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06화
어느덧 닉스의 상장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사건이 연이어 터지는 바람에 상장을 뒤로 미루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달 예정된 신형 애플폰 발표 탓에 무리해서라도 이번에 상장을 진행해야만 했다.
재무 담당인 엘런의 고군분투로 상장 준비는 문제없이 흘러갔다.
오늘은 상장의 마지막 관문인 투자 설명회 날.
장소는 그랜드 시티 호텔의 대연회장으로 최대한 실내가 넓은 곳을 골랐다.
“이거, 오랜만에 긴장되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울려댄다.
걱정 반, 기대 반이 섞인 복잡한 심경이 입을 바싹 마르게 한다.
무대 뒤편에서 객석을 슬쩍 훑어본다.
다행스럽게도 객석에는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이번 투자 설명회는 닉스 챗과 닉스 서클로도 실시간 시청이 가능했다.
그 때문에 기자들이 안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었는데 그건 나만의 기우였나 보다.
아무래도 금융위기 이후부터 투자심리 위축으로 IPO가 드문 탓에 사람이 많이 몰린 듯했다.
무대의 조명이 켜졌다가 꺼지길 반복하고 진행 요원들의 최종 조율이 시작된다.
시계를 흘긋 쳐다본다.
행사 시작 30분 전.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
슬쩍 무대 뒤편에서 빠져 나와, 객석과 분리된 귀빈석으로 향했다.
무대의 바로 앞자리에 마련된 귀빈석에는 내가 직접 초대한 손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닉스의 3대 투자처인 레드스톤과 JP모건, 버크셔 헤서웨이는 물론이고 이번 IPO를 주관하는 모건스탠리, 씨티 은행, 크레디트스위스, 골드만 삭스의 담당자들도 자리해 있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워렌 버핏 회장이었다.
그는 트레이드마크처럼 들고 다니는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며 껄껄거리고 있었다.
저 모습은 어떻게 봐도 동네 마실 나온 할아버지처럼 보인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투자자들은 환한 미소로 답해준다.
한 명씩 인사를 주고받고 마지막으로 버핏 회장이 악수를 청해온다.
그는 내 어깨까지 다독이며 친밀감을 표했다.
“신생업체 IPO에 대형은행이 이리 모인 것도 흔치 않은 일이네. 이번 행사는 흥할 수밖에 없겠구먼.”
“최근 IPO를 하는 기업이 뜸한 탓일 겁니다.”
“허허, 무슨 소리를. 경제면에는 닉스가 단골로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확실히 뉴스에 자주 노출되긴 한다만, 마냥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대부분이 포드와 음모론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말을 덧붙인다.
“꼭 호재가 아니라도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 득을 보는 부분이 있는 걸세.”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버핏 회장까지 인사를 마친 후, 귀빈석 구석에서 무게를 잡고 있는 사내에게로 다가간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손을 맞잡으며 미소짓는다.
“축하한다. 드디어 닉스가 상장하는구나.”
“신용화 씨, 단어 선택이 좀 이상한데요? 드디어가 아니라 벌써라고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2년 만에 상장까지 진행하는 회사는 드무니까.”
신용화는 슬쩍 거리를 좁혀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예상 공모가는 나왔어?”
“투자 설명회를 진행해야 뭐가 나오든 하겠죠.”
“에이, 그래도 자체적으로 계산기 두드려봤을 거 아냐.”
어찌, 당사자인 나보다 더 기대하는 눈치다.
“일단 30달러 선은 무난히 넘을 거 같습니다.”
“진짜냐?”
“개인적인 예상입니다.”
“이 복덩이 같은 놈.”
갑자기 신용화가 반색하며 끌어안으려 든다. 난 살짝 옆으로 비켜서 그를 저지했다.
“아직 확정된 거 아니니까 호들갑 떨지 마시죠.”
“오늘 같은 날 호들갑을 좀 떨면 어때서? 5달러에 투자했던 닉스가 30달러로 상장되면 투자 수익이 6배야, 무려 6배.”
그는 흥분되는지 잔뜩 격양된 반응을 보인다.
“어차피 전부 회삿돈 아닙니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의미가 있지. 내가 닉스에 투자했다고 했을 때, 입에 거품을 물던 임원 놈들이 한 둘인 줄 아냐? 이번 발표 나면 그놈들 싹 잡아다가 몽골 지점으로 발령내버릴 거야. 흐흐흐.”
난 음흉한 웃음을 흘리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기자들 잔뜩 보고 있습니다. 표정 관리 좀 하시죠.”
“보면 뭐 어때. 이야기가 들리는 것도 아닌데.”
“방금은 사탄의 인형에서 나올 법한 표정이었으니까 그렇죠.”
“그, 그랬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신용화를 뒤로하고 무대에 돌아갔다.
무대 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진행요원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모두가 자리에서 스탠바이 상태다.
메인 디렉터는 날 보더니 OK 사인을 보내온다.
“예정 시간이 다 됐습니까?”
“아닙니다. 10분 정도 여유 시간이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마이크 끄고 리허설 한 번 하셔도 됩니다.”
“아뇨, 바로 진행하죠.”
마이크를 집어 들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가자, 별도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조명들이 나를 비춘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닉스의 CEO 대니얼 강입니다.]
투자 설명회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준비된 영상으로 닉스의 소개가 흘러나온다.
여기 모인 관계자들이라면 다 알법한 내용이었기에 잔잔한 분위기 속에 영상이 끝났다.
이어지는 닉스의 성과나 앞으로의 비전을 설명하는 것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이처럼 닉스는 닉스챗을 필두로 모바일 생태계를 확장해 나갈 것입니다.]
투자 설명회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기자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본디 내가 발표장에 나타나면 뭔가 특종이 터진다는 공식이 있었기에 티 나게 실망을 표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자, 마지막으로 중대 발표를 하고 투자 설명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뒤편 대형 스크린에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건물 사진이 떠오른다.
그리곤 기업의 리스트가 하나씩 나타났다 사라졌는데, 모두 닷컴버블 때 사라졌던 기업 리스트였다.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빚더미에서 시작됐습니다. 기업은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투자자들은 실체 없는 것들에 투자해왔죠. 그 정점에서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닷컴버블을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닉스는 평범한 IT 기업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사진이 넘어간다.
이번은 닉스의 재무구조가 간략히 요약된 도표였다.
처음엔 별 반응이 없던 객석에서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 좀 이상한데. 왜 재무제표에 부채를 빠뜨린 거지?”
“그러게 부채란이 빈칸으로 비어 있잖아. 설마, 닉스는 부채가 없다는 건가?”
“말도 안 돼. 부채가 없는 기업이 어디 있어. 거기다 닉스의 경영방식이 투자를 안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닉스 특성상 마케팅비로 지출하는 것도 어마어마할 텐데.”
웅성거림이 잦아들 때쯤.
빈칸이던 부채란에 ‘0’이라는 수치가 떠오른다.
[닉스는 미래만 바라보고 투자를 끌어쓰는, 여타 IT 기업들과는 달리 이미 수익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채가 제로는 아니지만, 영업이익이 지속해서 발생한다는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당연히 객석은 난리가 났다.
투자자들은 급히 어딘가 전화를 걸어댔고, 기자들은 누가 먼저 기사를 올리나 내기를 하듯 키보드를 두들겨 댔다.
물론 기업공개 전에도 닉스의 재무 현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전문가들은 있었다.
하지만 닉스라는 커다란 덩어리는 이노베이션, 소프트, 케미컬, 에너지 등으로 분야가 분리돼서 운영되고 있었기에 디테일한 영업이익이 발표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여러분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남았습니다.]
뭔가 남았다는 소리에 전화하러 밖에 나가던 사람들이 급하게 자리로 돌아온다.
장내에는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사람과 다시 들어오는 사람들이 충돌해서 진행요원들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야 할 정도였다.
난 그들이 충분히 들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린 후, 말을 시작했다.
[앞서 설명해 드렸지만, 닉스는 파나소닉을 통해 연간 10만 개의 리튬 에어 배터리를 생산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테슬라가 소화하는 물량은 연간 1만 개가 전부고 다른 업체들은 교환식 배터리에 난색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은 해답은 바로 이겁니다.]
뒤편 스크린이 일순간 점멸하고 텍스트를 뿜어낸다.
[닉스&테슬라, 볼보 인수]
[닉스X볼보 한국 60만 평 규모 공장 설립]
[연간 30만 대 전기차 생산 확정]
놀람과 감탄이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중 단연 백미는 버핏 회장의 표정이었다.
그는 평소 유지하던 포커페이스가 완전히 무너져 내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닉스 챗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쇼핑하며, 닉스 서클로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그리고 닉스에서 만든 전기차를 닉스 제로로 호출하며, 마지막으로 닉스 페이로 결제까지 끝마칩니다. 이것이 제가 구상한 닉스 월드입니다.]
내가 제시한 로드맵이 스크린에 뿌려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투자 설명회가 막을 내렸다.
모든 발표가 끝났음에도 사람들은 쉬이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특히, 이미 닉스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더 그러했다.
귀빈석으로 다가가자, 레드스톤의 지나 말론이 먼저 다가온다.
“대니얼, 대단한 발표였습니다. 정말이지 닉스가 제시한 로드맵은 판타스틱, 그 자체였어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눈이 확 떠지더군요. 실망도 조금 들고요.”
의외의 반응에 내가 되묻는다.
“실망요?”
“후후, 왜 닉스에 더 투자하지 않았을까? 라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요.”
“깜짝 놀랐잖습니까.”
지나 말론과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다른 은행의 직원들도 와서 그녀의 말을 거든다.
그들의 의견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호평 일색이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 신경은 버핏 회장에게로 쏠려 있었다.
그는 끝까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 * *
[닉스&테슬라, 볼보를 18억 달러에 최종 인수 확정!]
[볼보, 매년 30만대 교체형 배터리 전기차 생산]
[의결권 없는 주식으로 논란 중인 닉스A의 IPO. 월가에선 우려의 목소리.]
[닉스 CEO 대니얼 강 “닉스는 적자투성이의 IT 기업들과 달리, 이미 수익을 내고 있는 회사다.” 그의 자신만만한 행보에 투자자들 주목.]
[버크셔 헤서웨이, 닉스A 지분 15% 추가로 사들여. 기존가 21달러에서 10달러 더 높은 주당 31달러로 확인. 닉스의 최종 공모가에 관심 집중.]
언론의 경제면은 닉스의 IPO로 뒤덮였다.
한때 닉스A가 의결권이 없는 탓에 월가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버핏 회장이 15%의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는 것으로 논란은 쏙 들어가 버렸다.
그와 동시에 닉스의 예상 공모가도 덩치를 부풀려갔다.
초기에 18달러였던 예상 공모가는 투자 설명회가 끝나고 23달러를 찍었고, 이어서 완전한 재무제표가 공개된 후로는 28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버크셔 헤서웨이가 닉스A 지분 15%를 추가로 획득한다는 뉴스가 떴다.
오늘 자로 발표되는 예측치가 거의 최종이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
당연히 일이 손에 잡힐 리는 없었으니.
난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에 출근해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길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투자 발표회장에서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버핏 회장 얼굴이 떠오른다.
닉스의 IPO가 대박 나면 지분을 가진 버핏 회장에겐 호재일 텐데, 왜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
그는 약속대로 닉스A 지분을 31달러에 사들였다.
덕분에 닉스A의 예상 공모가는 31달러가 넘을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게 됐고 말이다.
이대로만 흘러가면 그는 가만 앉아서 수십억을 벌어들이는 셈인데, 대체 왜 그랬을까?
혼자서 생각을 쥐어 짜내는 중, 휴대폰이 드르륵 울어댄다.
“예, 매형.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은. 예상 공모가는 나왔어?
“아직 안 나왔습니다.”
-사람 속이 타서 죽겠다. 어젠 잠이 안 와서 밤을 꼬박 새웠어.
“매형, 속이 왜 탑니까?”
-나도 닉스 지분 10% 가지고 있으니 속이 타지.
“매형 앞으로 지분은 5%로 아는데요.”
-부부는 일심동체 몰라?
“일심동체는 잘 모르고 돌아서면 남인 건 압니다.”
-이 짜식이!
“어, 지금 전화 들어오네요.”
-공모가 뜬 거야?
“전화 받아봐야 알죠. 좀 이따 전화 드릴게요.”
휴대폰을 끊고 인터폰을 집어 든다.
공모가를 가져올 엘런의 목소리가 들려올 줄 알았는데, 그 대신 음침한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미국 경호책임자인 류샤오후였다.
-대표님.
“샤오후? 지금 기다리는 전화 있어서 그러니까 급한 일 아니면 나중에 전화하세요.”
-중요한 소식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웬만해선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그다.
자연스럽게 인터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떤 소식이기에 그럽니까?”
-일전에 추적했었던 unknown의 최종 소재지가 파악됐습니다.
한 방에 예상 공모가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나도 모르는 새 마른침이 꼴깍 넘어진다.
“unknown은 북한과 러시아를 경유해서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러시아와 중국의 SPI 요원들 협조를 얻어서 추적에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거기가 어딥니까?”
-대한민국 서울, 대표님 명의의 오피스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