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80화 (80/206)

기적의 IT 재벌 80화

“네가 말하는 얼굴마담이라는 사람이 혹시…… 일론 머스크?”

그는 미래의 먹거리라 불리는 전기차의 아이콘, 테슬라와 민간 우주 사업의 선두주자인 스페이스X의 CEO를 맡고 있었다.

“예, 그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면, 투자 유치는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겠죠.”

“확실히 머스크 정도면 투자자들이 달려들 만한 카드지. 전기 스포츠카까지 출시시킨 거로 모자라 민간 최초로 궤도에 로켓까지 쏘아 올렸으니까.”

일론 머스크.

몽상가. 미래의 설계자.

머스크의 계획인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꿈을 현실로 끌어내는 사람이니까.

맥주만 마셨는데 취기가 올라온다.

난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은 쌀쌀한 밤공기가 내 얼굴을 스친다.

매형은 뒷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 테라스까지 따라 나왔다.

“자율 주행 택시, 정말 가능할까?”

“아뇨, 10년 안에는 힘듭니다.”

내가 너무 단호하게 끊어버리자.

“어째서? 닉스 제로의 방대한 운행 데이터가 있으면 어려운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5년 안에는 시험 주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시험 주행은 3년 안에도 가능할 거예요. 센서만 구할 수 있다면 말이죠.”

“그럼, 문제가 뭐야? 투자금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거 아냐.”

나도 모르게 자조적인 미소가 흘러나온다.

“자율 주행은 얽힌 이해관계가 복잡해요. 그 때문에 완전무결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빛을 보지 못 할 겁니다.”

“완전무결이라니. 그건 힘들어. 무슨 기술이든 오차는 존재하는 법이잖아.”

말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새까만 밤하늘이다.

“매형, 자율 주행이 정착되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매형은 착실히 대답을 꺼내놨다.

“노동이나 다름없는 운전에서 해방되겠지. 차 안에서 책도 읽고, 잠도 자고. 그러다 목적지에 도착할 거고.”

공상 같은 미래에 감화받은 듯 매형은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운수업에 적용되면 물류비가 대폭 줄어들걸? 자율 주행은 24시간 운행해도 상관없을 테니, 유통업체들은 돈다발을 싸 들고 찾아올 거다. 자율 주행은 유통의 혁명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럼, 기존의 택시나 운수업계 종사자들은요?”

잠시 정적이 흐른 후에야 말이 이어진다.

“시대의 흐름이야. 그들의 일자리를 보존하려고 자율 주행을 포기한다는 건 말이 안 돼. 완전한 자율 주행화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꼭 이뤄져야 한다고 봐.”

도로에 모든 자동차가 자율 주행으로 운행된다면, 교통사고는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신호 위반, 끼어들기, 과속, 음주, 졸음운전 따위는 인간이 운전대를 잡기에 발생하는 사고였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다만, 자율 주행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데는 엄청난 진통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인명피해라도 생기는 날엔 이해 당사자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날걸요. 연간 교통사고로 5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오는 건 외면한 채 말이죠.”

“그래서 완전무결하다는 표현을 했구나.”

테라스에 걸터앉은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맥주만 홀짝였다.

잔이 거의 비어갈 무렵, 매형이 슬쩍 이야기를 꺼낸다.

“결론적으로 자율 주행 택시 이야기는 투자를 위한 MSG라는 소리지?”

“에이, MSG라뇨. 비전을 보여주는 거라고 해주시죠. 다른 CEO들이 제시하는 비전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이야기 아니었어요?”

“네가 말해서 그런가. 난 진짜 될 거 같은데?”

“흐흐, 진짜 되면 좋은 거고요.”

* * *

통짜 유리로 된 스무 평 남짓한 집무실.

그곳에 앉아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사내는 테슬라 모터스의 CEO 일론 머스크였다.

그의 책상에는 테슬라에서 새롭게 출시될 전기차, 테슬라S의 도면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항속거리. 항속거리. 망할 항속거리.”

중얼거리던 머스크는 도면 중, 가장 최근의 것을 꺼내 들었다.

항속거리를 늘리기 위해, 배터리를 최대한 욱여넣은 차체 도면이었다.

‘이건 안 돼. 추가 배터리값과 경량 차대값을 합하면 제조 단가가 너무 높아.’

이미 테슬라S를 한 대 만드는 제조 단가는 독일 3사의 S 세그먼트 가격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그런 상황에서 배터리와 알루미늄 부품을 더 넣는다? 그건 손해를 보고 팔겠다는 말과 같았다.

사실, 테슬라는 이미 차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고 있었다.

테슬라에서 유일하게 판매 중인 전기차, 테슬라Z는 주주들의 등쌀에 못 이겨 제조 효율화도 안 된 상태로 출시를 강행했었다.

그 때문에 한 대 팔 때마다 2만 달러씩의 손해를 보는 구조가 돼 버렸다.

그나마 소형 스포츠카였기에 2만 달러로 막은 거지, 일반 세단이었다면 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것이다.

“후- 여기서 더 손실이 쌓이면 주주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그의 눈앞에 주주들이 난리 치는 모습이 환영처럼 스쳐 지나간다.

급한 대로 신차를 공개해 입을 막아두긴 했지만,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사실상 껍데기만 공개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배터리를 얼마나 넣을 것이며, 그로 인한 차제 무게 밸런스도 조절해야 했고, 가장 중요한 건 가격 책정 문제였다.

항속거리를 400㎞ 이상으로 만들려면 찻값이 200만 달러가 넘어갈 판이었으니 말이다.

이대로 전기차가 시장성이 없다는 게 밝혀지면 테슬라의 주가는 폭락할 것이고, 이와 연계된 다른 사업마저 타격이 불가피했다.

끙끙거리며 머리를 싸매는 중 인터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대표님 앞으로 차가 한 대 도착했습니다.

“차가 왔다니 무슨 말입니까?”

-어…… 그게. 테슬라Z 모델입니다.

테슬라Z가 왔다는 말에 인상이 더 구겨진다.

재작년부터 판매에 들어간 테슬라Z는 테슬라에게는 시제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결함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신차를 1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주고 샀음에도 퀼리티가 기대에 못 미치자, 구매자들은 시위하듯 머스크 앞으로 차량을 반송시키곤 했다.

“공장에 넣어서 결함 잡고 재반송시키세요.”

-어, 그게……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은 제게 보고 하지 말고 바로 공장으로 인계해주시고요.”

-탁송 받는 분이 대표님 이름으로 돼 있어서 직접 오셔야만 한답니다.

머스크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입을 연다.

“알겠습니다. 일단 내려가죠.”

테슬라 사무실 입구에 차 한 대가 세워져 있다.

검은색과 진녹색으로 랩핑 된 테슬라Z였다.

깔끔한 차의 외관을 보자, 머스크는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멀쩡한 차를 보내왔군.’

보닛을 망치로 두들겨서 보내는 건 예사였고, 불을 질러 전소된 차를 보내오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결함으로 보냈답니까?”

머스크가 말하자, 직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결함 때문에 보낸 게 아닌 듯합니다. 차의 컨디션이 너무 멀쩡한게…… 마치, 새 차 같습니다.”

“새 차요?”

고개를 갸웃거린 머스크가 차를 천천히 둘러본다.

외관은 흠잡을 곳 하나 없이 깨끗했다. 특별한 게 있다면, 차체 뒤편을 조금 늘리는 튜닝을 했다는 것 정도일까.

“대표님, 운전석 뒤편에 쇳덩이 같은 게 놓여 있습니다. 트렁크까지 터서 놓은 걸 보니, 무게 밸런스를 잡으려고 놔둔 듯합니다.”

너무 뜬금없는 일이라 감도 안 잡힌다.

멀쩡한 스포츠카를 세단처럼 늘린 거로 모자라 쇳덩이까지 넣어둔다? 이걸 보낸 사람의 의도가 뭘까?

그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다가온다.

“당신이 일론 머스크요?”

“맞습니다.”

노인은 사무적인 태도로 서류 판을 내민다.

“자, 여기 사인 하나 해주시오. 이 차를 인수했다는 서류니까 잘 읽어 보시고.”

“어르신, 혹시 이 차를 누가 보냈습니까?”

“난 몰라. 그냥 시키니까 타고 온 거지. 난 배달만 하는 사람이야.”

노인은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데도 머스크는 개의치 않고 질문을 이어간다.

“혹시, 직접 몰고 오셨습니까?”

“라스베이거스에서부터 타고 왔지. 10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충전은요?”

“충전은 무슨 충전이야. 한 번도 안 쉬고 왔지. 그래서 피곤해 죽겠으니까, 어서 사인이나 해주시오.”

순간, 머스크의 표정이 바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스베이거스는 1000㎞가 넘는 거리다. 그 거리를 충전 한번 없이 왔다는 건…….

그는 허겁지겁 트렁크를 열더니, 쇳덩이의 비닐 포장을 벗겨낸다.

“역시나!”

그건 쇳덩이가 아니라 촘촘하게 엮어진 직사각형 배터리 팩이었다.

이번에는 차 매트를 들어낸다.

그리곤 주먹으로 바닥을 두드려 보자, 텅! 하는 깡통 소리가 돌아온다.

“비었다?”

바닥은 본디 배터리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

‘설마, 이 차는 트렁크의 배터리 팩만으로 1000㎞ 거리를 주행해온 건가.’

트렁크의 배터리 팩 크기는 본래 장착된 배터리 크기의 절반도 안 돼 보였다.

어떤 마법을 써서 1000㎞를 운행했단 말인가?

“엔지니어들 불러오세요.”

“대표님, 지금은 다 퇴근했을 텐데요.”

이미 밤 10시에 가까운 시각이니 당연한 소리였다. 하지만 머스크는 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긴급상황입니다. 자고 있으면 깨워서라도 데리고 오세요. 당장!”

* * *

샌프란시스코에서 출국해 베이징을 거쳐, 김해 공항에 도착하자 밤 10시가 넘어버렸다.

늦은 시각임에도 출국장에는 닉스 에너지의 손만호 이사가 직접 마중 나와 있었다.

“강현우 대표님,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 수고는 손 이사님이 더 많으시죠.”

우리는 인사치레를 나누며 악수했다.

“캐리어 이리 주시죠. 제가 차에 실어 드리겠습니다.”

그가 캐리어를 빼앗아 들려고 하자, 난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이쯤은 제가 직접 들죠.”

“아, 그럼 먼저 가서 차를 빼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사라졌던 그가 차를 타고 나타난다. 일전에 회사 차로 쓰던, 그 허네시스였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가움이 몰려온다.

“Sol에너지 처음 인수할 때 같이 딸려온 차네요. 손 이사님이 타고 오셨었죠?”

“허허, 맞습니다.”

손만호 이사는 과거를 더듬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그때 당시 대표라는 사람은 회사가 부도 직전인데 손을 놔버렸지, 직원들은 하나둘 제 살길 찾아서 떠나버리지. 어후,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힘든 일도 지나면 추억인 법이죠.”

“그렇죠. 지금은 다 잘 풀렸으니까요.”

* * *

과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닉스 에너지 연구소에 도착했다.

밤 11시에 가까운 시각.

공장지대 사이에 이질적으로 들어선 돔형 연구소에는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누가 남아 있습니까?”

“무자파 연구소장이 남아있습니다. 대표님 얼굴을 보고 퇴근하겠다고 하더군요.”

연구소 규모가 컸기에 입구로 들어선 다음에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한 발 뒤에서 걷던 손 이사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이번 방문은 신소재 배터리 건 때문입니까?”

“제가 이야기를 안 했던가요?”

“예, 아무 언질이 없으셔서…….”

여기저기서 일이 터지는 바람에 정신이 없다.

“신소재 배터리에 투자할 투자자를 찾았습니다. 그 때문에 직접 확인차 방문한 거고요.”

“리튬 에어 배터리는 아직 상용화 단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충전 효율을 끌어올리면 수율이 나오지 않아서 양산은 힘든 거로 압니다만.”

“저 역시 몇 달 만에 완벽한 배터리가 뚝딱 나올 거라고는 생각 안 합니다. 일단 제품을 보고 다시 이야기하죠.”

연구소 안으로 들어서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무자파가 날 반겨준다.

“대니얼! 오랜만이다.”

“오, 무자파. 한국어를 하는 겁니까?”

“조금 한다. 한국어 어렵다.”

여전히 무자파의 말투는 그대로다.

한국어를 배우는 거 보니, 아예 한국에 정착할 생각인가보다.

“배터리 확인하러 왔나?”

“예, 이번에 전기차용 배터리로 투자를 받을 생각이라서요.”

“리튬 에어 배터리, 아직 미완성이다. 효율 최고 97%다.”

“그건 서면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한 번 배터리를 볼 수 있을까요?”

무자파는 나를 연구소 패널 중 한 곳으로 이끌었다.

그곳엔 여러 개의 배터리가 충전과 방전을 번갈아 하는 시험대가 놓여 있었다.

나도 한때는 배터리 연구를 했었기에 상태를 알아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전압은 안정적이네요. 혹시 다른 이슈는 없습니까? 예를 들어 발화한다거나.”

“리튬 에어 배터리는 발화하지 않는다. 아주 좋다. 정말 좋다.”

“그럼 실사용에는 문제가 없겠군요.”

“이거 못 판다. 충전 30회 하면 못쓴다. 대량 생산도 지금은 못 한다.”

“지금은 못 한다는 건, 앞으로는 가능하다는 말이겠네요.”

“시간, 예산 더 필요하다. 수율 올리려면 충·방전 효율 떨어진다.”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정도면 충분하다.

“충·방전 효율을 90%로 내리면 어떤가요. 양산이 가능하겠습니까?”

“양산할 수 있다.”

“좋습니다. 90%짜리 샘플을 많이 준비해 주세요. 얼마 후면 우리 배터리를 구경하러 VIP 고객이 방문할 테니까요.”

“90%짜리 못 쓴다. 10번 충전하면 방전된다.”

배터리를 관찰하던 난 시선을 무자파에게로 돌린다.

“무자파. 우린 90%짜리를 팔 겁니다.”

“안 된다. 불량품 팔 수 없다.”

예전 미국에서 불량 배터리를 팔았던 무자파였기에,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표한다.

“무자파. 90% 배터리를 99% 배터리로 속여서 팔면 사기죠. 그죠?”

“맞다. 사기다.”

“하지만 그걸 고지하고 팔면 어떨까요? 그것도 사기입니까?”

“사기…… 아니다.”

“90% 배터리는 양산도 가능하고 97% 배터리보다 단가도 낮습니다. 또한, 배터리 교환 사이클도 더 빨라지겠죠. 10번 쓰면 바꿔야 하니까요.”

“충·방전 효율 90%라고 알리면 아무도 안 산다. 투자자 투자 안 한다.”

걱정하는 그의 표정에서 진심이 묻어 나온다. 난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저는 90% 효율 배터리를 팔 겁니다. 그것도 전 세계에 풀린 배터리보다 더 많은 양을 말이죠.”

“어떻게……?”

“발상의 전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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