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67화 (67/206)

기적의 IT 재벌 67화

RIM의 블랙베리.

애플의 애플OS.

노키아의 심비안.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

지금은 그야말로 모바일OS의 춘추전국시대다.

하지만 최후에 살아남는 건 단 2종이 전부였으니.

승자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해서 충성도 높은 사용자를 확보한 애플OS와 전면 무료라는 파격적인 개방정책을 펼친 안드로이드OS였다.

이때 당시만 해도 일시적일 줄만 알았던 모바일OS의 양분화는 10년이 지난 뒤까지 이어진다.

그 덕분에 시가총액 1위는 애플이, 2위는 구글이 차지하는 고착화를 이어간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모바일OS를 만들고자 하는 욕심은 있었다.

하지만 애플처럼 폐쇄적인 운영을 하자니, 애플폰처럼 완벽한 디바이스를 만들어 낼 수 없었고.

구글처럼 완전 개방을 해버리자니, 그들처럼 넓은 범위를 커버할 만한 역량이 없었다.

애플보다는 자유롭고.

구글보다는 집중적인.

딱 그 정도의 포지션을 가지는 새로운 모바일OS.

그런 이상적인 녀석이 내 망상에서 현실로 뛰쳐나올 채비에 들어갔다.

이번이 애플과 구글로 양분된 시장으로 굳어지기 전의,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 * *

이른 아침부터 벨소리가 울려댄다.

책상을 더듬어 간신히 찾은 휴대폰을 집어 든다.

“여보세요.”

-닉스의 강현우 대표님입니까?

“맞습니다만.”

-반갑습니다. 저는 KG전자의 유정석 부장입니다.

침대에 걸터앉아 거울을 본다.

그곳엔 퉁퉁 부은 얼굴과 시커먼 그늘이 눈가에 있는 사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어젠 몇 시까지 술을 마셨더라...

찌르르한 두통이 머리를 후벼판다.

유수아와 같이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

1차로 고깃집, 2차로 카페, 3차로 호프집을 전전하다 보면 자정이 넘어가는 건 예삿일이었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게 미스터리 하다고 할까.

내가 딴짓을 하는 사이 다시 목소리가 넘어왔다.

-강현우 대표님?

“아, 예. 말씀하세요.”

-닉스에서 새로운 모바일OS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해서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맞습니다. 수아 씨를 통해서 전달받으셨나 보네요. 혹시, 관심 있으십니까?”

잠시 우물거리다 말이 넘어온다.

-단기적인 프로젝트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일요일 아침의 카페는 한가로웠다.

입구에 들어서자, 고양이상의 직원이 웃으며 다가온다.

“반갑습니다, 카페 오피스입니다. 예약하셨나요?”

“예약요?”

내가 되묻자.

“카페 오피스의 1층은 일반 카페로 2층은 임대 사무실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 그럼 2층이겠군요.”

그녀는 날 위층으로 안내했다.

카페의 2층으로 오르자 쭉 뻗은 통로 좌우로 늘어져 있었다.

장소를 몰라 두리번거리는 차에, 문 하나가 열린다.

거기서 걸어 나온 호탕하게 생긴 중년인이 내게 아는 체를 해온다.

“반갑습니다. 아침에 연락 드렸던 KG전자 스마트폰 부서였던 유정석 부장입니다.”

나이는 쉰 정도? 업계에서 팀원을 이끈 경험이 풍부한 탓인지 카리스마가 넘쳐 보인다.

“예, 닉스의 강현웁니다. 어, 그런데 스마트폰 부서였던, 은 무슨 뜻인가요?”

“아…… 지금은 가전제품 부서에 있습니다.”

그는 입에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그늘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마트폰 사업부가 사분오열로 찢겼다는 말은 들었다.

그렇다고 가전부서로 넣어 버린 건 너무 심하잖아.

“자, 안으로 드시죠.”

늘어진 방문 중, 가장 구석진 곳이 오늘의 약속장소였다.

방으로 한 걸음 내딛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정석 부장 혼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하루 만에 여섯 명이나 모였을 줄이야. KG전자 스마트폰 부서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위기인 듯했다.

우린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어? 그런데 왜 유수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걸까?

내 표정을 읽었는지 유정석 부장이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수아는 외출금지를 당했다더군요.”

어제 너무 늦게 들어가서일까?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처자가 외출금지라니.

그쪽 집안이 굉장히 보수적인가보다.

자리가 정리되자, 유정석 부장은 바로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강현우 대표님. 새로운 OS의 컨셉 영상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수아 씨에게 들으셨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그녀가 말하길,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문화적 충격이라…….”

내겐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만 모아 둔 영상인데, 지금 시대의 시선으론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이쪽 방면에선 모르는 게 없을 정도인 수아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처음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례인 걸 알면서도, 아침부터 연락을 드린 겁니다.”

“흠. 무슨 뜻인지는 알겠습니다.”

난 미지근한 생수로 목을 축이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영상을 보여드릴 순 없을 거 같습니다.”

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온도계가 있었다면 5도 정도는 내려갔으리라.

“영상을 안 가져오셨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경쟁사인 KG전자 직원들에게 컨셉 영상을 보여드리는 건. 저로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사라는 말에 특별히 힘을 줘서 말했다.

유정석 부장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이야길 이어갔다.

“강현우 대표님.”

“말씀하시지요.”

“저희가 어떤 각오로 이 자리에 나왔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내가 말끝을 흘리자.

“대표님께서 방금 경쟁사라고 하셨습니다만, 그건 저희에게도 통용되는 말입니다. 만약, KG에서 오늘 이 자리를 알게 된다면 인사상 불이익은 물론이고 사직을 통보할지도 모릅니다.”

“사직이라뇨. 너무 나가신 거 같습니다.”

“아뇨. 충분히 그러고도 남습니다. KG전자에서 스마트폰 부서를 날려버리기로 한 이상, 저희를 내치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을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팀원들을 영업이나 재고관리부서 내려 보내지도 않았겠죠.”

영업이라는 말을 할 때부터, 그의 목소리가 살짝 격양돼 있다.

자신의 부하 직원이 한직으로 쫓겨났으니, 분노하는 것도 무리도 아니었다.

회사에 헌신해라.

애사심을 가져라.

주인 정신을 가져라.

모두 다 개소리다.

경영진에겐 월급쟁이들은 부품이다. 그것도 회사에서 언제든 갈아 낄 수 있는, 그런 소모품 말이다.

이들이 업무를 태만하게 해서 이런 사달이 났겠는가? 잘못이 있다면 멍청한 경영진의 결정을 따른 것뿐이겠지.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유정석 부장이 서류뭉치를 꺼낸다.

“오늘 모인 직원들의 비밀 유지 서약서와 입사 지원서입니다.”

“허, 이런 걸 언제?”

“아침에 모여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일곱 명이 전부지만, 저희가 입사하면 다른 부서로 발령 난 팀원들도 하나둘씩 모여들 겁니다.”

그의 말대로 서류는 내가 오기 전 급히 만들었는지, 자필로 쓰인 글씨와 함께 지장이 찍혀 있었다.

서류를 살펴보는 동안, 유정석 부장이 이어 말했다.

“저희는 대표님의 골칫거리 역시 말끔하게 치워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에 법안이 통과된 WIPI 의무 탑재건 같은 것 말이죠.”

“정말입니까?”

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는 잽싸게 말은 받았다.

“WIPI 3.0은 기존의 WIPI와 껍질만 다를 뿐 알맹이는 같습니다. 급하게 법안이 통과된 만큼, 제대로 준비해서 나온 게 아니니까요.”

“그럼 KG에서 쓰던 WIPI용 미들웨어를 애플OS에 이식이 가능하다는 이야긴가요?”

“허허, 그런 미들웨어가 있다는 걸 아시다니. 지식이 해박하시군요.”

미래의 일이지만, 실제로 SG텔레콤은 WIPI를 안드로이드에서 구동시키기 위해 SKAP라는 미들웨어를 만들어냈다.

난 그걸 알고 있었기에 말을 꺼낸 것이다.

그는 목을 감싸던 단추를 하나 풀고 이어 말했다.

“저희가 애플OS는 다뤄보지 못했으니 확답은 못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둘러봐도 WIPI를 우리만큼 잘 다루는 사람들은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냥 툭 던지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는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있었다.

난 자세를 고쳐 잡고 말했다.

“진심으로 부딪혀 오는데, 저도 내빼기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죠.”

직원들의 표정이 환해지는 게 느껴진다. 난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여러분이 요청하신 모바일OS의 컨셉 영상입니다. 찬찬히 감상하시길.”

작은 휴대폰 앞으로 일곱의 장정이 모여든다.

너나 할 거 없이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열정이 눈에 일렁인다.

* * *

영상이 끝나고 실내엔 정적이 흐른다.

“여러분들 어떻게 보셨습니까?”

내 말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직원들이 고개를 숙여온다.

“닉스에…… 꼭 입사하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강현우 대표님.”

“제 손으로 새로운 모바일OS를 완성하게 해주십시오.”

“급여는 적어도 좋습니다. 일만 하게 해주시면 됩니다.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직원들은 가슴이 벅차올라 주체를 못 한다는 느낌이었다. 몇몇은 감격에 겨워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들이 KG전자에서 얼마나 푸대접을 받았으면 저럴까 싶은 측은지심이 들었을 정도였다.

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모인다.

“유정석 부장님.”

“예.”

“여기서 제가 입사를 거절하면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유정석 부장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하지만 이내, 진정을 되찾고 질문에 대한 답을 꺼냈다.

“스마트폰 개발을 포기한 KG전자에선 더 일할 수 없을 듯합니다. 아마도 개발자를 뽑고 있는…… 팬틱으로 가는 게 최선이겠지요.”

“팬틱이라…….”

팬틱은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큐리텔과 SKY브랜드를 흡수해서 몸집을 불린 휴대폰 제조사다.

하지만 규모의 한계가 명확하여, 2007년에 상장폐지와 더불어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다.

그 팬틱이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게 내년쯤이던가?

어쩌면 팬틱의 베가 시리즈를 만들어낸 개발진이 이들일지도 모르겠다.

난 두 손을 짝 소리 나게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컨셉 영상을 보여드렸다는 건, 여러분을 닉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입니다.”

“정말입니까?”

유정석 부장과 일동의 표정이 편다.

“시간이 촉박하니 첫 출근은 월요일부터 해주십시오. 그럼,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선다.

뒤이어 KG전자. 아니, 이제는 닉스의 직원이 된 이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온다.

이로써, 닉스는 모바일OS 사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 * *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닉스의 대표실 앞엔 이른 시간부터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주말 아침, 카페에서 만났었던 유정석 부장이었다.

“아니, 유 부장님? 첫날은 정오까지 출근하라고 했을 텐데요.”

“하하, 죄송합니다. 매일 이 시간에 출근하는 게 습관이 돼서 말이죠. 에, 에취!”

연달아 몇 번씩 기침을 해대는 유정석 부장.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혹시 몇 시에 오셨습니까?”

“KG전자에 6시 30분쯤 출근해서 사직서를 던져놓고 바로 왔습니다. 닉스 사무실에 도착하니 7시쯤 됐더군요. 그런데 문이 잠겨 있어서 당황했습니다.”

“닉스 사무실은 8시 30분 전에 문이 안 열리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직원들도 그 이후에 출근하는 거고요.”

당황스러운지 허허허 하고 웃어 보이는 유정석 부장.

대기업에 다니던 그로써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할까.

“그런데 아침부터 찾아오시다니,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

“아, 어제 보여주셨던 컨셉 영상 말입니다.”

“혹시 영상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가 있을 리가요. 전혀 문제없습니다. 보여주신 영상은 최고입니다. 발상이면 발상, 디자인이면 디자인. 놀랍다는 말 말곤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아쉬울 정도입니다. 다만…….”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 말을 이었다.

“이걸 직접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그의 말대로 시대를 초월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리라.

“전부 구현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닉스의 모바일OS는 이제 걸음마 단계니까요.”

“이 정도 퀼리티의 OS를 뽑으려면 개발 기간이 수 개월은 훌쩍 넘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내년 후반기는 돼야 윤곽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내년 후반기면 너무 늦다.

그땐 이미 안드로이드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시장을 휩쓸어 버릴 테고 애플폰의 후속 기기까지 출시된 시점일 테니까.

“그건 안 됩니다. 늦어도 내년 중순에는 베타 버전이 나와야 합니다.”

“닉스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해도,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 시작하는 건 개발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유정석 부장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타사의 모바일OS를 인수해서 쓰는 건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은 의견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거 보다. 기본 틀이 잡힌 상태에서 살을 덧붙이는 게 빠른 건 자명한 사실이니까.

다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고나 할까.

“타사라고 해봐야 블랙베리, 심비안, 팜, 윈도 모바일, 안드로이드가 전부 아닙니까. 그들도 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텐데, OS를 닉스에 매각하려 들까요?”

“그건 보유하고 있는 모바일OS가 하나일 때 이야기지요. OS를 2개 소유하고 있다면 하나는 매각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OS개발팀 2개를 돌릴 정도로 여유 있는 곳이 있던가? 안드로이드의 구글은 아닐테고…….

나름, IT업계 동향에 빠삭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거기가 어딥니까.”

“심비안OS를 만든 노키아. 그곳에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노키아에서 OS를 2개나 가지고 있다고요?”

“예. 프로젝트 이름은 엘다(Elda). 애플OS를 저격하기 위해 나온 모바일OS입니다. 그 플랫폼을 닉스에서 인수하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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