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91화
[error_code 37: 잘못된 응용 프로그램입니다.]
비트 코인 파일은 여전히 열리지 않는다.
용량만 101GB로 늘어났을 뿐, 그 어떤 변화 점도 찾을 수 없었다.
“뭐가 뭔지. 혼란하다 혼란해.”
혹시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닐까 싶어, 다시 한번 마우스를 조작한다.
[이 폴더는 대용량(101.67GB) 폴더입니다. 영구적으로 삭제하겠습니까? Y/N]
용량이 늘어난 건 확실하다. 내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비트 코인 프로그램을 깔아두긴 했지만…… 혹시, 이 녀석 혼자서 채굴을 한 건가?
아니, 그건 말이 안 된다. 하룻밤을 풀로 채굴했다 쳐도 얼마나 했겠는가? 늘어난 용량인 10GB는 절대 불가능한 수치다.
모니터를 빤히 쳐다보며 다른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내 짧은 지식으론 여기가 한계였다.
냉장고에서 탄산음료를 하나 꺼내 목을 축인다.
흥분감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아주 냉정하게 지금 상황을 되돌아본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잖아. 단순히 비트 코인 파일의 용량이 늘었을 뿐이야.
이게 스스로 채굴을 하든, 아니면 현재의 거래 기록을 수집해서 업데이트했든, 뭐가 정답이든 내겐 별 의미가 없잖아.
비트 코인의 가치가 제로에 가까운 시점에서, 스스로 채굴한다고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당장 비트 코인을 확보해야 한다면 ‘피자 2판 사줄 테니 비트 코인 줄 사람?’이라고 게시물을 올리면 1만 개의 비트 코인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쓸 수는 없을까?
생각해내자. 이걸 유의미하게 쓰는 방법을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계속 두뇌를 혹사해봐도 뾰족한 답은 안 나온다. 우물에서 숭늉이 솟길 바라니 될 턱이 있나.
내부에서 답을 찾을 수 없으면 외부에서 찾아야 하는 법.
경쾌하게 키보드를 두드려 인터넷에서 비트 코인 포럼을 찾아냈다.
딸깍.
포럼에 접속하자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건 비트 코인 버전을 업데이트하겠다는 공지문이었다.
“비트 코인 0.3버전 업데이트 임박이라. 비트 코인에도 버전이 있었구나.”
돈놀이만 했지 가상화폐 기술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비트 코인 업데이트라는 말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의문에 답을 찾아 포럼을 구경하던 중, 오픈 채팅방을 찾아냈다.
-무명NX님이 접속했습니다.-
로제프: 뉴비인가. 크큭, 이곳에 온 걸 환영한다.
무명NX: 반갑습니다.
로빈123: 와우. 반갑습니다라고 했어. 귀여운걸.
로제프: 진짜 뉴비였어? 정말 신기한 데. 이런 곳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무명NX: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로제프: 아냐, 아냐. 오는 이가 드물어서 너무 반가웠을 뿐이야. 방문자여. 무슨 용무로 우리 아지트를 찾았는가?
무명NX: 공지를 보니 비트 코인 업데이트가 있다던데 그게 뭔가요?
로제프: 그건 이 상남자 로제프님이 설명해주지.
로빈123: 상남자는 무슨.
로제프: 지금의 비트 코인은 완벽하진 않다. 효율성도 문제지만 보안에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고 할까.
로빈123: 숭숭 까진 아니지.
로제프: 아무튼, 초기의 비트 코인은 블록체인의 검증 과정이 쓸데없이 복잡해서 효율이 꽝인, 아주 끔찍한 녀석이었지. 업데이트는 비트 코인을 완벽한 화폐로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돼.
무명NX: 혹시, 두 분이 비트 코인의 개발자입니까? 그…… 사토시 나카모토?
로제프: 그럴 리가. 비트 코인 보완 작업은 포럼의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 중이야. 비트 코인 시스템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까.
무명NX: 그렇군요. 조금은 이해가 됐습니다.
내가 질문하면 채팅방의 사람들이 답변과 잡담을 늘어놓는 식의 채팅이 이어졌다.
이후의 답변은 대부분이 시시콜콜한 만담이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비트 코인을 유용하게 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비트 코인을 구성하는 기술인 블록체인.
그 기술을 닉스챗의 암호화에 접목한다면 어떨까?
그 외에도 닉스 제로의 결제 시스템에 쓸 수 있을 거다.
더 나아가 차후에는 투명하게 내역을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을 내세워 광고, 음원, 의료 부문에 진출할지도 모른다.
“블록체인이라는 거, 생각보다 쓸모가 많은 기술이네. 오히려 비트 코인이라는 가상화폐 때문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칠돼 있다고 해야 할까.”
이왕 블록체인 기술을 쓰기로 했으니, 다음에 취할 액션은 블록체인 전문가를 모으는 일이었다.
아직은 가상화폐나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지 못한 시기다.
그렇기에 닉스가 대대적인 공고를 내면 블록체인 인재풀을 싹쓸이할 수 있을 거다.
“덤으로 이 이상한 녀석의 정체를 알아내기도 쉬워지겠지.”
바탕화면에 놓여 있는 101?짜리 폴더를 다시 확인한다.
[이 폴더는 대용량(101.67?) 폴더입니다. 영구적으로 삭제하겠습니까? Y/N]
여전히 용량은 변하지 않는다.
어젯밤 사이엔 용량이 팍팍 늘어나던 녀석이, 어찌 지금은 잠잠한 걸까? 해답은 내가 아니라 비트 코인 전문가들이 찾아 줄 것이다.
즉시 메일함을 열고 키보드를 두드려댄다.
받는 이 : 닉스 소프트 브릭 브라이언.
제목 : 신생 프로젝트의 설립에 관한 건.
내용 : 새로운 프로젝트. 일명, 프로젝트 BC의 인원 확보와 더불어 팀장 모집을 요청합니다.
채용 조건은 비트 코인이나 블록체인에 관심 있는 프로그래머 0명…….
인원 부분에서 잠시 손이 멈춘다.
“팀원은 많을수록 좋겠지만, 일단 스무 명 정도로 시작하는 게 낫겠지? 팀장은 닉스 소프트 내부에서 승진시키기로 하고…….”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려는 차에.
드르르륵-.
드르르르륵-.
휴대폰이 떨어 대기 시작한다.
반사적으로 짜증 섞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한창 분위기 탔는데, 누구야?”
발신자는 이경훈.
“이런, 까맣게 잊고 있었어!”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잽싸게 휴대폰을 받아든다.
“여보세요.”
-야, 강현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어, 그게 그러니까…….”
조심스럽게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2시 12분.
11시에 서진서에게 전화가 왔었으니. 경훈은 휴게실에서만 3시간을 기다린 셈이다.
“아, 진짜 미안. 중요한 미팅 건이 있어서 조금 늦었어. 지금 바로 갈 테니까. 딱 거기서 기다려.”
-바로 오는 거 맞지? 안 오면 넌 사람도 아니다.
“하하, 바로 갈게.”
-휴게실에 들어오는 직원마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 같아. 뻘쭘해서 죽겠으니까 제발 좀 빨리 와라. 응?
“딱 10분만 기다려. 지금 날아가마.”
사무실에 도착하자 입구부터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대표님,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강 대표님.”
“오랜만이에요, 대표님. 다음 회식 때 참가 하시는 거죠?”
한동안 닉스 코리아에 방문이 뜸했던 탓인지 모르는 얼굴도 많아졌다.
임시 출입증을 목에 건 다른 업체 직원들도 날 아는 체 하는 거 보니 느낌이 묘하다. 내 얼굴을 아는 건가?
최근 들어 느낀 거지만, 테슬라 발표를 마친 다음부터 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진 거 같다.
“이럴 때가 아닌데.”
빠른 걸음으로 달려 휴게실 문을 딱 열었는데. 십 년은 늙은 듯한 경훈이 앉아 있다.
녀석의 상태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도로에 방치돼 말라비틀어진 잡초 같은 모습이었다.
“나 왔다.”
“빨리도 오셨네.”
“밥은 먹었냐? 먼저 나갈까?”
“직원이 불쌍해 보였는지 김밥 한 줄 주더라.”
뭐라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에 어색한 미소로 때우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휴게실이 아니라 대표실에서 기다리라 할 걸 그랬다.
화난 경훈을 다독이며 대표실로 안내했다.
녀석은 좁고 소박한 디자인의 대표실을 신기하다는 듯 둘러보기 시작한다.
“사진 찍어도 돼?”
“이미 찍고 있으면서 왜 물어보냐?”
경훈은 대표실에 놓인 배달음식 쿠폰까지 촬영을 마친 후, 내게 돌아온다.
“이쯤이면 된 듯.”
“얀마. 취재하고 싶으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다른 업체에 가서도 마찬가지야. IT업체는 보안이 생명이라 사전조율 안 하고 들이닥치면 전부 출입금지 먹어.”
“어제 네가 취재해도 된다며.”
“뭐? 내가 언제?”
사실무근이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경훈이 씩씩거리기 시작한다.
“밥 먹고 헤어질 때 그랬잖아. 생각 있으면 언제든 취재하러 오라고.”
“멍청한 놈아. 그건 ‘언제 밥 한번 먹자’ 같은 인사말이잖아.”
“아, 그런 거야?”
전혀 몰랐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녀석.
사실, 이 부분은 내가 잘못한 게 맞다.
사회 물을 먹을 대로 먹은 나로선 그게 인사말이지만,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꼬꼬마 경훈에겐 인사말이 아니라, ‘내일 취재하러 와라’라고 들릴 수도 있었으니까.
“어찌 됐든, 왔으니 취재 잘하고 가라.”
“그래야지. 기다린 시간이 얼만데.”
“어디부터 할래?”
“당연히 CEO 인터뷰가 먼저지. 회사의 얼굴 아니냐.”
난 마음대로 하라는 듯, 인터폰을 조작한다.
-예, 대표님.
“대표실에 커피 2잔 가져다주세요. 하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다른 하나는…….”
내가 경훈에게 시선을 주자.
“사과 주스 같은 것도 있냐?”
나도 모르게 한숨과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사과 주스 시원하게 해서 하나 주세요.”
-알겠습니다.
인터폰을 끊자, 경훈이 잽싸게 질문을 해온다.
“와우, 인터폰으로 음료 주문하는 거 보니까 진짜 사장님 같아.”
“그럼 가짜 사장이게?”
“그렇다는 건 아니고. 느낌이 확 산다는 거지.”
난 알짱대는 녀석을 억지로 소파에 앉힌 후, 입을 열었다.
“다른 데 가서는 사과 주스 같은 소리 말고, 그냥 ‘믹스커피 주세요’라고 해. 알겠어?”
“어…… 그래야 해?”
“당연하지. 넌 취재하러 온 기자잖아. 쥐뿔도 없는 새내기 블로그 기자.”
“참고할게.”
물가에 애를 내놓는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집에서 덕후질만 했는지, 사회 경험 바닥인 이 녀석을 보면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다.
잠시 후, 음료가 도착하자 경훈이 녀석은 또 한 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촬영 준비. 영상 인터뷰로 할까 싶어서.”
녀석의 가방에선 비디오 카메라는 물론이고, 거치시킬 삼각대와 간이 조명, 미니 반사판까지 튀어나온다.
“준비가 제대로네. 이런 걸 다 어디서 구했대?”
“우리 사촌 형이 영상 쪽 일 하시거든. 그래서 하루만 빌렸지. 내가 닉스에 인터뷰하러 간다니까 흔쾌히 빌려주시더라.”
전문가용 카메라라 그런지 크기부터 남달랐다.
저 무거운 걸 아침부터 낑낑거리며 가져왔을 녀석의 모습을 생각하니, 픽 웃음이 새 나온다.
“야, 강현우. 웃지 말고 와서 좀 도와줘. 이거 무거워 죽겠어.”
“엄살 피우지 말고 해. 다른데 인터뷰하러 가서도 도와 달라고 할래? 이게 첫 취재부터 기합 다 빠져가지곤.”
“쳇. 말이나 못 하면 밉지라도 않지.”
난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준비되길 기다렸다. 사내애는 강하게 키워야 하는 법이다.
경훈이 준비를 거의 마칠 때쯤.
요란한 경보음 소리가 대표실 안을 울린다.
삐빅-.
삐이이이이-.
삐빅-.
삐이이이이-.
“갑자기 뭔 소리야?”
반사판을 설치하던 경훈이 내 쪽을 빤히 쳐다본다.
“어? 어…… 전화 왔나 보네.”
“벨 소리도 참, 특이한 거 쓴다. 사장님들은 다 그러냐?”
“경훈아, 잠시만.”
“어디가? 야, 강현우!”
경훈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대표실 밖으로 나간다.
이건 그냥 전화 소리가 아니다. 긴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만 울리는 비상 연결음 소리였다.
전화를 받아 들자, 곧장 목소리가 넘어온다.
-대표님, 닉스 서큐리티의 마성진입니다.
“마 팀장님, 무슨 일입니까?”
-보안 오피스텔의 정보를 노리고, 누군가 침입한 거 같습니다.
오피스텔은 삼중으로 보안시설을 설치했는데 어떻게 침입한 거지?
특수 합금을 이중으로 덧대서 물리적으로 뚫기도 쉽지 않을 텐데.
진짜 큰일인 건 오피스텔 안엔 애플폰XI가 있다는 거다.
그게 외부로 유출이라도 되는 날에는…….
상상만 했는데 끔찍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현재 상황은요?”
-서큐리티 2팀이 현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근처에서 대기하던 3팀도 지원에 나섰고요.
“오피스텔 입구가 뚫린 겁니까?”
-CCTV 확인 결과,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없습니다. 실내 적외선 감지기도 멀쩡하고 말입니다. 다만, 오피스텔 내의 PC가 조작됐고 대량의 데이터 이동이 감지됐습니다.
“그럼 해킹이란 말입니까?”
-지금으로선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오피스텔 PC의 데이터라고 해봐야 나 혼자 배터리 연구를 했던 게 전부다.
지금으로선 애플폰XI만 무사하다면 피해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상한 점요?”
-예, 해킹으로 내부 정보를 노렸다면 데이터를 외부로 전송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외부의 데이터를 PC로 전송하는 양이 월등히 많습니다.
“아아, 그건 비트 코인 채굴기가 작동…….”
어, 잠깐만.
나 분명 PC 전원 내리고 나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