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92화
내가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닉스 시큐리티 팀이 점검을 끝낸 뒤였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보안팀장인 마성진 팀장이 고개를 숙여온다.
“뭔가 나왔습니까?”
“외부의 보안장치는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 중입니다.”
그의 말대로 보안 문은 손상된 흔적 하나 없이 말끔한 상태였다.
“안은 어떻습니까?”
“실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부의 동작감지 센서, 감압식 보안장치도 정상임을 확인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정리는 제가 할 테니 시큐리티 팀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마성진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아직 저 안쪽 방을 확인 못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가 말한 ‘안쪽 방’은 내가 임시로 배터리 연구를 진행했던 간이 연구실을 뜻했다.
“보안 방은 제 생체인증이 아니면 누구도 못 열지 않나요?”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됐군요. 무슨 일 생기면 연락드리죠.”
내 강경한 태도에 보안팀장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보안팀장과 시큐리티 직원들이 오피스텔을 빠져나간다.
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여유조차 없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진짜 ‘그 녀석’인지 확인해야 했으니까.
혹시 모를 위협을 대비해 스턴건을 손에 쥔다. 그리곤 침착하게 연구실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철컥.
육중한 철문이 부드럽게 열린다.
조심스럽게 방 안을 둘러봤지만, 누군가의 침입 흔적은 없었다. 그저, PC가 혼자서 소음을 뿜으며 가동되고 있을 뿐이었다.
[채굴 작업 진행 중…….]
혹시가 역시로 바뀌는 순간이다.
“쯧, 망할 채굴기가 사람 놀라게 하고 있어.”
분명 PC를 껐다고 생각했는데 급하게 연락을 받고 나가다 보니 깜빡했나 보다.
별생각 없이 채굴 프로그램을 끄려고 한 순간, 마우스가 멈칫한다.
이거 좀 이상한데.
내가 비트 코인 채굴기를 설치한 건 맞다. 채팅방에서 들은 정보를 검증하는 차원에서 시험 가동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채굴 상태가 좀 이상하다.
채굴 작업 진행 중…….
채굴 속도 620.5/h
보유 비트 코인 : 2120개
내가 알기론 최신형 PC로 채굴했을 때, 시간당 230개의 비트 코인을 캔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채굴속도는 그보다 배 이상 빠른 속도였다.
“버그라도 난 건가?”
혹시 하는 생각으로 다시 비트 코인 폴더 용량을 확인한다.
[폴더 크기 : 105.77?]
용량이 또 늘었다?
채굴 지갑은 다른 폴더에 생성시켰기에 이건 순수하게 비트 코인 채굴기의 용량이었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이 녀석에겐 특별한 뭔가가 있다.
* * *
관찰 1일 차.
채굴 속도가 620/h에서 631/h로 늘었다.
미미한 수치였지만 하드웨어가 똑같은 상태에서 채굴 속도만 늘어날 수도 있는 걸까?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으니 상황을 더 지켜봐야겠다.
관찰 3일 차.
속도가 조금씩 빨라 지면서 662/h가 됐다.
가만 놔두면 계속 빨라지는 건가?
내가 알기론 비트 코인은 채굴량이 많아질수록 속도가 느려지는 거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거 같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어제부터 채굴 매커니즘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비트 코인 채굴은 초심자가 접근할 정도로 친절하게 정리된 곳이 없었기에 여러 사이트를 전전해야만 했다.
배우는 게 하루 이틀로는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관찰 4일 차.
천천히 오르던 채굴 속도가 갑자기 1,300/h를 넘어 버렸다.
뭐지?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채굴에 관한 공부를 하던 도중, 모르는 사실 하나를 알아냈다.
현재 비트 코인의 공식 채굴은 채굴효율이 낮은 CPU 연산방식을 쓰고 있었다.
그 말은 즉, 미래에 쓰이는 그래픽카드(GPU)를 쓰는 방식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내 PC에 돌아가는 채굴기는 CPU와 GPU를 둘 다 써서 채굴하고 있었다.
번외로, 오늘로 쌓인 비트 코인이 1만 개가 넘어섰다. 이제 피자 2판으로 바꿔 먹을 수 있게 된 건가.
관찰 6일 차.
채굴속도가 2000/h까지 상승했다.
비트 코인 포럼에 채굴 속도가 2000/h가 넘을 수 있냐는 질문을 했더니, 단일 PC로는 불가능하다는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몇몇은 슈퍼컴퓨터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댓글도 간혹 보인다.
나도 안다.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채굴 공부는 때려치웠다. 공부해도 이걸 알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관찰 7일 차.
채굴속도는 2,715/h.
무서울 정도로 채굴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비트 코인 폴더의 용량이 150?가 넘어갔다는 거다.
이 폴더의 파일들은 뭘 뜻하는 걸까?
다른 이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기에 답답함만 커지는 하루다.
관찰 8일 차.
관찰 1주일이 지난 후에야 오피스텔을 나섰다.
가벼운 기분전환으로 집 앞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려는데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이번 역시 외부 침입은 없었고 PC만 혼자 돌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시큐리티 팀의 분석 결과가 가관이었는데.
오피스텔에서 비트 코인과 채굴에 관한 사이트를 시간당 14,000,605회나 접속했다고 한다.
혹시……?
아니, 아니겠지. 아닐 거라 믿는다.
관찰 9일 차.
채굴 속도가 3,000/h를 돌파했다.
집을 나서는 데 또 사이렌이 울려, 데이터 전송으로 인한 사이렌을 꺼달라고 했다.
이젠 확실해졌다.
이 녀석은 스스로 PC를 켜서 채굴하고, 스스로 학습해서 채굴 속도를 높인다는 걸.
사실, 그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진짜 정체가 뭘까?
미래에서 온 변종 채굴기? 아니면 채굴 바이러스? 그도 아니면 알파고의 채굴 버전일지도 모른다.
관찰 9일 차(2).
고성능 PC 5대를 연구실에 더 들였다.
채굴기가 병렬로 PC 자원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공유기까지 설치하고 PC 6대를 나란히 놨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내가 채굴기를 너무 과대평가한 걸까?
관찰 11일 차.
녀석은 이틀 만에 5대의 PC 자원을 끌어 쓰는 방법을 익혔다.
덕분에 채굴속도는 12,200/h를 넘어섰으며 지금도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11일 동안 채굴된 비트 코인은 67만 개.
현재 가치로는 피자 134판이지만, 미래에 2,600만 원까지 시세가 치솟았을 때로 계산하면 17조라는 어마어마한 수치가 된다.
이쯤 되자,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이 녀석을 계속 켜두면 언제까지 빨라 질 수 있는 걸까?
그보다 비트 코인에는 채굴 한도인 2100만 개에 도달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자동으로 꺼지나? 아니, 그게 가능하긴 할까?
* * *
오늘로써 관찰 2주 차에 접어들었다.
끝을 모르고 치솟던 채굴속도는 13,600/h에서 정체됐다.
엄밀히 따지면 정체가 아니라 채굴 난이도 상승이 채굴기의 발전을 상쇄해서 평형을 유지한다고 해야겠지.
어찌 됐든, 그사이에도 채굴은 차곡차곡 진행돼 내 지갑의 비트 코인 숫자는 벌써 80만 개를 넘어섰다.
시간당 1만3천 개, 하루에 30만 개를 채굴하는 속도였으니.
한 달만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900만 개의 비트 코인을 채굴하는 셈이다.
지금 보유량까지 합치면 대략 1000만 개가 되는 건가?
“미쳤군.”
미쳤다는 거 말곤 할 말이 없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슬슬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 문제란, 이 채굴기의 성능이 너무 뛰어나다는 거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다른 일이면 문제가 없겠지만 비트 코인은 채굴량이 많아질수록 전 세계적으로 채굴 난이도가 상승한다.
갑자기 채굴 난이도가 폭증하자, 포럼에는 비트 코인을 채굴하던 사람들의 불평불만 글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슈퍼 컴퓨터 동원설, 비트 코인 창시자인 사토시의 농간, 보안 취약점을 이용한 불법 채굴 같은 괴소문이 돌았고 덕분에 비트 코인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을 찍었다.
이대로라면 가상화폐라는 씨앗이 싹을 틔우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릴 상황.
시선을 채굴용 모니터로 돌린다.
채굴 작업 진행 중…….
채굴 속도 13,551.6/h
보유 비트 코인 : 827,200개
녀석은 지금도 시간당 1만3천 개씩 비트 코인을 채굴해대고 있다.
여기서 PC를 병렬로 더 연결하면 채굴 속도는 계속해서 빨라질 터.
사실, 그럴 필요까지도 없었다.
채굴기를 이대로만 둬도 머지않아 전 세계 비트 코인 보유량의 51%를 채굴해 버릴 것이다.
한 개인이 51%가 넘는 비트 코인을 보유한다는 건…… 비트 코인 시스템의 붕괴를 뜻한다.
그걸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채굴기 작동을 멈춰야 했다.
“어? 잠깐만.”
순간, 한 가지 의문점이 고개를 내민다.
여기서 비트 코인이 종말을 맞이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냉정하게 따져서 7년을 기다리고 시세차익으로 이득을 취한다 한들, 그게 얼마나 될까?
많이 쳐줘도 30억 달러 남짓이 한계일 거다.
아니,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 내가 물량을 터는 즉시 비트 코인은 폭락할 테니까.
반면에 지금 비트 코인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 블록체인 기술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 없이 묻히게 된다.
그 말은 즉, 블록체인 기술을 오롯이 나 혼자서 독점하게 된다는 소리다.
7년을 기다려서 불확실한 돈을 먹는 것과 확정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닉스에서 독점하는 것.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바로 나왔다.
컴퓨터를 그대로 켜둔 채, 오피스텔을 나선다.
로비에는 연락을 받고 나온 보안팀장 마성진이 나와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마 팀장님. 오피스텔 입구를 완전히 막아주세요.”
“오피스텔 전체를 말입니까?”
“예, 전체입니다.”
뜬금없는 지시에도 마성진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큐리티 팀이든 누구든, 저 말곤 누구도 못 들어가게 해주세요. 보안도 기존보다 늘려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임시 보안 키까지 전부 삭제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해주세요.”
그대로 로비를 빠져나가려는 차에 잊은 일이 떠올랐다.
“아 참. 오피스텔에 데이터 통신량은 모니터링 중입니까?”
“그 일이 있고서부터, 모니터링은 따로 하지 않습니다. 다시 모니터링을 시작 할까요?”
“그렇게 해주세요. 이상이 생기면 즉각 보고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보안팀장에게 지시를 내리고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까만 그랜저.
평범함으로 위장한 방탄 차량이다.
차에는 이미 운전기사가 대기 중이었다.
“영릉의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으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운전사가 능숙하게 차를 핸들링한다.
차가 오피스텔을 빠져나가는 데,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아직 미련이 남은 걸까?
난 쓴웃음을 집어넣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브릭, 바쁘십니까?”
-아, 보스군요. 저보단 존슨이 바빠 죽을 지경이죠. 닉스 제로가 손이 많이 가는 사업이잖아요. 어,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전에 보낸 메일 있잖습니까.”
-아하 프로젝트 BC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요. 그거 어떻게 됐나요? 채용에 문제는 없던가요?”
-채용 대상자들 전원, 닉스라는 이름을 듣더니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온답니다. 이런 거 보면 우리 닉스가 많이 크긴 했어요. 그죠?
브릭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건너온다. 나 역시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린다.
“오늘 일 처리하고 늦게 미국으로 넘어갈 테니까, 예비 채용자들 미팅 준비 좀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아, 보스 잠시 만요.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뭐죠?”
-면접을 지켜보니, 블록체인인가 뭔가로 화폐를 만드는 거 같던데. 그 사람들 모아서 뭘 만들려는 거죠?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보스가 하는 일이니 궁금해서 잠이 안 오는 거 있죠.
“음…… 우선은 핀테크 시장을 노릴 생각입니다.”
-핀테크면 페이팔?
“비슷해요. 신기술인 블록체인을 이용한 송금서비스가 될 거 같은데…….”
-와우! 정답이었네요. 닉스챗으로 송금도 하고 결제도하고, 거기다 닉스 제로를 연계시키면. 오오오오오! 굿 아이디어입니다. 이름은 닉스페이가 되겠죠?
흥분한 브릭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뭐, 비슷해요.”
-저도 닉스 플랫폼에 결제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보스는 벌써 구체적인 플랜도 있었군요. 벌써 두근두근하는 데요?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