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66화
“왜?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떠올랐어?”
내가 소리치자 신용화가 화들짝 놀라 곁으로 다가온다.
“떠오르긴 떠올랐죠. 그것도 애플폰의 국내 출시와 새롭게 출시될 모바일OS.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잡는 방법이.”
“그게 뭔데?”
그는 궁금해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우리도 다른 곳과 손을 잡아서 빈 곳을 메꾸면 됩니다.”
“다른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봐야 바뀌는 건 없어. WIPI 3.0을 탑재하지 않는 이상 애플폰의 국내 출시는 무리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애플OS용 WIPI를 개발하는 건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아뇨. 가능합니다. 국내엔 오성전자를 제외하고도 WIPI를 스마트폰에 탑재시킨 제조사가 있지 않습니까.”
“KG? KG전자를 말하는 거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용화는 김이 빠진 콜라를 마신 듯한 표정을 짓는다.
“햐. 강 대표, 그건 절대 무리야. KG입장에서도 외산 휴대폰이 안 들어오면 이득일 텐데. 굳이 우리에게 힘을 빌려줄 리 없잖아.”
“확실히 KG전자 입장에서는 우리와 손을 잡을 유인이 제로에 가깝겠죠. 하지만 KG전자의 직원들이라면 어떨까요.”
“직원들?”
“예. 직원들.”
그는 입을 다물고 생각을 고르기 시작한다. 난 굳이 그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없었기에 말을 계속했다.
“KG전자는 오성전자가 옴레아 프로젝트에 실패한 걸 보고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당연히 스마트폰 사업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겠죠.”
“내가 듣기론 KG의 스마트폰인 인사이드의 후속작을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 이름이 레일리던가…….”
일반인들은 들어 본 적도 없는 폰을 알고 있다니.
누가 통신사 아들내미 아니랄까 봐 기기 출시에 대해서는 빠삭하다.
“그거. 남은 부품 재활용입니다. 재고가 많이 남았으니 어떻게든 털어 보려는 속셈이죠. 이미 스마트폰 부서는 형식적으로만 남아 있고, 직원 대부분은 다른 부서로 넘어갔다고 들었습니다.”
“오호! 그럼 핵심 개발자들만 포섭할 수만 있다면 애플폰에 WIPI를 우회 탑재시키는 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가능할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가능합니다. 이미 K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는 인사이드에는 WIPI를 탑재시킨 전력이 있으니까요.”
“단정은 이르지 않을까? KG쪽 애들이 개발한 건 윈도 모바일용이잖아. 애플OS는 쉽지 않을 텐데.”
예리한 질문이다.
윈도 모바일과 애플OS는 개발 환경이 천지 차이였으니까.
하지만 그 건에 대해서도 이미 답이 나와 있다.
“닉스 코리아가 애플OS 쪽 개발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거. 잊으신 건 아니죠?”
“옳거니. 닉스는 전원이 애플OS를 다뤘었지? KG쪽 인력을 닉스에 흡수시키면 자연스럽게 연계가 되겠구나. 아, 잠깐만. 넌 어떻게 KG전자의 내부사정을 그리 잘 아는 거야?”
“내부에 스파이가 있거든요.”
“스파이라면…… 혹시, 수아랑 아직도 연락하고 있는 건 아니지?”
“가끔 연락은 합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너, 너…… 으으.”
나를 보는 신용화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혼자서 끙끙거리기까지 하는 걸 보면, 일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심각한 분위기다.
뭐야, 저 녀석.
질투?
시기?
아니다. 그것보단 좀 더 복잡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거 같다.
흠, 유수아의 말과 행동으로 유추해봤을 때, 신용화와 연인 사이는 아닌 거 같던데.
대체 이 둘은 무슨 관계일까?
물어보기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지레짐작하는 거보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서로 나은 일일 테니까.
“저기 신용화 씨. 예전부터 궁금…….”
그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신용화.
표정만 보자면 항복을 권유받은 망국의 왕과 같은 비장함이 깃들어있다.
침통하면서도 무겁고, 어쩔 수 없는. 그런 복합적인 표정 말이다.
“강현우 대표, 잘 부탁한다.”
“예?”
그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아니, 뜬금없이 뭘 부탁한다는 거야?
* * *
금요일 밤의 영화관은 북새통을 이뤘다.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든 무리와 데이트하는 연인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까지.
좁은 땅덩이와 짧은 여가 시간을 보내기엔 영화관만 한 곳이 없으니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니 5천만 인구의 나라에서 천만 관객 영화가 줄줄이 쏟아지는 거겠지.
“주문하신 캬라멜, 어니언 맛 팝콘과 나쵸, 핫도그, 음료 2개 나왔습니다.”
양손 가득 간신히 집어 들었다.
컨셉은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전부 준비했어.’라고 할까.
낑낑거리며 인파 사이를 헤집는데 사내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와, 방금 저기 서 있던 여자 봤냐?”
“봤지. 지나가던 남자들 다 돌아보던데. 얼굴도 얼굴이지만 몸매가 완전 착해.”
“아마 연예인이겠지? 저런 여자랑 딱 하루만 데이트해봤으면…….”
누굴 이야기하는지 안 봐도 뻔하다.
사내들이 걸어왔던 반대편으로 향하자, 눈이 부실 정도의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난다.
그녀는 이쪽을 보곤 손을 흔든다.
“여기에요, 현우 씨!”
양손 가득 팝콘 따위를 짊어지고 있었기에 난 미소만 지어줬다.
“어머, 뭐 이리 많이 샀어요.”
“수아 씨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전부 사 왔죠. 이 중에 좋아하는 거 있어요?”
“예.”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팝콘과 나쵸를 받아 든다.
“다 좋아해요. 영화관에 있는 거 전부.”
그렇게 웃지 마세요. 심장에 안 좋습니다.
그녀와 나는 조금 애매한 관계다.
연인이라 하기엔 아직 손도 못 잡아봤고, 일이 바쁜 나머지 자주 만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관심 주제가 같았기에 닉스 챗으로 밤늦도록 채팅하거나, 통화를 한 시간 동안 할 때도 있었다.
친구보다는 가깝고 연인보다는 먼.
딱 그 정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보고 싶은 영화는 고르셨어요?”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표 2장을 꺼내 든다.
“쨔쟌! 사실, 예전부터 예매해뒀답니다.”
“이번에 개봉한 닌자 암살자네요.”
“맞아요. 계속 보고 싶었는데 같이 볼 사람이 없어서 곤란했거든요.”
“진즉 이야기하시지. 그럼 더 빨리 보러 갔을 텐데.”
“현우 씨는 바쁘잖아요. 뉴스만 봐도 알겠던데요.”
“바쁜 건 맞지만 미녀의 데이트 신청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내 딴엔 농담 식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받는 사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뭐, 뭐예요. 그게.”
손을 휘휘 내젓는 게 퍽 귀엽다. 이러면 더 놀리고 싶어진다니까.
“수아 씨 정도면 미녀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 정도는 평범한 수준이에요.”
“와우. 방금 지나가는 여자. 엄청 째려보는 거 봤어요? 네가 평범하면 난 뭔데, 라는 표정이던데요.”
“지, 진짜요?”
급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는 그녀.
“당연히 농담이죠.”
“아, 정말. 놀리지 말고 어서 들어가요.”
* * *
영화는 무난했다.
닌자 암살자라는 이름 그대로, 닌자 출신 주인공이 악당을 칼부림해서 죽이는 내용이었다.
머리 비우고 보기 딱 좋은 액션 영화라고나 할까.
“영화, 볼만했어요. 그죠?”
“예. 눈이 즐거웠네요.”
난 사실, 영화보다 유수아가 간식을 흡입하는 걸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캬라멜맛 팝콘.
어니언맛 팝콘.
나쵸.
핫도그에 음료까지.
어찌 저 작은 체구로 다 먹을 수 있지? 이게 인체의 신비라는 건가.
알뜰한 그녀는 손에 묻은 팝콘 가루까지 쪽쪽 빨아먹은 후, 나를 근처의 카페로 이끌었다.
“이 집에 딸기 케이크가 그렇게 맛있대요.”
“그런 건 어디서 알아낸 거예요?”
“닉스 서클요. 디자이너 슈퍼스타K 이후부터, 국내에도 사용자가 많아서 쓰기 좋아졌어요.”
“앞으로는 더 활성화될 겁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이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먼저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자, 유수아는 각각 다른 케이크 3개를 가져왔다.
“제가 좀 많이 먹죠?”
“많이 먹는 게 어때서요. 그러고도 유지를 한다는 건, 그만큼 노력을 한다는 이야기겠죠.”
“아뇨. 오늘은 스트레스를 풀어야 해서. 좀 무리할까 생각 중이에요.”
“회사 일이 잘 안 풀리나 보죠?”
그 말을 기점으로 유수아의 신세 한탄이 시작됐다.
K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한 덕분에 스마트폰 사업부는 사내에서 완전히 따돌림당하고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 다른 부서로 옮겨가는 팀원들의 걱정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던 스마트폰 사업부 소식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짠해질 정도였다.
“저, 수아 씨. 예전에 제가 말했던 거 기억하세요?”
“어떤 거요?”
“맥 월드에서 말했던 말요. 수아 씨를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제야 아! 하고 소리치는 그녀.
기억이 떠올랐나 보다.
“그거 진심이었는데. 아직도 생각 없으세요?”
“제가 닉스에 입사…….”
긴 속눈썹을 가진 눈이 깜빡거린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닉스는 성장세를 봤을 때, 충분히 매력적인 직장이죠. 요즘 취업 준비생들에겐 한국의 애플이라 불릴 정도니까요.”
한국의 애플이라니. 이거, 분에 넘치는 영광인데.
“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힘들 거 같아요.”
“음……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오해는 마세요. 닉스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니까요. 단지, 닉스는 스마트폰 개발보다는 소셜 서비스나 디자인 쪽에 가까우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나 할까요.”
그녀의 어깨가 힘없이 축 늘어진다.
“저는 좋든 싫든 남아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언젠가는 KG전자도 스마트폰 사업으로 회귀할 거라고 믿으니까요.”
실제로 KG전자는 다시 스마트폰 사업에 발을 담근다. 다만, 그때는 이미 오성전자와 애플이 시장을 장악한 뒤라는 게 문제였지만.
“수아 씨 걱정이 뭔지는 잘 알겠어요. 닉스에 와서는 하던 일을 할 수 없다는 거. 저번에도 이야기하셨잖아요.”
“예. 그랬었죠.”
“그럼, 닉스에서 스마트폰 개발을 한다면요?”
“니, 닉스에서 스마트폰을?”
그녀는 어찌나 놀랐는지 케이크를 푹푹 찌르던 포크를 놓쳐 버린다.
그런데 그걸 느끼지도 못했는지, 케이크를 찌르던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수아 씨, 제가 아무 준비 없이 말을 꺼낸 건 아닙니다. 저는 닉스의 대표로서 비전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내 휴대폰을 테이블의 중앙에 가져다 둔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유수아.
“이 휴대폰에는 수아 씨와 KG전자의 직원들에게 보여줄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켜 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그녀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휴대폰에 손가락을 뻗는다. 그러고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킨 후에 터치했다.
톡.
4인치 남짓한 작은 화면이 켜진다.
그 후에는 따로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휴대폰이 꺼졌다가 다시 부팅됐으며, 멋대로 작동되기 시작한다.
“어? 어?”
유수아는 당황했지만 이게 진짜 구동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컨셉 영상임을 눈치채곤 화면에 집중했다.
부팅과 동시에 보인 건 멋스러운 닉스 로고였다.
로고가 사라지고 순식간에 OS부팅이 끝난다. 이어지는 메인화면은 깔끔하게 정돈된 미술관 같은 느낌이다.
한쪽으로 화면이 쓸려오자, 숨겨졌던 앱들이 도서관 목록처럼 펼쳐진다.
“와!”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움직임에 유수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모든 것이 그녀가 가진 상식을 파괴해 버리고도 남았다.
5분 동안 이어진 영상이 끝나고도 그녀는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떠셨나요?”
내가 휴대폰을 집어넣으려는데, 갑자기 손을 덥석 잡아채는 그녀.
“이, 이거. 뭐죠? 세상에 이런 게 있었나요?”
“아뇨. 이 세상엔 없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컨셉 영상이니까요.”
“이 영상을 현우 씨가 만들었다고요? 혼자서요?”
“예.”
유수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겐 당연한 것들이지만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겐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
그녀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다.
“현우 씨가 천재인 건 알았지만 이런 발상을 해내다니. 지금까지의 모바일OS와 궤를 달리할 정도예요. 거기다 디자인은 또 어떻고요. 정말,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아 앗, 죄송해요.”
그녀는 그제야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흠흠, 컨셉만 있으면 뭐 하겠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할 인재를 못 구해서 첫 삽을 뜨지도 못했는데요.”
은근슬쩍 운을 띄우자.
“할게요. 제가 무조건 할게요. 하게 해 주세요.”
눈을 빚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소녀의 표정이다. 그 대상은 내가 아닌 새로운 모바일OS겠지만.
“새로운 스마트폰 OS를 만든다고 하면 흩어졌던 팀원들도 긍정적인 답을 줄 거예요. 특히, 그곳이 닉스라고 하면 더더욱 말이죠.”
“아, 수아 씨 잠깐만요. 저는 다른 팀원들까지 받아 주겠다고 한 적은 없어요.”
“예에?”
신나서 텐션이 치솟았다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그녀에게 강아지처럼 귀가 있었다면 축 늘어졌을 거다.
“다른 팀원들은 간단한 테스트를 거치고 받을 생각입니다. 새로운 OS를 만들기 전, 기존에 플랫폼을 만들었던 실력을 확인하는 거죠.”
“어떤 테스트를 하게 되는 거죠?”
“KG전자에서 출시했던 인사이드에 WIPI 넣었었죠?”
“억지로 꾹꾹 눌러 담았었죠. 간신히 구동만 가능한 정도로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상체를 앞으로 당겼다.
“그걸 애플OS에서 구동시키는 게 닉스의 입사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