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90화
한때 대한민국의 전 국민이 가상화폐에 미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붐이 일었었던 때가 있었다.
코인 붐은 비트 코인으로 시작해서 이더리움, 리플, 라이트코인 등의 수백, 수천 개의 파생코인을 등장시켰고, 개중엔 하루에 5000%까지 가격이 급등하는 코인도 있었다.
로또가 못다 이뤄준 인생역전이라는 꿈을, 사람들은 코인 판에서 찾아 나섰다.
IT 전문가, 주식투자자는 물론이고 은퇴자금을 쥔 노인이나 가정주부, 학생 같은 일반인까지 코인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그들로선 가상화폐가 뭔지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간단한 터치 몇 번으로 사서 되팔 수 있었기에 가격이 오르면 다시 되팔면 된다는 생각으로 투자를 시작했으니까.
“비트 코인 맞지?”
경훈은 내 입에서 나온 단어를 듣곤 화들짝 놀란다.
“어? 맞아, 이름이 비트 코인이었지. 댓글로 비트 코인이 실물화폐를 대체 한다던가? 아무튼, 그런 식의 영업성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더라. 그런데 넌 어떻게 안 거야?”
“조금 관심이 있었거든. 한때지만.”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았지.
나 역시 코인 광풍에 참여자 중 하나였다.
그 당시, 가상화폐는 자고 일어나면 가치가 2배씩 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폭등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안 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전 국민이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였으니.
그때 내가 얼마나 투자했었더라? 퇴직금까지 땡겨서 꼬라박았으니 수천은 투자했을 거다.
최종적으로 -94%라는 투자 결과를 보고 한강에 가까운 버스표를 알아봤던 기억이 있다.
참,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의 흑역사 중 한 페이지다.
“현우야. 그럼, 컴퓨터로 누구나 생산할 수 있다는 게 진짜야?”
“음…….”
“역시 거짓말이지? 그래, 말이 안 되지. 아무리 가상의 화폐라고 해도, 누구나 생산할 수 있다면 그게 무슨 화폐야? 그냥 데이터 쪼가리지. 차라리 블루마블 돈이 더 가치가 있겠다. 그거론 게임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내가 아는 미래를 말해준다 한들, 그대로 이뤄지리란 보장이 없다.
이미 미래는 조금씩 변하고 있고, 지금의 미래엔 비트 코인이 의미 없는 데이터 장난감이 될지도 몰랐으니까.
우선은…… 기본 구조 정도만 답해주면 되겠지.
“비트 코인은 컴퓨터를 구동하는 거로 생산할 수 있어. 일명 채굴이라는 건데, 그래픽카드의 GPU를 써서 패킷을 생산해 내는 거야.”
“그게 화폐가 된다고?”
“음…… 뭐라고 해야 하나. 화폐긴 화폐인데, 지금으로선 쓸모없는 화폐지. 지급보증을 해주는 곳이 없거든.”
잘 이해가 안 되는지 경훈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난 녀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이 돈의 가치가 얼마야?”
“만 원짜리니까 만 원이지. 달러로는 8달러쯤 되겠네.”
“그치? 하지만 당장 한국이 망했다 쳐. 아주 완벽히 망해 버려서 한국이라는 국가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어.”
“멀쩡한 한국이 왜 사라져.”
“그렇다고 가정을 하는 거야, 멍청한 놈아.”
경훈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도 만 원의 가치가 만 원일까? 8달러로 미국에서 바꿔 줄 거 같아?”
“아니지. 나라가 망했으면 화폐 가치는 0이지. 양키들이 미쳤다고 바꿔주냐.”
“바로 그거야. 지급을 보증하는 곳이 없는 화폐는 가치가 없어. 하지만 그걸 누군가가 가치가 있는 무언가로 바꿔 줄 거란 기대가 생기면 없던 가치가 생길 수 있어.”
아직은 좀 애매한지 경훈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선 가치가 없다는 말이지?”
“그게 아냐. 비트 코인으로 피자를 2판 시켜 먹었으니 딱 그만큼의 가치는 있지. 사람들에겐 다음에도 비트 코인으로 피자를 시켜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으니까.”
“아깐 보증해주는 곳이 없으면 가치가 없다며.”
“한국이 망해도 원화 가치가 0이 되긴 힘들어. 다시 한국이 되살아나서 원화를 인정할 거라는 기대로 모으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한마디로 누군가 유·무형의 재화로 바꿔줄 거란 기대, 그것만 있어도 화폐의 가치는 생기는 거야.”
“세상 참 좋아졌네. 피자를 먹고 싶으면 피자 가게를 가는 게 아니라 컴퓨터로 화폐를 채굴? 아무튼, 찍어내고 주문하면 되니까.”
경훈의 반응이 부정적인 건 당연했다.
지금까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걸 대번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만약 20세기 사람에게 SNS에 대한 설명을 하려면 진땀을 빼야 할 거다.
그 후, 경훈은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묵묵히 앞서 걷기만 했다.
나 역시 녀석의 뒤를 따라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지금의 비트 코인은 걸음마 단계다.
실물 거래는 이제 첫발을 내디뎠고, 당연히 거래소도 없는. 그런 완벽한 초창기 말이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물량을 확보해 두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의 내게 의미가 있을까?
1만 개의 코인으로 피자 2판을 바꿔먹는 수준의 비트 코인이 본격적으로 화폐 대 화폐로 거래되려면 앞으로 2년의 세월이 흘러야 한다.
그때가 되면 거래소들도 하나둘 생겨나지만 마운트 곡스라는 거래소가 해킹으로 파산하면서 비트 코인의 가치는 다시 바닥을 찍는다.
비트 코인을 선점해서 이득을 보는 건 적어도 2017년까지는 돼야 할 터.
문제는 매입한 비트 코인을 어떻게 파느냐다.
기본은 분할 매도겠지.
그럼, 최적의 매도 시기는 거품이 정점인 대략 2017년 말에서 2018년 초반쯤인가?
아니, 그러다 한 방에 거품이 꺼지면 아무것도 못 해. 그 전부터 조금씩 나눠서 파는 게…… 젠장, 그러다 시장 흐름이 변해서 정점까지도 못 올라가면 어떡한담.
비트 코인이 폭등한다는 미래를 알고 있어도 ‘나’라는 변수가 생겼기에 모든 게 불확실해졌다.
대화가 끊긴 채로 산에 오르길 30분쯤 지났을까?
심각한 표정을 하던 경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현우야.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까 말한 가상화폐 말이다.”
“뭐야, 그걸 30분이나 생각 한 거냐?”
“좀 진지하게 들어봐. 진짜 심각하게 고민하고 묻는 거니까.”
“좋다. 회사 일이라 생각하고 답해주지. 됐냐?”
녀석은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질문을 꺼내놓는다.
“외국인들 댓글을 보니까, 미래에는 비트 코인이 세계의 기축통화가 될 거라고 써놨더라. 비트 코인은 절대로 변조할 수 없어서 안정성이 있다나 뭐라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모두가 장부를 기록하는 비트 코인 특성상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위조할 수 없다.
하지만 거래를 중개하는 거래소를 해킹하거나, 전체 비트 코인 중 과반을 보유해서 검증을 교란하는, 일명 51% 공격법을 쓴다거나. 그 외에도 현재는 알려지지 않은 취약점이 산적해 있다.
“외국인들 말이 맞는다 쳐도, 국가들이 화폐 기득권을 포기할 이유가 없으니 절대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은 더더욱 그렇고.”
“나도 그건 알아. 그래도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잔 말이지. 국가적 전쟁이 일어나거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거나.”
“좀비는 좀 너무 나갔다. 차라리 운석 충돌 같은 건 어때?”
딴지를 걸자, 녀석이 있는 힘껏 째려보기 시작한다.
“운석도 좀 오버긴 하지?”
“흠흠, 어찌 됐든, 한 국가의 화폐가 가치를 잃을 정도가 되면, 사람들은 보유 자산을 다른 무언가로 바꾸려 들 거 아냐. 예를 들면 금이 있겠지.”
“그치. 금은 문명이 쇠락하기 전엔 화폐의 가치를 상실하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현실에서 금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는 없잖아. 금가루로 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 대안으로 가상화폐가 쓰이지 않을까? 댓글을 달았던 외국인 말대로 보안성이 철저하다는 가정하에서 말이야.”
이미 미래엔 그런 일이 존재한다.
유가가 급락하면서 경제가 파탄 난 베네수엘라에서는 실제로 비트 코인이 경제 활동에 쓰였다.
“오, 우리 경훈이가 많이 컸네. 이런 생각을 다 하고. 이제 비트 코인을 사서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날 때까지만 버티면 되겠다. 존버하고 가즈아!”
“존버는 또 뭐야?”
“존나 버틴다는 거지.”
내가 장난스럽게 웃어대자 경훈의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다.
“얌마! 회사 일이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답해준다며.”
“아, 그랬었지.”
잠시 말을 고르고 있는데 경훈의 똘망똘망한 시선이 느껴진다. 자신이 내민 이론을 내게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눈치다.
“진지하게 말한다. 글로 썼으면 궁서체로 썼을 거다.”
“그래. 말해 봐, 어서.”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말을 이어간다.
“비트 코인의 가치는 미래에 유용하게 쓰일 거란 기대감으로 상승해. 그러니 네가 말한 가정이 한 국가에서라도 일어난다면 가치는 폭등할 거다.”
주먹을 쥐어 보이며 흐뭇한 웃음을 머금는 녀석.
“그럼 비트 코인의 가치가 얼마까지 오를까? 지금은 개당 5원쯤 하는 거 같은데.”
“1비트당 5원? 거래소가 벌써 생겼어?”
“아니. 피자 1판당 20달러 정도니까, 2판에 1만 비트 코인이면 그쯤 하지 않을까 하고 예상해본 거야.”
뻘쭘한 듯 코를 쓱쓱 훔치는 녀석.
어떤 대답을 해줄까 고민하다 그냥 사실대로 말해주기로 했다.
내겐 7년 후에나 빛을 볼 비트 코인 따위는 별 가치가 없었으니까.
“이거, 오프 더 레코드다. 기사로 내면 안 돼, 알겠지?”
진지한 표정에, 경훈은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갤 끄덕인다.
“1비트당 2,600선까지는 오르지 않을까.”
“헙! 2,600원? 500배 넘게 오른단 말이야? 진짜 그렇게 생각해?”
“아니, 1비트 코인당 2,600만 원.”
놀랐던 얼굴이 대번 찡그려진다.
“야, 강현우. 내가 진지하게 대답해달라고 했을 텐데?”
“어, 음…… 난 진지한데? 그 피자, 개당 1300억짜리 피자야.”
경훈은 흥분한 고릴라처럼 날뛰며 주먹을 날려댄다.
“썅! 데이터 쪼가리가 500만 배 오른다는 말을 누가 믿어. 이 새끼가 누굴 바보로 아나!”
“진짜라니까!”
“너, 이 새끼 잡히면 주둥이를 꿰매버린다!”
진실을 말했는데 왜 믿질 않니.
억울하다. 억울해.
* * *
그날 저녁.
난 경훈과 밥을 먹고, 곧장 서울행 KTX를 탔다.
목적지는 당연히 회사 근방의 오피스텔이었다.
저벅. 저벅.
삐로리롱-.
이중 삼중의 보안을 해체하고 현관을 열자, 나를 맞아주는 건 매캐한 먼지 냄새였다.
배터리 연구를 무자파에게 일임한 이후로,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으니 당연하다고 할까.
실내 조명과 환기장치를 작동시킨 후, 냉장고부터 열어본다.
다행이도 작년에 넣어둔 아이스크림이 그대로 살아있다.
중간에 전기가 끊어지거나 하진 않았나 보다.
냉장고 안에 있는 메로나 하나를 꺼내 들고 방으로 향한다.
방 역시 내가 마지막으로 머문 흔적 그대로다.
한때, 배터리를 혼자 개발한답시고 미친놈처럼 처박혀서 연구했을 때가 떠오른다.
“박사급 연구원들이 매달려도 못한 걸 나 혼자 하려 했었다니. 참,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무식하다고 해야 하나.”
혼자 중얼거리며 금고를 조작한다.
다시 한번 생체 인증과 비밀번호까지 입력하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금고의 문.
조심스럽게 안에 들어 있는 애플폰XI를 꺼내 든다.
배터리는 이미 탈거해서 연구용으로 써버렸기에 전원을 켜려면 외부 전원 공급장치에 연결해서 써야만 했다.
익숙한 일이었기에 모든 세팅은 오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좋아. 이제 됐다.”
반가운 애플 로고가 떠오르고, 이후 메인 페이지가 나타난다.
이어서 애플폰XI에 잠들어 있는 비트 코인 지갑을 메인 PC에 이동시킨다.
이때쯤 되자 살짝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사실, 비트 코인 따위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 시세로 1만 개의 비트 코인이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KTX 요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니까.
그럼에도 6000개 남짓했던 비트 코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겠느냐는 호기심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상식적으론 불가능 하겠지만…… 이건 그냥 비트 코인이 아니다.
나와 함께, 미래에서 넘어온 특별한 비트 코인이다.
두근. 두근.
용량이 90GB에 달했기에 전송에도 한참이 걸린다.
인고의 시간을 기다리고, 마침내 구동할 준비가 끝났다.
“자, 한 번 열어보실까.”
손을 싹싹 비빈 후, 미리 준비해둔 비트 코인 프로그램을 구동시킨다.
그리고 지갑을 개봉하려는 그 순간…….
[error_code 37: 잘못된 응용 프로그램입니다.]
“그럼 그렇지.”
비트 코인이란 지금까지의 거래 내역을 패킷에 전부 저장하고 있는, 일종의 장부나 마찬가지다.
미래에 발생할 거래를 과거로 불러오는 게 가당키나 하겠는가?
혹시 하던 기대가 짜게 식어버리자 모든 게 귀찮아졌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피로까지 겹쳐서 몰려온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야밤에 서울까지 와선. 어휴.”
방에 마련된 간이의자에 몸을 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딱딱한 침대의 감촉.
습관적으로 꺼내든 휴대폰으로 뉴스를 훑다 보니 서서히 눈꺼풀이 내려온다.
부르르.
부르르르르.
“음…….”
듣기 싫은 진동 소리에 잠이 깼다.
머리맡에 둔 휴대폰이 울어대는 소리였다.
“여보세요.”
-아, 대표님…… 주무셨네요.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시 걸겠습니다.
“아닙니다, 진서 씨. 말씀하세요.”
슬쩍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다.
이거, 시차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별일은 아닙니다. 자칭 기자라고 하는 분이 막무가내로 닉스 코리아 내부를 취재하겠다고 해서요.
“자칭 기자요?”
-예, 명함을 달라 했더니 어떤 블로그 주소가 적힌 걸 주더라고요. 정식 기자는 아닌 거 같았습니다만 대표님 명함을 들고 있어서요.
분명 경훈이 녀석일 거다. 명함을 하나 달라고 해서 줬더니. 저런데 써먹을 줄이야.
차라리 정식으로 말했으면 공식적으로 취재시켜 줬을 텐데 말이다.
“제가 가겠습니다. 휴게실에서 기다리라 하세요.”
-알겠습니다.
뚝.
몸을 일으키자, 간이침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귀찮아서 인터넷으로 주문했더니 퀼리티가 모양이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는 데, 어제 끄지 않은 PC가 아직도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도 이제 정리하든가 해야지.”
중얼거리며 의자에 앉는다.
열린 폴더에는 어제 확인했던 비트 코인 지갑이 띄워져 있었다.
별생각 없이 폴더 전체 삭제 버튼을 눌렀는데.
[이 폴더는 대용량(101.67?) 폴더라 휴지통에 넣을 수 없습니다. 영구적으로 삭제하시겠습니까? Y/N]
어, 어라? 뭐지? 101.61??
하룻밤 사이에 비트 코인 용량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