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02화 (102/206)

기적의 IT 재벌 102화

역대 최대의 관람객이 몰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의 메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가 3000만 달러로 낙찰됐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중들의 가십성 사건이었고 진짜 업계를 뒤흔든 소식은 단연, 닉스와 테슬라 연합의 볼보 인수였다.

예상치 못한 대사건에 모든 언론이 이에 대해 기사를 쏟아 냈으며, 소식의 파급력은 상장을 2주 앞둔 닉스의 예상 공모가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 테슬라Z 플래티넘. 최종 낙찰가 3000만 달러!]

[테슬라와 닉스 공동으로 볼보 인수? 볼보 관계자 “아직 정해진 건 없다.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 인수를 진행 중이던 지리 자동차 “이미 인수 준비 끝나. 관계없이 인수 진행할 것.”]

[혁신과 변혁의 선두주자 테슬라&닉스 연합에 안전의 볼보가 합쳐진다. 자동차 업계 대격변 시사]

[닉스 상장 임박. 전문가들의 예상 공모가, 18달러에서 23달러 수준으로 잇달아 상향 조정.]

모터쇼가 끝난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건만, IT면과 경제면은 여전히 테슬라&닉스의 볼보 인수가 메인을 붙잡고 있었다.

이쯤이면 예상했던 것을 훌쩍 넘는 파급력이다.

엘런이 계획했던 ‘테슬라Z의 경매로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고 깜짝 발표를 진행한다.’라는 작전은 기막히게 맞아 들어간 셈이다.

인터넷 여론이라 할 수 있는 기사 댓글의 흐름도 긍정적이다.

대다수의 댓글은 이번 인수가 긍정적인 효과를 낼 거라는 의견이었고, 그로 인해 닉스가 상장하면 주식을 사 모을 의향이 있다는 댓글도 있었다.

평소 부정적인 악성 댓글로 뒤덮였던 댓글란이 너무 호의적이라 의아한 느낌이 들 정도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상장을 앞둔 터라 날 보고 싶어 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졌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했다.

얇은 스트라이프 재킷을 챙겨 들고 사무실을 나서는 데.

딱 입구에서 엘런과 마주쳤다.

“앗, 대표님 안녕하세요.”

“오오, 우리 회사의 유명인.”

그녀는 테슬라Z 경매에 출연한 탓에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카메라에만 잡혀도 관심이 집중됐을 외모에 3000만 달러짜리 자동차를 낙찰하는 기개까지 보여줬으니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정작 본인은 과한 관심이 부담스러운듯했지만 말이다.

“아이참, 대표님까지 그렇게 부르시기예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인지도가 생겼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요.”

“하나도 안 좋아요. 방송 나간 뒤부터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거 같아서 부담스럽단 말이에요.”

“음? 이전에도 시선이란 시선은 다 받고 있었으면서 무슨 그런 소리를 하시는지.”

그녀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어 온다.

“제가 시선을 받았다고요?”

“남녀불문하고 길을 걷거나 카페에 앉아 있으면 계속 힐끔힐끔 쳐다봐서 제 등이 따가울 정도던데요.”

“정말 그랬어요? 저는 전혀 모르겠던데.”

최근 들어 느낀 거지만, 엘런은 은근히 백치미가 있는 거 같다.

일과 관련된 면에선 똑 부러지면서 말이다.

두 방면에서 극과 극이라고 할까.

“아무튼,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화제가 업무의 영역으로 넘어오자, 그녀의 분위기가 재깍 진지해진다.

“우선 닉스의 홍보 모델에 관한 건입니다.”

“홍보 모델이라면?”

“예, 대표님이 추천하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 대해서입니다만…….”

그녀가 말을 흘릴 땐, 항상 내 의견에 반하는 의견이 나올 때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가 출연한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 역은 닉스에 딱 맞는 모델이 맞습니다. 그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죠. 방탕하고 자유분방한 천재. 이건 대표님의 이미지와도 흡사한 부분이고요.”

내가 어느 부분에서 방탕했는지 모르겠다만 일단 이야기를 계속하라는 듯 고갤 끄덕였다.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그의 마약 문제는 극심한 수준입니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올 이유가 있을까요? 이 건은 저뿐만 아니라 마케팅팀 전체가 반대한 사안입니다.”

“그는 완전히 새사람이 됐어요.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10년간 광고 계약 독점권은 너무 과한 조건입니다. 이번에 개봉한 아이언맨2의 반응도 전작보다는 못하다는 평이 절대다수고요.”

미래를 전혀 모르는 엘런이나 마케팅팀의 반응이 이런 것도 이해는 간다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후 아이언맨3와 이어지는 어벤저스 시리즈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의 배우가 된다.

“좋습니다. 제가 한발 물러서서 10년간 광고 계약은 물리기로 하죠.”

“옳은 선택이십니다.”

“대신, 그를 닉스의 사외이사로 영입할 겁니다.”

“대표님!”

엘런의 이어지는 말을 내가 억지로 끊는다.

“이번에 개봉한 아이언맨2 봤어요?”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오시는지…….”

“안 봤으면 같이 보러 가자고요.”

뜬금없이 훅 들어가자 엘런이 당황해서 한 걸음 물러선다.

“저, 저, 그게…… 농담하신 거죠?”

“당연히 농담이죠. 그보다 아이언맨2에는 카메오로 일론 머스크가 등장합니다. 그 이야기는 아시죠?”

입술을 삐죽 내민 그녀가 툴툴대는 투로 말한다.

“알죠. 유명한 이야기니까요. 그 외에 세트장도 지원했다고 들었어요.”

“토니 스타크라는 인물의 모티브는 하워드 휴스지만 연기에 영감을 준 인물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아이언맨2에 깜짝 등장시킨 거고요.”

그녀는 내가 내뱉은 단어를 순식간에 조합해서 결과를 추측해낸다.

“혹시 대표님은 그 자리를 원하시는 건가요? 지금 일론 머스크의 포지션인 그…….”

그녀의 추측이 나오기 전에 내가 답을 꺼내 든다.

“성공한 실리콘 밸리의 상징. 저는 그 자리를 원합니다.”

2010년까진 실리콘 밸리의 상징적 자리는 애플의 스티븐 잡스였다.

한때는 잡스처럼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2010년도부터는 머스크가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

“몽상가, 미래의 설계자, 불세출의 천재. 닉스라는 기업 전체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저는 그의 위명을 이어받길 원합니다. 마케팅에 정통한 엘런은 제 이야기가 어떤 뜻인지 알겠죠?”

“물론이에요. 스타 CEO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기업 평가가 바뀌기도 하니까요.”

실제로 테슬라는 미래에 계속된 누적 적자를 보였음에도 머스크의 비전 하나로 회사를 이끌어 나간다.

테슬라의 신용도가 정크본드급으로 강등되고 기업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래성이나 마찬가지가 됐음에도 말이다.

“그를 사외이사로 곁에 두고, 닉스의 성장을 지켜보게 할 겁니다. 로버트 입에서 머스크처럼이 아니라 대니얼처럼이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런 큰 뜻인지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너무 짧았어요.”

“아뇨. 엘런 같은 반응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로버트의 과거와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면 말이죠.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비정상인 거고요.”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는 엘런의 귓가에 대고 손가락을 딱! 튕긴다.

“앗! 깜짝이야.”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뇨, 머스크의 이미지에 대표님을 덧대보고 있었어요.”

“결과는 어떻던가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직은 쉽사리 감이 안 잡히네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머스크는 실리콘밸리에서 수년간 커리어을 쌓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를 내가 앞서려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지 감도 안 잡힌다.

“자, 이제 이야기 끝났으면 저는 가보겠습니다. 엘런은 계속 수고해주세요.”

“저기 대표님. 실례지만 지금 바쁘세요?”

“아뇨. 딱히 바쁘다기 보단, 드라이브나 한 번 하려고요. 3000만 달러짜리 차를 샀는데 가만 모셔두면 너무 아깝잖아요.”

“아으…….”

차 이야기가 나오자 허둥대는 그녀.

이럴 땐 더 놀려먹고 싶어진다.

“한 번 태워드릴까요? 제가 조수석에는 아무나 안 태우는데 엘런은 특별히 태워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 그게 아니라. 오늘 급히 잡힌 미팅이 있는데…….”

“죄송하지만 오후엔 머스크와 선약이 있어서요.”

“그렇군요…….”

그녀의 표정에서 아쉽다는 감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혹시 미팅이 누구랑 잡혔습니까?”

* * *

제로백 1.9초 시속 400㎞/h로 달릴 수 있는 슈퍼카라고 해도 샌프란시스코의 교통 체증에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카퍼레이드를 하는 속도로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지나, 세인트 로디스 호텔에 도착했다.

“펜트하우스에 묵고 계신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호텔 카운터 직원이 엘런과 날 빠르게 훑고선 말했다.

“엘런 페이지, 대니얼 강 맞으시죠?”

“맞습니다.”

“이 카드 키를 가지고 우측 끝 방의 내부 승강기를 타시면 됩니다.”

카드를 받고 라운지를 빠져나가는데 엘런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직원이 우리를 아는 거 같았죠?”

“이쪽 방면으론 소문이 빠른 샌프란시스코니까요. 아깐 파파라치도 따라붙던데요.”

“엑? 진짜예요?”

“방금은 차를 찍은 걸 겁니다. 3000만 달러짜리 차를 직접 끌고 다녔으니까요.”

“아하, 그렇겠네요.”

물론, 우리도 같이 찍었겠지만 엘런이 동요할까 봐 쓸데없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앞으로 닉스가 성장할 것을 생각하면, 나뿐만 아니라 엘런까지 경호를 붙여야 하는 거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되는 시점이다.

호텔 내부의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서자, 안쪽 편에 고급스러운 승강기가 보인다.

내부 버튼은 1과 PH가 전부인, 오직 펜트하우스 전용 승강기였다.

승강기에 먼저 올라탄 내가 말을 꺼낸다.

“일전에 닉스 서클의 빅데이터를 꺼내 쓴다고 했죠?”

“예, 최근까지 유용하게 쓰고 있어요.”

유용하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닉스 빅데이터는 닉스 서클에 쓰이는 키워드를 모아 놓은 꾸러미일 뿐이다.

기껏해야 키워드의 빈도나 통계를 두고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는 게 고작일 텐데, 어디가 유용하다는 말이지?

“참고로 이번에 테슬라Z를 3000만 달러에 낙찰받은 것도 닉스 빅데이터에서 도움을 받은 금액이에요.”

“에이, 설마요.”

“진짜예요. 닉스 빅데이터로 이번 경매에서 사람들이 예상 못할 금액의 최저치를 뽑았더니, 딱 3000만 달러가 튀어나오지 뭐예요.”

실제로 이번 경매 행사에서 3000만 달러를 정확하게 맞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상품이 상품인지라 참여자 전부가 진지하게 최종가를 예상했고, 그 때문에 대부분이 500만 달러에서 1200만 달러 사이를 써냈기 때문이다.

“우연이겠죠.”

“정말 우연일까요?”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2번은 맞는다잖아요.”

빅데이터 주제의 이야기는 여기서 끊어졌다. 전용 승강기인 만큼 순식간에 PH층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승강기에서 내리자,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실내가 펼쳐진다.

물건 하나하나가 서로 최고급으로 꾸몄다는 걸 경쟁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너무 아름다워요.”

난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는 엘런을 앞질러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이런 광경에 압도될 레벨은 졸업한 지 오래였으니까.

입구는 열려있었다.

황홀하게 치장된 기다란 복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눈빛이 강렬한 노인 한 명이 우릴 지켜보고 있었다.

난 그의 바로 앞까지 가서 손을 내밀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워렌 버핏.”

“다시 만나서 반갑네, 슈퍼스타. 그리고 당찬 아가씨도.”

시선을 받은 엘런은 우아하게 예를 갖춘다.

버핏은 흡족한 미소와 함께 우릴 응접실로 안내했다.

“자네가 준비한 깜짝쇼는 잘 봤네. 꼭 봐달라고 부탁했던 이유가 있더구만.”

봐달라고 부탁했다?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엘런의 표정으로 볼 때, 그녀가 버핏에게 연락을 넣었나 보다.

난 자연스럽게 그의 말을 받았다.

“잘 봐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말일세.”

평범한 조명 아래인데도 이상하게 그의 눈이 잠깐이지만 빛난 거 같은 착각이 든다.

“말씀하시죠.”

“머스크에게 연락을 넣어보니 두루뭉술하게 말은 하던데,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느낌이 들더구먼.”

그의 눈을 쳐다보고 있는데, 어째선지 손에 땀이 배어난다. 눈빛만으로 상대를 압박한다는 게 이런 것을 뜻하는 걸까?

난 주먹을 꽉 말아쥐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받았다.

“규모가 규모인지라, 아직 테슬라 측과 정확한 조율이 안 됐습니다.”

“허허. 그 말을 들으니 더 이상한 느낌이 듦세. 이번 인수에 매달려야 할 곳은 닉스가 아니라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테슬라 아닌가? 그런데 어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닉스가 인수를 총지휘하고 테슬라는 간판만 빌려준 느낌이 나서 말이지.”

테슬라가 필사적으로 숨기려 들던 생산 문제는 물론이고 인수의 밑그림까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니.

역시나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버핏이다.

정보력으론 상대가 안 된다.

“주체가 어떻든 간에 닉스와 테슬라가 손을 잡은 건 사실입니다. 공동으로 볼보 인수전에 나선 것 또한 사실이고요”

“그러니 그걸 빌미로 투자를 더 끌어내겠다? 이것 참 맹랑한 젊은이구먼.”

“투자 건에 대해서는…….”

내가 말을 이으려는데 버핏이 손을 들어 막아선다.

“나는 닉스에 투자할 의향이 있네. 그렇기에 자네를 오늘 이 자리에 초대한 것이고.”

그는 미리 준비해둔 서류를 내게 밀어 보인다.

그곳엔 닉스A를 주당 31달러에 15%나 추가로 매입하고 싶다는 의향서였다.

닉스A는 총 10억 주였기에 실질적으로 15%는 1억 5천 주. 즉, 46억 5천 달러의 투자가 된다.

더불어 워렌 버핏이 31달러에 추가 투자했다는 소식이 퍼지면 현행 23달러 선에서 예상되는 공모가도 덩달아 뛰게 된다.

잡아야 한다.

이건 무조건 잡아야 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그의 의미심장한 말투가 마음에 걸린다.

표정을 살펴봐도 전혀 의도를 읽을 수 없다. 젠장, 이게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차이인가.

“조건이 어떤가?”

“저희에게 유리한 조건이군요.”

“아니, 이 정도가 딱 적당해. 실제로 닉스와 테슬라가 볼보를 인수한다면 주가는 이보다 더 뛸 거라 생각하네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닉스의 성장은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이건 볼보를 진짜 인수한다는 가정하에서 제시하는 조건이야.”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진짜 인수라뇨?”

“자네 혹시, 볼보를 인수하는 척해서 투자금을 받은 뒤 다른 곳을 노리는 것 아닌가? 예를 들자면…… 아마존이라던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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