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93화 (93/206)

기적의 IT 재벌 93화

농촌 마을 영릉.

연 단위로 풍경이 바뀌는 도시와는 달리, 시골의 풍경은 언제나 그대로다.

코를 찌르는 풀냄새와 줄지어 심어진 벼, 산등성이를 둘러싼 우거진 초목까지도 변한 게 없다.

“여기도 1년만인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골 풍경이지만, 저 멀리서 석양에 반짝이는 태양광 패널들 때문에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영릉의 입구부터 차가 거북이걸음을 시작했다.

이유는 좁은 도로에 쌓여 있는 퇴비 포대나 짚단 더미 때문인데, 그 사이로는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공간이 고작이었다.

운전기사가 그 좁디좁은 공간을 빠져나가기 위해 연신 창밖을 내다보며 핸들을 돌려댄다.

자칫 잘못하다간 논두렁으로 차가 굴러갈 상황이다.

“기사님, 여기서부터는 걸어가겠습니다. 마을 입구서 대기해주세요.”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통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차바퀴를 부지런히 돌리더니, 아슬아슬하게 장애물 사이를 빠져나간다.

공사가 지연된다더니, 이 장애물들 때문인가?

드문드문 쌓여 있는 짐들 사이엔 승용차나 1톤 트럭이 간신히 지나갈 공간은 있었지만, 공장 건설을 위한 덤프트럭의 통행은 절대 무리였다.

이건 그냥 쌓아둔 게 아니라 공사를 방해할 작정을 하고 쌓아둔 거다. 공사 업체들에 돈이라도 뜯을 심산이겠지.

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릉 지역은 이미 한차례 뜨거운 맛을 봤을 텐데, 또 이런 짓을 벌이다니.

똥개가 똥을 못 끊는다고, 못된 버릇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내가 마을회관에 도착했을 땐, 이미 회의가 막바지에 접어든 뒤였다.

테이블 한쪽에는 손만호 이사와 공장 건설업체 직원들이, 반대편에는 마을 이장과 간부들이 마주 앉아 있다.

그리고 마을회관 입구에는 마을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몰려 있다.

나 역시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회의를 경청했다.

“방금 그 말이 모두 사실이가?”

“맞습니다, 이장님.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이장은 손만호 이사를 못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다시 한번 되묻는다.

“진짜 닉스서 돈을 준다꼬?”

“돈을 드리는 게 아니라, 어르신들이나 자제분들을 닉스에 취직시켜드리는 겁니다. 급여는 당연히 도시 수준으로 지급될 거고요.”

“여따가 짓는 게 뭐 하는 긴데?”

“자동차 부품인 배터리를 만드는 공장입니다.”

부품 공장이라는 말에 이장의 입술이 실룩거린다.

“마, 됐다. 치아라. 내가 부품 공장 취직 시킬라고 도와줘야겠나?”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공사에 협조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곧 도로가 깔리겠지만, 그전에는 농로를 같이 써야지 않습니까.”

“그라믄 쓰면 되지.”

“지금은 농기계나 적재물 때문에 공사 차량이 드나드는데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일부러 막았다는 기가? 어?”

이장은 눈을 뒤집고 펄쩍펄쩍 뛰어댄다.

“아니, 어르신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라? 안 꺼지나? 이걸 확 마!”

삿대질까지 해대며 큰소리치는 이장과 쩔쩔매는 직원들.

거기다 주민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까지 종합해 보면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다.

마을회관에 주민들까지 모아 둔 걸 보니, 이장은 처음부터 이 그림을 보여줄 심산이었겠지.

이건 자신의 권위를 세워서 공장 건설 방해를 정당화시키려는 개수작이다.

“이장님 그러지 마시고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도로가 깔릴 때까지만 농로를 비워주시면 마을회관도 새 것으로 지어 드리겠습니다.”

“치아라고 했제?”

보다 못한 내가 앞으로 나섰다.

“손만호 이사님.”

“어, 대표님?”

“얼굴색이 안 좋군요. 고생 많이 하셨나 봅니다.”

“그게 저…… 그러니까.”

안색이 안 좋을 만도 하지.

공장 지대를 영릉으로 추천한 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손 이사 자신이다. 그렇기에 내게 뭐라 말도 못 하고 끙끙대고 있었으리라.

우리의 대화 도중에 이장이 끼어든다.

“닌 또 누꼬?”

마을서 보기 힘든 젊은 것이 튀어나와선지 이장이 내 얼굴을 하나씩 뜯어본다.

“제가 여기 공장의 사장입니다.”

“이리 젊은 데 사장이라고?”

“예.”

이장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손만호 이사를 쳐다본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래, 닌 무슨 얘기를 할라고?”

“이 지역에 공장을 지어도 되는지 허락을 맡으러 왔습니다.”

“허락? 왜, 내가 싫다면 안 지을 긴가 보네?”

“허락을 못 받으면 철수해야지 않겠습니까?”

이장은 내 의도를 지레짐작한 듯 혀를 끌끌 찬다.

“이거, 사장이라더만 웃긴 놈이 왔네. 그래, 철수 할라면 철수해라. 내가 눈 하나 깜짝할 줄 아나?”

“괜찮으시겠습니까. 닉스 에너지 공장이 못 들어서면 기존의 태양광 발전소도 전부 철수해야 할 텐데요.”

태양광 발전소까지 철수한다는 말이 들려오자, 입구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어마, 안 되는데. 내도 그렇고 저짝에 영수 아빠도 발전소에서 일한다아이가.”

“우리도다. 저거 생긴 뒤로 농사 안 해서 좋았는데. 가뿌면 우짜노?”

“안 된다. 퍼뜩 이장님 말리 바라.”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이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조용해바라! 여기가 시장바닥이가?”

목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저마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태양광 패널을 청소 관리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영릉 지역 주민이었기 때문이다.

“수철이 느그는 원래 농사짓고 살았다이가? 다시 농사지으면 되지 뭐 그리 말이 많노?”

“아이고, 이장님. 발전소에서 일하면 농사짓는 거보다 훨씬 돈도 마이주고 편한데 뭐 한다꼬 다시 농사를 짓습니까? 그리고 수철이 아빠는 이제 허리가 안 좋아서 농사는 무리다 아입니까.”

“뭐라꼬?”

이장이 눈을 부라렸지만, 주민들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 생계가 달린 문제였으니 오죽하겠는가.

버티다 못한 이장이 다시 나를 돌아본다.

“니 말하는 게 진짜가?”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영릉에 태양광 발전을 시작한 이유는 처음부터 배터리 공장과 연계하려고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공장을 못 짓는다면 저희로선 여길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거죠.”

“태양광 저거로 돈 벌어 묵는 거 아니고?”

난 일부러 비웃는 듯한 웃음을 흘린다.

“저거 해봐야 얼마나 먹겠습니까? 기업이 저 정도 전기 팔아먹는 건 껌값도 안 됩니다.”

사실 태양광은 돈이 된다. 정부에서 보조금 명목으로 엄청나게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으음…….”

“이장 어르신, 조선팔도에 싸고 넓은 땅은 널렸습니다. 공장 설립을 반기는 곳도 많고요.”

이장은 내 말의 사실 여부를 파악하지 못해 난처한 표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혼을 빼놔야 한다. 허튼 생각을 못 하게 말이다.

“혹시, 이장님은 영릉 지역에 서는 공장이 얼마짜린지 아십니까?”

“내가 으예 아노.”

“5억 달러짜립니다. 5억 원이 아니라 5억 달러요. 한화로 계산하면 6천억이 넘습니다.”

“헙.”

말문이 막힌 이장이 눈만 껌뻑거린다.

표정을 보니 전혀 몰랐다는 눈치다.

영릉에 들어선 외지 건물이라곤 태양광 판때기 밖에 없으니 그럴 만도 하지.

“이 정도 규모 공장이 들어서면, 사람이 몰릴 것이고. 사람이 몰리면 편의시설이나 상가도 활성화되겠지요. 그리고 정부에선 도로도 더 넓혀 주기로 했습니다.”

“그, 그거랑 내랑 무슨 상관이고?”

“상관이 왜 없습니까. 당연히 있죠.”

난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보인다.

“근방의 땅값이 폭등합니다.”

“땅값?”

“예, 땅값요. 도로가 트이고 6천억 규모의 공장이 서는데 땅값이 안 오르고 배기겠습니까?”

이장은 불신의 눈초리로 나를 응시한다.

“진짜가?”

“이건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아, 그런데 이장님은 그런 일을 반대하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땅값에 좀 민감한 분들이 계실 텐데…….”

내가 말을 흘리자 이장의 낯빛이 바뀐다.

이장이라고 해봐야 마을의 마름 중 하나일 뿐, 시골의 진정한 실세는 마을의 땅 부자인 지역유지들이다.

이번 일이 그들 귀에 흘러가면 이장은 바로 모가지 확정이다.

“내, 내가 꼭 반대한다는 건 아이고. 좀 걱정이 돼가꼬…….”

상대가 혼란에 빠졌을 때, 바로 지금이 체크메이트를 할 타이밍이다.

“정 못 믿으시면 저희에게 땅을 파셔도 됩니다. 현재 공시지가의 딱 2배 쳐 드립니다. 영릉의 구석 땅이라도 전부 살 테니까 가져만 오시죠.”

“뭐? 2배?”

“중앙에 노른자 땅이면 3배까지도 드립니다. 언제든 땅문서만 들고 오시면 됩니다.”

땅값에 3배나 웃돈을 준다는 말에 이장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 전원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땅 인근이 개발돼서 땅값이 오른다는 소리는 꾼들의 기본 레퍼토리다.

하지만 웃돈을 주고 땅을 산다고 공언해 버렸으니, 긴가민가하던 주민들로선 한쪽으로 확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장님, 퍼뜩 해줍시다.”

“뭐 하노. 빨리해준다 안 하고. 쟈들 철수하면 이장 니가 책임질끼가?”

“해줍시다. 발전소 철수하면 안 됩니다.”

분위기는 이미 넘어갔다.

이젠 이장의 패배 선언만 남았다.

“흠흠. 내가 좀 오해한 거 같은데.”

이장은 언짢은 표정으로 운을 뗀다.

속으론 부들부들하고 있을 건데, 여기서 말을 잘 못 했다간 큰일 날 거 같으니 엉덩이를 빼려는 거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런 협상에는 더 가진 놈이 무조건 유리하다.

왜냐? 그냥 지르면 그만이거든.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장님쯤 되니까 저희랑 이렇게 협상도 하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치켜세워주자 이장의 구겨진 얼굴이 좀 펴진다. 난 비웃음을 속으로 밀어 넣고 말을 잇는다.

“앞으로는 저희가 오해하시는 일이 없도록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내가 눈으로 신호를 보내자, 능구렁이처럼 미소짓는 이장 영감. 저런 건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

“영철이 어딧노? 영철아!”

“예, 이장님.”

“내가 구루마랑 비료 포대 도로에 올리지 말라 했제?”

“그건 이장님이…….”

“시끄럽다, 이 짜슥아. 빨리 다 치아라. 알겠나?”

나를 따라 마을회관을 나서는 손만호 이사가 허허거리는 웃음을 흘린다.

“대표님 언제 오셨습니까?”

“미국에 가기 전에 잠깐 들렀습니다. 테슬라와 물량 협상을 하려면 저희 쪽 상황을 직접 봐야 할 거 같아서요.”

“면목 없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주변에 뭐만 들어선다고 하면 돈 빨아먹을 궁리만 하는 게 이 바닥인데요.”

이런 일은 시골뿐만 아니라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꾼들은 주변에 건물이 올라가면 어떻게든 걸고넘어져서 보상금을 타낸다.

한 방만 제대로 걸리면 돈 몇 백은 우습게 들어오니, 돈맛을 보면 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손만호 이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영감탱이. 돈을 얼마나 밝히는지, 지금까지 처먹인 것만 3장은 됩니다.”

“그런데 또 꼬장을 부린겁니까?”

“아이고, 말도 마세요. 돈을 좀 받아 챙기더니 더 심해졌다니까요. 장의차 한 번 더 부를까 고민했습니다.”

나와 손 이사는 서로를 보며 큭큭대며 웃었다.

“당분간은 어찌 못 할 겁니다. 땅값 오른다는데 막아서면 한국에서는 제 명에 못 살 거든요.”

“그렇겠지요. 아, 그런데 공장 설립비를 5억 달러나 집행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지금은 1억 달러만 투자합니다.”

“아까의 말은 역시 블러핑이었군요.”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은 고효율 배터리 생산공장만 지을 것이기에 1억 달러라는 겁니다. 앞으로 일반 배터리까지 생산할 공장을 지으려면, 비용은 5억 달러가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대표님, 혹시 규모를 어느 정도나 생각하시는지.”

“울산에 있는 대현 자동차 공장 크기면 되려나요.”

울산 대현이라는 말에 손만호 이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울산 대현 자동차 공장은 부지만 100만 평이 넘습니다.”

“왜요? 혹시 땅이 모자랍니까?”

“그건 아닙니다. 영릉에서 운영 중인 태양광 패널을 전량 공장 지붕으로 올려 버리면, 그 땅을 전부 공장 부지로 쓸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정도 공장이면 생산량이 어마어마할 텐데 수요가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수요?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미래에는 배터리가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될 테니까.

난 미래에서 직접 그 결과를 보고 왔다.

테슬라가 미국 네바다주에 만든 배터리 공장, 일명 기가 팩토리를 말이다.

부지만 1000만 제곱미터가 넘고 전 세계의 배터리 절반을 생산하는 괴물 같은 공장.

그곳을 5년 앞당겨서 한국에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

“그건 제가 어떻게든 해야 할 일이겠죠.”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대표님 말이라면 하늘에서 별을 딴다고 해도 믿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런 말을 하다니.”

“저도 별은 못 땁니다.”

“딴다고 해도 무조건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의 말에 내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손만호 이사는 아부를 듣기 좋게 하는 능력이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적당한 수준으로 말이다.

“대표님, 저녁은 안 드셨죠? 같이 드시겠습니까?”

“기내에서 혼자 먹어야 할 거 같습니다. 미국에서 저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저도 같이 가시죠.”

공장 건설로 한창 바쁠 사람이 미국에 왜 간다고 하는 거지?

내가 멀뚱히 쳐다보자.

“제가 미국에 간다는 게 아니라 김해공항까지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대표님이 전에 말씀하신 그걸 준비해뒀거든요.”

“제가 말한 그거? 뭔지 잘 모르겠는데요.”

“흐흐, 가보시면 압니다.”

손만호 이사는 내가 깜짝 놀랄 걸 확신한다는 표정이다. 대체 뭘 준비했길래 저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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