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77화 (77/206)

기적의 IT 재벌 77화

트레버는 닉스에서 겪은 충격 때문인지, 자신이 어떻게 사무실로 돌아왔는지 기억도 못 할 지경이었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야. 승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무승부로 만들 기회는 남아있어.’

트레버가 허겁지겁 사무실을 뛰어다니자, 직원들이 놀라서 그를 쳐다본다.

“볼튼, 볼튼은 어디 있지? 지금 어디 있냐고!”

“서버실에 계십니다.”

“빨리 내 작업실로 오라고 해. 급하니까 최대한 빨리!”

트레버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작업실로 뛰어들어갔다.

작업실은 평소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급히 PC와 맥북의 전원을 켠다.

천천히 부팅되는 OS 때문에 그의 입이 바짝 타들어 간다.

‘지금쯤이면 인페르노에 대해 방비는 하고 있겠지. 하지만 날 너무 우습게 봤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지금의 인페르노 시스템을 수정해서 다시 에픽카에 집어넣는 것.

에픽카를 앱스토어에 올려 갱신시키기만 하면 상대를 공격할 수단이 생긴다.

‘뜨거운 맛을 보여주면 그제야 협상하자고 기어 나오겠지. 하지만 그땐 이미 늦었어. 이번은 시스템 전부를 날려주마.’

OS 부팅이 막 끝났을 차에,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대표님 볼튼입니다. 급히 찾으셨다던데…….”

“들어와.”

볼튼이 천천히 문을 연다.

평소 이 방에 들어오면 트레버가 난리를 쳤기에 그의 움직임이 조심스럽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아까 말씀하신 서버 문제라면 콜이 안 들어오는 게…… 헛!”

볼튼이 트레버의 안색을 보더니 화들짝 놀란다.

숨을 거칠게 내쉬며, 몸을 덜덜 떠는 것으로 모자라 눈까지 시뻘겋게 충혈돼 있었으니 말이다.

“대표님 몸이 불편하십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급한 일이 있으니 그것부터 처리해.”

“예? 아, 예. 그러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그것이 트레버 아래에서 일하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었다.

“지금 로이 자식이 우리 앱에 악성코드를 심었어. 최근 들어 버그가 난발한 것도 그 때문이고.”

“헙, 정말입니까?”

“그래, 확실한 정보다. 그러니까 볼튼, 자네는 그 증거를 모아줘.”

“어떻게 모으면 될까요.”

트레버는 테스트용으로 쓰던 휴대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녀석이 악성코드를 심은 건 닉스 제로 앱에서 나온 통계 프로그램일 거야.”

“앱에서 통계 프로그램만 따로 분리해서 추출하면 되겠군요.”

“그래. 그 후엔 서버에 남은 흔적들 수집해서 따로 증거를 모아두고. 알겠지?”

“알겠습니다.”

“다른 거 제쳐두고 이거부터 먼저 처리해.”

“어…… 하지만 아직 에픽카 서버를 복구 못 했습니다. 서비스가 계속 먹통이면 사용자 이탈이 생길 텐데요.”

볼튼이 토를 달자, 트레버는 설명하기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서버를 살린다 해도 의미가 없어. 녀석들이 심은 악성코드가 있는 한, 지금 버전의 에픽카는 또 먹통이 될 테니까.”

“아…….”

“내일 아침 일찍 수정된 에픽카 앱을 업로드할 거야. 그러니 애플 쪽에 미리 연락해서 긴급으로 심사 처리해 달라고 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알겠습니다. 대표님.”

볼튼이 작업실을 나가자, 트레버는 다시 PC 앞에 달라붙었다.

내일 아침까지 상대의 취약점을 후벼 팔 앱을 만들려면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몰랐다.

작업실에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시간도 잊은 그가 작업에 몰두 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집중을 방해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짜증이 차오른 트레버가 고함을 질렀다.

“누구야!”

돌아오는 목소리는 볼튼이었다.

“대표님, 문제가 생겨서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문제?”

문을 열어젖히자, 난감하다는 표정의 볼튼이 서 있었다.

“무슨 문제?”

“저, 그게…… 아무리 찾아도 닉스 제로에는 악성코드라 불릴 만한 게 없습니다.”

“내가 통계 프로그램만 따로 추출하라고 했잖아. 그 안에 악성코드가 심겨 있단 말이다.”

“없습니다.”

“뭐가?”

“통계고 뭐고, 닉스 제로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순간 트레버의 머릿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는 답변을 기다리는 볼튼이 앞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생각에 잠겼다.

‘뭐지? 인페르노와 같은 방식을 쓴 게 아니었단 말인가? 그럼, 녀석들은 어떻게 결제 패킷을 도중에 가로챘고, 어떻게 콜을 임의로 날린 거야? 대체 어떻게?’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생각과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지만, 해답이라는 도착지까지의 길은 깜깜하기만 했다.

그때 트레버의 휴대폰이 떨려온다.

발신자는 조나.

애플의 앱 심사를 담당하는 직원으로 평소 착실하게 로비를 해뒀던 녀석이다.

-트레버, 통화 가능합니까?

“긴급 심사 건이라면 내일 통화하시죠. 지금은 제가 다른 일이…….”

-심사 건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안 그래도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데, 뜬금없이 전화해서 나쁜 소식이라니?

당황스러운 나머지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든 말든 상대는 덤덤하게 말을 이어간다.

마치, 자동 응답 서비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성 메시지처럼 말이다.

-당신의 에픽카. 얼마 후면 앱스토어에서 내려갈 겁니다.

“예?”

-이해 못 했습니까? 에픽카는 이제 애플폰에서 서비스할 수 없단 말입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에픽카가 무슨 이유로…….”

말을 하다 어딘가 걸린 듯, 턱 막혀버린다.

그 이유라는 건 누구보다 트레버 본인이 잘 알았으니까.

-앱에 그딴 걸 심어뒀다니. 쯧,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조나.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사례는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딱 한 번만.”

애플폰의 GPS를 이용한 라이드 셰어링에 유일한 창구는 앱스토어다.

그곳에서 퇴출은 에픽카의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윗선에서부터 내려온 지시입니다. 제가 어찌해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습니다.

“뭐? 야 이 더러운 새끼야! 네가 받아 처먹은 돈이 얼만데 지금 그따위로 지껄이는 거야? 야! 야!”

고함을 질러 봐도 의미는 없었다.

이미 통화는 끊어진 뒤였으니까.

탁.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린 것도 모를 정도로, 그의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방금까지는 분노가 그의 감정을 지배했다면, 이제부터 몰려오는 건 절망이었다.

지금까지 투자받았고, 투자했었던 돈들이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바뀌게 됐으니 말이다.

“안 돼. 안 돼. 이런 건…… 아니야. 아니라고.”

* * *

[라이드 셰어링 업체 에픽카, 앱에 악성코드를 심어 경쟁사 공격.]

[앱스토어에서 악성코드 섞인 앱 배포. 애플폰 심사에 구멍 술술.]

[에픽카의 대표 트레버. 행방불명에 투자자들 집단 소송 예정.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투자유치 빨간불.]

[악성코드 앱, 에픽카에 공격당한 닉스의 대니얼 강 대표 “이런 일이 재발 못 하게, 법적 책임 물을 것.”]

[애플 관계자 “앱스토어 심사 강화 예정.”]

닉스 제로의 유일한 경쟁 상대였던 에픽카가 도산했다.

트레버는 에픽카 앱에 숨겨둔 인페르노로 닉스를 공격했지만, 그에 덜미가 잡혀 애플에 철퇴를 맞았다.

이번 사건은 닉스도 인페르노와 같은 방식으로 에픽카를 공격했으리란 그의 안일함이 부른 패착이었다.

난 처음부터 앱에 악성코드를 심을 생각이 없었다.

그 방법은 처음이야 어떻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잃을 게 많은 닉스로선 절대 선택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럼 에픽카를 공격한 건 어떻게 했냐고?

당연히 에픽카의 간부인 엘런 페이지를 회유해서 내부 서버에 다이렉트로 악성코드를 심어버렸다.

디지털 시대라도 아날로그 방식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어찌 됐든, 에픽카가 도산한 바람에 붕 떠버렸던 기존의 에픽카 드라이버들은 자연스럽게 닉스 제로로 흡수됐다.

물론 경쟁사가 없어졌다고 프로모션을 줄이거나 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내겐 제로 서비스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더 큰 그림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단계였기 때문이다.

본디 이번 일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비스되는 업체끼리의 알력다툼 정도로 정리될 사건이었다.

하지만 ‘앱스토어 악성코드’라는 이슈로 같이 묶여 버리면서 뉴스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기에 이른다.

그 덕분에 이름도 생소한 라이드 셰어링 서비스는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됐고, 덩달아 닉스 제로까지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우린 준비 단계였던 뉴욕과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쪽도 제로 서비스가 런칭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했다.

“기존에 에픽카에서 근무하던 드라이버들의 흡수는 안정적으로 끝났습니다. 애초에 에픽카와 제로, 두 가지를 병행하는 드라이버가 많았기에 큰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쯤이면 샌프란시스코 쪽은 프로모션을 줄여도 괜찮을 듯합니다만.”

이야기하던 제로의 담당자, 존슨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존슨, 그 의견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당신이 말한 합리성을 배제하시기 바랍니다.”

“예? 합리성을 배제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기존의 우버는 스타트업이었기에 합리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해야 했고, 합리적으로 수수료를 걷어야 했죠. 투자를 유치하려면 회사가 제대로 굴러간다는 이미지를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무슨 뜻인지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이미 장악이 끝난 샌프란시스코에 프로모션을 지속한다는 건 돈 낭비가 아닐지요? 차라리 그 돈을 로스앤젤레스 쪽으로 돌리는 것이…….”

존슨은 대표인 내 의견에 반대한다는 게 부담스러운지 말끝을 흘리며 눈치를 본다.

“샌프란시스코에 프로모션을 지속하는 게 다른 지역의 활성화에도 효과적인 전략이라면 어떻습니까?”

존슨 내 말을 곰곰이 되씹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다.

그러던 중 브릭이 그 대신 입을 열었다.

“보스, 혹시 샌프란시스코를 표본 지역으로 만들 생각인가요.”

“표본 지역?”

“음, 그러니까…… 제로 서비스의 시작이 샌프란시스코 지역이니, 여기서 어떤 결과를 보여주고 다른 지역에서 소문이 나게 만들려는 거죠.”

“맞습니다. 바로 그거죠.”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은 광고보다 입소문이 중요하다.

그것도 그냥 입소문이 아닌 ‘저거 하면 돈 잘 번다더라.’ 같은 입소문 말이다.

“제로에 등록된 드라이버들 입에서 돈벌이가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입이 생겨야 합니다.”

“그럼, 시간당 10달러 정도면 되겠습니까?”

“음…… 택시 운전사들의 수입이 4만 달러 정도라고 하니, 그보다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의 수입을 유지하도록 수수료와 프로모션을 조정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존슨에서 시선을 거두고 옆으로 향한다.

그곳엔 꽃처럼 회의실을 지키고 있는 여인, 엘런 페이지가 있었다.

꽃이라 칭한 건 외모의 영향도 있지만, 식물처럼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다는 뜻도 포함이었다.

그녀는 아직 닉스에 적응을 못 하는 듯했다.

“페이지, 이번은 당신에게 지시하겠습니다.”

“말씀하시죠. 대표님.”

“당신이 벤처 캐피털 근무 경력이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피닉스 캐피털이었던가요?”

“맞습니다. 피닉스 캐피털에서 4년간 근무했습니다.”

“좋습니다.”

내 딴엔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미소를 지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긴장한 듯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온다.

“피닉스 캐피털에서 당신의 상사였던 사람이 지나 말론 맞죠? 지금은 그녀가 레드스톤에서 일하는 거로 압니다만.”

“그, 그걸 어떻게…….”

레드스톤은 운용액만 1000억 달러가 넘어가는 초거대 투자 금융사다.

주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부동산펀드를 운용 중이며, 한국에선 국민연금의 운영을 맡기도 했다.

“직원을 스카우트하기 전에 인적사항은 꼼꼼히 조사하는 게 기본이죠. 아무튼, 그녀를 저와 연결해 주세요.”

“투자 건이면 더 좋은 VC를 소개해드릴 수 있습니다. 닉스 정도로 유망한 업체면 SS급 조건으로 투자유치가 가능할 테니까요.”

“아뇨. 저는 투자를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닉스는 디자인 특허와 닉스 챗이 벌어들이는 돈만 해도 충분히 굴러가니까요.”

“그렇다면 왜 레드스톤을……?”

“레드스톤이 관리하는 로비스트들, 그들이 필요합니다. 저는 택시 업계를 먹어치울 생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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