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79화
샌프란시스코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닉스 제로 서비스는 미국의 주요 대도시까지 붐을 일으켰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보스턴, 워싱턴…….
닉스 제로를 접한 대중들의 말을 빌리자면 ‘제로를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호평 일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도시 대부분은 택시 숫자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혼잡시간이 되면 택시 잡기 전쟁이 일어나곤 했다.
그걸 아는 시민들은 무리해서라도 차량을 도로로 끌고 나왔고, 덕분에 교통 사정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이드 셰어링 서비스는 혼잡시간에도 무리 없이 차량을 호출할 수 있었기에 집중화가 심한 도시일수록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제로 서비스가 시작된 시기도 딱 좋았다.
애플폰의 고가 정책 때문에 애플OS는 스마트폰에서의 점유율이 15%가 고작이었지만, 닉스 챗 Lite는 모바일OS를 가리지 않는 장점 덕분에 접근성에서 기존 앱들과는 상대가 안 될 정도였다.
그런 시점에서 오성전자의 야심작, 갤럭시스S가 드디어 미국에 출시됐다.
갤럭시스S의 미국 출고가는 499달러로 애플폰4의 799달러보다 300달러나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장악해갔다.
그에 맞서는 미국 본토의 블랙베리, 모토로라도 맞불을 놓게 되는데, 덕분에 미국 스마트폰 보급률은 한 분기 만에 300%가 뛰어오르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은 닉스의 대형 호재였다.
애플폰 한 대당 1%, 갤럭시스 한 대당 2%의 로열티 수입이 들어올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보급률이 늘어난 덕분에 닉스의 모바일 서비스도 흥행 가도를 이어나갔다.
“반갑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폭스TV에 짐 케론 기자입니다. 오늘은 화제의 앱인 닉스 제로를 제가 직접 써보겠습니다. 먼저 앱을 실행시켜 볼 텐데요.”
닉스 챗 안에 깔끔한 폰트로 ZERO라는 아이콘이 들어있다.
“닉스 챗은 앱스토어나 플레이스토어에서 내려 받을 수 있습니다.”
앱을 터치하자 녹색과 검은색의 조화로운 첫 화면이 보인다.
“첫 화면에는 계정관리, 호출, 정보 3개의 메뉴가 전부입니다. 처음 사용자를 배려한 것인지 인터페이스가 간단명료합니다.”
기자가 계정관리에서 처음 사용자 버튼을 누르자, 단번에 닉스 계정으로 로그인이 끝난다.
“기존 닉스 챗을 쓰던 사용자라면 터치 한 번으로 접속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결제 정보 입력입니다.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군요. 열심히 입력해 줍시다. 번거롭게 이것저것 묻지 않아서 좋군요. 맘에 들어요. 자, 다 됐어요. 이걸로 끝입니다. 사실상 신용카드 입력이 준비 과정 전부군요.”
그는 도로변으로 이동해 주변을 찍어댄다.
“지금 시간은 오후 6시 30분. 예, 차가 한창 막힐 때입니다. 이때는 도심지에서 택시를 타는 건 정말 힘든 일인데요. 택시 정류장에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다시 휴대폰을 꺼내 든다.
“과연 닉스 제로는 러시아워 시간대에도 콜이 가능할까요? 자 한 번 호출해 보겠습니다.”
드라이버와 연결중…… 이라는 메시지가 5초 정도 떠오르다 매칭 완료! 라는 메시지로 바뀐다.
“오? 벌써 매칭이 됐습니다. 메시지 상으론 1분 뒤 도착 예정이라네요.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앱을 한번 둘러보겠습니다.”
휴대폰 액정이 클로즈업된다.
“호출 버튼을 꾹 누르면 여러 옵션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금연 차량만, 짐칸이 큰 차, 서행 운전, 대화 불필요. 대화 불필요는 정말 좋은 거 같네요. 가끔 말하기 싫을 때가 있을 테니까요.”
잠시 후 그의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번쩍이는 검은색 캠리였다.
“정말 1분 뒤에 도착했습니다. 정류장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군요. 아무튼, 한 번 타보겠습니다.”
차에 탄 기자는 카메라를 운전석 쪽으로 비춘다. 까만 캠리의 운전사는 사십 대 여성이었다.
“반갑습니다, 기사님. 저는 폭스TV의 짐 케론 기자입니다.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짓다가,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로 답한다.
“이거 TV에 나가는 건가요?”
“IT산업의 진화라는 특집 기사로 나갑니다. 괜찮으세요?”
“예, 그러세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자는 질문을 쏟아낸다.
“제로 드라이버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되셨나요?”
“20일 정도 된 거 같아요. 런칭하고 바로 신청했죠.”
“평소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딸아이가 추천했어요. 제가 운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럼 하루에 얼마나 운전하시나요?”
“6시간 정도만 해요. 러시아워에만 살짝 하는 거죠.”
“혹시, 수익도 공개할 수 있으실까요?”
“음…… 정확히는 계산 안 해봤는데, 지금은 콜이 넘쳐서 시간당 20달러가 넘을 때도 있어요.”
마이크를 가져대던 기자가 살짝 놀라는 표정이다. 시간당 20달러나 될 줄은 몰랐을 테니 말이다.
“제로 서비스만의 장점이 있다면 한 말씀만 해주시죠. 드라이버로서 느끼는 장점요.”
“짬짬이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거 같아요.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요. 또…… 집에 놀리는 차를 활용하는 것도 좋아요. 가만두면 낭비잖아요.”
“그렇군요. 앞으로도 닉스 제로 서비스가 흥행할 거로 생각하십니까?”
“물론이죠. 이건 정말 최고라고요.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준 닉스에 너무 감사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상기돼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차량이 멈춰 선다.
“기자님, 도착했어요.”
“내릴 땐 뭘 해야 하죠? 어딘가 서명해야 하나요?”
“그냥 내리면 자동으로 카드 결제가 끝나요.”
“쿨한 서비스군요.”
기자가 차에서 내리자, 잠시 후 휴대폰에는 결제가 완료됐다는 메시지와 함께 만족도 조사가 떠오른다.
별 5개를 찍어준 기자는 카메라로 시선을 돌린다.
“차량 운행을 공유하는 라이드 셰어링 서비스는 간편하고, 빠르고, 저렴했습니다. 앞으로 IT산업이 일상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상 폭스TV 짐 케론 기자였습니다.”
맥주를 홀짝이던 나와 매형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빠진 바보 같은 표정 말이다.
“현우야, 저게 왜 여기서 나와?”
“글쎄요. 저도 잘…….”
“뉴스에 닉스 제로가 나왔어? 저거 광고 아니고 뉴스로 나간 거 맞지?”
메인 뉴스는 아니지만, 특집으로 편성된 미래의 IT산업이라는 코너였다.
요즘 스마트폰이 화젯거리이니 새로 생긴 모양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매형이 술잔을 단숨에 비운다.
“푸하! 그냥 뉴스 채널도 아니고 폭스TV 정도면 완전 메이저잖아. 그런데 저런 찌라시 기사를, 그것도 지금 시간대에 넣는단 말이야?”
한국으로 치면 KBS 9시 뉴스에서 스포츠 소식이 나오기 전, 빈 시간대에 광고가 나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저도 당황스럽네요. 보고 받은 바가 없는데.”
“그럼, 이번에 신규로 만든 마케팅 팀 단독으로 한 짓이겠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정확한 건 연락을 해봐야겠지만요.”
미래의 IT산업이라는 포장지로 감싸져 있지만, 이건 확실히 광고였다.
마지막에 간편하고, 빠르고, 저렴했다는 멘트는 우리가 밀고 있는 캐치프레이즈였고 말이다.
“이번에 만든 마케팅 팀이 일을 잘하나 본데. 폭스 뉴스를 뚫어버릴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마케팅 책임자가 누구야?”
“음. 일전에 소개했었던 엘런 페이지라고. 기억나시죠?”
“아, 그 배우처럼 생긴 애? 엥, 그런데 재무 관리 시키려던 거 아니었어? 캐피털 쪽 사람이라며.”
“재무 관리도 하고 남는 시간에는 마케팅 쪽을 돕겠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그쪽 방면에 아직 사람을 못 구해서 임시로 팀장직을 하라고 하긴 했었는데…….”
그녀가 이쪽 방면으로도 재능이 있을 줄이야.
외모와 재무, 추가로 마케팅에도 능력치가 이리 높으면 사기다, 사기.
어찌 됐든 당분간 마케팅 책임자는 구할 필요가 없겠다.
“그 아가씨 제법이야. 프레임 전쟁에 선수를 치다니.”
라이드 셰어링은 공유 경제를 표방하고 나왔지만, 운영 형태는 사실상 유사 택시업이나 마찬가지다.
공유 경제냐, 유사 택시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게 맞지만, 개인이 자차로 승객을 호객하는 행위는 전 세계 어딜 가도 불법이다.
까놓고 말해서 제로는 그 불법행위를 그럴싸한 형태로 포장해서 편의성을 추가 한 것뿐인 거고.
“언론에서 제로를 저 정도로 빨아주는 거 보니, 돈을 얼마나 먹였는지 걱정이 먼저 드는데.”
“메이저 뉴스에 언급될 정도면 제법 썼겠죠.”
“책정한 마케팅 비용이 얼마야?”
걱정스러운 매형의 표정 때문에 괜히 말하기 미안해진다.
“분기에 1억 달러 정도?”
“야! 그게 말이…… 컥, 컥.”
마시던 맥주가 사레들렸는지, 매형은 연신 가슴을 두드린다.
“괜찮으세요?”
“아니, 전혀 안 괜찮아. 1년에 마케팅비로 4500억을 쓰는 곳은 재벌가 말곤 없다고. 제정신이야?”
“그건 국내 내수용 스케일이고, 닉스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세계적으로 마케팅을 벌이려면 지금보다도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이 필요할 거예요.”
“이미 지하철이나 버스 승강장 마다 닉스 광고가 붙어있던데, 여기서 마케팅을 더 늘리면…… 우린 얼마 못 가서 거지가 될 거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1분짜리 슈퍼볼 광고를 1200만 달러에 계약했다는 건 당분간 비밀로 해야겠다. 충격에 쓰러지실라.
“마케팅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연내에 닉스를 상장해서 돈을 왕창 땡길 겁니다. 그때까지는 최대한 몸집을 불려야죠.”
“현우야.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마케팅비를 4500억이나 쓴 게 알려지면 투자 유치에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거다. 닉스가 로열티로 수입은 짭짤할지 몰라도 닉스 챗에서 들어오는 돈은 멤버십 승격과 이모티콘 스토어가 전부잖냐.”
매형이 뭘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다.
뉴욕 증시에 상장을 위해서는 기업공개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닉스가 엄청난 마케팅비를 지출하고 있고, 수익 구조는 비정상적으로 로열티에 몰려 있는 게 알려질 것이다.
“너, 따로 계획이 있는 거지?”
“계획이라…… 당연히 큰 그림은 있죠.”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말해. 답답해서 사람 죽는 꼴 보기 싫으면.”
가끔 하는 생각이지만, 매형은 엄살이 심하다.
“매형. 한 잔 따라주세요.”
“분위기 잡지 말고 말해. 이러니까 더 무섭잖아.”
“상식적인 이야기만 할 겁니다.”
“인마, 그게 더 무서워. 네가 언제부터 상식적이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술잔을 채워준다.
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투자자들에겐 현재의 실적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기업이 얼마나 성장할지에 대한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잭팟을 기대하는 제약주들이 그렇고, 과거의 예를 가져오면 닷컴 버블도 비전 하나만 보고 투자한 형태죠.”
“닷컴 버블은 비전을 보고 들어온 게 아니라 투기지. 광기가 가져온 투기. 아무튼, 네 말은 투자자들에게 닉스의 비전을 제시하겠다?”
“예.”
상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말이 흘러나오자, 오히려 실망한 표정이다.
“모든 기업의 CEO가 입에 발린 비전은 제시해. 대부분 과장되고 실현 불가능한 일이기에 투자자들도 그걸 감안해서 투자하는 거고.”
“그건 내부자가 비전을 제시했을 때 이야기죠. 비전을 외부자가, 그것도 유명하고 모두가 납득할 만한 사람이 인정해 준다면 어떻습니까?”
매형은 내 말을 이해는 한 듯 보였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인정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 투자자들이 몰려들까? 지금의 닉스라면 기본은 하겠지.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정도의 투자를 끌어내긴 힘들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우선, 닉스 챗으로 어떻게 수입을 발생시킬지 부터가 미지수지. 생각해 볼만한 건 광고수익이 전부니까. 그리고 라이드 셰어링은 일반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잖아. 투자가 들어오려면 누가 봐도 ‘이건 되겠다. 돈 냄새가 난다!’ 싶은 임팩트가 있어야 해.”
“돈 냄새가 풀풀 나는 사람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운다면요?”
이야기가 처음으로 돌아오자, 매형이 이마를 감싸 쥔다.
“현우야. 그러지 말고 실적이 나올 때까진 기다렸다가 기업 공개를 하자. 그럼 모든 게 해결돼. 딱 1년만 기다렸다가 닉스 제로 실적 나오고 상장하면 대박을 칠 수 있을 거다.”
1년이면 짝퉁 업체들이 자리를 잡고도 남을 시간이다.
난 욕심쟁이라서 파이를 단 하나도 잃을 생각이 없다.
“제가 일반인도 혹할 만한 비전을 설명해 드리죠. 이걸 듣고도 안 될 거 같으면, 닉스의 올해 상장을 깔끔하게 포기합니다. 콜?”
“좋아, 콜.”
난 맥주로 입을 헹구고 말했다.
“닉스 플랫폼에 종속된 제로로, 닉스 에너지에서 만든 신소재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호출할 겁니다. 그리고 닉스 제로의 운행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자율 주행 시스템을 완성 시킬 거고요. 최종 종착지는…….”
답은 내가 아닌 매형 입에서 흘러나온다.
“무인 자율 주행 택시.”
“정답. 이거면 일반인도 이해하겠죠?”
매형의 눈이 부릅떠진다.
“너, 설마.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흐흐…….”
난 음흉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거기다 얼굴마담을 해줄 사람은 이미 정해뒀습니다. 이 분야에선 딱 한 사람밖에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