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04화
미려한 은빛의 스포츠카가 로스앤젤레스 도심지를 느긋하게 빠져나간다.
탁 트인 도로가 나타나자 그제야 가속을 시작한다.
80㎞/h에서 150㎞/h로, 다시 200㎞/h까지 도달하는 데는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려면 필연적으로 지나쳐야 하는 델피노드 교량 부근까지 도착했다.
도로가 좁아짐에도 차량의 속도는 줄지 않는다.
순식간에 교량을 통과할 셈인 듯 오히려 속도는 빨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다리를 중간 쯤 빠져 나갔을까?
다리 반대편에서 역주행하는 바이크 2대가 나타난다.
이상을 느낀 테슬라Z는 바이크를 피해 가려 했으나 좁은 도로 탓에 운신의 한계가 있었다.
결국,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중에 쾅! 하는 굉음이 울려 퍼진다.
그저 빛이 번쩍 했을 뿐, 너무 빠른 속도였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눈으론 파악할 수도 없었다.
충격을 받은 테슬라Z는 빙글빙글 돌아서 구석에 처박히고 영상이 종료됐다.
“방금…… 그게 뭐였습니까?”
내 질문에 미국의 경호 책임자인 류샤오후가 설명을 시작한다.
“소형 고체폭탄입니다. 제조가 쉬워 LA의 갱단들이 흔히 쓰는 물건이죠. 다행히 테슬라Z의 엔진이 차체 뒤편에 있어서 큰 폭발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문자가 진짜였다니…….”
테슬라Z를 타고 로스앤젤레스까지 왔었지만, ‘그 문자’를 받고 찜찜해서 돌아가는 길은 비행기를 택했다.
차를 샌프란시스코로 탁송하는 건 그로부터 이틀 뒤, 보안팀 직원이 맡았었는데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아! 샤오후, 차에 타신 분은요? 무사한 겁니까?”
“병실에서 회복 중입니다. 테슬라Z의 안전장치가 촘촘해서 갈비뼈가 두어 군데 부러진 게 부상의 전부라더군요.”
“다행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는 날 보고 샤오후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 그러시죠?”
“본디 이럴 땐 차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신지…….”
“차가 얼마든 사람 목숨보다 중요하겠습니까. 당연한 걸 묻는군요.”
“당연하다라…….”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노트북을 조작했다. 이번에 나타난 사진은 사고 후의 테슬라Z였다.
보닛 쪽은 대포라도 맞은 듯 움푹 파여 있었고 조수석도 절반이나 찌그러진 모습이었다.
“보시다시피 차량은 반파 상태입니다. 테슬라 측에서 차량을 수거해갔으나 수리가 힘들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배터리만 수거해서 재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사진은…….”
샤오후가 띄어 올린 건 2명의 사내 사진이었다.
아직 앳된 얼굴의 절반 정도가 문신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이 이 두 놈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놈들 단독 소행 일리는 없을 테고, 일을 사주한 자들은 잡았습니까?”
“그게 좀…….”
그는 난감하다는 듯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보안팀이 그들의 전화와 문자 내역, 계좌까지 훑어봤습니다만, 범행을 계획한 건 테슬라Z의 경매가 결정된 바로 직후였습니다.”
“음? 그땐 제가 낙찰될지도 몰랐을 땐데…… 아니, 잠깐만요. 그럼 처음부터 목표가 제가 아닌 차였다고요?”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비싼 차를 달리는 도중에 테러해서 이름을 날리는 게 목적이었답니다. 그 때문에 탑승자가 누군지 확인도 안 했다더군요.”
범행 동기가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고작 유명세 때문에 이런 범죄를 저질렀단 말입니까? 잡히면 평생 빵에서 썩을 텐데요?”
샤오후도 내가 무슨 의심을 하는지 아는 듯 사족을 덧 붙였다.
“적어도 볼보 인수를 발표하기 전부터 기획된 건 맞습니다. 그건 문자 내역이 남았기에 100% 확실합니다.”
예고 문자는 포드의 CFO인 콜린과 헤어지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그사이에 이번 범행을 계획하고, 그게 밖으로 새어나갔다는 건 시간상 말이 안 되는 흐름이다.
단순한 우연이 겹친 사건인 걸까? 그렇다면 이 문자를 보낸 unknown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샤오후.”
“예, 대표님.”
“혹시 제게 문자를 보낸 사람도 추적하고 있습니까?”
“보안팀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듯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내게 위험을 예고해준 unknown을 찾으면 모든 게 명확해질 일이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샤오후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대표님, 앞으로는 경호를 더 강화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금처럼 거리를 두는 경호 방식은 모든 위험을 막을 수 없습니다.”
샤오후 말이 맞다.
이번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앞으로도 이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좋습니다. 오늘부로 근접 경호를 허용하겠습니다. 그리고 닉스의 임원들에게도 경호가 필요할 거 같으니 보안팀 직원을 확충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 * *
이튿날. 인천공항.
입국과 동시에 휴대폰을 켠다.
혹시 싶어서 메일함을 먼저 열어봤지만 포드에서 날아온 메일은 없었다.
“역시 포드 쪽을 기대하는 건 무린가.”
휴대폰을 집어넣으려는 차에.
지이이잉- 징- 징- 징- 징-.
휴대폰의 진동이 끊이지 않고 울려댄다.
놀라서 휴대폰을 확인해보자 순간적으로 서른 개가 넘는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모두 12시간의 비행 중 도착한 것들이었다.
문자의 내용은 대부분이 내 안부를 물어오는 것들이었다.
뉘앙스를 보건대, 내가 사고라도 당한 듯한 느낌이다.
“갑자기 뭔 일이지? 북한에서 미사일이라도 쐈나?”
재빨리 인터넷을 켜고 포털을 확인한다.
메인 페이지에는 나도 모르는 내 소식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 테슬라Z 플래티넘. 일주일 만에 반파!]
[테슬라Z 플래티넘 소유주 대니얼 강, 중환자실 입원. 차량 안전장치 덕에 생명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범인은 LA의 갱단으로 밝혀져, 범행 동기는 “유명해지고 싶었다.”라고 진술.]
[닉스 CEO 대니얼 강. 의식회복 여부 불투명. 상장을 앞둔 닉스의 초대형 악재]
“얼씨구.”
멀쩡한 사람을 한순간에 식물인간으로 만들다니.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소설을 쓰고 앉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부정적인 기사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게 뻔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그런 건 절대 사절이다.
즉시 내 아이디로 로그인해 닉스 서클에 접속한다.
[여러분 의식이 없게 된 대니얼입니다.
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글을 쓰고 있냐고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자님들이 저를 식물인간으로 만들긴 했는데 그건 또 다른 지구의 대니얼인가 봅니다.
어쩌면 지금 글을 쓰는 제가 또 다른 지구의 대니얼일지도 모르겠군요. =)
농담은 여기서 줄이고, 제 근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멀쩡하게 회사에 출근했으며, 지금은 업무차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 더는 루머가 퍼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게시글을 올리기 무섭게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다.
대부분 다행이라는 댓글이었지만, 몇몇 댓글은 상장 때문에 건강 문제를 감추려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인증샷이라도 하나 찍어야 믿으려나.”
출국장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으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넘어온다.
“너 뭐하냐?”
목소리의 주인공은 숨을 헐떡이고 있는 매형이었다.
“왜 그렇게 헐떡이고 계신대요.”
“네가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놀라서 뛰어 왔잖아!”
난 셀카를 마저 찍고 전송했다.
사진이 올라가자 더는 의심하는 댓글이 올라오지 않는다.
“큰일이 났으면 자동차 사고가 아니라 하이재킹을 당했다는 뉴스가 떠야죠.”
“그건 그렇다만 이번 루머는 메이저 언론사들이 먼저 기사를 올렸어. 그러니 혹시 하는 생각이 든 거지.”
군소 언론사도 아니고 메이저 언론사가 크로스체킹도 안 하고 기사를 써댔다? 요즘 들어 이상한 일이 계속 겹치는 느낌이 든다.
“어찌 됐든 무사하면 된 거죠.”
“후…… 그렇긴 하다만 뉴스를 보고 정계에서도 놀랐는지 연락이 왔더라.”
“공장 설립건 때문입니까?”
“그래. 혹시 일이 엎어지는 거 아닌가 해서 잔뜩 긴장해 있더라.”
매형은 한국에서 볼보 공장 설립 건으로 정부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닉스와 테슬라 연합이 볼보를 인수하면 영릉 근처 부지에 60만 평 규모의 초대형 볼보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정계에선 어떤 반응이 나오던가요?”
“두 손을 들고 환영하지. 공장 규모를 말해줬더니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분위기던데.”
“대현에서 반대가 심할 텐데도 그랬다고요?”
“대현?”
매형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당장 실업률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정부에서 그런 거 신경이나 쓰겠어? 말도 안 꺼냈는데 먼저 공장 부지를 무상으로 대여해주겠다고 딜을 해오더라.”
이번 정부는 경기부양과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 대규모 토목 공사에 세금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과실 역시 일부 계층에게만 돌아갔다.
폭등하는 물가와 심해지는 양극화.
당연히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고 정부에서는 뭐라도 해야만 했는데.
그때 우리가 볼보 공장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정부에서는 우리가 구원을 위한 동아줄처럼 보였으리라.
업무 협약까지만 진행하면 닉스에서 따로 힘을 쓸 필요도 없었다.
당장 치적이 필요한 정권에서 온 힘을 다해 볼보의 경남 공장을 홍보해줄 테니 말이다.
“일정은 언제 잡혀있습니까?”
“모레 오전이야. 특별히 할 건 없고, 청와대에 가서 사진 한 장만 박고 오면 돼. 무슨 뜻인지 알지?”
“물론이죠. 오랜만에 진심을 담은 미소가 나오겠네요.”
사진쯤이야 백 번, 천 번도 찍어 줄 수 있다. 내 계획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공항을 빠져나온 우리는 곧장 서울 유진호텔로 향했다.
언제부턴지 집보다 호텔이 더 편한 느낌마저 든다.
매형은 능숙하게 짐을 올려 보내곤 라운지에 자리를 잡았다.
“페이지 양에게 들었다. 이번 볼보 자동차를 인수할 수 있을지를 걸고 버핏 회장과 내기를 했다며?”
“하고 싶지 않았는데 거의 핀치까지 몰려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버핏 회장은 생긴 건 시골 할아버지처럼 생겼지만 속은 시커먼 능구렁이가 들었더군요.”
“월가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강자야. 능구렁이 정도면 양호한 거지.”
버핏 회장은 여태껏 내가 겪은 그 누구보다 어려운 상대였다. 지금도 그의 눈빛을 생각하면 팔뚝에 닭살이 돋을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생각입니다. 여론을 흔들던, 아니면 돈을 때려 붓던 말입니다.”
“여론을 움직이는 건 스웨덴 정부를 찔러 보는 거지?”
“예. 이번 인수의 키는 포드와 스웨덴 정부인데…… 포드는 지리에서 무슨 조건을 받았는지 꿈쩍도 안 하더군요. 믿을 건 스웨덴 정부 쪽밖에 없죠.”
지리 자동차는 볼보의 스웨덴의 공장과 본사를 그대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유럽 연합에서 5억 달러를 대출할 예정이다.
우리가 더 좋은 조건과 여론을 등에 업고 스웨덴 정부를 흔들 수 있다면, 지리 자동차의 자금줄을 끊을 수 있다.
“지리 자동차도 참 대단한 놈들이야. 10억 달러는 중국은행에서, 나머지 5억 달러는 유럽 연합보고 내놓으라 하다니. 자기들 돈은 한 푼도 안 들이고 볼보를 꿀꺽하겠다는 거 아냐?”
“그걸 다 건네주면 다행이게요. 제가 봤을 때 마지막엔 채권을 끼워서 지불하려들 겁니다.”
“엥? 정부에서 대출 낸 돈을 자기들이 슈킹한다고? 그게 가능해?”
“중국이라면 가능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중국은 꽌시만 있다면 뭐든 가능한 나라다.
아마 슈킹한 돈 중 일부는 이번 대출을 성사시킨 공산당 간부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다.
그때, 테이블에 얹어 둔 휴대폰이 울어 댄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는데.
“이, 이거?”
잠시지만 심장이 쿵! 하고 멈춰버린 느낌을 받았다.
from: unknown
지금 CNN 채널을 확인해 주십시오.
“뭐야? 숨겨둔 애인한테라도 연락 왔어?”
매형의 농이 들리지도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TV는 없다. 젠장, 객실까지 가는 수밖에 없나.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승강기로 뛰어간다.
내가 뛰자, 멀뚱히 근처에서 대기하던 경호원들도 덩달아 뛰기 시작한다.
“야! 강현우! 무슨 일이야?”
“녀석에게 또 문자가 왔어요. 전에 문자 보낸 그 녀석요.”
“뭐?”
뛰면서 급히 미국의 샤오후에게 연락을 넣는다.
다행히 그는 바로 연락을 받았다.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녀석에게 또 연락이 왔습니다. 전에 예고 문자를 보낸 unknown요. 혹시 추적 결과 나왔습니까?”
-얼마 전에 나왔습니다. 문자의 발신지는 닉스 소프트 본사였습니다.
“문자를 닉스 내부자가 보낸 거라고요?”
-일단은…….
툭.
잡음과 함께 통화가 끊긴다.
승강기에 탄 탓에 신호가 끊어져 버린 것이다.
“젠장, 이럴 때.”
초조하게 승강기가 도착하길 기다렸다가,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밖으로 튀어 나간다.
호텔 지리를 잘 알았기에 방까지 도착하는 건 30초면 충분했다.
문제는 호텔 TV 채널 중 CNN이 몇 번이냐는 거다.
“무슨 채널이 이리 많아.”
쌍욕을 하며 꾹꾹 리모컨을 누르는 와중에, 영어가 흘러나오는 채널을 찾았다. CNN이었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포드 자동차 CFO인 루이스 콜린의 비리가 담긴 음성 파일이 유튜브에 게시됐습니다. 그가 지리 자동차와 불법적인 커넥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