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83화
“제가 틀렸나요? 테슬라와 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지금이 상장의 적기라고 생각했는데요.”
청명한 두 눈동자가 나를 주시한다.
솔직히 놀랐다. 어떻게 ‘뉴욕 증시에 상장할 절호의 찬스’라는 답이 바로 나오는 거지? 힌트가 너무 많았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1초 만에 답이 튀어나오는 건 너무 하잖아.
놀란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엘런,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유요?”
“예.”
답을 찾는 거보다 이유를 찾는 게 더 힘든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그녀.
그러다 자그마한 입이 열린다.
“일단 테슬라의 전기차는 세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잖아요? 그러니 지금 시기와 맞물리게 상장시키면 일반 투자자들도 관심을 가질 거예요. 또 하나, 테슬라가 직접 닉스의 지분을 획득하는 절차까지 거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그건 테슬라가 닉스에 대한 보증을 서주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내 생각과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완벽한 답변이다.
그녀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꼭 끌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흡족한 답변이었습니다. 역시 보통이 아니군요.”
“이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에요.”
“또, 또 그런다. 계속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는 건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입니다. 이럴 땐, 자신 있게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면 되는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긴 하지만, 분위기는 그대로다.
“해보세요.”
“지금요?”
“그럼 언제 합니까.”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저밖에 보는 사람도 없잖아요. 연습한다 치고 해봐요. 가슴도 쭉 펴고.”
그러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고, 고, 고맙습니다…….”
모기만 한 목소리였지만 크나큰 발전이다.
부끄러운지 얼굴이 잔뜩 붉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좋습니다. 닉스 상장 건은 박준오 부사장과 상의해서 진행하도록 하세요. 법률 쪽은 빠삭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번쩍 손을 들어온다.
“저기, 대표님.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일전에 가져다주신 주식 상장 계획서를 봤는데, 그게 그러니까…….”
그녀는 말하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린다.
“말해보세요. 의견은 언제나 환영이니까요.”
“그게, 너무 주식을 많이 푸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닉스의 O2O 서비스는 마케팅 비용이 많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양인지라.”
평범한 기업이었다면, 경영권이 흔들릴 정도로 많은 양은 맞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 수십 배 많은 돈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어떤 부분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비책도 충분히 세워뒀으니, 엘런은 상장 효과를 극대화 시킬 방법에만 집중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엘런은 아까의 훈련이 효과가 있었던지, 바짝 기합든 신병처럼 대답했다. 물론 어설픈 모습에 픽하는 웃음이 나올 뿐이었지만.
어떻게 이런 소심한 여인이 구글 부사장 자리를 차지했을까?
이미 미래는 바뀌었기에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 * *
테슬라의 언론 간담회 당일.
세계가 뒤흔들릴 발표가 준비돼 있다는 말을 머스크가 뿌리고 다닌 덕분인지, 유명 언론인들이 한 자리에 몰렸다.
한때 중소 규모의 언론사에서 초대장을 받지 못해, 항의성 기사를 올릴 정도로 이번 간담회는 과열된 상태였다.
무대 뒤편에서 슬쩍 밖을 내다보자, 빼곡하게 채워진 객석이 보인다.
무려 1000석인 좌석이 꽉 찬 상태에 뒤편에 추가로 놓은 간이 의자까지 다 들어찼을 정도라니.
테슬라가 가지는 브랜드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계속 밖을 내다보고 있자, 머스크가 다가온다.
“대니얼, 사람은 좀 왔나?”
“예, 꽉 들어차서 터질 지경입니다. 들어보세요. 무대 뒤편인데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릴 정도잖아요.”
“그, 그렇군. 흥행은 걱정 안 해도 되겠어.”
머스크는 억지로 웃어 보이지만 얼굴색이 안 좋은 건 숨길 수 없었다.
심하게 긴장한 듯 보이는데, 혹시 무대 공포증이라도 있는 걸까?
연신 심호흡을 해보지만 나아지는 기색은 없다.
오히려 입술이 새파랗게 변할 정도로 심해지만 할 뿐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아도 해야지. 오늘 발표는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니 말이야. 후우- 그런데 대니얼은 하나도 긴장한 느낌이 없잖아. 이거, 샘나는데.”
“저야, 뭐. 익숙해졌다고 할까요.”
그는 연신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하하, 정말 부러워. 난 수십 번을 했는데 이 모양이야. 아무리 연습해도 고쳐지지 않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오늘 발표를 잘 해낼지가 걱정이야.”
“걱정은 붙들어 매십시오. 제가 말했잖습니까. 오늘은 완벽한 발표가 될 거라고요.”
“항상 자신감 100%군. 보기 좋아.”
잠시 후.
무대가 어두워졌다.
뒤편에 설치된 초대형 디스플레이에서 테슬라의 로고가 떠오르고, 이어서 테슬라의 신형 모델인 테슬라S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객석의 웅성거림이 커지고, 자연스럽게 무대의 압박감도 거세진다.
“후우, 후우, 후우…… 이제, 갈 시간이군.”
“잘 될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머스크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반갑습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입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가 시작된다.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것은 제품이 아닌, 새로운 기술입니다. 혁신을 넘어, 혁명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이죠. 바로, 스왑 스테이션입니다.]
대형 스크린에서 매끄러운 디자인의 차량이 강변을 달리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영상에서 주행 중인 차는 신형 테슬라S였다.
주행 도중 살짝 계기판을 보여주는 데, 그곳에 한계 항속거리가 800㎞라고 표시된다.
기존 모델인 테슬라Z의 항속거리가 고작 400㎞였던 걸 생각하면 2배나 늘어난 수치였다.
그 때문인지 객석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항속거리가 800㎞? 말도 안 돼. 배터리 크기를 기존의 2배나 키우면 연비가 확 떨어 질 텐데?”
“단순히 샘플 이미지겠지.”
“그걸 저렇게 대놓고 보여준다고요? 저거 나중에 소송감이에요.”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테슬라S의 화면이 빨리 감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남은 배터리가 5% 남았을 때. 유리로 지어진 돔형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테슬라S.
그곳의 전면에는 스왑 스테이션이라는 전광판이 세워져 있다.
지정된 주차선에 테슬라S를 세우자, 바닥에서 기계 장치가 튀어나와 기존 배터리를 탈거하고 새로운 배터리가 장착된다.
그 모습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온다.
“오 마이 갓! 자동차 배터리를 교체형으로 쓴다고?”
“저게 가능하다면 전기차의 충전 시간이라는 약점이 사라져! 전기차가 내연 기관차를 앞지를 수도 있겠어.”
“상상만 했지 그걸 실제로 가능케 할 기술이 있다는 겁니까? 머스크, 당신은 도대체.”
교체가 끝나자 다시 헤드라이트에 불이 들어온다.
최고의 제로백을 자랑이라도 하듯 테슬라S가 급가속하며 건물을 빠져나간다.
당연히 계기판 배터리 수치는 100%. 남은 항속거리는 800㎞다.
그걸 마지막으로 테슬라 로고가 떠오르며 영상이 꺼졌다.
기자들은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멍하게 꺼진 스크린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단상에서 기다리던 머스크는 무대 옆으로 시선을 돌려, 슬쩍 나를 쳐다본다.
내가 엄지를 척 하고 세워주자, 사라졌던 그의 미소가 돌아왔다. 처음보다는 훨씬 편해진 모습이다.
이후의 발표는 물 흐르듯 진행됐다.
영상으로 객석의 기선을 제압하고 발표를 이어나간다는 머스크의 계획은 대성공을 거둔 듯했다.
그는 스왑 스테이션을 대도시에 우선해서 지을 것이며, 점점 범위를 넓혀 주유소에도 간이 스테이션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추가로 테슬라S의 항속거리는 800㎞가 맞으며, 주요 스펙과 더불어 양산 일정을 발표하는 거로 마무리 지었다.
[이것으로 테슬라의 신기술, 스왑 스테이션 발표를 마칩니다. 이후의 무대는 테슬라의 파트너, 닉스의 대니얼 강이 이어받겠습니다.]
객석의 분위기가 묘하다.
영상과 발표는 인상적이었지만 아직 아리송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닉스를 테슬라의 파트너라고 소개한 부분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닉스는 닉스 챗을 필두로 한 소프트웨어 회사였기에 테슬라와는 접점이 없었으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닉스의 대니얼 강입니다. 테슬라의 신기술 구경은 잘 하셨습니까?]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기자들은 내가 왜 무대에 올랐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여러분의 반응을 보니, 닉스의 대표인 제가 테슬라의 발표장에 나타난 이유. 그것부터 설명해 드려야겠군요. 닉스는 테슬라와 전기차 부문에서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양사는 전기차 활성화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
까맣던 스크린이 다시 켜진다.
통유리로 만들어진 스왑 스테이션에 시설들이 하나씩 지어지기 시작한다.
배터리 교환소, 제로 서비스 센터, 제로 드라이버 휴게실, 전기차 수리, 판매 매장과 체험관까지.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기초부터 차곡차곡 올라가는 것이 초고속으로 완성된다.
이건 지역마다 세워진 제로 서비스센터를 전기차의 교두보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사실, 닉스와 테슬라의 교집합은 라이드 셰어링 서비스인 닉스 제로밖에 없었기에, 기자들도 이쯤은 예상했다는 눈치다.
[다음으로 전해드릴 것은 닉스가 테슬라에 배터리를 독점으로 공급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장내가 소란스러워진다.
소프트웨어 회사로 알려진 닉스가 테슬라에 배터리를 독점 공급한다는 소리는, 포털인 구글이 편의점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것처럼 뜬금없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닉스는 자체적인 기술로 기존의 리튬 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신소재 배터리를 개발했습니다. 자, 보시죠. 닉스의 리튬 에어 배터리입니다.]
멋스럽게 편집된 닉스 로고와 함께 자료 화면이 떠오른다.
한편에는 리튬 이온 배터리가, 다른 한편에는 리튬 에어 배터리가 놓여 있다.
각각 배터리 옆엔 스펙들이 한 줄씩 나타났는데, 안정성과 가격, 리사이클 부분에서는 별 반응이 없던 기자들이 용량에서 깜짝 놀라 괴성을 질러댄다.
“기존 배터리의 4배라고? 거기다 가격도 더 싸다니. 저런 배터리가 존재한다면 가솔린과 디젤차는 게임 끝이야.”
“에이, 콘셉트만 저렇게 떠들고 개발은 불가능할걸요?”
“아니. 잠깐만요. 아까 테슬라S의 항속거리가 800㎞라는 비밀이 저 배터리 아닐까요? 이론상 저 리튬 에어 배터리가 들어가면 기존 배터리의 절반 크기만 들어가면 되는 거잖아요.”
“절반보다 더 작겠죠. 스포츠카인 테슬라Z보다 세단인 테슬라S가 연비는 더 좋을 테니까요. 거기에 무게까지 줄면 항속거리는 더 늘어나겠네요.”
장내가 너무 소란스러워 발표를 진행하지 못할 지경이다.
이해는 한다. 리튬 에어 배터리는 그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으니까.
진행 요원들이 급히 튀어나와 한참 동안 정숙해 달라고 한 다음에야 발표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자질구레한 닉스 홍보를 살짝 곁들이고 상장한다는 이야기도 슬쩍 흘린다.
그러다 보니 오늘의 메인이벤트를 공개할 시간이 됐다.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리튬 에어 배터리를 장착한 신모델을 공개하고 발표를 마칩니다.]
손가락을 딱! 튕기자 무대 옆이 열린다.
그리고 그곳에선 미래적인 디자인의 스포츠카 한 대가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러분께 소개해드립니다. 제로백 2.7초. 항속거리 2,000㎞를 자랑하는 테슬라Z 2세대입니다!]
날카로운 헤드라이트와 전기차 특유의 앞태.
단번에 튀어 나갈 기세인 스포티함과 공격적인 본닛은 내 손을 거쳐서 완성된 디자인이다.
미래적인 디자인과 더불어 성능 면에서도 최강인 녀석, 그것이 테슬라Z 2세대였다.
리튬 에어 배터리를 한계까지 꽉꽉 밀어 넣은 탓에 항속거리가 대폭 늘어났으며, 듀얼 모터를 장착해 691마력과 제로백 2.8초를 달성했다.
이 완벽한 녀석의 유일한 단점은 매달 한 대밖에 만들 수 없다는 게 전부다.
그래도 성능 과시 차원에선 최고의 효과를 내리라.
기자들은 벌떼처럼 무대 앞으로 튀어나온다.
진행 요원들이 막아서려 했지만, 특종을 눈앞에 둔 기자들을 막을 순 없었다.
“막지 마세요! 사진 안 나오잖아요!”
“비켜! 좀 찍자!”
“닉스 대표 어디 갔어? 빨리 코멘트 따내!”
한 컷이라도 더 찍으려는 기자들 덕택에 아수라장이 된 무대는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난 조용히 무대 뒤로 퇴장했다.
그곳엔 머스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발표는 어땠습니까?”
“말이 필요해? 최고였지.”
우린 주먹을 마주치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자넨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 안 그래?”
“아, 그랬었죠.”
“어서 올라 가봐. 지금쯤 투자자들이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걸?”
사실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른다.
투자자 영업은 이쪽 계통에 인맥이 있는 엘런에게 일임해 버렸기 때문이다.
건물 외부로 나가, 따로 만들어진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객석의 2층으로 연결돼 있다.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일명 특별실이라 불리는 곳이다.
문 앞에 도착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누가 있더라도 긴장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난 전혀 꿀릴 이유가 없으니까.
끼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