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00화
테슬라 공장에 잠입했던 우리의 기행은 5분을 못 버티고 막을 내렸다.
앞서 입구를 열어줬던 보안요원이 잔뜩 화난 표정으로 우릴 잡으러 왔기 때문이다.
현행범으로 잡힌 우리는 공장 휴게실에서 시간을 죽여야 했다.
“예상했던 거보다 빨리 들켰네요.”
“그 예상이 언제길래?”
“30분은 버틸 줄 알았거든요.”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그건 그렇고, 아까 말했던 플랜B. 그게 무슨 말이야?”
“플랜B가 플랜B죠. 한글로는 차선책.”
“누가 몰라서 물어? 그러니까, 차선책이 어떤 거길래 테슬라를…….”
매형은 휴게실 밖을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테슬라를 궁지에까지 밀어 넣어야 하는 거야? 테슬라는 우리에게 호의적이었잖아?”
“호의적인 게 생산 현황을 숨기고 은폐하는 겁니까? 우리가 손놓고 있었다면 영문도 모른 채 재고를 뒤집어썼을 겁니다.”
파나소닉에 발주한 배터리는 올해 5만 개, 내년에는 그 두 배인 10만 개다.
거기다 파나소닉 배터리 사업부의 증설까지 끌어내려면 내후년엔 20만 개를 발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B클래스 배터리의 단가는 개당 1,200만 원.
35만 개를 발주한다고 가정하면 무려 4조 2천억 원치의 배터리를 재고로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물론, 이대로 두 회사 간의 관계를 파토 낼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일방적으로 테슬라에 기대는 방식을 다른 식으로 재설계 하는 게 목적이죠.”
“테슬라는 지금 계약을 유지하려 들 텐데.”
“안 되면 억지로 손목을 비틀어서라도 되게 만들어야겠죠.”
“너…….”
그때였다.
거칠게 휴게실 문이 열린다.
“대니얼, 어째서 우리 공장에 침입한 거야?”
고성의 주인공은 공장의 주인인 일론 머스크였다.
“변명이라도 해보시지.”
머스크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난 오히려 실실 웃어가며 대답한다.
“변명요? 변명은 머스크, 당신이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라고?”
내가 적반하장으로 나오자 오히려 당황하는 눈치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대화의 주도권을 쥔다.
“공장 가동률이 이 모양이니 공개를 꺼렸던 거 아닙니까? 기껏해야 가동률 20%에 출고 제품도 온전치 못해 재가공까지 진행하던데요.”
“어, 그, 그건…….”
“이런 상태로 올해 1만 5천 대요? 지나가던 개가 웃겠습니다. 내년 초까지 2천 대나 뽑으면 다행이겠죠.”
당황한 머스크가 한 걸음 물러선다.
공장에 들어가자마자 쫓겨났으면서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냐는 표정이다.
쯧쯧, 당연하지.
난 처음부터 테슬라의 생산이 개판일지 알고 왔거든. 딱 그 부분만 체크했으니 파악이 빠를 수밖에.
“머스크, 저는 당신에게 실망했습니다. 왜 공장 가동률을 우리에게까지 은폐하려 했죠? 닉스와 테슬라는 말로만 파트너였던 겁니까?”
“끝까지 숨길 생각은 없었어. 난 그저…….”
“알고 있습니다. 내달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진행되면 테슬라의 몸값이 최고치를 경신할 테니, 그때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할 생각이었겠죠. 공장 상황은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숨기려 했던 거고요.”
“그, 그걸 어떻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테슬라는 앞으로도 수년간 적자, 적자, 또 적자로 회사가 굴러간다.
오직 전기차의 장밋빛 미래 하나로 말이다.
그런 기업이 금방 들통날 공장 가동률을 은폐하는 이유가 뭐 있겠는가? 보나마나 돈 때문이지.
“모든 문제 해결의 첫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인지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왜? 닉스가 배터리를 판매할 다른 루트를 알아보러 다니면 소문이 날까 봐 두려웠던 거겠죠. 제 말이 틀렸습니까?”
“내달 말에 예정된 회사채 발행까지만 기다려 주게. 돈이 돌기 시작하면 공장도 증설하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아직도 뭘 잘못 했는지 모르시나 보군요.”
난 그의 얼굴 앞에서 대놓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부로 닉스는 테슬라에 배터리 공급 계약을 취소하겠습니다. 사유는 생산 능력 부족으로 인한 계약 파기가 될 겁니다.”
공급 취소도 치명적인데 생산 능력 부족이라는 꼬리표까지 달린다는 건 테슬라가 지금까지 쌓았던 명성을 똥통에 처박는 행위였다.
시종일관 당황해하던 머스크도 더는 밀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반격에 나선다.
“닉스도 얼마 후면 상장이 예정돼 있을 텐데, 그러고도 멀쩡할 거라 생각하나?”
“아, 제가 말씀을 안 드렸던가요? 닉스는 벌써 다른 판매처를 찾았습니다.”
“뭐라?”
“저희도 바보는 아닙니다. 생산에 문제가 있다는 소스는 한 달 전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오늘 방문은 최종 확인이었을 뿐이고요.”
머스크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도 느꼈을 거다. 내가 내뱉는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걸.
“그래서 어디와 계약했지?”
“저의 모국 기업인 대현 자동차입니다. 그들은 이미 내년에 전기차를 출시할 예정이었더군요. 저희 배터리만 끼워 넣으면 생산은 문제없답니다. 그 외에도 토요타 쪽도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으니 우린 골라서 계약하면 됩니다. 두 업체 모두, 공장이 근처에 있으니 물류비도 아낄 수 있겠군요.”
대현과 토요타라는 말에 머스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그도 그럴 것이 두 곳 모두 세계 탑 티어급 자동차회사 아니던가?
“대니얼,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이건 일시적인 문제야. 내년에는 충분히 3만 대를 생산 할 수 있다고.”
“아뇨, 이건 생산 이전에 신뢰의 문제입니다. 더는 떠들어 봐야 의만 상할 테니 이만 일어 나보겠습니다.”
내가 일어서자, 머스크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친다.
“여기서 그냥 가면, 너랑 나는 끝이야. 알겠어?”
“마음대로 하시죠. 차후 계약파기에 이의를 제기하시려면 로펌을 통해서 이야기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난 일방적으로 말을 퍼부은 뒤 휴게실을 빠져 나왔다.
매형도 급히 나를 따라 나온다.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말이다.
“야, 강현우. 미쳤어? 플랜B가 있다더니 깽판 놓는 게 플랜B였냐?”
“깽판이라뇨. 이게 다 작전 아닙니까.”
“작전은 무슨!”
난 급히 매형의 입을 틀어막는다.
“목소리 좀 낮추시죠. 누가 듣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던 매형은 헛기침 몇 번을 하고 입을 연다.
“너도 알겠지만 대현으로 공급할 배터리는 고작 2만 개야. 연간 2만 개도 아니고 일회성 발주라고. 그거론 파나소닉에서 터져 나오는 물량을 못 쳐내.”
“저도 압니다.”
“그걸 아는 놈이 계약을 파토내자고 통보했어?”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 후면 테슬라에서 재계약하자고 찾아올 겁니다.”
“젠장, 또 나왔네. 근거 없는 자신감.”
매형은 뒷골이 땅기는지 목덜미를 주물러 댄다.
“근거야 차고도 넘치죠. 양 사의 데드라인이 다르지 않습니까.”
“무슨 데드라인?”
“닉스에 배터리 재고가 쌓여서 문제가 생기려면 내년이나 내후년은 돼야 하잖습니까. 하지만 테슬라는 당장 다음 달에 테슬라Z 2세대를 팔아야 하는데 어쩌겠습니까?”
“테슬라가 그대로 뭉개면?”
“여기서 닉스와 불화설이 터지면 주가 폭락은 물론이고 준비했던 회사채 발행도 쫑나는 겁니다. 테슬라는 이미 돈이 말랐어요.”
내 장담하건대 얼마지 않아 머스크가 찾아와서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질 거다.
제발 배터리 공급해 달라고 말이다.
“대현과 계약서가 오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장을 급습한 거도 이런 이유에서였냐?”
“그런 셈이죠. 우리 쪽은 구명줄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니까요.”
매형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 음흉한 놈.”
“음흉하다뇨. 이게 정석입니다.”
“퍽이나.”
“잘 생각해 보세요. 생산량을 속였는데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갔다면 머스크는 우릴 호구로 볼 겁니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부지기수로 벌어지겠죠. 그럴 바엔 이참에 확실하게 갈라선 다음, 상대 쪽에서 숙이고 들어오길 기다리는 게 낫습니다.”
매형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엔 근심이 가득했다.
“네 의도는 알겠다만 이번 일로 머스크와 사이가 너무 벌어질 거 같아서 걱정이다. 앞으로 얼굴 안 볼 사이도 아니잖아?”
“오히려 이번 일만 깔끔하게 끝나면 테슬라와 닉스의 관계는 더 끈끈해질 겁니다. 물론, 일방적인 짝사랑이 되겠지만요.”
* * *
테슬라 공장을 방문하고 정확히 이틀 뒤, 머스크가 직접 닉스 본사를 방문했다.
목적은 뻔했다. 양 사의 불화를 봉합하고 배터리 계약을 재개하는 것.
그걸 위해 머스크는 생산량을 숨긴 것을 직접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공장 가동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약속했다.
단순히 말뿐인 사과였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이건 서로를 죽이려는 전쟁이 아니라, 누가 더 위인지를 가르는 서열정리였으니까.
“좋습니다. 계약서를 다시 쓰시겠습니까?”
“그게 편하다면 그렇게 하지.”
옆방의 엘런을 호출해 간이 계약서를 만들게 했다.
기존의 계약보다 테슬라가 한 발 물러선 정도의 계약서가 완성됐다.
머스크의 표정이 안 좋다.
매번 승승장구만 하던 그였으니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머스크, 제가 너무 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 먼저 잘못한 건 나니까 겸허하게 받아들여야지.”
“그렇군요.”
말은 겸허하다고 했지만, 그의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언젠간 이 굴욕을 갚고 말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이래서 에고가 강한 사람들은 다루기 힘들단 말이지.
“엘런.”
옆에서 대기 중이던 엘런이 앞으로 나선다.
“예, 대표님.”
“준비한 그것을.”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서류 봉투를 머스크에게 건네줬다.
서류 봉투는 고급스러운 봉인지로 밀봉돼 있었다.
예상 못 한 물건을 받자, 머스크가 나를 바라본다.
“이게 뭔가?”
“선물입니다. 나중에 뜯어보세요. 꼭 혼자만 있을 때 보셔야 합니다.”
“뭔지 감이 안 잡히는데.”
“지금 테슬라에 꼭 필요한 녀석이 들어 있습니다.”
너무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은 탓인지 머스크가 마른 침을 꼴깍 삼킨다.
“한국의 속담 중엔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약이라는 소리군.”
“그런 셈이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머스크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서류를 챙겨 들고 떠났다.
그가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실내에 감돌던 긴장감이 한 번에 툭 터지는 느낌이다.
“후우-”
패배한 장수 같은 표정의 머스크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아직은 미움받는 데 익숙하지 않은 탓이겠지.
이런 것도 이젠 무뎌져야 할 텐데.
조용히 기다리던 엘런이 말을 건다.
“대표님, 커피 한잔하실래요?”
“갑자기 웬 커피입니까?”
“카페 닉스에서 새로 나온 메뉴가 정말 맛있더라고요. 풍부한 크림에 달달한 초콜릿 칩까지 토핑돼서 사르르 녹아 버려요.”
그녀가 일부러 소란을 떨어댄다. 내가 너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나 보다.
카페로 자리를 옮겼음에도 엘런은 시종일관 수다를 이어나갔다.
최근 들어 부쩍 활발해진 그녀는,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넘겨받는 느낌이다.
그녀가 신이 나서 떠들면 난 고개만 끄덕이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러다 점점 주제가 일 이야기로 옮겨간다.
“이번에 완성된 닉스서클 빅데이터 추출 말인데요.”
빅데이터라고 해서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닉스 서클에 올라오는 게시물 키워드를 정렬하고 통계를 내주는 게 고작이다.
“그거 잘 안 맞죠?”
“아뇨, 너무 잘 맞아서 큰일이던데요.”
“에이, 설마요.”
닉스 서클 빅데이터는 신뢰도가 낮아서 참고 자료쯤으로 쓰이고 있었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는데 마케팅 쪽에는 적중률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흠…… 마케팅 분야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심심풀이로 이번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대입해봤어요.”
관심 있는 키워드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듣게 된다.
“흥행 예상 성적이 글쎄, 저번 테슬라 언론 간담회보다 높게 나오더라고요.”
“믿을 수 없네요.”
“정말이에요. 빅데이터에서 뽑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주요 키워드는 테슬라Z, 전기차, 경매. 마지막으로…… 대니얼 강, 대표님이더라고요.”
뜬금없이 내 이름이 튀어나오자 당황스럽다.
“고장 났구나. 그죠?”
“프로그램은 멀쩡해요.”
“아뇨. 확실히 고장 났네요. 머스크면 몰라도 제 이름이 올라온 건 말이 안 되죠.”
엘런은 볼을 빵빵하게 불리며 노려본다.
“진짜 대표님 이름이 올라왔다니까요. 빅데이터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정확하게 뽑아 줘요. 아마도 대표님의 발표는 임팩트가 크니까 이름이 올라갔겠죠.”
“좋습니다. 그럼 전기차 테슬라Z를 제가 경매하면 흥행이 최고조가 되겠군요? 빅데이터가 그렇게 찍어 줬으니까요.”
“그거 좋은 생각 같은데요?”
엘런, 잠깐. 누가 봐도 농담이잖아.
왜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그녀는 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찻값을 3천만 달러까지 펌프질하면 그만큼 이슈가 될 거예요. 기네스북에도 오르겠죠.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오래가며, 가장 비싼 차.”
3천만 달러는 한화로는 300억이 넘는 돈이다.
그 돈으로 차를 사는 멍청한 놈이 있다면, 누군지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미련이 남으면 차라리 엘런이 참여하지 그래요?”
“정말 제가 해도 될까요?”
느낌이 싸늘하다.
그녀는 왠지 이 말을 기다렸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