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78화 (78/206)

기적의 IT 재벌 78화

택시 업계를 먹어치운다는 말에, 엘런은 물론이고 회의실에 있던 직원들의 표정이 놀람으로 물든다.

미국 전역의 택시 업계를 삼키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즉, 닉스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천명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먼저 침착함을 되찾은 건 엘런이었다.

“대표님, 지금 닉스의 덩치로는 택시 업계를 인수하는 건 힘든 일입니다. 무리한다면 캘리포니아 지역 정도는 인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경쟁 서비스인 제로를 운용 중인 닉스로서는 수지타산이 안 맞습니다.”

“전 인수한다는 소리는 안 했는데요.”

“예?”

당황한 그녀가 되묻는다.

“택시 업계가 하는 일이 뭐가 있습니까? 단지 택시 드라이버들을 한데 모은 조합 형태일 뿐이잖습니까. 그런 업계는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자동차가 나타나서 마부들이 사라진 것처럼요.”

“제로 서비스가 그걸 가능케 한다는 건가요?”

여전히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이다. 이쯤에서 조금은 맛보기로 보여 줄 수밖에 없겠다.

“도심지라도 외곽 지역은 택시를 구경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공항이나 시내 인근에 택시가 줄줄이 서서 대기하고 있죠. 왜 그럴까요?”

“수요와 공급의 미스 매칭이 문제죠.”

“정답입니다. 도심 외곽은 승객이 적으니 수지타산이 안 맞습니다. 자연스럽게 교외로 도는 택시는 더 줄어들고 공항, 터미널, 중심지에는 택시가 더 집중됩니다. 덕분에 몰려든 택시 드라이버들의 수입은 악화되고 교외의 승객들은 오지 않는 택시에 불만이 쌓이는 구조죠. 하지만 그걸 우리가 해결한다면요?”

여기까지 설명하자 엘런은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우버. 아, 아니지, 제로에 택시 호출을 같이 넣을 생각이시군요. 그거라면 택시 업계의 고질병인 미스 매칭을 해결할 수 있을테니…… 제로 서비스에 걸림돌이 될 택시 드라이버들의 불만도 잠재울 수 있겠고요.”

바로 본질을 꿰뚫어 버리다니, 확실히 이때부터 그녀의 싹이 보인다.

“보스, 잠깐만요.”

이야기를 관망하던 브릭이 끼어들었다.

“택시와 승객을 매칭하는 것까진 좋아요. 꼭 필요한 서비스죠. 문제는 닉스 제로가 콜택시와 차별점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차별점? 과연 없을까요?”

난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첫 번째, 결제 시스템이 투명해집니다. 택시 미터기를 쓰지 않고, 제로의 결제 시스템을 쓰기에, GPS 기반을 둔 정확한 요금을 산출할 수 있어 바가지 요금이 사라질 테죠. 거기다 미리 저장해둔 신용카드 정보를 자동으로 읽어오기에 결제의 번거로움도 없을 테고요.”

손가락 하나를 더 접는다.

“두 번째, 매칭된 택시의 서비스가 좋아집니다. 제로는 승객의 평가로 드라이버의 수수료 인센티브나 패널티를 가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택시라고 해서 예외는 없겠죠. 실시간 평가 때문이라도 택시는 일반 승객보다 제로 승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겁니다.”

그 때문에 제로 드라이버뿐만 아니라 택시도 닉스의 눈치를 보게 될 테고.

“마지막으로 요금을 비교하고 탈 수 있습니다. 승객은 고정된 택시 요금과 탄력적으로 요금이 변경되는 제로의 요금을 비교해서 콜을 하게 됩니다. 평소엔 값싼 제로를 호출하다, 혼잡시간이면 요금이 저렴한 택시를 타려 들겠죠. 물론 택시가 콜에 응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 손가락이 다 접히자, 브릭이 호우! 하는 탄성을 내지른다.

“정말이지 보스는 천재예요, 천재. 결제도 편리하고 실시간 가격 비교까지 가능하다니. 제가 승객이라면 제로 앱을 안 쓸 이유가 없을 거 같은데요?”

브릭이 승객의 입장을 대변했다면 존슨은 운영 측의 입장으로 말했다.

“현존 택시 드라이버들의 반발을 사지 않으면서도 제로의 시장 장악력이 빨라지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플랜이군요. 아니지. 제로의 결제 시스템을 택시가 쓰게 되면 수수료도 챙길 수 있을 터. 세 마리 토끼를 잡게 되려나요?”

“정확합니다.”

“닉스가 어떻게 1년 만에 이런 성장을 이뤘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거 같습니다.”

그때, 엘런이 슬쩍 손을 든다.

“페이지, 의견이 있을 땐 그냥 이야기하세요. 손을 안 들어도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녀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되는지 테이블을 한 번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대표님의 플랜은 제로, 승객, 택시 드라이버. 모두가 윈-윈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터기를 쓰지 않는 방식은 택시 조합이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득을 보면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하는 법. 그 대상이 택시 조합입니다. 택시 라이센스를 관리하고, 가만 앉아서 미터기에 수수료만 떼가는 배부른 돼지들이죠.”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닉스는 그 흐름을 조금 당기는 것뿐이고.

난 허리를 곧추세우고 말을 이었다.

“제로 앱이 활성화될수록, 택시 드라이버들의 수입은 줄어들 겁니다. 그들은 택시 업계와 손잡고 제로 앱을 법으로 막으려 들겠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까요?”

법안 관련 로비가 합법인 미국에서, 500억 달러의 자금을 굴리는 레드스톤의 로비 파워는 최강이다.

그런 이들을 등에 업고 있는 닉스 제로를 불법으로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택시 업계 때문에 제로를 합법화시키는 건 무리지만, 불법으로 금지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 결국, 한정적 승인이나 유보 같은 판단이 내려지겠군요.”

“맞습니다. 양쪽에서 로비를 해오면 가장 쉬운 일은 판단을 보류를 택하는 거죠. 법으로 제로를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택시 드라이버들은 차선을 택할 겁니다. 제로를 몰아내지 못하니, 제로에 편입되는 거죠. 급하게 할 거 없습니다. 제로의 덩치만 키우면 이동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테니까요.”

대세가 제로 쪽으로 기울면 택시 업계는 자연히 힘을 잃을 것이다.

그 말은 택시 업계의 로비력이 약해진다는 거고, 법안 싸움에서 최종 승자는 닉스가 될 것이다.

회의실 분위기가 묘하다.

불가능해 보였던 계획에 현실성이 덧대지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거겠지. 다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리라.

“제가 그린 밑그림은 여기까지입니다. 디테일은 여러분이 채워 주셔야겠죠? 이것으로 오전 회의를 마칩니다.”

난 회의실을 빠져나와 집무실로 향했다. 그런 나를 불러대는 여인의 목소리.

“대표님! 대표님, 잠시만요!”

허겁지겁 달려오는 여인은 엘런 페이지였다.

“페이지? 무슨 일입니까.”

“외람된 말이지만, 제 인사 문제 때문에 상담을 요청하려 합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대표실에 가서 이야기하시죠.”

내가 먼저 대표실로 들어서자, 조금 텀을 두고 그녀가 들어온다. 양손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말이다.

“설탕 안 넣은 아메리카노 드시죠?”

난 커피를 받아 들고 옆으로 치워둔다.

“페이지, 당신 연봉을 얼마로 책정했었죠?”

“어, 음…… 20만 달러입니다.”

“거기에 스톡옵션도 있죠?”

“맞습니다. 아, 죄송하지만 상담 내용이 연봉 문제는 아닙니다. 이미 과분할 정도로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책상에 턱을 괸다. 그녀가 부담스러워할 정도의 시선을 쏘아 보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속이 제로 팀이 아니라 이노베이션으로 돼 있어서 찾아온 거 아닙니까?”

그녀는 잠시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저는 본디 에픽카의 재무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닉스에서 배정받은 곳은 라이드 셰어링 쪽이 아닌, 그게 그러니까…….”

“모회사 쪽인 닉스 이노베이션이라 불만이라는 거죠? 제가 비서 따까리 같은 일만 시킬까 봐. 제 말이 틀립니까?”

“…….”

대답은 못 했지만, 표정으로 보니 정답이다.

사실, 이런 일을 예상했기에 난 준비해둔 말을 풀어놓는다.

“제가 처음에, 왜 연봉을 물었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커피 심부름이나 시킬 비서를 20만 달러나 주고 고용하는 회사가 있을까요? 거기다 스톡옵션까지 지급하면서요?”

난 자세를 바로잡고 말을 이었다.

“외모로만 직원을 뽑으려면 연예계로 눈을 돌리면 됩니다. 배우 지망생들에게 20만 달러로 사무실의 꽃이 돼달라고 하면 어떨 거 같습니까?”

“…….”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의 외모 때문에 특혜라도 받는 줄 알았습니까? 저는 철저한 능력만 보고 사람을 뽑습니다.”

“그, 그런 뜻이 아니라.”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페이지. 당신이 피닉스 캐피털에서 일했을 때 얻은 인맥들은 레드스톤, 모건 스탠리, 멘로 벤처, 골드만 삭스 같은 메이저급 금융사에도 퍼져 있지요?”

“예.”

“그 인맥이 당신 연봉의 이유입니다.”

어두운 표정의 엘런은 대답을 짜내듯 내뱉는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형적인 서양 미인의 표본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남자가 꼬이는 외모 덕분에 그녀는 폭넓은 인사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동료들의 시기를 불러일으킬 정도였다는 거다.

정상적인 영업 활동을 했음에도 온갖 추잡스러운 소문이 그녀를 따라 다녔고.

소문은 또 다른 소문을 불러일으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현실을 감당할 수 없던 그녀는, 결국 도망치듯 피닉스 캐피털에서 퇴사하게 된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레드스톤 연결 건은…… 역시나 안 될 거 같아요.”

“왜죠?”

“제가 좀 안 좋게 퇴사를 해서요.”

소문이 돌았을 때, 당사자가 퇴사하면 사람들은 소문을 진실로 믿는다.

이미 낙인이 찍힌 것이나 다름없는 그녀에게 다시 금융계 쪽 인맥을 연결해 달라고 하니. 선뜻 승낙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참고 있었지만, 바늘로 툭 하고 찌르면 터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제가 지금까지 말했던 건 당신의 능력을 배제하고 봤을 때입니다.”

“예?”

지금까지와는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 탓인지 그녀의 떨림이 잦아든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나요?”

“예, 외모가 아니라 능력을 보고 대해주겠다…… 라고 하셨죠.”

“맞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외모도 능력 중 하나입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그녀는 대답 대신 입술만 질끈 깨문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제가 당신의 프로필을 봤을 때, 놀라움의 연속이더군요. 특히, 피닉스 캐피털에서 투자 실적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건…….”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닫는다.

그 당시, 역대 최고 수준의 투자 실적을 이뤄냈지만 돌아오는 건 침실 영업을 했다는 오명이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기억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휘젓는다.

“현재 닉스 이노베이션의 직원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녀가 답을 못하자, 내가 자문자답을 한다.

“CEO인 저와 부사장 겸, CLO(Chief Legal Officer · 최고법률책임자)인 저의 매형. 그리고 당신이 전부입니다.”

그녀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만 껌뻑거리고 있다.

“닉스 전체에서 닉스 이노베이션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닉스 소프트, 닉스 코리아, 닉스 에너지. 거기에 그 아래에 딸린 자회사들 모두를 통솔하니까요. 그리고 모든 돈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죠.”

“설마, 저보고 닉스의 자산을 운용하라는 건가요?”

“닉스의 CFO(Chief Financial Officer · 최고재무관리자)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당장은 무리겠지만, 당신이 납득할 만한 실적을 낼 수만 있다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겠죠.”

갑자기 충격적인 제안이 들어오자, 그녀는 오히려 멍한 표정을 짓는다.

믿기지 않는 거겠지. 현금 보유액만 수억 달러인 회사의 자금을 운용할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아 참, 닉스는 올해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할 예정입니다. 타이밍이 참 절묘하다. 그죠?”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못 할 건 뭐 있습니까. 스물일곱인 저도 CEO랍시고 앉아 있는데요.”

난 그녀를 향해 씩 웃어주며 커피를 홀짝였다. 마침, 딱 알맞은 온도였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겨 냈으면 합니다. 좋게 생각하세요. 신이 당신을 만들 때 능력과 외모, 두 가지를 다 줘버렸는데, 그걸 가지고 걱정한다는 게 말이 돼요?”

“하지만 주변 소문이…….”

“소문요?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세요. 헛소문 같은 걸 퍼뜨리는 건 전부 패배자들입니다.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써서, 최후의 승자가 되면 모두가 당신을 우러러볼 겁니다. 그때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야기하세요. 난 당당하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입을 다문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그러다 결국, 참았던 눈물샘이 터져 버린다.

“흑…… 흑…… 죄송해요. 참으려 했는데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 많이 힘들었나 보다.

펑펑 울어대면서도 밖에 소리가 새 나갈까 봐 입을 틀어막는 모습이 더 애처로워 보인다.

난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예, 이젠 좀 진정 된 거 같네요.”

눈물범벅이 된 그녀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걸린다.

“절 만나고 처음으로 웃는 거 같네요.”

“앗, 그랬나요?”

“우는 것보다 훨씬 예쁘네요. 앞으로도 자주 웃어주세요.”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빠져 나갔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자신의 커피를 두고서 말이다.

난 그녀가 떠난 자리를 쳐다보자, 슬며시 웃음이 새 나온다.

엘런 페이지. 1억 달러의 여인.

미래의 그녀는 골드만 삭스의 말단으로 들어가, 실력 하나로 최고 재무 책임자 자리를 꿰찬다.

그 후에는 구글의 선임 부사장 자리로 이직해, 통계와 빅데이터 분야를 총괄하게 된다. 그때 그녀가 받는 연봉이 무려 1억 달러였다.

던질 만한 짱돌을 구하러 갔다가 금덩이를 주워온 느낌이랄까?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다.

설탕도 넣지 않았는데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치, 꿀이라도 탄 듯한 그런 달콤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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