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70화
애플폰4는 국내에서 역대급 대박을 쳤다.
예상치를 웃도는 판매 성적에 휴대폰 제조사들은 충격에 빠졌다.
특히 애플폰4의 흥행을 저지하기 위해 신제품 조기 출시 카드까지 꺼냈던 오성전자는 본진에 핵미사일이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성전자 본사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회의실의 싸늘한 온도가 오성전자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했다.
“이번 애플폰4의 사전예약은 8만4000명이 신청했으며, 그중 6만1500명이 기기를 실수령했습니다. 전체 판매량은 당초 예상했던 4만 대를 넘어서, 총 10만5000대로 내년까지 예상 판매량은…….”
발표를 이어나가던 직원이 서류를 다시 쳐다본다.
그는 눈을 끔뻑거리다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내년까지 예상 판매량은 총 80만대입니다.”
80만대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회의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2009년 한국의 스마트폰 총판매량은 160만대다.
그런데 그 절반 수준인 80만대를 애플폰이 차지한다는 건 오성전자가 안방을 내준다는 소리나 같았다.
산만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상석에 앉은 사내가 탁자를 ‘쾅’ 하고 내리쳤다.
“모두 조용!”
그는 오성전자 정희건 회장의 아들인 정용재였다.
평소 표정의 변화가 드물던 그였지만, 지금은 미간에 빡빡한 주름이 져 있다.
“이번 갤럭시스A 조기 출시로 애플폰4 이슈를 재울 수 있다고 했던 사람이 누굽니까?”
정용재의 말에 좌측에 앉아 있던 백발의 중년인이 손을 든다.
“나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볼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부, 부회장님, 애플폰은 일시적인 유행입니다. 갤럭시스A가 출시되면 국면 전환이…….”
“제가 나가라고 한 말, 못 들었습니까?”
얼굴이 머리카락 색처럼 새하얗게 질린 중년인은 힘없이 회의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마케팅 책임자.”
“예, 옛!”
마케팅 책임자는 예순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바짝 기합이 든 이병처럼 답했다.
“애플폰 블로킹하려고 쓴 마케팅 비용이 총 얼마입니까?”
“그, 그것이…….”
당황한 그가 서류를 뒤적이는 중 정용재의 말이 이어진다.
“당신도 나가세요.”
“부회장님, 죄송합니다.”
“사과 필요 없으니까,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요.”
그 역시 잽싸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었으니까.
찬물을 끼얹은 듯한 회의실 분위기.
한숨을 내쉰 정용재가 말을 이어간다.
“내년에 애플폰4가 80만대나 팔린다는데, 여러분은 위기의식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가만히 자리나 차지하라고 회사에서 비싼 월급 주는 줄 압니까?”
정용재가 회의실을 슥 둘러보자, 모두가 눈길을 피한다.
‘밥벌레 같은 영감탱이들, 언제 기회를 봐서 싹 쓸어 버려야 하는데.’
혀를 쯧 하고 차며 눈길을 거두는 중, 최대민 이사에게서 시선이 멈춘다.
유일하게 자신과 눈을 마주해온 노인.
그는 일흔의 나이가 무색하게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가장 조심하라고 했던 인물. 뱀대가리 최대민. 내키진 않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를 호명한다.
“최대민 이사님.”
“예, 부회장님.”
“국내 시장에서 애플폰을 밀어낼만한 복안이 있습니까?”
그는 지목되길 기다렸다는 듯 말을 토해낸다.
“갤럭시스A의 조기 출시 카드를 꺼냈음에도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옴레아 프로젝트로 오성전자가 신뢰를 잃은 탓이겠지요.”
옴레아라는 이름이 나오자 정용재는 반사적으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한때는 오성의 간판이었지만 지금은 지우고 싶은 과오로 남은 이름, 전지전능 옴레아.
애플폰4의 출시 소식이 알려진 후, 옴레아2의 판매량은 일 300대까지 곤두박질치게 된다.
궁여지책으로 출고가를 20만 원이나 인하했지만, 구매자가 늘어나기는커녕 기존 사용자의 항의만 거세질 뿐이었다.
‘아버지라면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했을까?’
정용재가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기자 회의실은 정적에 휩싸인다.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최대민이 슬쩍 운을 띄운다.
“애플폰을 국내 시장에서 몰아내는 건 무리지만, 기세를 꺾어버릴 방법은 있습니다.”
“기세를 꺾는다라…… 어떤 방법입니까?”
“더불어 우리의 우호세력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동문서답에 정용재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러니까 무슨 방법이냐고요.”
“어흠. 어흠.”
최대민이 갑자기 헛기침하며 주변을 돌아본다. 그러자 정용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그가 먼저 회의실을 나서자, 최대민 이사도 재빨리 옆에 달라붙었다.
“최 이사님, 계속 이야기해 보시죠.”
“방법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애플폰을 공격할 게 아니라 적장의 목을 치면 됩니다.”
적장? 누가 노인네 아니랄까 봐.
알쏭달쏭한 답변에 답답함만 더 커진다.
최대민 이사는 정용재가 짜증을 내기 전에 답을 꺼내놨다.
“저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SG텔레콤입니다.”
“SG텔레콤이면 국내 점유율 1위 통신사인데 거기와 싸워봐야 우리만 손해 아닙니까.”
“SG텔레콤과 싸우는 게 아니라 애플폰 유통을 이끌었던 책임자, 신용화 전무를 끌어 내리는 겁니다.”
“신용화라면.”
SG그룹의 막내아들인 신용화는 표면적으로 전무 직함을 달고 있지만, 그가 SG텔레콤을 이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 자리에는 부회장님과 친밀한 관계인 신석호 부사장이 오르게 도와 드리는 거죠.”
신용화를 끌어 내리고 오성과 우호적인 신석호를 대신 앉힐 수만 있다면 애플폰 저지는 물론이고, 차후 오성의 스마트폰 판매에도 대대적인 협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손을 ‘딱’ 하고 튀긴 정용재가 말했다.
“애플폰도 막고 우호 지분도 얻고 일거양득의 계책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를 본보기로 끌어 내리면 다른 통신사, 특히 정부의 눈치를 많이 보는 KT는 애플폰 국내 도입을 포기하겠지요.”
“흠, 신용화가 힘이 약한 막내라곤 하지만 어엿한 오너 일가 아닙니까? 그를 끌어 내리는 건 모양새가 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용재의 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집무실에 가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부회장님, 신용화 전무를 한시바삐 쳐내야 합니다. 그는 저희 그룹에 해가 되는 존재입니다.”
“그 애송이가 해가 되면 얼마나 됐다고 그러십니까.”
“이번 WIPI건을 무력화시킨 것도 그가 진행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순간 걸음이 멈춘다.
“그게 정말입니까?”
“SG계열이 아닌 다른 회사를 앞세워 은밀하게 K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부 직원들을 흡수했다고 합니다.”
KG전자라는 말이 나오자, 지금까지의 사태가 어떻게 돌아간 건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빨리 뚫린 WIPI.
새벽녘에 통과된 애플폰 유통 허가.
‘내가 그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이에나 같은 정치인들 비위를 맞춰주는 건 물론이고, 통신사에까지 직접 양해를 구해서 진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게 코흘리개라고 생각했던 신용화였다니.
정용재는 분이 차올라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댔다.
“최 이사님, 방법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최대민이 목소리를 낮췄다.
“업계에 도는 소문입니다만, 신용화 전무가 한시적인 CEO라는 말이 있더군요.”
“소문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석호 녀석이 말하길 그 자리는 2년 동안의 시한부 자리라고 했으니까요. 그것도 신성호 회장에게 생떼를 써서 얻었다던가? 아무튼, 그렇습니다.”
듣고 있던 최대민의 음험한 미소가 짙어진다.
“그렇다면 오너 일가라 해도 이사진을 컨트롤 할 수 없습니다. 곧 자리를 떠날 사람을 누가 지지하겠습니까?”
“그는 이번에 애플폰 유통을 해냈지 않습니까?”
“단기 실적을 올리기 위한 궁여지책일 뿐입니다. 지지기반이 약하니, 기댈 곳이라곤 실적밖에 없겠지요. 결국, 실적만 바닥을 치게 만들면 이 사들이 알아서 그를 허수아비로 만들 겁니다.”
이사라는 족속은 평소엔 숨을 죽이고 충실한 거수기 역할을 해댄다.
그러나 권력의 추가 기우는 순간,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드는 이리떼처럼 변해 버린다.
그들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용재였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SG텔레콤의 실적을 떨어트리기만 하면 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정용재가 한걸음 뒤에서 따라오는 최대민을 돌아본다.
“디테일한 계획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번 갤럭시스A가 출시될 때, 통신사에게 지급하던 출시 보조금을 물량에 따라 차등으로 지급하는 겁니다.“
“보조금은 이미 차등으로 지급하고 있는 거로 아는데요.”
“이번 갤럭시스A만 보조금 지급의 폭을 지금보다 2배로 책정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많은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SG텔레콤이…… 아!”
이미 애플폰4 프로모션에 열을 올리고 있는 SG텔레콤으로선 갤럭시스A 판매에 소극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경쟁사들이 많은 물량을 배정받을 테고, SG텔레콤은 타사보다 비싸게 갤럭시스A의 물량을 받아야 했다.
“SG텔레콤으로선 선택을 해야 합니다. 타사보다 비싼 가격에 갤럭시스A를 출시하느냐, 그게 아니면 아예 출시를 포기하느냐.”
“오호라, 둘 중 어느 방법을 택해도 SG텔레콤의 점유율에는 타격을 입겠군요.”
“그렇습니다. 눈에 빤히 보이는 실책이니 이사회에서도 녀석을 물어뜯어 댈 겁니다.”
안에는 이사회가, 밖에서는 신석호가 두들겨 대면 녀석 혼자서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집무실 앞까지 도착했다.
정용재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직접 문을 열었다.
“흐흐, 이런 복안을 가지고 계실 줄이야. 일단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하시죠.”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 * *
한 손에는 휴대폰을, 다른 한 손으론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내 손에 들린 녀석은 갤럭시스A.
이번에 출시될 오성전자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다.
휴대폰의 외관부터 티끌 하나까지 확인할 기세로 훑어간다.
내가 알던 그 갤럭시스A가 아니다.
변경된 애플폰4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는지, 본래의 갤럭시스A보다 훨씬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이다.
몇 번을 훑어도 외관의 만듦새는 완벽하다.
내구성 때문에 두께를 손해 보긴 했지만, 지금 시대의 기술력으론 최고점을 주고 싶을 정도다.
오성이 다른 지저분한 일이 많아서 그렇지, 하드웨어 제조기술 하나는 인정해 줘야만 했다.
다시 전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환영합니다.]
[Ousung Galaxys A]
빠르다곤 볼 수 없지만, 기존 옴레아의 3분 카레 부팅보다는 확연히 빨라졌다.
내부 소프트웨어는 구글의 안드로이드UI를 그대로 쓰고 있다. 시간이 촉박했으니 UI까지 만들진 못했나 보다.
자연스럽게 손이 간 곳은 바탕화면의 편지 모양 아이콘이었다.
[챗온]
오성전자에서 만든 오리지널 메신저 앱이다.
디자인은 오성전자에서 밀고 있는 햅틱UI와 흡사한 느낌을 줬다.
다만, 메뉴 구성이나 인터페이스는 닉스 챗을 그대로 옮겨 왔다 해도 믿을 정도로 같았다.
“역시인가.”
내가 혼자서 중얼대자.
옆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신용화가 입을 연다.
“이제 다 봤어?”
“아뇨, 아직.”
신용화는 답답했는지 평소 즐겨 피는 궐련 담배를 꺼내 만지작거린다.
“호텔 라운지는 금연입니다.”
“알고 있어. 그냥 답답해서 그래.”
“답답하면 바람이나 쐬고 오시지요. 괜히 방해하지 마시고.”
“알았다고.”
밖에 나가는가 싶더니 잽싸게 돌아오는 녀석.
“어 잠깐. 안 하던 스카프는 왜 하고 다니는 거야?”
“아아, 이거요. 요즘 목감기가 걸려서…….”
“그거 아니고?”
“그거라뇨?”
신용화는 대답 대신 변태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칫, 눈치 하난 빠르다니까.
난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돌렸다.
“대응책은 이미 세워 뒀습니다.”
“벌써?”
“벌써가 아니라 옛날 옛적에 세워 뒀죠.”
그 말에 한숨을 내쉰 신용화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그 옛날 옛적이 언젠데.”
“음…… 닉스 챗 설립할 때부터? 닉스 챗 같은 모바일 메신저는 카피에 취약한 앱이니까요.”
“그럼 갤럭시스A는 왜 들고 오라고 했던 거야?”
그냥 물건을 빨리 보고 싶어서, 라고 말했다간 화낼 거 같아서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어휴, 애타게 하지 말고 그 대응책부터 말해봐. 이사진들이 갤럭시스A 물량 확보하라고 난리도 아니란 말이다. 부재중 전화가 벌써 14통째야.”
“난리를 치면, 그들이 원하는 만큼 물량을 확보하세요.”
“뭐?”
신용화는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제 말 이해 못 하셨습니까? 갤럭시스A 물량 확보하시면 된다고요.”
“그게 무슨 소린 줄 알고서 하는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SG텔레콤까지 갤럭시스A를 팔아대면 애플폰 점유율은 순식간에 쪼그라들겠죠.”
국내 시장은 완벽한 오성전자 텃밭이다.
부정하려 해도 그 허접스러운 옴레아가 50만대나 팔렸으니,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국내 환경이라면 KT와 유플러스만 갤럭시스A를 팔아대도 점유율은 순식간에 역전당할 거다.
신용화는 답답했는지 결국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후우- 물량 얼마나 확보해? 10% 정도로 간만 보면 돼?”
“아뇨. 많을수록 좋습니다.”
“나 참.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지르는 거야?”
그가 날 빤히 쳐다본다.
말없이 씩 웃어줬더니 머리를 벅벅 긁는 녀석.
“젠장. 그래, 해보자.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 그럼 25%? 30%?”
“많을수록 좋다니까요.”
“40%면 되냐?”
“40% 받고 20% 더.”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르는 녀석.
“60%? 너 미쳤어? 그걸 전부 시장에 풀려면 프로모션을 다 퍼부어도 모자란다고!”
“마음 같아선 100% 다 받고 싶지만, 타사에서도 팔아야 더 많이 팔리지 않겠습니까?”
“너…… 설마.”
신용화가 눈을 부릅뜨자, 난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설마가 아닙니다. 갤럭시스A를 최대한 많이 팔아주세요. 나중엔 그게 오성의 발목을 잡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