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95화 (95/206)

기적의 IT 재벌 95화

닉스페이의 독자적인 오프라인 결제 시스템 QR 결제.

내가 공개한 청사진은 새롭게 창설된 프로젝트 BC팀 직원들의 열정에 불을 붙였다.

지금 시대엔 문화 충격을 받을 정도의 혁신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까.

예비 입사자들은 앉은 자리에서 입사 지원서를 작성했으며, 기존 직원들은 BC팀 팀장인 피터를 중심으로 조직 구성에 들어갔다.

직원들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회사에 돈을 벌러 의무적으로 출근하는 것을 넘어서, 개개인이 뭔가를 이룬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만들면 결과가 나쁠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소회의실을 나온 나는 브릭을 따라 그의 개인 집무실로 향했다.

브릭의 집무실은 닉스 소프트의 사장이라는 직함치곤 좁았다. 딱 부장급이 쓰는 공간 정도라고 할까.

닉스 빌딩으로 집무실을 옮기면서 더 넓은 곳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브릭은 이 정도가 긴장을 유지하기 좋다는 말과 함께 이곳을 택했다.

“어떻습니까, 브릭. 이번 프로젝트팀, 잘 굴러갈 거 같습니까?”

“아까 못 보셨어요? 다들 눈이 반짝반짝 빛나던데요.”

난 픽 웃으며 커피잔을 집어 든다.

잔에는 닉스의 마스코트가 앙증맞게 그려져 있다. 누나가 운영 중인 카페 닉스에서 한정판으로 제작한 아이템이었다.

이 커피잔이 뭐라고 판매가 진행되는 날엔 카페 닉스 앞으로 길게 줄을 설 정도다.

“컵 어때요? 멋지죠?”

“안쪽에도 이미지를 넣었고, 마감처리도 깔끔한 거 보니. 만듦새 하난 쓸 만하네요.”

“제가 그거 구한다고 새벽부터 줄을 섰다니까요.”

아, 생각났다.

이 흔해 빠진 커피잔은 이렇게 유명세를 탈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닉스 소프트 사장이 직접 줄 서서 사간 물건이라는 기사가 나간 뒤부터 없어서 못사는 물건이 돼버렸다.

덕분에 카페 닉스 홍보는 엄청나게 됐다만, 그 기사 다음부터 브릭에겐 노숙자 사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으이그, 말을 했으면 하나 구해다 줬을 텐데.

내가 커피잔을 내려놓자, 브릭이 대뜸 말을 꺼낸다.

“보스, 이번 결제 시스템 어떻게 생각해낸 거예요?”

“음…… 불현듯, 그냥 팍 떠올랐다고나 할까요.”

거짓말을 자주 하다 보니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이번에 가져온 오프라인 결제는 정말 상식을 파괴하는 수준이에요. QR코드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 정도 일인가요?”

“당연하죠. 다른 통신 규격을 쓰려면 디바이스 자체에 모듈을 탑재해야하는데, 그건 애플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잖아요.”

아쉬운 소리를 해도 안 될 거다.

최근 들어 애플엔 잡스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닉스와의 연계도 같이 느슨해졌다.

현 상황이 이런데 애플폰에 결제 전용 모듈을 넣어 달라는 요청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궁여지책으로 내가 택한 건 우리와 같은 처지였던 텐센트에서 탑재한 위챗페이를 그대로 따오는 것이었다.

위챗페이는 알리페이와 함께, 중국의 14억 인구가 쓰는 온·오프라인 간편 결제 서비스다.

출발은 온라인 간편 이체 서비스를 주력으로 개발됐지만, 오프라인에서 쓰는 QR코드 결제.

일명 Quick Pay가 대박을 치면서 중국의 대표 결제 서비스가 됐다.

본디 카드 리더기가 드문 중국에선 카드 사용이 힘들었는데, 간단한 QR코드를 포스기에 연결해서 쓰는 방식 덕분에 중국 전역에서는 위챗페이가 메가 히트를 쳤다.

위챗페이의 보급률이 얼마나 높냐면, 중국에선 길거리의 거지도 QR코드로 구걸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 후에도 우린 커피를 마시며 업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닉스 챗 근황부터 시작해 닉스 제로 이야기까지 나오던 도중,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브릭 사장님, 피터 노먼입니다.”

“들어오세요.”

방에 들어온 피터가 내 얼굴을 보곤 흠칫거리며 놀란다.

“죄송합니다. 대표님까지 계실 줄 몰랐습니다.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혹시 제가 들으면 안 될 이야기를 가져오셨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만…….”

브릭도 거들고 나섰다.

“피터, 그러지 말고 앉아요.”

피터는 눈치를 보면서 자리에 앉는다.

그의 순둥이 같은 외모와 뽀글뽀글한 머리를 보면 알파카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의 모습은 덩치 큰 곰을 경계하는 알파카, 그 자체였다.

브릭은 그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피터는 페이팔과 비슷한 에스크로 서비스 업체를 다니다 닉스로 이직한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 BC의 팀장으로 제가 추천했고요.”

“오, 완전 적임자나 다름없네요.”

“그쵸?”

난 뻘쭘하게 앉아 있는 피터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팀원들은 어떠셨습니까?”

“솔직히, 걱정스럽습니다.”

“어떤 부분이요?”

내가 되묻자, 피터는 급히 손을 내젓는다.

“아, 오해는 말아주세요. 팀원들이 걱정스럽다는 게 아니라 팀장인 제가 걱정스럽다는 겁니다. 저는 예전 회사에서 결제 서비스 쪽은 많이 만져봤지만, 블록체인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어서 팀을 잘 이끌지 모르겠습니다.”

현시대에 블록체인 기술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피터의 걱정은 기우나 다름없다.

“그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블록체인을 적용하는 건 차후의 일이고, 우선은 온라인 결제 서비스를 먼저 구축하고, 이어서 QR코드를 이용한 오프라인 결제 시스템을 완성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닉스페이 디자인은 제가 샘플을 만들어 뒀습니다. 이걸 베이스로 작업하면 기능을 어떤 식으로 개발해야 할지 감이 잡히실 겁니다.”

준비해온 샘플 디자인이 담긴 USB를 그에게 건넨다.

피터는 공손히 USB를 집어 들고선 유리구슬을 대하 듯 조심스럽게 품안에 넣는다.

“어…… 그리고 그 외에는 뭐가 있더라.”

내가 할 말을 짜내는 사이에 피터가 입을 연다.

“저, 대표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업무에 관한 내용이라면 얼마든지요.”

피터는 아직 긴장한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전에 일하던 업체에서 느낀 겁니다만…… 핀테크 서비스는 아무래도 선점 효과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시장 선점이 중요하다는 건 모든 사업에서 통용되는 이야기지만, 핀테크 시장은 그 정도가 심했다.

핀테크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페이팔은 특출난 기술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이베이와 손잡으면서 한 방에 주류로 뛰어오른 것이고. 중국의 알리페이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중요하다마다요. 그래서 우린 닉스 챗에 탑재하는 거고요.”

“오프라인에서는 닉스 챗이 힘을 발휘하겠지만, 온라인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듯합니다. 대표님이 말씀하셨 듯 온라인 핀테크 시장은 이미 포화 직전이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닉스 챗에 QR코드를 접목한 결제는 오프라인을 타게팅했다.

피터의 말대로 온라인으로 닉스페이 결제를 유도하려면 뭔가 유인할 거리가 필요했다.

예를 들면 결제할 때 가격 할인을 해준다거나 포인트 적립 따위의 당근 말이다.

“혹시, 경험담입니까?”

“예, 제가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끝끝내 판로를 못 뚫고 타 업체에 흡수됐습니다.”

결제 플랫폼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당연히 큰 업체들은 자체 플랫폼을 쓰려했고, 작은 업체들은 범용성이 뛰어난, 이미 널리 쓰이는 페이팔 따위의 플랫폼을 쓰려 한다.

사실상 중소 규모의 결제 플랫폼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하곤 했습니다.”

“생각하니 답이 나오던가요?”

“조금은요. 사실, 이게 가능한 일인지 저도 감이 안 잡혀서 말을 해야 하나 조심스럽습니다만…….”

“말해보세요.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피터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온라인 결제 빈도가 가장 높은, 인터넷 쇼핑몰 1위인 아마존에 닉스페이를 집어 넣는 겁니다.”

“아마존?”

“아마존!”

마지막 외침은 옆에 있던 브릭에게서 터져 나왔다.

“보스, 아마존에 넣죠. 거기 넣으면 닉스페이 대박 납니다. 가능만하다면, 아니 무조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브릭의 말을 피터가 받는다.

“지금은 아마존이 베스트바이나 월마트 같은 오프라인 유통매장에 밀리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되면 판도가 바뀔 겁니다. 집에서 손가락만 까딱하면 물건이 도착하는 세상에 살면서 뭐 하러 멀리 떨어진 매장까지 가겠습니까?”

나도 안다. 아마존은 공룡 수준이 아니라 우주괴수 급이 된다는 걸.

이놈이 얼마나 거대한 괴수가 되냐면 미래에 1조 달러에 근접하는 애플의 시가총액을 추월할 정도다.

아마존은 온라인 시장을 평정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오프라인 시장까지 진출해 유통시장 전체를 꿀꺽하려 든다.

그 때문에 오프라인 강호였던 베스트바이나, 토이저러스 같은 매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유명 백화점마저 휘청거리게 된다.

문제는 거기에 닉스가 들어갈 수 있냐가 문젠데.

아마존 급의 덩치라면 자체 결제 플랫폼을 쓰려고 하지, 이제 막 출시한 닉스페이를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시가총액 깡패인 녀석을 인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 잠깐만. 2010년인 지금은 해볼 만하잖아?

거기다 시기상, 닉스는 상장을 앞둔 터라 대규모 투자금이 들어오기 직전이다.

아마존 역시 가치를 인정받기 전이라 주가가 천장을 뚫을 수준은 아닐 테고 말이다.

보통의 상장회사는 투자를 받음과 동시에 다 써버리면 주가가 휘청거리지만, 닉스페이와 아마존의 연계를 생각하면 도리어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존 주가를 보기 위해 급히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피터가 휴대폰을 건네준다.

“여기 있습니다, 대표님.”

그의 휴대폰엔 이미 예상했다는 듯 아마존 차트가 띄워져 있었다.

그의 입가엔 묘한 미소가 떠있다.

이 녀석, 처음부터 내가 떡밥을 물 걸 알았구나. 아마 닉스가 상장 직전인 거도 고려해서 이야기 한 거겠지.

피터 노먼.

생긴 건 샌님 같은데, 속내는 보통이 아니다.

내가 차트를 보며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사이에 브릭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늘 자로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700억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네요. 억지로 협상 테이블을 열 수준이 되려면 적어도 10%는 확보해야 할텐데…… 허들이 생각했던 거보다 높단 말이죠.”

700억 달러는 우리 돈으로 85조 수준.

브릭의 말대로 아마존 주식을 10% 정도만 확보하고, 결제 서비스에 닉스페이를 채택하도록 압력을 넣는 게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하지만 욕심이 났다.

지금 시가총액이 700억 달러인 아마존은 미래에 1조 달러를 터치하고 내려온다.

그렇다는 건 즉, 주가가 지금보다 15배 이상 오를 여력이 있다는 거다.

나보다 덩치가 큰 녀석을 사냥하려면…… 역시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겠지.

머릿속에 수많은 계획이 스쳐 지나간다.

닉스가 상장하고 받은 투자금과 더불어, 닉스에 우호적인 JP모건, 레드스톤, 워렌 버핏.

이들을 움직이면 아마존의 경영권을 빼앗아 올 수도 있다.

그때 브릭이 내 옆구리를 콕콕 찔러 댄다.

“음? 무슨 일이에요.”

“아까부터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요.”

“아, 그랬나요?”

브릭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 보인다.

“벌써 닉스페이를 아마존에 넣을 생각으로 머리를 팍팍 돌리고 계시는가 보네요.”

“넣는 건 문제가 없을 겁니다. 투자사들을 종용해서 지분을 얻으면 억지로 협상하려 들 테니까요.”

“팔을 비틀어서 빼앗겠다는 말이네요.”

“아마존도 멀쩡한 자사 결제 플랫폼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닉스페이를 넣는 건 돈을 때려 박으면 가능하다. 문제는 그 와중에 다른 욕심이 생겼다는 거다.

아마존이라는 기업은 단순히 인터넷 쇼핑몰만 운영하는 게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웹 서비스를 운영 중이고, 태블릿PC와 스마트폰 제조. 더 나아가 보험, 은행, 편의점까지 진출한다.

즉, 지금 지분을 얻어 두면 닉스와 연계할 곳은 무궁무진 했다.

그 때문에 다른 투자사를 끌어들여 일시적인 의결권을 손에 넣는 게 아닌, 아마존 주식의 일부라도 내가 직접 소유하고 싶어졌다.

물론 내가 원하는 건 경영권이 아니다.

현 아마존의 CEO인 제프 베조스를 가만둬도 주식이 1조 달러를 뚫어 버리는데 뭐 하러 그를 끌어 내리겠는가?

지금으로선 그가 사임하겠다고 해도 바짓가랑이를 잡고 붙잡아야 할 판이다.

내가 얻어야 할 건 아마존의 핸들이 아니라 아마존이라는 기업 그 자체다.

그렇다면 외부의 자원이 아니라 닉스, 혹은 내 개인재산으로 현찰 박치기를 해야 한다는 말인데…….

스케일이 너무 커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다.

이럴 땐 나 혼자 끙끙 앓는 거보다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자.

다행스럽게도 내 가장 가까운 곳에 투자, 기업 인수의 특급 전문가들이 있지 않던가.

갖고 싶다.

탐난다.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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