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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103화 (103/206)

기적의 IT 재벌 103화

내가 아마존을 노리고 있다는 걸 버핏이 어떻게 안 거지?

손바닥에서 흐르던 땀이, 이젠 등 뒤를 축축하게 적실 정도로 퍼진 상태다.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버핏의 속내를 읽을 순 없었다.

젠장, 상대는 내 패를 훤히 보고 있는데, 나는 눈을 가린 채 포커를 치는 꼴이라니. 이런 판에서 이기려 드는 건 요행을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럴 땐 복잡한 변화구보다 직구로 승부하는 게 옳다.

“제가 아마존을 노리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버핏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 말할 줄 알았지. 내 정보에 따르면 지리 자동차는 볼보 측 실무진은 물론이고 스웨덴 정부와도 이미 교감을 마친 상태라고 들었네.”

어쩐지 모터쇼에서 그 발언이 있었음에도 볼보 측에서는 연락이 없었던 게 이상하다 했다.

언론을 통해서는 간간이 인수의 가능성이 있다는 소스를 흘려 댔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리 자동차와 최종 인수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액션이었구나.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지만 내색할 수는 없는 법. 난 조목조목 닉스의 행보를 설명해 나갔다.

“저희가 볼보 인수 의사를 발표하면 닉스의 가치는 단기간 급등합니다. 그때를 노려 상장과 동시에 회사채를 발행할 수만 있다면, 단숨에 아마존의 최대 주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자네가 속도를 낸다 한들, 지리 자동차의 볼보 인수가 더 빨리 끝나면 어쩔 텐가?”

“볼보를 소유하고 있는 포드 측에선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인수 경쟁사가 생겨서 가만있어도 지리 자동차에서 가격을 올려 부를 테니까요.”

“오호라. 자네 생각대로만 된다면, 뒤늦게 볼보 인수가 블러핑임이 알려지더라도 닉스의 주가는 끄떡없겠지. 허허허, 번뜩이는 기지로고. 하지만 말일세.”

버핏의 분위가 한순간에 바뀐다.

방금까지는 날카롭게 찔러 대더라도 호의적인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완전히 정반대인 적의가 느껴질 정도다.

“내가 투자하고자 하는 회사는 전기 차용 배터리로 전 세계를 장악하는 닉스일세. 인터넷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닉스가 아니란 말이지.”

“아마존을 구멍가게에 비유하시다뇨. 말씀이 너무 나가신 거 같습니다.”

“아무튼, 난 이대로는 닉스에 투자할 의향이 없어. 자네가 강행한다면 내 지분은 상장과 동시에 빼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두게나.”

옆에서 엘런이 헛숨을 집어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놀랄 만도 하지.

상장과 동시에 11%의 지분을 가진 버핏이 매도 포지션을 취한다면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질 것이다.

그건 즉, 동시에 아마존 인수도 물 건너간다는 소리고 말이다.

이 능구렁이 같은 영감탱이가 그것까지 고려하고 수를 뒀구나.

어쩐지, 나를 만나자고 한 게 아니라 엘런만 콕 찝어서 불러낸 이유가 이거였구나.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고자 심호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버핏이 내가 어떻게 나오나 관찰이라도 하듯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밀리면 앞으로도 그의 뜻대로 놀아나게 된다.

무리라는 걸 알지만…… 승부수를 던지는 수밖에 없다.

“버핏, 당신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잠시지만 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허허, 내가 뭘 오해하고 있지?”

“저는 처음부터 볼보를 블러핑용으로만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진짜 인수할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으려는 겐가? 그랬다면 더 실망이구먼. 볼보는 이미 지리 자동차에 넘어가는 게 확정이야. 포드는 어찌 설득한다 해도 스웨덴 정부와의 협의를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언성이 약간 높아져 있다.

지금까지는 철저히 내 머리 위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살짝이지만 이쯤이면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제가 볼보 인수를 블러핑으로만 쓰려 했다면, 왜 테슬라를 간판으로 세웠을까요?”

“그야 당연히 파급력을 높이기 위함이겠지. 신생 소프트웨어 회사인 닉스의 단독 인수보다 전기차에 선두주자인 테슬라가 인수한다면 업계의 시선이 우호적으로 바뀔 테니까.”

“그렇게만 생각하셨다면, 저를 너무 하수로 보신 거 같습니다.”

버핏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꿰뚫는다.

마치 잘 벼려진 창이 찔러오는 듯해서 허리를 세우고 있는 게 곤욕스러울 정도다.

“자네가 내 예측을 벗어 날 정도의 인물이라고 생각하나? 천만의 말씀이야. 지금까지 내가 봐온 경영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는 겐가?”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계속 이었다.

“그들도 하나 같이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믿었지. 하나, 수백 명의 경영자 중, 살아남은 이는 내 두 손으로 꼽을 정도란 말일세.”

“저를 실패한 경영자들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너무 불합리한 처사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제로의 상태에서 2년 만에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경영자가 있던가요?”

버핏은 음료로 목을 축이면서도 시선만은 나를 훑고 있다.

난 그가 답을 내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당신과 마주한 저는 역사상 없던 뉴타입입니다. 이런 저를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평가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자신감도 과하면 만용이 되는 법.”

“젊은이의 특권이라 생각해주시죠.”

버핏은 재미있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곤 말했다.

“그렇다면 증명해 보시게나. 무슨 수를 쓰든, 볼보를 인수할 수 있다면 닉스에 전폭적인 투자를 약속함세.”

“그것만으론 부족할 거 같습니다.”

살짝 유해졌던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는다. 그는 언짢은 듯 미간이 잔뜩 좁아져 있었다.

“뭐가 부족하다는 겐가?”

“제가 이번 일을 성공시키면 투자는 물론이고, 차후 이어질 아마존 인수에도 힘을 보태 주십시오.”

“그래서는 저울의 균형이 안 맞지.”

“제가 실패하면 닉스A 주식 15%를 주당 21달러에 넘기겠습니다.”

파격적인 제안임에도 버핏의 감정 변화는 없어 보였다.

“허허허,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젊은이로고. 기한이 상장 전까지라는 건 알고 하는 말이겠지?”

역시, 그가 노렸던 건 처음부터 닉스의 주식이었구나.

그런 의향이었다면 솔직히 내게 요청했으면 됐을 것을, 가격을 낮춰보겠다고 이런 술수까지 써대다니.

음흉한 그의 속내가 역겨울 정도였지만, 난 최대한 영업용 미소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볼보의 입장만 선회시켜도 자네가 이긴 것으로 해주지. 어떤가? 이쯤이면 후한 조건이네만.”

난 대답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를 쳐들고 있다간 이를 꽉 물고 있다는 걸 들킬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백 마디 말보다 결과로 답해드리겠습니다.”

“기대하겠네.”

펜트하우스의 통로를 성큼성큼 걸어 나와, 다시 전용 승강기에 올라탄다.

엘런은 입이 근질근질했던지 승강기에 올라서기가 무섭게 말을 걸어왔다.

“대표님, 대표님. 와, 진짜 강심장이세요. 어쩌면 버핏에게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는 거죠?”

“어떤 대답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요. 저는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그런가요?”

나도 솔직히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더라.

하지만 가만 앉아서 멍청하게 당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저는 버핏이 주식을 내다 판다고 했을 땐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 했지 뭐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요.”

내가 절대라고 장담을 해버리자, 엘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유를 여쭈어봐도 될까요?”

“간단한 이유입니다. 버핏이 닉스A 주식을 사들인 게 불과 몇 달 전입니다. 그런데 상장과 동시에 내다 판다? 그건 평소에 가치 투자를 입에 담던 자신의 말을 자신이 반박하는 꼴이 됩니다.”

“아하. 그렇다면 대표님 생각으론 그의 목적이 처음부터 닉스의 주식이었단 말이네요? 그죠?”

“그런 셈이죠 볼보를 인수하지 않는다고 닉스를 던진다는 건 땡깡부리는 어린애나 할법한 일이니까요.”

문제는 땡깡부리는 게 어린애가 아니라 세계 제일의 투자자라는 게 골치 아픈 거다.

“구체적인 방안이 있어서 딜을 하신 거죠?”

“…….”

그녀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히잇?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가린다.

“서, 설마 아무 계획도 없이 내기를 하신건…….”

“확실한 계획 같은 건 없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놀란 채로 굳어버린 석상을 보는 듯 했다.

“아, 죄송해요. 대표님 입에서 계획이 없다는 말이 너무 생소해서요.”

사실, 볼보 인수는 오래전부터 구상하던 퍼즐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생각을 안 해둔 건 아닌데…… 문제는 그게 애매하다는 거다.

“까놓고 말해서 중국의 지리 자동차는 자국에서도 저가형 모델을 만드는 그저 그런 업체입니다. 그런 곳이 중국 정부를 등에 업고 볼보를 인수한다고 나타났으니, 볼보의 임직원은 물론이고 현재 볼보를 타고 다니는 오너들까지 꺼림칙한 기분일 테죠.”

“그렇죠.”

그녀는 귀를 쫑긋 세우곤 내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런 상황에서 전기 차의 선두주자인 테슬라와 신소재 배터리로 무장한 닉스가 손을 잡고 인수전에 나선다면?”

“대중들이나 볼보의 임직원들은 대놓고 우릴 지지하게 되겠군요. 향후 의결권 싸움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하겠고요.”

“바로 그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걸리는 건 버핏의 언행이다.

정보를 꽉 틀어쥐고 있을 그가 회의적으로 말할 정도라면, 볼보는 이미 지리 자동차에게 넘어간 거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우리가 여론전을 펼친다 해서, 포드 이사진이나 스웨덴 정부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되던 안 되던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

* * *

워렌 버핏과 대면한 지 이튿날.

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라인 호텔 스위트룸을 찾았다.

내 맞은편에 앉은 사내는 포드의 CFO이자, 이번 볼보 매각의 키맨인 루이스 콜린이다. 그는 시종일관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날 응대했다.

“아시다시피 지리 자동차와의 인수 계약은 작년부터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닉스와 테슬라가 매력적인 인수처라는 것 역시 알고 있으니 조율을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는 할 말을 마쳤다는 듯 서류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한다.

“잠깐만요, 콜린.”

“용무가 남으셨습니까?”

“지리 자동차가 중국 은행에 10억 달러의 대출을 낸다고 들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외국 기업 인수에는 거저나 다름없이 돈을 빌려주니 지리로선 최대한 대출을 땡겼겠죠.”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

그는 난처하다는 듯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친다.

“이 같은 정보 고리를 연결해보면 지리 자동차가 낼 예상 인수가는 대략 16억 정도가 되겠군요. 아닙니까?”

“글쎄요. 그건 오픈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오픈할 수 없기는 개뿔. 이미 다 알고 왔어, 인마.

난 페이스를 올려 그를 몰아붙인다.

“심플하게 접근하죠. 닉스는 그보다 더 많은 인수가를 제시하겠습니다. 19억 달러면 되겠습니까?”

정확하게 찔러오는 노림수에 콜린이 흠칫 놀란 표정이다.

물론, 얼마지 않아 다시 기계적으로 말을 늘어놓았지만 말이다.

“인수가 그리 단박에 되는 게 아닙니다. 양 사 간의 긴밀한 협의를 거치고 조건을 조율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시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뇨, 인수를 바로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닉스의 조건은 단 한 가지, 닉스의 상장 전까지 인수 결과를 발표해달라는 겁니다.”

“잠깐 만요, 미스터 대니얼. 모든 일에는 절차라는 게 있는 거고…….”

난 그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고 들어갔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돈 아닙니까? 절차든 뭐든 돈 앞에서는 의미가 없어지는 법입니다.”

“그렇긴 하다만…….”

뭘 고민하는 거야? 포드에 이만큼 유리한 조건은 없어. 덥썩 물어 버리라고!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에 내 기대는 짜게 식어버린다.

“일단 이사진과 회의를 거친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런 조건에도 회의가 필요 합니까?”

“그럼, 조만간 다시 뵙기로 하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는 콜린.

뭔가 허탈하다.

왜지? 모든 전권은 그에게 있을 텐데, 이 조건을 안 받고 자리를 피한다고?

혹시, 그는 명목상 CFO고 실권은 다른 이가 쥐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인수가를 더 올리고자 함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답해줄 대상은 이미 자리에 없다.

터덜터덜 걷다 보니 차 앞까지 도착한 뒤였다.

생각의 파도 속에 휩쓸리다 보니, 내가 어떻게 주차장까지 나왔는지 모르겠다.

차에 올라타 시트에 몸을 기댄다.

“젠장…… 분명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괜히 죄 없는 핸들을 내려친다.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려는 차에, 잠잠하던 휴대폰에서 짧은 진동이 느껴진다.

혹시, 포드일까? 아니지 업무라면 전화를 했을 터.

별 기대 없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는데.

from: unknown

오늘 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 길목, 델피노드 교량 위에 해결사들 배치됨.

목표는 대니얼 강.

목적은 목표의 사살.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뭐지, 장난?

아니면 진짜 습격 예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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