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97화 (97/206)

기적의 IT 재벌 97화

대현 자동차 부회장 구현민?

처음 듣는 이름이다. 자동차 쪽은 내가 별 관심이 없었기에 그런 걸까?

“같은 성씨에 부회장이면 구동한 회장의 아들이겠군요. 그럼 장남입니까?”

“아니, 차남이야. 장남 구승현이 망나니짓을 하다 빵에 들어갔으니, 차남인 구현민이 어부지리로 부회장 자리를 꿰찬 거지.”

구승현은 들어 봤다. 아마도 그가 미래에 대현 자동차 부회장 자리를 차지하겠지.

그렇다는 건 구현민이라는 녀석은 얼마 못 버티고 밀려나나 본데.

딱히 신경 쓸 필요 없으려나? 그래도 말을 꺼냈는데 이야기는 들어 보자.

“굳이 이야기를 꺼낸 걸 보니,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인가 보죠?”

“이 바닥이 다 이어져 있는 거, 너도 알잖아?”

신용화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잔에 술을 채워 넣는다.

“부회장이면 경영 권한은 얼마나 쥐고 있습니까?”

“작년에 취임했으니 권한은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대현 자동차는 아직까지 구몽선 회장의 원맨팀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럼 의미가 없을 텐데…….”

내가 말을 흘리자 신용화는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재벌가 혈육이랍시고 높은 자리에 올라서면 일이 팍팍 돌아갈 거 같아? 절대 아냐. 아래 직원들은 물론이고 월급쟁이 사장 놈들까지 눈치나 슬슬 보면서 내 약점 캐기에 혈안이 돼 있어. 일을 진행해야 하는데 누구 하나 믿을 놈이 없으니 아주 미쳐버리는 거지. 그럴 때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아냐?”

“신규 프로젝트겠군요.”

“정답. 완전히 새로운,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해서 결과를 내고 싶어져. 성공만 한다면 온전히 자신만의 팀이 만들어지니까. 지금 구현민, 그 녀석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신용화는 이어 하려던 말을 접고선, 술을 털어 넣는다.

아마 이어 하려던 말은 ‘과거의 나처럼.’이겠지.

실제로 신용화뿐만 아니라 재벌 2세들은 그룹의 높은 자리에 오르면 하나같이 신규 사업에 손을 댔다.

결과야 뭐, 안 봐도 뻔하다고 할까? 실무 경험도 부족한 재벌가 자제들이 그룹의 힘만 믿고 진행한 사업이 잘될 리가 있나.

그 대표적인 예가 오성 그룹의 정용재가 진행한 e-오성이었다.

기세 좋게 신규 사업을 출범하고 그룹의 지원 사격까지 받았지만 1년을 못 채우고 사업을 말아먹고 만다.

그때 붙은 그의 별명이 ‘마이너스의 손’이다.

하필이면 걸린 게 대현의 회장이 아닌, 어설픈 재벌 2세 놈이라니.

“어이, 강현우.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다.”

“뭐 말입니까?”

“송사리라서 성에 안 찬다는 거 같은데. 아니냐?”

이 양반이 언제부터 독심술을 배웠나.

“솔직히 만나봤자 별 재미 못 볼 겁니다. 대현으로선 전기차 사업에 손댈 필요가 없으니까요.”

“왜? 내 생각엔 한국만큼 전기차 굴리기 좋은 지역은 없을 듯한데.”

“전기차 쓰기 좋고 나쁘고는 의미 없습니다. 내연 기관 차의 70%를 대현이 꽉 틀어쥐고 있는데 전기차를 보급하려 들겠습니까?”

“흠, 그건 그렇지.”

“해외에서 테슬라가 공격적으로 밀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 대현이 전기차를 주력으로 밀어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기껏해야 공공기관에 몇 대 팔아먹고 말겠죠.”

문제는 해결책인 테슬라도 생산이 시원찮다는 거다. 올해 1000대나 생산하면 다행이다.

난 말 없이 맥주잔 하나를 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곤 가장 독한 고량주를 따다가 꽉 채워 그에게 건넸다.

“뭐? 나보고 마시라고? 난 고량주는 안 마셔.”

“쓸데없는 거 물어온 벌입니다. 덕분에 저만 귀찮게 됐으니까요.”

싫다는 표정을 짓던 신용화였지만, 억지로 한 잔을 다 비워낸다.

“크으. 쓰다, 써.”

연거푸 물을 마셔대는 그에게 수박 한 조각을 건넨다.

“병 주고 약 주는 거냐?”

“그게 아니라 지금부터는 제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해서, 미리 친한 척하는 겁니다.”

“그러긴 이미 늦었어. 나 완전히 삐졌거든.”

“그럼, SG텔레콤이 쥐고 있는 닉스 주식, 다시 가져가야겠는데요.”

현재 SG텔레콤은 닉스A 주식 8%를 보유 중이다.

그건 예전의 5000억 투자 건으로 확보한 주식인데 주당 5달러에 샀기에 닉스가 21달러에 상장된다면 SG텔레콤으로선 4배 넘는 이익을 얻는 셈이다.

물론, 그 주식은 내가 언제든 다시 회수 할 수 있는 이면계약이 있기에 허울뿐인 주식이지만 말이다.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 하지 마라. 그거 회수하면 난 그룹에서 쫓겨난다.”

“SG텔레콤 때문에 닉스가 얻는 이득이 얼만데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습니까?”

“알면 됐고.”

신용화는 연거푸 입을 헹궈 내더니, 표정을 싹 바꾸고 말을 잇는다.

“그래. 찾아온 진짜 용건이 뭐야?”

“돈이 필요합니다.”

“제기랄.”

그는 방금 입을 헹궜으면서 또 술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잔을 거칠게 내려놓고 말을 잇는다.

“후우…… 네놈이 필요한 돈이면 한두 푼은 아니겠고.”

“30억 달러가 필요합니다.”

“30억?”

난 그의 빈 잔을 다시 채워주며 말했다.

“30억이 아니라, 30억 달러입니다. 상환 기한은 1년. 상장에 영향이 없도록 개인 거래 형태로 부탁드립니다.”

“뭐? 야 이, 미친…….”

욕이 튀어나오려는 그의 말을 틀어막는다.

“담보로는 닉스B 주식을 걸겠습니다.”

닉스B라는 말에 신용화의 움직임이 멎는다. 아예 숨 쉬는 걸 잊은 듯 숨소리까지 들리지 않는다.

의결권이 없는 닉스A와는 달리 닉스B는 의결권이 있는 진짜배기 주식이었다. 그걸 건다고 했으니 놀랄 수밖에.

“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충분히 제정신입니다.”

그는 한참동안 눈만 껌뻑거리더니.

“네가 무슨 짓을 하려고 그 돈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만, 나중에 무르기 없기다. 1년 딱 지나면 울고불고 사정해도 다 털어 갈 테니까 그리 알아.”

“물론입니다.”

* * *

“최 이사, 그래서 뺀지 맞았다고?”

“닉스 측에선 저희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그는 책상의 앉은 자신의 보스, 구현민의 눈치를 슬쩍 보며 말을 이었다.

“결정권자인 부회장님이 직접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최승룡 이사는 말을 마치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평소 구현민의 불같은 성격을 알았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는 참이다.

하지만 들려온 건 고함소리가 아닌 걸걸한 웃음소리였으니.

“하하하. 재미있네, 아주 재미있어.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어, 어떻게 할까요? 다시 한번 연락을 넣어서…….”

“아니. 됐어. 내가 직접 가지.”

최 이사가 깜짝 놀라 소리친다.

“부회장님이 가실 필요까진 없습니다. 제가 담판을 짓고 오겠습니다.”

“최 이사.”

구현민의 호명에 조건 반사적으로 그의 고개가 숙여진다.

“예, 부회장님.”

“가서 어쩌겠다는 거야? 닉스의 홈은 우리 영향력이 안 미치는 미국이야. 압박한다고 눈 하나 깜짝할 거 같아?”

“우리 대현이라면 언론과 국회를 움직일 힘이 있으니 적어도 국내 한정으론 재를 뿌릴 수 있잖습니까. 그걸로 압력을 가하면…….”

최 이사의 말을 구현민이 잘라 버린다.

“닉스 뒤에는 누가 있는데?”

국내서 닉스 뒷배를 봐주는 건 SG다.

그 때문에 국내 IT 기업들은 무차별적으로 세를 확장하는 닉스 챗과 닉스 서클을 막지 못해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최 이사가 입을 다물어 버리자, 구현민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다.

“쯧,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정이나 잡아봐. 내가 직접 촌구석으로 내려갈 테니까.”

“부회장님, 닉스의 대표라는 애송이가 일부러 기세 싸움을 하려는 겁니다. 차라리 서울로 부르는 건 어떠신지…….”

구현민이 손을 들어 올려 말을 끊는다.

“여자든 뭐든, 도도하게 튕기기는 건 딱 거사를 치르기 전까지야. 그때까지만 적당히 맞춰주자고. 무슨 뜻인지 알겠어?”

“지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가봐.”

구현민은 볼일 끝났다는 듯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지만, 어째선지 최 이사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뭐야, 할 말이 남았어?”

“저, 부회장님. 제게 묘안이 하나 있습니다.”

“묘안? 그게 뭔데.”

최 이사는 살짝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이번에 닉스와 배터리 계약을 하면서 선물을 하나 던져주는 겁니다. 라이드셰어링 서비스의 합법화라는 선물 말이지요.”

“라이드셰어링이면 닉스 제로?”

“그렇습니다.”

구현민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젓는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수지 타산이 안 맞는 일이야. 닉스 제로를 합법화시키려면 보나 마나 택시 업계에서 들고 일어날 텐데, 어떤 놈이 총대 메려고 하겠어?”

“국내 라이드셰어링 서비스를 우리 대현이 먹는다면 어떻습니까?”

솔깃한 소리에 구현민이 자세를 고쳐 잡는다.

“그게 가능해?”

“가능하게 만들어야지요.”

최 이사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본격적으로 설명에 들어갔다.

“우선 닉스와 협상할 때, 라이드셰어링 합법화를 내걸고 저울 반대편에 국내 인프라 구축을 요청하십시오.”

“배터리 교환소 말이지?”

“그렇습니다. 테슬라와 했던 조건과 같이 우리와 닉스가 절반씩 투자하자고 하면 바로 넘어올 겁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라이드셰어링은 친환경 차에만 열어주면 됩니다. 이번 정부의 기조인 녹색 성장과도 딱 맞는 일이니, 국회 통과도 손쉽게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택시 업계의 반발도 적어질 터.

대현에서 조금만 드라이브를 걸면 관련 법 통과쯤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그거랑 라이드셰어링을 우리가 먹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구현민의 물음에 최 이사는 음흉한 미소를 머금는다.

“닉스에서 밀고 있는, 교체형 배터리 전기차의 약점은 교환소라는 인프라의 선행이 필수적이라는 겁니다. 교환소가 근처에 있어야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구매할 테니까요.”

“그렇겠지. 신소재 배터리는 용량이 크고 가격은 싸지만, 자주 배터리를 갈아줘야 하니까.”

“우린 그 약점을 노리는 겁니다. 닉스가 인프라를 깔길 기다렸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전기차 보조금을 끊어 버리는 거죠.”

“보조금을 왜……? 아!”

전기차는 막대한 배터리 값 때문에 내연 기관 차보다 배는 비싸다.

실제로 테슬라에서 출시예정인 신형 세단, 테슬라S 역시 1억이 넘어갔으니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전기차 보조금을 끊어 버리면 전기차의 수요는 바닥을 칠 것이고, 덩달아 전기차에만 허용됐던 닉스 제로 역시 발이 묶인다.

“닉스가 인프라는 실컷 깔았지만, 전기차를 사는 사람이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닉스가 택할 수 있는 건, 같이 투자한 우리에게 지분을 넘기고 철수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상대가 눈치채고 배터리 공급을 끊어 버리면?”

“신소재 배터리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였지만, 2년도 안 된 신생회사가 만든 배터리입니다. 메이저 업체들이 기술을 따라오는 건 이삼 년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구현민의 머릿속에서 득과 실이라는 저울의 추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자, 최 이사가 얼른 말을 덧붙인다.

“미국에서 성공한 닉스 제로라면 국내 성공은 떼놓은 당상입니다. 국내만 저희가 먹으면 그 후에는 일본과 홍콩으로 뻗어가 아시아권 전체를 노려봄직도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전기차와 라이드셰어링 서비스의 결합은 국내 한정이면 그저 그런 사업으로 끝나겠지만, 해외까지 사정권에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용화가 SG그룹 내에서 SG컴즈를 운영하는 거처럼, 나도 대현 내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일 발판이 만들어진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안 할 이유가 없지.’

구현민은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말했다.

“최 이사.”

“말씀하시지요, 부회장님.”

“이번 일은 전적으로 최 이사에게 맡기지. 성공하면 새롭게 신설되는 자회사의 사장 자리를 약속하겠어.”

반색한 최 이사는, 고개를 푹 숙인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 이사가 집무실을 빠져나가고.

혼자 남은 구현민은 의자에 몸을 기대자, 노곤한 감각이 몰려온다.

억지로 잠을 깨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는데, 방금 도착한 메시지 하나가 떠 있었다.

from 신용화

-네가 진심으로 대하면 녀석도 진심으로 협력해 줄 거다. 하지만 이거 하난 명심해. 허튼 수작을 부렸다간 잡아먹히는 건 네 쪽이 될 테니까.

내용을 다 읽기도 전에 픽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송이에게 내가 잡아먹힌다고? 신용화, 내가 너처럼 호락호락한 놈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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