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68화 (68/206)

기적의 IT 재벌 68화

노키아는 오성과 KG의 본진인 한국에서는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1998년부터 시작해서 무려 14년 동안이나 세계 휴대폰 점유율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세계적인 기업이었다.

노키아는 현재 점유율 1위인 심비안OS를 개선하면 사용자를 그대로 끌어 올 수 있을 텐데.

왜 신규 OS를 만들었을까?

내가 답을 내기 전에 유정석 부장이 설명을 시작했다.

“노키아는 기존의 심비안OS를 보급형으로, 새로운OS를 고급형으로 세분화할 생각이었습니다. 현존하는 심비안OS 스마트폰으로는 애플폰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판단을 한 거죠.”

“아하. 기존의 심비안OS가 탑재된 기기는 성능이 떨어지니. 신제품부터는 아예 새롭게 판을 짜겠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비용적 측면에서 부담이 크지만, 노키아 정도 되는 거대 기업이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어? 잠깐만요. 그럼 우리 쪽에 모바일OS를 팔 이유가 없지 않나요? 노키아의 목표인 애플폰을 따라잡으려면 고급형OS인 엘다가 필수일 텐데요.”

“그게, 엘다의 개발과정에서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유정석 부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어 말했다.

“기존 심비안OS를 개발하던 개발진과 새로운 프로젝트인 엘다OS를 개발하는 개발진은 분리된 상태로 개발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니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됐죠.”

“그건 어쩔 수 없죠. 결과물을 내놓으면 자연스럽게 비교당할 테니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서로가 서로를 카피하게 된 겁니다.”

다름을 지향하고 2개의 프로젝트팀을 구성했는데, 정작 나온 결과물이 비슷하다면.

“CEO 입장에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겠군요.”

“맞습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초기부터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심비안OS팀이 사내 정치에서도 이겨버렸죠. 덕분에 새로 생긴 엘다OS팀은 공중분해 됐다고 합니다.”

사내 정치로 프로젝트가 엎어지다니.

국내만 사내 정치가 심한 줄 알았는데,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똑같나 보다.

“흐음…… 그런데 말이죠.”

“예, 말씀하시죠.”

“유 부장님은 노키아 내부사정을 어찌 이리 잘 아십니까?”

“하하, 그게.”

그는 난처하다는 듯 콧잔등을 긁적거리다 말을 잇는다.

“이번에 공중분해가 된 엘다OS팀에 지인이 있습니다. 저희처럼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하니 남 일 같지 않아서 말이죠. 아, 그렇다고 해서 사사로운 감정으로 추천해 드린 건 아닙니다.”

“노키아가 만든 모바일OS니 품질은 믿을 만하겠죠.”

“샘플을 봤는데, 기초 하나는 정말 튼튼해 보였습니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

유정석 부장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지금이 노키아와 협상하기엔 딱 좋을 시기다.

개발하던 OS가 애물단지가 된 노키아로썬 시일이 흐르기 전에 매각하고 싶을 테고.

개발진은 사내 정치로 흩어진 상태니 개별로 접촉해서 끌어와도 잡음이 없을 것이다.

또한, 엘다를 인수할 때 협상을 잘만 이끈다면, 차후 노키아의 휴대폰에 닉스표 모바일OS를 탑재시킬 수도 있을 거다.

좋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딱딱 맞아 떨어지는 퍼즐 조각을 손에 쥔 기분이다.

이번 퍼즐의 첫 번째 조각은 유정석 부장이려나.

내가 생각에 잠긴 동안, 유정석 부장은 초조하게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정석 부장님.”

“예. 대표님.”

“이번 노키아쪽 협상과 흩어진 개발진의 접촉은 유정석 부장님이 도맡아서 해주십시오.”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그는 감격해서 연신 고개를 숙여온다.

“단, 그전에 WIPI 건을 마무리 지으셔야 합니다. 기한은 한 달 드리겠습니다. 부장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능력을 보여주십시오.”

유정석 부장은 호쾌하게 웃어 보인다.

“대표님은 깜짝 놀랄 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 * *

닉스OS팀(구 KG전자 스마트폰팀) 개발자들의 실력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본디 애플OS에 WIPI를 구동시킬 미들웨어를 개발하는 데만 한 달이 걸릴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 열흘 만에 개발에서 이식까지, 모든 작업을 끝내 버렸다.

이번 애플OS용 WIPI 개발에 참여한 모든 직원에겐 짧은 휴가와 금일봉이 주어졌다.

지쳤던 팀원들은 꿀 같은 휴가를 떠났지만, 닉스OS팀 팀장으로 직위가 변경된 유정석 팀장은 휴가를 반납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노키아 본사가 있는 핀란드였다.

이미 엘다OS 인수 협상은 유선상으로 끝냈기에 유정석 팀장이 할 일은 도장을 찍는 게 다였다.

물론, 표면상의 이유가 그렇다는 거고.

그의 진짜 임무는 사분오열된 엘다OS 프로젝트의 팀원들을 끌어모으는 것이었다.

내가 애플OS에 WIPI를 구동시키는데 집중하는 동안.

신용화는 애플폰의 유통기간을 당기기 위한 물밑 작업에 한창이었다.

WIPI용 프로그램이 돌아가더라도, 행정부처에서 결과를 차일피일 미루며 시간 끌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애플폰4 유통 심사를 넣고 바로 다음 날.

예외적으로 새벽녘에 유통 허가가 떨어졌다.

공을 들인 효과가 있었던지 오성전자가 개입할 여지도 없을 정도로 전광석화와 같은 일 처리였다.

[SG텔레콤 애플폰4 단독 출시! 사전 예약 시작.]

[KT “애플폰 출시 계획 없다. 당분간 옴레아2와 풀터치폰 판매에 집중할 예정.”]

[유플러스 OZ옴레아 단독 출시.]

[외산폰의 역습. 국내 업계 초긴장.]

[SG텔레콤 신용화 전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 할 것.”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선전포고.]

[오성전자 옴레아2 가격 20만 원 인하. 기존 구매자들 불만 폭주.]

애플폰4의 가격은 89만9천 원으로 책정됐다.

799달러인 미국 판매가를 생각했을 때, 조금 애매한 가격이었지만 경쟁 기기인 옴레아2의 기존 출고가가 92만4천 원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싸 보이는 효과를 얻었다.

거기다 신용화가 확실히 힘을 줄 생각인지 7만 원대 요금제인 ‘데이터T클럽699’를 쓰면 애플폰4를 무료로 풀어버리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오매불망 애플폰4 출시만 기다렸던 국내 소비자들은 일제히 SG텔레콤을 찬양했고.

그 반응은 고스란히 예약 판매량으로 돌아왔다.

예약 수령 대기자만 5만 명.

단 3일간 진행된 온라인 예약 판매에 몰린 숫자였다.

여기에 출시 당일 현장 개통까지 사람이 몰리면 역대급 판매량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그 덕분에 SG텔레콤 내부에서도 애플폰 도입을 반대했던, 일명 반애플파들의 논리인 ‘국내 시장은 오성전자의 입지가 단단하기에 외산폰의 수요는 적을 것.’ 이라던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이번 일로 신용화는 SG텔레콤에서 입지가 더 탄탄해졌으며, 연계해서 진행 중인 포털-웹 미디어 사업에도 동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국내 애플폰 출시 문제가 일단락되자, 해외 사업 쪽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나와 신용화는 닉스 챗-포털의 연계를 일본에 안착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해외 시장 중, 일본을 택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일본의 애플폰 보급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게 가장 큰 이유가 됐다.

* * *

난 이른 아침부터 SG컴즈의 사무실을 찾았다.

방문 목적은 닉스 챗에 추가될 포털인 트와일라잇에 대한 중간 점검이었다.

보통은 컨펌을 실무진이 진행하지만, 이번 포털 사업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내가 직접 챙기고 있었다.

SG컴즈의 회의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브리핑 준비가 끝나 있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직원의 외침과 함께 프로젝터에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제 발표가 시작하려는 차에, 회의실 문이 열린다.

“내가 시간에 딱 맞춰서 왔나 보네.”

“앗, 대표님?”

SG컴즈의 대표인 신용화까지 등장하자 직원들의 동작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처음에 장비를 세팅했던 신입사원은 얼마나 긴장했는지 얼굴이 허옇게 떠 있을 정도였다.

다소 애매한 분위기에서 보고가 시작된다.

진행을 맡은 건 피곤해 보이는 인상의 여직원이었다.

“일본 시장에서 2009년 공식 집계된 애플폰 판매량은 155만 대입니다. 일본에서 판매된 스마트폰의 65%를 차지한 셈이며, 그들 대부분이 닉스 챗을 쓰고 있습니다. 아울러 닉스 챗의 사용량은…….”

보고가 계속 이어지려는 차에 신용화가 끼어들었다.

“지금 보고 하시는 분, 김지수 대리 맞죠?”

“예, 맞습니다.”

“닉스 대표를 앉혀두고 닉스 점유율을 읊고 있는 게 무슨 경웁니까?”

“아, 그게…… 그러니까…….”

직원들이 신용화의 등장에 긴장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그가 닉스 사무실을 방문할 땐, 항상 헤실거리기만 해서 잘 몰랐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재벌 아들내미가 맞긴 맞나 보다.

“사족은 다 치우고 포털에 관해서만 보고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녀는 황급히 화면을 넘겨서 트와일라잇이 나온 부분부터 다시 보고를 시작했다.

“트와일라잇에 들어가는 검색엔진은 구글로 전면 교체했습니다. 올해 4월까지는 다음도 구글의 검색엔진을 쓰고 있었기에 도입에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스크린이 전환된다.

검색 결과 창이 어떻게 뜨는지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결과 페이지는 구글의 것을 그대로 끌고 왔지만, 상단에는 저희만의 고유 콘텐츠를 넣었습니다. 중단에는 닉스 서클에서 공개로 설정한 자료를 넣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잠깐만요.”

이번엔 내가 진행을 막아섰다.

“지금 화면에 뜬 검색 결과화면. 설마, 모바일용은 아니죠?”

“모바일 페이지가 맞습니다.”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모바일용 검색 페이지에 뭐 이리 많은 걸 넣으려 들었는지, 산만하다 못해 질릴 정도의 디자인이었다.

역시, 미리 확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바일 페이지는 다시 작업해야겠네요. 디자인은 제가 직접 샘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저기…… 강현우 대표님. 이제 시일이 촉박해서 수정은 출시 후에나 가능할 거 같습니다.”

“출시일을 늦추더라도 완벽하게 하고 진행하는 게 낫죠. 뭐든 첫인상이 가장 중요한 법입니다.”

김지수 대리는 난처하다는 듯 신용화를 쳐다본다.

그녀로선 구원을 요청하는 눈빛이었지만, 신용화는 냉정하게 딱 잘라 버렸다.

“디자인 쪽은 강 대표 말을 따르세요.”

“하,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정이…….”

“후우- 누구 탓에 일정이 늘어지는 거 같습니까? 처음부터 똑바로 만들란 말입니다. 회사가 장난으로 보여요?”

혼쭐이 난 그녀의 표정은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다.

이야, 신용화 독하게 하네.

경영 스타일이 직원들을 휘어잡는 건가 보다.

아니면 성격이 원래 저리 지랄 맞던가.

분위기가 심각하게 얼어붙자, 내가 진화에 나섰다.

“수정 사항은 크게 없을 겁니다. 지금 페이지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도려내는 위주로 진행할 테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그녀는 살았다는 표정으로 다시 프롬프터 앞에 섰다.

보고를 이어나가려 할 때, 신용화가 흐름을 끊는다.

“보고는 여기까지만 받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김지수 대리의 눈동자만 어찌할 바를 몰라 바삐 돌아다닌다.

“다른 부분도 다시 점검하세요. 방금 모바일 페이지 부분은 강현우 대표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제가 지적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대신, 흡족할 만한 결과물을 가져오세요. 다들, 이번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잊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신용화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손을 내저었다.

“다들 나가보세요.”

직원들이 우르르 빠져나간다.

복작복작하던 회의실이 썰렁해지자 신용화가 한숨을 토해 낸다.

“어휴. 일하는 게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안 들어.”

“맘에 안 들면 저처럼 직접 하시든가요.”

“내가 강 대표처럼 할 수 있으면 이러고 있겠어? 젠장, 해외 쪽에서 디자이너를 영입해야 하나.”

해외를 다 훑어도 그의 마음에 드는 디자이너를 구하는 건 힘들 거다.

아마 타임머신을 개발하는 게 더 빠를걸.

잔뜩 인상을 찌푸린 신용화 대신 내가 입을 열었다.

“오늘 왜 이렇게 까칠합니까? 평소의 신용화 씨답지 않게 말이죠.”

“나 답지 않다라…… 여기저기서 견제가 들어오니까 마음이 급해져서 그런지도 몰라.”

“견제? 혹시 NEVER에서 무슨 일이라도 터트렸습니까?”

“아니. 포털이 아니라 스마트폰 쪽.”

그렇다면 오성전자에서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건데…….

그는 대답 대신 서류 봉투 하나를 내민다.

“뭡니까?”

“주간 업계 동향보고다. 일단 내용물부터 확인해봐.”

봉투를 개봉하자, 안건별로 정리된 서류들이 담겨 있었다.

서류 다발을 꺼내 드는데, 전면의 제목을 보는 순간 눈이 부릅떠진다.

[오성전자. 안드로이드OS가 탑재된 갤럭시스A를 내달 초 조기 출시 확정.]

예정이 아니라, 확정?

갤럭시스A는 본디 2010년 4월에 출시되는 기기다.

그걸 2009년 12월에 출시시키겠다라……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급해서 내지른 블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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