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82화 (82/206)

기적의 IT 재벌 82화

테슬라의 수장, 일론 머스크는 닉스에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특히 전기 자동차의 보급을 라이드 셰어링으로 앞당긴다는 청사진은 그를 흥분해서 뛰게 만들 정도였다.

이후 자율 주행에 관한 협업 이야기까지 꺼내 들자, 그는 나를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까지 춰댔다.

머스크는 자율 주행에 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하고 싶었지만, 투자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시작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전기차 활성화를 위해, 닉스에 최대의 투자와 최고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도출한 결과물이었다.

모든 게 순탄했다.

다만, 사소한 문제가 하나 생기긴 했는데. 그 문제란 머스크가 미국에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는 거였다.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떨어지질 않으려 드니, 나로써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의 말 상태가 돼 줘야만 했다.

낮에는 그와 국내 관광을 즐기고, 밤엔 술자리를 가지며 IT와 미래에 관한 주제로 시간을 보냈다.

몽상가라 불리는 머스크와의 대화는 유익했다.

속사포 같은 말을 들어주기 곤욕스러울 때도 있지만, 역사적 인물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내 식견을 넓히는 데도 크나큰 도움이 됐다.

그가 한국에서 떠난 건 열흘이나 지난 뒤였다.

그마저도 테슬라의 임원 회의가 잡혀 있어서지, 그게 아니었다면 한국에 집을 임대해서 눌러앉을 기세였다.

* * *

“김해 공장의 생산 설비는 샘플 생산만 가능합니다. 샘플 생산 설비를 24시간 돌린다고 가정하면 일주일에 하나꼴로 전기차용 배터리가 나오는 정도입니다.”

“이 규모로는 테슬라에서 요청한 샘플도 쳐내는 게 버겁겠군요.”

손만호 이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오전에 테슬라 측과 연락을 해봤는데, 초기 발주 샘플을 10개 준비해 달라고 합니다.”

“10개면 두 달 반? 길어도 석 달이면 나오겠군요.”

“설비를 장기간 혹사하면 버텨낼 수 없습니다. 과부하가 걸려서 뻗기라도 하면 문제가 심각해지니까요.”

“그럼 컨디션을 조절하며 설비를 돌리면 얼마나 걸리죠?”

“짧게 잡아도 넉 달은 넘게 걸릴 겁니다.”

샘플 생산에만 넉 달.

느려도 너무 느리다.

내 표정을 살피던 손 이사가 슬쩍 운을 띄운다.

“급한 대로 태양광 패널 설비를 몇 대 빼고, 배터리 제작 설비를 더 들이는 건 어떻습니까? 중고 설비를 들이면 시간이 대폭 줄어들 겁니다.”

리튬 에어 배터리는 리튬 이온 배터리와 겹치는 공정이 많다.

현재 이차 전지 업계가 죽을 쑤고 있는 걸 생각하면 헐값에 설비를 들여올 수 있으리라.

“좋습니다. 테슬라 샘플 제작 건이 급하니 계약은 대량으로 하되, 일부 설비라도 먼저 받는 쪽으로 진행하세요. 아, 되도록 큰 업체와 거래를 트세요. 앞으로 설비가 많이 필요해질 겁니다.”

“일본의 파나소닉과 소니, 두 곳 중 한 곳을 생각 중입니다. 두 업체 모두 실적이 바닥을 치고 있으니, 설비를 사겠다고 하면 버선발로 뛰어나올 겁니다.”

“두 업체를 가격 경쟁시키는 건 좋지만, 최종 계약은 소니와 하세요.”

손만호 이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파나소닉 측 설비 가격이 더 낮아도 말입니까?”

“예, 무조건 소니 쪽 설비를 사도록 하세요.”

그로선 이해할 수 없는 지시였지만, 토를 달거나 하진 않았다.

“다음으론 공장 부지 선정으로 넘어가죠. 우리는 연간 8천 개의 배터리를 생산할 예정인 건 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규모가 공장이 들어서려면 제법 넓은 땅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연구소와 너무 멀어서도 안 되고요.”

“대표님. 기존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던 영릉 지역은 어떻습니까?”

“거기 빈 땅이 있습니까?”

“볕이 들지 않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도 효율이 안 나오는 곳은 비어있습니다.”

영릉이면 연구소와 30분 거리기에 나쁘지 않다.

이미 땅은 있으니 공장만 올리면 되는 거고, 근처에서 발전한 전기를 다이렉트로 끌어 쓸 수도 있다.

“좋은 생각입니다. 거리도 적당하고, 비용도 아끼는 방안이네요.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니 친환경 딱지도 붙을 수 있겠고요.”

“오! 좋네요. 이번 정부에서 밀고 있는 정책이 녹색 성장이니. 허가도 쉽게 날 것이고 지원도 쏠쏠하게 받을 수 있겠습니다.”

녹색 성장이라.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 나로선 쓴웃음이 나왔다.

녹색이 성장하긴 하지. 다른 부분에서 녹색이 성장하니 문제지만.

“좋습니다. 이번 닉스 에너지 배터리 공장은 영릉에 짓는 거로 결정하겠습니다. 설비와 디테일한 부분은 제게 서면보고만 올리시고 단독으로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손만호 이사는 잘 해낼 거다.

이미 Sol에너지 때 맨땅에 헤딩을 해봤던 사람이니까.

* * *

아직 어스름이 깔린 새벽녘이다.

닉스 빌딩에 직원 복지로 만들어진 헬스장.

그곳에 전세라도 낸 듯 나 혼자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었다.

“후, 후, 하, 하.”

러닝머신 위를 달린 지 고작 5분이 지났건만 벌써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난 평소에 운동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저, 최근 들어 항상 피곤하고, 머리가 무거웠으며 쉽게 지치는 거 같아서 의사를 찾았더니. 운동 부족이라는 결과지를 내줬다.

지난 1년간 일에만 몰두했으니, 몸이 이 지경이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틀 전부터 새벽에 회사로 나와, 운동을 시작했는데.

“헉…… 헉…….”

고작 오 분 남짓 달렸음에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려 눈앞을 가릴 정도다.

억지로 버텼지만 그래 봐야 일 분이 고작이었다.

결국, 속도를 늦춰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후우, 어째 신체 나이는 예전을 따라잡은 거 같네.”

“예전이 언제예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난 당황해서 뒤를 홱 돌아보다, 눈이 마주친다.

“페이지?”

“좋은 아침이에요, 대표님.”

그곳엔 착 달라붙는 타이즈로 몸매를 뽐내고 있는 엘런 페이지가 있었다.

평소 끼고 다니던 안경을 벗은 탓일까? 아니면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스포츠웨어 때문일까?

여하튼 그녀의 미모는 내 말문을 막아버릴 정도였다.

“대표님?”

얼빠진 표정을 재빨리 치우고 입을 연다.

“아, 이 시간엔 웬일이에요?”

“헤헤, 저는 아침에 러닝으로 회사까지 오거든요. 여기 샤워 시설이 너무 좋아서 안 쓸 수가 없더라고요.”

웃으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양 뺨의 보조개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내 옆의 러닝머신에 올라서더니, 나와 발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페이지 말고 엘런이라 불러달라고 했잖아요. 제가 페이지라고 불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음, 그러죠.”

내가 속도를 올리자, 그녀도 같이 속도를 올린다. 아무래도 나와 페이스를 맞춰 주기로 한 듯하다.

어색한 분위기 탓에 일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했다.

“폭스 뉴스에 닉스 제로가 나오더군요. 그거, 마케팅 팀에서 진행한 거죠?”

“어떻게 아셨어요?”

“광고인 거 대번 티 나던데요.”

“에휴, 좀 신경 써서 해달라고 했는데도 그러네요.”

“나쁘진 않았어요. 특히 기사 급여가 나오는 부분은 의도해서 넣은 거 같던데.”

“역시나, 대표님 눈은 못 속이겠어요.”

최근 들어 제로 드라이버의 신청자가 너무 몰려 업무 마비가 찾아올 정도였다.

이 사태에는 폭스TV의 뉴스가 큰 지분을 차지했으리라.

“어떻게 뉴스에다 광고를 넣을 생각을 다 했어요?”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니 첫 이미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폭스 뉴스 외에도 여러 매체에서 제로 이야기가 실렸다.

대부분이 새로운 IT혁명이니, 공유경제니, 하며 우릴 치켜세우는 기사였다.

“메이저 언론의 프라임 시간에 넣는 거, 쉽지 않았을 텐데. 능력이 대단하네요.”

“아, 그건 운이 좋았어요. 마침 폭스TV에서 스마트폰 붐 때문에 IT 특집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폭스 계열에 광고를 넣어주는 대가로 제가 준 소스를 그대로 실어 달라 했죠.”

제법 빠르게 달리는 중임에도 그녀는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평소 러닝으로 출근한다는 게 허언은 아닌가 보다.

이대로 페이스를 맞춰서 계속 달리다간 나가떨어질 게 뻔했기에, 속도를 다시 느리게 조작한다.

“후우- 폭스 계열이면 신문 광고?”

“신문뿐만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 비행기 옥외 광고도 폭스TV 계열사에서 하고 있어요. 어차피 그쪽 계통에는 광고가 나가야 했으니 생색을 팍팍 내서 뉴스를 따냈죠.”

“와우, 그 말은 따로 돈을 쓰지도 않고 프라임 시간대에 광고 뉴스를 넣었다는 소리네요?”

그녀는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지, 얼굴을 붉힌다.

“아, 아, 아까도 말했지만, 운이 좋은 거뿐이에요.”

이게 운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엘런이 집행한 광고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광고비의 규모를 앞세워 물량으로 퍼붓는 방식이 아니었다.

닉스의 광고를 수주한 업체는 하나 같이 언론이나 영상 미디어 매체였으니.

엘런은 광고를 돈으로 송출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협상 카드로 만들고 언론과 대중매체를 쥐고 흔들어 버렸다.

“엘런, 이건 단순히 운이 좋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번처럼 언론과 미디어 매체에서 제로를 찬양하게 만드는 게 쉬운 일인지 아세요? 그것도 콧대 높은 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언론인들을 상대로 말이죠.”

“그건…… 제가 캐피털에서 일할 때 언론과 미디어 쪽 투자를 위해 조사를 많이 했었거든요. 그때 느낀 게, 언론사는 정상적인 취재 요청보다 광고를 내걸고 원하는 바를 요구해 내는 게 최고라는 걸 알게 됐죠.”

언론은 표면적으로 공정과 중립이라는 저울을 가져다 대지만, 그들의 본질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언론의 밥줄인 광고를 쥐고 흔들어 버리는 순간, 그들이 내세우는 공정과 중립의 저울은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요. 당신이 해낸 거예요. 그러니 조금은 가슴을 펴도 된다 이 말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여전히 자신 없이 말을 우물거리는 그녀.

내 속은 천불이 날 지경이다.

‘당연하지! 넌 미래에 구글 부사장이 될 정도로 능력파란 말이다!’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말은 턱 끝에서 멈춰진다.

“전에도 이야기했겠지만, 자신을 믿기 힘들면 저를 믿으세요. 당신을 뽑은 제 안목을요.”

“아…….”

커다란 두 눈이 나를 향해 빛난다.

엘런이 배시시 웃자, 나도 미소로 답해준다.

“앗! 죄, 죄송합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한다. 그리곤 엄청난 속도로 러닝머신 위를 달려대기 시작한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게 의외로 귀여운 면도 있단 말이지.

그때, 머신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드르륵 하고 떨려댄다.

사흘 전에 한국에서 헤어진 일론 머스크였다.

“머스크, 어쩐 일입니까.”

-어쩐 일은, 자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왠지 통화가 길어질 거 같은 예감이 들어, 발걸음을 휴게실 쪽으로 향한다.

“한국에서 제 목소리는 지겹게 들으셨던 거 아니었습니까?”

-흐흐, 그랬었지만 미국에 돌아오니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서 말이야. 당최 나와 대화 레벨이 맞는 상대가 있어야지. 주변에는 죄다 맹탕들 밖에 없어. 전기차 활성화 안건에 다음 분기 실적 걱정을 하고 있더라고. 내가 입에서 쌍욕이 나오려는 걸 참는데 식겁했지 뭔가.

그와의 대화는 항상 서론이 길게 길게 이어진 다음에야 뭔가가 나온다.

그 후로도 테슬라 임원진과 투자처들의 욕으로 시작해 최근 근황, 부하 직원이 말을 안 듣는다는 이야기까지 쏟아낸 다음에야 본론이 등장한다.

-아무튼, 그래서 말이지. 내달, 그러니까 5월 5일에 테슬라에서 언론 간담회를 하기로 했네.

“5월 5일이면 2주 뒤군요.”

-그래, 그때 스왑 스테이션을 정식으로 발표할 생각이야. 그래서 말인데…….

살짝 말을 흘리던 머스크가 말을 이었다.

-간담회 때 닉스도 공동 발표를 하는 건 어떤가?

“예? 공동 발표요?”

-스왑 스테이션을 언론에 내보내려면 그에 따른 배터리 기술도 연계해서 공개해야 해. 지금 쓰이는 리튬 이온 배터리로는 스왑 스테이션의 효율이 안 나올 테니 말이야.

머릿속에 주판알이 탁탁 튕기기 시작한다.

테슬라와 공동 발표라면 닉스가 단독으로 언론 간담회를 하는 것보다 수십 배는 화제가 될 터.

이건 기회다. 닉스를 만천하에 알릴, 그런 기회.

난 목소리를 흔들리지 않게 다잡으며 답을 꺼냈다.

“제안해 주셨는데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역시 그래야지. 대니얼, 자네라면 쿨하게 승인할 줄 알았어. 시간은 괜찮겠나? 2주 안에 발표 자료를 만들어야 할 텐데.

이미 발표에는 이골이 난 나다. 내일 당장 한다 해도 OK. 무조건 OK다.

“5월 5일은 완벽한 언론 간담회가 될 겁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군. 그럼 정확한 간담회 일정은 우리 직원이 보내 줄 걸세.

“알겠습니다.”

-그때 보자고.

뚝.

휴대폰이 난로처럼 뜨겁다.

통화 기록을 확인해 보니 휴대폰을 40분이나 붙잡고 있었다.

그때 휴게실로 엘런이 들어온다.

“누구랑 통화를 그리 길게 하신 건가요?”

“음? 계속 기다리고 있던 겁니까?”

“대표님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큰일이라도 있나 싶어서요.”

통화 내용이 심각하긴 했지.

머스크 옆집에 사는 고양이 네로가 새끼를 낳았으니까.

난 뜨거운 볼을 식히기 위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테슬라 측 연락이었습니다. 2주 뒤에 언론 간담회가 있는데, 그때 공동으로 발표를 진행하자고 하더군요.”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 때문인가요?”

“테슬라의 신형 모델에는 기존 배터리 방식이 아닌, 신소재 배터리가 들어가거든요. 그 배터리는 우리만 만들 수 있어서 독점 공급이 될 거고요.”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인다.

“대단해요! 테슬라에 독점 공급이라니. 이거라면 닉스 브랜드가 전 세계에 알려질 거예요.”

“자, 여기서 질문. 이제 우리는 뭘 준비해야 할까요.”

갑자기 던져진 질문임에도 그녀는 일말의 고민 없이 답을 꺼내놨다.

“닉스를 뉴욕 증시에 상장할 절호의 찬스?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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