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05화 (105/206)

기적의 IT 재벌 105화

포드 자동차 CFO 루이스 콜린의 비리가 담긴 음성 파일이 TV에서 흘러 나온다.

치직.

[닉스 CEO가 제시한 인수가가 19억 달러입니다. 지리 측에서도 장단을 맞추려면 최소 18억 달러까지는 제시해 주셔야 합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요? 이미 17억 달러로 합의를 다 봤으면서!]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습니까? 저도 명분이 있어야 이사회를 설득하지요.]

[큭…… 이번 볼보 인수가 무산되면. 콜린, 당신에게 약속했던 돈은 물론이고 지금껏 지급했던 선금도 다시 토해내야 할 거요.]

[금액만 맞춰주시면 문제없게 처리하겠습니다.]

[그게 쉬운 일인지 아시오?]

이후는 언성이 높아지며 언쟁하는 것으로 녹음 파일이 끝났다.

어느새 매형도 내 옆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표정에는 경악과 당혹이 반반쯤 섞인 채로 말이다.

나도 거울을 보면 같은 표정을 짓고 있겠지.

“현우야, 이거 뭐냐?”

“글쎄요. 저도 문자를 보고 튀어 온 거라.”

unknown에게서 온 문자를 보여주자 매형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 녀석 정체가 뭐야?”

“보안팀에서 추적 결과, 문자 발신지는 닉스 본사였다고 합니다.”

“뭐? 닉스 본사? 미국에 우리 건물?”

“예, 닉스 내부인이 unknown이거나 아니면…….”

내 말을 미리 매형이 받아 낸다.

“우리가 추적할 걸 알고 수를 써둔 거겠지.”

“그렇죠. 추적해봐야 소용없다는 일종의 메시지겠죠.”

긴장이 느슨해진 탓인지, 이제야 다리에 힘이 풀리고 갈증이 밀려온다.

냉장고에 생수 한 병을 까서 목구멍 안에 그대로 털어 넣었다.

냉수의 청량함이 머리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unknown의 의도가 뭘까?”

“글쎄요. 중요한 건 그가 아군이라는 거 아닐까요?”

“아직은 아군이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일 아니냐. 만약 우리를 협박하려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중이라면…… 필시, 나중에는 곤란한 일이 생길 거다.”

절반쯤 남은 생수를 머리에 부어 버린다.

이젠 진짜 머리가 개운해졌다.

“그건 보안팀이 밝혀낼 일이고,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unknown이 깔아준 판을 유용하게 써먹는 겁니다.”

머리를 강아지처럼 털어대자 물이 사방으로 튄다.

매형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세례를 막아냈다.

“이번 건으로 포드는 확실히 흔들리겠지만, 아직은 약해. 영상 파일이었다면 몰라도 방금 건 음성 파일이잖아?”

매형의 말대로 음성은 불완전한 자료다.

이름과 업체가 호명됐더라도 제삼자가 녹음했거나,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상황이 좀 다르다.

“기억 안 나세요? 오전에 제 오보가 났었잖아요.”

“강현우 식물인간 설?”

“예, 어쩌면 그게 이번 건을 위한 밑밥 아니었을까요?”

“밑밥이라니 무슨…….”

말을 하던 매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차량 테러는 이름값을 위해, 갱단들이 차를 노린 범행이다.

범인은 잡혔고 정확한 동기와 증거까지 나왔으니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 후에 벌어진 포드 CFO의 비리 역시 지리 자동차에게 인수 커미션을 받아 챙긴, 흔해 빠진 기업가의 개인 비리였다.

하지만 연관 없는 이 두 사건을 연달아 배치하면, 사건 사이의 미묘한 무언가가 보인다.

“지리와 포드는 갑자기 인수에 뛰어든 닉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공교롭게 닉스의 CEO가 탄 차는 폭탄 테러를 당했다. 이거 소설로 쓰면 작품 하나 나오겠죠?”

“지리에서 폭탄 테러를 했다는 거야?”

“아뇨, 테러범들은 인수 발표 전에 범행을 계획했습니다. 두 사건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어요. 하지만 그걸 모르는 대중들은 다르게 생각하겠죠.”

두 사건을 이어주는 고리는 없다.

하지만 차량 테러로 인한 강현우 식물인간 오보 때문에 대중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실체도 없는 고리가 생겨 버렸다.

이른바, 합리적인 의심이라 불리는…….

음모론.

“설마, unknown은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오보까지 뿌렸다는 건…….”

“확실한 건 없습니다. 뭐든 가능성만 있다는 정도죠.”

결국, 매형의 격양된 반응이 터져 나온다.

“이게 기획이라면 등골이 오싹한 수준이야. 생각해 봐. 여기에 너나 나나, 누가 걸려들었든 간에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평생 테러 사주범으로 찍혀서 인생 종 치는 거라고!”

“저도 그의 방식에 동의해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버렸으니 어쩌겠습니까?”

매형은 복잡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토해냈다.

“휴우- 그래, 현우 네 말이 맞지. 우리가 나서서 해명해 주는 것도 모양새가 우스울 거 같고, 양심에 찔려서 이런 기회를 날리는 것도 바보짓일 테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매형은 확실히 방향을 정한 듯 무릎을 탁! 치고 일어선다.

“우선 포드 쪽에 연락부터 넣어서 단도리치고, 인수 협상 진행할 로펌도 다시 준비시켜야겠네.”

“포드 쪽은 제가 알아서 진행할 테니, 매형은 정부 쪽과 딜을 다시 해주세요.”

“정부? 스웨덴은 아닐 테고, 한국을 말하는 거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매형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어 온다.

“정부와는 토지 무상 임대 조건도 그렇고,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득인 상태로 협의가 끝났어. 사진 한 방 박고 도장 찍으면 끝인데 뭘 더 하겠다는 거야?”

“그때완 상황이 완전 다르죠. 이젠 닉스가 나서서 여론 몰이할 필요가 없어졌는데, 굳이 한국에 공장을 짓는 이유가 있을까요?”

“한국에 볼보 공장을 지어서 전기차를 뽑겠다는 건, 액션이 아니라 진짜 필요해서 진행하는 거잖아. 그걸 왜…….”

“그건 우리 속내고, 정부는 그걸 모르잖습니까. 카드가 하나 늘어난 셈이죠.”

내 뜻을 알아챈 매형이 혀를 끌끌 차댄다.

“여기서 더 뽑아 먹겠다고? 이미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인데?”

“자신들의 치적을 위해서라면 나라 곳간을 무상으로 퍼줘야 해도 할 사람들입니다. 이참에 등골까지 뽑아 먹어야죠.”

“버핏 회장 보고 능구렁이라더니, 어찌 넌 그보다 더한 거 같다.”

“흐흐, 그 말은 최상급 칭찬인 거 같은데요.”

* * *

[충격! 포드 자동차 CFO, 지리 자동차와 불법 커넥션 증거가 담긴 음성 파일 공개.]

[지리 자동차 볼보 인수 포기.]

[닉스 CEO 차량 테러와 포드 스캔들. 뭔가 심상치 않다?]

[볼보 임직원들 집단 행동 예정.]

포드를 향한 여론은 예상했던 방향으로 흘렀다.

넷상은 물론이고 언론들까지 음모론을 확대·재생산하며 포드를 두들겨 댔고, 그에 답하듯 볼보 임직원들은 포드 자동차 앞에서 연일 시위를 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럽에서는 포드 자동차 불매 운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일 정도였다.

다급해진 포드는 추문에 쌓인 CFO 루이스 콜린 대신, CEO인 마크 필더가 직접 샌프란시스코까지 찾아와서 미팅을 요청해왔다.

약속 장소는 샌프란시스코 외곽의 이터니티 호텔.

마크 필더는 미팅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올 걸 우려했는지,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만남을 원했다.

“반갑습니다, 대니얼.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마크 필더는 미소와 함께 손을 뻗어온다.

그는 잠을 설쳤는지 눈 아래에 그늘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우린 간단한 인사를 나누곤 자리에 앉았다.

“최근에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차량 테러라지요?”

내 반응을 보고 싶은지 그가 먼저 민감한 주제를 던진다.

“비행기로 갈아타서 다행이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범인은 LA의 갱단이었다던데, 닉스의 보안팀이 직접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말하는 투가 어째 ‘이번 일은 닉스에서 자작극을 벌인 거 아니냐?’라는 뉘앙스로 들려온다.

“포드는 내부에도 처리할 일이 많다고 들었는데, 저희 일까지 신경을 써주시는군요.”

뼈가 들어 있는 말이다.

그는 내 말의 뜻을 알아챘는지, 몇 번 헛기침하곤 본론으로 넘어갔다.

“흠흠, 아시다시피 제가 샌프란시스코에 온 이유는 볼보 매각 건을 마무리 짓기 위해섭니다.”

“시작도 안 했던 일이 이 자리에서 마무리되겠습니까?”

“일전에 저희 측에 보내주신 서류가 있더군요. 그걸 이어서 진행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만.”

포드에 보냈던 서류라면……. 이 일이 터지기 전에 보냈던 인수 협약서를 말하는 건가?

에이, 아니겠지.

서류가 오갔을 땐 지리 자동차와 닉스가 경쟁하던 때다. 그때와 지금은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지리 자동차는 눈치껏 인수 의향을 접어버렸고, 포드가 혼자서 여론에 두들겨 맞고 있는 상황 아니던가?

내가 기억이 안 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필더는 친히 서류를 꺼내서 보여준다.

“여기, 그 서류입니다. 볼보의 100% 지분을 닉스와 테슬라가 공동으로 인수하는 것으로 총 19억 달러를 제시한다고 보내주셨더군요.”

난 서류를 확인하곤 픽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참고용으로 보내드린 서류입니다. 이전 담당자에게 이야기 못 들으셨습니까?”

“그, 그랬습니까?”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이 서류만 가져오면 내가 옳다구나 하고 도장을 찍어줄 줄 알았나 보다.

얕보였네. 내가 너무 얕보였어.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듯 말을 이어간다.

“어찌 됐든, 포드는 닉스에서 보내주신 인수 의견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닉스도 상장을 앞둔 만큼 볼보를 가까운 시일 내에 인수하면 좋은 시너지가 날 듯도 한데…….”

필더가 말을 흘리며 내 표정을 훑는다.

“필더 씨.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질문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죠.”

“귀사의 SUV 차량인 익스플로러 말입니다.”

갑자기 자동차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에 물음표가 새겨진다. 난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어간다.

“저희 누나가 큰 차를 좋아해서 작년에 한 대 샀습니다. 차를 받고선 엄청나게 기뻐하더군요.”

“그렇군요.”

“그래서 저도 올해 초에 익스플로러를 한 대 사려 했습니다만, 어찌 된 일인지 가격을 1만 달러나 할인해서 팔지 뭡니까. 고작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죠.”

“아, 그건 올해 하반기에 익스플로러 신형이 나옵니다. 그전에 재고 관리를 해야…….”

말을 하던 필더의 입이 멈춘다.

내가 왜 뜬금없이 차 이야기를 했는지, 이제야 눈치챘나 보다.

“필더 씨, 이 서류를 쓸 때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 다릅니다. 볼보를 노리던 지리 자동차는 인수 의사를 철회했고, 포드는 음모론 때문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죠. 아, 내부의 비리는 팩트지만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의 말투가 조금 거칠어졌다.

조금만 더 자극했다간 욕이라도 쏘아댈 기세다.

“많이 바라진 않습니다. 인수가와 조건을 지리 자동차가 제시했던 것과 동일한 16억 달러로 맞춰주시죠.”

“그건 지리에서 제시한 입찰가고 우린 18억 달러가 마지노선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마지노선은 무너진 적이 있다는 사실을요.”

농담을 던졌지만 필더의 입은 한일자로 꽉 다물어져 있었다.

딱히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기에 말을 계속 이어갔다.

“가격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죠. 닉스는 여기서 손 털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내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필더가 기겁을 하며 나를 막아선다.

“제 이야기는 끝까지 듣고 가셔야 할 거 아닙니까.”

“닉스는 조건을 제시했고 포드는 거절했으니 제가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협의를 끝까지 진행해보시죠.”

“죄송하지만, 물건을 집어갈 경쟁자가 사라졌으니 닉스는 급할 게 없습니다. 혹시 압니까? 익스플로러처럼 볼보도 파격 할인을 해줄지 말입니다.”

내가 웃는 것과 반대로 필더의 표정은 썩어들어 간다.

볼보는 금융 위기와 유가 폭등으로 미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반 토막이 났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볼보의 매각이 또 엎어진다면 판매량의 추락은 기정사실이었다.

게다가 유럽에서 불씨가 당겨진 불매 운동이 거세지기라도 하는 날엔 볼보가 문제가 아니라 포드의 매출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

나는 그걸 뻔히 알았기에 여유를 부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닉스가 상장을 앞두고 있다 해도, 아직은 신생 회사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신생 회사에 10억 달러가 넘는 돈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쫓기는 처지에선 살짝만 떡밥을 뿌려도 덥썩 물어대는 법이다. 지금의 포드처럼 말이다.

“어떤 방법입니까?”

“대금의 절반을 닉스의 회사채로 지급해드리죠. 사실, 포드가 당장 현금이 필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필더는 이제야 머리를 굴려댔지만, 내 머릿속에는 벌써 계산이 끝나 있었다.

우선, 인수가 18억 달러의 절반인 9억 달러는 회사채로 메꾼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 중 6억 달러는 볼보 공장을 스웨덴에 유지하는 대가로 유럽연합에서 대출하고, 3억 달러는 테슬라가 낼 몫이다.

이대로 계획대로만 굴러가면 닉스는 현금 한 푼 없이 볼보를 인수하게 된다.

“닉스가 대규모 투자를 받은 거로 압니다만.”

“그 돈은 신소재 배터리에 묶여 있습니다. 볼보 인수 자금은 전액을 닉스가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하죠. 쉽게 말해서 이거 말곤 방법이 없다는 소립니다.”

“흐음…….”

고민해 봐야 뾰족한 방법이 있나.

평소의 포드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포드는 진퇴양난, 사면초가인 상황이다.

뒤가 없으니 손해보더라도 손을 잡는 수밖에.

한참이나 머리를 굴리던 필더는 결국 백기를 든다.

“닉스의 조건에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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