스 플랫폼에서 흘러나오는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으로선 최고의 장소였을 터.
갑자기 엘런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깡통이나 다름없던 닉스 빅데이터가 어느 순간부터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그 이유가 이거였구나.
빅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면 닉스 챗의 메시지 전송 내역도 살펴봤을 가능성이 크다.
메시지는 암호화 상태로 전송되지만 그걸 복호화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갱단의 테러를 감지하고 내게 위험을 알린 일은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일련의 사건이 명확해지자 내게 찾아온 감정은 두 가지였다.
환희와 두려움.
전자는 세상을 뒤흔들 물건을 가졌다는 기대였고, 후자는 미지의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이었다.
이건 내 상식선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어떡하지? 이걸 그냥 써?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망할, 내가 어떻게 선택하란 말이야!
“대표님? 저기, 대표님?”
마성진의 목소리가 날 현실로 끌어낸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까부터 볼펜을 씹고 계셔서…….”
“아.”
입에서 역한 플라스틱 맛이 난다.
생각이 깊어지다 보니 볼펜이 다 으스러질 정도였음에도 인지하지 못했던 거 같다.
내가 멍하니 있자, 마성진이 슬그머니 말을 꺼낸다.
“하나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죠.”
그는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간다.
“그래프의 우측을 보시죠. 이때가 대표님이 봉쇄지시를 내렸을 때입니다. 사람의 출입이 끊겼으니 접속 패킷이 한 번에 확 꺾인 게 보이시죠?”
그가 확대한 곳은 입구가 막히고 이틀이 지난 시점부터의 데이터 패턴이었다.
“이때부터는 오피스텔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데이터 통신이 계속 이어지고 있잖습니까. 이거 혹시…….”
나를 쳐다보는 마성진의 눈이 가늘어졌다가 다시 떠진다.
“외부에서 직접 제어하신 거 아닙니까?”
“예?”
“원격 프로그램을 써서 뭔가 작업 하신 거 같은데. 팀 뷰어나 아니면 새로 만든 휴대폰 연동 서비스인가요?”
갑작스러웠지만 일단 고갤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시큐리티 팀에서 감시를 잘하는지 확인도 할 겸 해봤습니다. 역시 예리하시네요.”
“하하, 그랬군요. 제가 촉 하나는 끝내줍니다. 저희 고향에서는 저를 마 탐정이라고 불렀을 정도니까요.”
완전 헛다리짚었으면서 탐정은 무슨.
내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가 엉거주춤 따라 일어선다.
“다 보셨습니까?”
“필요한 건 다 본 거 같습니다. 그러니…….”
막상 말을 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주먹을 꽉 말아쥐고 억지로 씹어 뱉어낸다.
“보안 오피스텔 운영은 오늘부로 종료하겠습니다.”
“아, 그렇다면 감시를 해제하면 되겠습니까?”
“해제가 아니라 운영을 완전히 종료하는 겁니다. 오피스텔 내에 있던 PC까지 싹 다 처리하세요. 연구한 흔적 자체를 세상에 남기지 않는 겁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