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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99화 (99/206)

기적의 IT 재벌 99화

공도를 내달리자 터져 나오는 묵직한 엔진소리가 내 귓가에 박혀 든다.

닷지 차저, 미국의 대표적인 머슬카 중 하나다.

6100CC의 배기량에 걸맞은 폭발적인 파워와 더불어 야성미 넘치는 주행 질감은 조용히 튀어 나가는 전기차와 정반대의 특성을 보인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전기차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샐러리맨이고, 머슬카는 상남자 냄새를 풍기는 카우보이 같다고 할까?

차체의 정숙도, 가속력, 안정성, 연비 등등.

효율적인 면에서는 전기차의 압승이다.

하지만 내 안에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이 녀석이 채워주는 느낌이 든다.

둘의 차이를 더 알고 싶어졌다.

가속과 브레이킹, 급격한 코너링을 번갈아 해댄다.

차체가 휘청거리고 한쪽으로 기울자 조수석의 매형이 날 툭툭 건드린다.

“무슨 일이세요?”

“현우야, 나 토할 거 같으니까 조금만 살살 몰아주라.”

얼굴이 허옇게 뜬 것이 진짜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제가 너무 신냈나요?”

“나도 한국에서 말랑한 차만 타다가 머슬카를 탔을 땐, 엄청나게 밟아 대고 싶더라. 그래서 이해는 하는데…… 제발 혼자 있을 때 해주라. 응?”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전기차도 마냥 효율성을 중시하기보다, 달리는 재미도 고려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엔진소리가 잠잠해지자, 매형은 내비게이션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좌측으로 꺾은 뒤, 직진만 하면 도착이야.”

“얼마나 더 걸린대요?”

“한 10분쯤?”

우리 목적지는 프리몬트의 테슬라 공장이다.

표면상의 방문 목적은 닉스 에너지에서 인계한 신형 배터리, S클래스 플래티넘을 장착한 차량을 미리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테슬라 공장의 전기차 생산 현황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생각했던 거보다 가깝네요.”

“네가 엄청나게 밟아 댔으니 빨리 온 거지.”

뭐라 할 말이 없었기에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댔다.

“대현에서 가져온 서류는 확인해 보셨어요?”

“어, 봤다. 그거 아무래도 이상하던데.”

“뭐가요?”

매형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아는 대기업 놈들은 그렇게 퍼줄 놈들이 아니야. 쥐어짤 수 있을 만큼 쥐어짜다가 더는 나올 게 없을 때가 되면 내쳐버리지.”

“제가 아는 대기업이랑은 좀 다른데요.”

“뭐가?”

“내치는 게 아니라 마른오징어 짜내듯 쥐어 짜내다, 알아서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거 아니었습니까?”

픽 웃은 매형이 내 옆구리를 찔러댄다.

“이놈아, 그게 그거지. 아무튼, 대현 측에선 우리가 모르는 함정을 파놨을지도 몰라.”

“그거, 함정 맞아요. 라이드셰어링을 미끼로 교환소를 깔게 했다가, 전기차 보급을 끊어 버리려는 당찬 계획이죠.”

“뭐? 그걸 알면서 왜 사인했어?”

놀란 매형이 날 쳐다본다.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 채로 말이다.

“그 함정, 제가 판 거거든요.”

.

.

.

“결론은 저희 대현에게 배터리 공급을 안 하시겠다는 말입니까?”

“최 이사님.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닉스로썬 판매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왜 거절하겠습니까? 그저, 제가 특별한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어서요.”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가 나오자, 기분 나쁘다는 듯 코를 찡그리는 최승룡 이사.

하지만 내가 책상에 올려둔 가방 안을 슬쩍 보여주자.

“이, 이게 다 뭡니까?”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못 보셨습니까? 다시 보여드릴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걸 왜 여기에…….”

그는 급히 두 손을 내젓는다.

놀랄 만도 하지. 서류 가방 안에는 5만 원 권이 가득 차 있었으니까.

“이 작은 가방에 꽉 채우면 딱 5억이 들어가더군요. 정부에서 작년에 5만 원 지폐를 만든 이유는 이럴 때 쓰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최 이사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세 가지 감정이 스친다.

처음엔 당혹감.

그다음은 탐욕.

마지막은 공포였다.

“일단 가방 먼저 받으시죠. 안을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가방을 그에게 밀어줬지만,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시선은 벌써 가방 안을 훑고 있었지만 말이다.

최 이사는 목이 타는지 연신 찬물을 마셔댔다.

“제가 듣기론 임원들이 1년짜리 단기 계약이라던데, 맞습니까?”

“…….”

처음부터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기에 말을 계속 이어나간다.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똑같은 가방 3개를 더 드리겠습니다.”

“헙!”

가방 하나에 5억이니 4개면 20억이다.

당장 눈이 돌아갈 만한 액수였지만, 대현이라는 이름이 그의 이성을 잡아둔다.

“저보고 회사를 배신하란 말입니까?”

“제가 언제 배신이라는 말을 입에 담은 적이 있던가요?”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대현을 배신했다간 한국에서는 발붙이고 살 수 없습니다.”

“넘겨짚지 마시고. 내용을 보고나 이야기하시죠.”

이번은 쪽지 한 장을 넘겨준다.

가방을 받는 건 주저하던 그가 쪽지는 잽싸게 받아서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이건…….”

쪽지는 잘 짜인 각본과 같았다.

닉스와 대현의 배터리 교환소 공동 투자부터 시작해서 닉스 제로의 반쪽짜리 합법화 추진, 마지막으로 대현이 전기차 공급을 끊어서 닉스를 철수시킬 시나리오까지 쓰여 있었다.

내 눈치를 살살 보던 그가 힘겹게 입을 연다.

“상식적으로 닉스가 손해 볼 일을 돈까지 쥐여 주며 시킬 리는 없을 테고. 다른 술수가 있는 게 아닌지…….”

“최 이사님.”

그는 내가 호명한 것만으로 어깨를 움츠린다.

“닉스나 대현이 어떻게 될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저, 이 일을 상부에 올렸을 때, 자신에게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만 생각해보세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생각해보지만 리스크 같은 게 있을 리 있나.

이 일은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구현민의 뜻과 일치할뿐더러, 국내의 라이드셰어링 서비스까지 꿀꺽할 수 있는 일이다.

즉, 포상을 받으면 받았지 벌을 받을 계획은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도 최 이사는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20년 넘게 몸담은 회사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게 본능적으로 꺼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8부 능선은 넘어갔다는 소리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절벽에 걸쳐있는 그의 등을 살짝 밀어주는 거다.

“최 이사님은 구현민 부회장의 측근 중 한 분이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겁니다. 구현민 부회장이 지금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를요.”

단기 계약직인 임원들은 권력의 냄새에 민감하다.

그라면 회사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구현민이 무리해서 전기차에 손을 뻗는지 모를 리 없다.

가라앉는 배를 잡고 끝까지 버틸 것이냐, 아니면 나 혼자라도 살자고 구명조끼를 손에 쥘 것이냐.

그의 표정을 보니 대답만 안 했지 결정은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강 대표님, 잠시만요.”

자리를 뜨려던 내가 돌아선다.

“아직 궁금한 점이 남았습니까?”

“그, 그게…… 만약에 제가 돈만 받고 아무것도 안 하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런 일은 없을 거 같은데요.”

난 히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사 자리까지 올라가셨으니 잘 아시지 않습니까? 회사는 직원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걸요.”

입술을 질끈 깨문 그의 표정을 마지막으로 난 자리를 떠났다.

.

.

.

“그렇게 된 겁니다.”

이야기를 경청하던 매형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쉽게 말해, 협상하러 온 대현의 이사를 20억에 매수했다는 거네?”

“매수가 아니라 거래를 한 거죠.”

“그게 그거지. 딱 보니 라이드셰어링 법안 통과 때문에 설계했네, 그치? 나머지는 그냥 눈속임일 뿐이고.”

상황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무당급이다.

만약 매형 같은 사람이 구현민 옆에 있었다면, 작업당하는 건 역으로 내가 됐을 거다.

“서류를 보니 눈속임으로 건넨 조건들도 죄다 OK 해서 가져온 거 같던데. 이것도 예상한 거냐?”

“솔직히 기대는 안 했습니다. 최 이사가 수완이 좋은 건지, 아니면 구현민이가 멍청한 건지 둘 중 하나겠죠.”

“탐욕에 눈이 멀면 단순한 속임수도 눈치 못 채는 법이지.”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테슬라 공장이 보인다. 신축 공장이라 그런지 멀리서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현우야,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20억은 좀 과한 거 같다.”

“흠? 명색이 대현의 이산데, 그 정도 아니었으면 안 넘어왔을걸요.”

“그런 뜻이 아니라 조금만 더 보태서 정부 쪽에 다이렉트로 찔러 넣으면, 라이드셰어링의 한정적 승인이 아니라 전면 승인도 가능하다는 말이지.”

직접 정부에 로비한다?

이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매형은 이쪽 방면에 인맥이 많을 테니, 대현을 통해서 쿠션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더 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에 이번 정부 사람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잡혀가는 걸 아는 나로썬, 직접 로비하는 건 께름칙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는 달리 한국은 로비가 불법이잖아요.”

“안 하는 놈이 드물걸? 지방의 중견기업만 돼도 국회의원 하나씩은 다 끼고 있는 게 현실이야.”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기에 다른 쪽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오히려 한정적 승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닉스 제로를 운행하기 위해 전기차를 사는 수요가 생길 테니까요.”

“네 말도 일리는 있다만, 일이 그렇게까지 굴러가려면 전기차 물량을 국내에 집중시켜야 해.”

“알고 있습니다. 최소 5천 대는 공급해야 닉스 제로 서비스가 활성화되겠죠.”

5천 대는 수도권에서만 서비스가 가능한 최소의 수치다.

전국적으로 닉스 제로 서비스를 시행하려면 3만 대 이상의 전기차가 보급돼야 할 것이다.

“5천 대라…… 쉽지 않겠어.”

“그렇겠죠. 대현은 당분간 전기차를 팔아먹을 생각이 없을 테고. 테슬라 물량만으로 한국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소리니까요.”

“테슬라는 올해에 1만 5천 대, 내년엔 3만 대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으니, 아슬아슬하게 가능은 하겠어.”

2013년까지도 연간 1만 대를 못 채웠던 테슬라다.

과연 내년까지 4만 5천 대를 생산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 * *

테슬라 공장은 입구부터 경비가 삼엄했다.

산업 스파이가 활개 치는 세상이니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 정도가 좀 심하다고 할까?

“입구부터 완전 빡빡하잖아. 이래선 안으로 들어가는 건 무리 같은데.”

“되든 안 되든 해봐야죠. 이대로 테슬라에서 입 다물고 있으면 답이 없잖습니까.”

“지금이라도 머스크에게 말하고 들어가는 건 어때? 손님 자격으로 말이야.”

난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

“들여보내 줄 거였으면 진즉에 보내줬을 겁니다. 생산이든 뭐든, 문제가 있으니 공개를 꺼리는 거겠죠. 상식적으로 우리에게까지 비밀로 할 일이 뭐 있습니까?”

“최근 테슬라의 행보를 보면 구린내가 풀풀 나긴 하지.”

차를 공장 입구에 바짝 붙인다.

차단기가 입구를 막고 있었지만, CCTV로 내 얼굴을 봤는지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이야, 강현우. 많이 컸다. 얼굴이 출입증인데?”

“지난번 언론 간담회 때문인 거 같네요. 그때 머스크와 공동 발표를 했었으니까요.”

차를 주차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길.

또 한 명의 보안요원이 우릴 막아선다.

“거기 스톱!”

“닉스의 대표, 대니얼 강입니다. 저희 배터리를 탑재한 신형 테슬라Z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보안카드나 방문증이 필요합니다.”

난 휴대폰으로 미리 검색해뒀던 테슬라 뉴스를 보여준다.

“여기 당신네 CEO와 같이 찍은 사진입니다.”

“아! 닉스 챗을 만든 그 회사군요. 직함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CEO입니다.”

“앗!”

보안요원은 이제야 내 얼굴을 알아본 듯 아는 체를 한다.

“제가 온다는 소리를 못 들으셨습니까?”

“예, 아직 특별한 연락이 없어서…….”

“후우- 신원이 확실함에도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것도 이 지독한 땡볕 아래에서 말이죠.”

“아니 그게…….”

상대가 당황했을 때가 진짜 타이밍이다. 이때 몰아치면 당하는 쪽에선 정신을 못 차린다.

“제가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한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무, 물론입니다.”

“그걸 아는데 공장 안으로 못 들어갑니까?”

“규칙이 규칙인지라…….”

“규칙? 좋습니다. 머스크가 이번 일을 알게 됐을 때, 당신에게 어떤 규칙을 들이댈지 기대되는군요.”

어찌할 줄 모르던 보안요원은 결국 길을 터줬다.

그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침묵을 지키던 매형이 입을 연다.

“와우, 갑질 솜씨가 장난 아닌데? 고양이가 쥐잡 듯 잡아버리는 걸 보니, 한두 번이 아닌 거 같다?”

“갑질을 한 게 아니라 당한 적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네가 갑질을 당했다고?”

매형이 의아한 듯 되물었지만, 난 걸음을 빨리하는 것으로 답했다.

“야, 강현우!”

“잡담할 시간 없습니다. 머스크가 알기 전에 빨리 공장 안을 봐야 합니다.”

에어건 세례를 시작으로 우리는 공장에 들어섰다.

내부로 첫발을 내딛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 환경이었다.

신축 공장인 이유도 있겠지만 전 공정의 자동화가 목표인 테슬라였기에 공장의 청결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을 거다.

외부 계단을 타고 높은 곳으로 오른다.

공장이 한눈에 보일 정도의 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무언가 잘못됐다는 게 대번에 보인다.

“확실히 문제가 있네요.”

“그래, 공장 가동률이 20%도 안 되겠어.”

설비 대부분이 멈춰 있었고, 사람들이 몰려 있는 몇 안 되는 설비도 수리가 진행 중이었다.

“이런 형편없는 가동률이니 우리에게 공개를 못 했지. 이대로라면 연간 5천 대도 힘들겠어.”

“그만큼이라도 나오면 기적이죠. 기껏해야 2천 대가 한계일 겁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심했다.”

“저길 한 번 보시죠.”

내가 가리킨 곳에선 이미 완성된 차를 뜯어서 재조정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부터 열까지 수작업으로 말이다.

“제기랄,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대로라면 우리도 배터리 수급계획을 전면 다시 짜야겠어.”

“인제 와서 파나소닉에 발주한 물량을 줄일 순 없습니다.”

파나소닉과는 무리해서 위약금을 크게 걸었다.

그래야 차후 파나소닉의 배터리 사업부를 빚더미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설마, 남은 배터리를 재고로 쌓아둘 셈은 아니지? 내년엔 배터리 10만 개를 받아야 한다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전 처음부터 테슬라의 생산 계획을 안 믿었습니다.”

“그런데 왜 테슬라와 독점으로 5만 개나 계약한 거야? 앞뒤가 안 맞잖아.”

걱정이 묻어나는 질문에, 난 잠시 뜸을 들이곤 답을 내뱉었다.

“플랜B를 위해선, 테슬라를 궁지로 몰아넣을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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