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64화 (64/206)

기적의 IT 재벌 64화

카페 루루의 점장, 로버트 최는 며칠 전 벌어진 사건 때문에 속을 앓고 있었다.

‘순하게 생겼더니만, 완전 미친년이었잖아.’

손을 깨물어서 피가 철철 나는데, 그 위로 의자를 내려치려던 그 모습.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하지만 반대로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이 근방의 한국인 중에선 독보적인 외모를 가졌고. 몸매까지 착한, 그런 여자는 구하고 싶다고 구해지는 게 아니었다.

그 때문에 로버트는 그녀가 면접에 왔을 때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이런 사달이 나버렸다.

“쳇, 그년 아니면 여자가 없나. 세상의 반이 여잔데.”

로버트는 툴툴거리며 카페로 들어선다.

“어서오세…… 어, 점장님. 오셨네요.”

인사를 하던 직원이 시선을 피한다.

일이 겹쳐서 나흘 만에 방문한 카페였는데 어째선지 안이 허전했다.

“애들 다 어디 갔어? 이 시간이면 홀 청소를 해야 할 거 아냐! 매니저, 강수정이 어디 갔어?”

“저, 그게, 그러니까…….”

“빨리 말 못 해?”

버럭 화를 내자 직원이 억지로 답을 내뱉었다.

“어제부로 그만뒀어요.”

“뭐?”

“전화가 왔더라고요. 바로 그만두겠다고. 이달 월급은 안 주셔도 된대요.”

“이 미친년이 거둬주고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로버트는 씩씩거리며 전화를 돌려댔다.

그러나 당연히 전화는 꺼져 있었다.

“전화도 안 받는다 이거지.”

그의 머릿속에는 강수정을 어떻게 하면 더 괴롭힐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요, 망할 년. 오늘부로 인생 종 친 줄 알아라.”

씩씩거리던 로버트는 담배를 태우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후우-”

딱, 담배를 한 모금 빠는데. 사거리 건너편에 쳐진 거대한 가림막이 눈에 들어온다.

“저건 또 언제 생겼대?”

빌딩의 1층부터 3층까지, 모두가 가려진 대형 가림막이었다. 겉면에는 별다른 표시도 없었다.

빤히 거길 쳐다보는 중.

가림막 밖으로 익숙한 사람이 걸어 나온다.

그녀는 카페 루루의 매니저였던 강수정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

“저년이 어디 갔나 했더니. 저기로 가 있었구만.”

로버트는 그녀가 울며불며 애원할 걸 생각하자, 절로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윽박만 질러대면 아무것도 못 하고 눈물만 흘려댈 게 뻔했으니, 가지고 놀기 딱 좋은 장난감이었다.

‘수정아. 오늘은 이 오빠가 밤새도록 놀아주마.’

생각만으로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는 신호를 무시하고 교차로를 건넜다.

차들이 경적을 울려댔지만, 지금의 그에겐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겁먹은 강수정이 싹싹 비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단숨에 빌딩 앞까지 도착한다.

가림막을 걷어내자, 옅은 먼지 냄새와 커피 향이 섞여서 날아온다.

“여긴 카페? 언제 이런 데가 생겼지.”

투톤 컬러로 정돈된 실내.

카운터 뒤편에 마련된 오픈 키친엔 3대의 커피머신과 그라인더. 바리에이션 메뉴를 위한 블렌더까지 비치돼 있다.

완벽하게 갖춰진 카페의 모습.

하지만 손님은 물론이고 직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어딘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로버트가 카페의 풍경에 눈길을 뺏긴 건 잠시였다.

그는 쫓던 토끼를 마저 사냥하기 위해 눈알을 이리저리 돌려댄다.

“강수정, 여기 있는 거 알고 왔다. 빨리 나와. 지금 나오면 아프게 하진 않을 테니까.”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흐,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짐들로 막혀 있다.

그렇다는 건 1층 어딘가에 그녀가 있다는 뜻이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로버트.

그가 주방 근처까지 갔을 때, 옆에 쳐진 커튼이 미세하게 팔랑거린다.

자세히 봤더니 커튼이 살짝 볼록하게 부풀어 있는 게 느껴졌다.

‘저기군. 네가 도망쳐봐야 내 손바닥 안이지.’

한 걸음. 또 한 걸음.

바로 지척까지 다가간 그가 커튼을 홱 젖히자, 고개를 숙이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강수정이 아니다.

자신의 팔을 물어뜯은, 괘씸한 년.

강현경이었다.

“호오. 꿩 대신 닭인가? 아니지, 닭 대신 꿩이구나.”

손을 물렸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녀는 범을 만난 사냥감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으니 말이다.

로버트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스며든다.

“그때의 그 건방진 모습은 어딜 가셨나.”

“사,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하하, 이거 참.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왜 그리 겁먹고 있어?”

“다시는 안 그럴게요. 살려만 주세요.”

강현경은 다짜고짜 넙죽 엎드려 빌기 시작한다.

상대가 저자세로 나올수록 로버트는 흥분을 참을 수 없었다. 이건 그의 성적 취향에 딱 맞는 먹잇감이었으니까.

“일단 얼굴 좀 보고 이야기하자고.”

그는 반항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단숨에 머리채를 낚아챘다.

“꺅!”

실내에 외마디 비명이 울린다.

“역시 얼굴은 이쁘게 생겼네. 딱 내 스타일인데 말이야.”

하지만 그때. 연기와 함께, 목구멍이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치이이이익-.

옆에 숨어 있던 강수정이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려댄 것이다.

“죽어! 변태 새끼! 죽어! 죽으라고!”

양손에서 스프레이를 뿌려대는 탓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필사적으로 양손을 허우적거리는 것뿐.

“이, 이년들이…… 이, 이…….”

목구멍에서 더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기억이 끊어진다.

* * *

로버트 최가 제압당한 후,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경찰들은 그의 손아귀에 남은 머리카락과 CCTV를 보곤, 로버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번에는 CCTV라는 증거가 완벽하게 남았기에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이 소식을 접한 건 로버트가 경찰서에 끌려가고, 구치소에 수감 된 이후였다.

뒤늦게 현장 도착해 CCTV 복사본을 확인한다.

음성까지 녹음된 터라, 현장에 있었던 일이 생생하게 리플레이 된다.

헐레벌떡 벽장으로 숨는 강수정과 커튼 뒤에 들어가는 누나.

잠시 후 로버트가 따라 들어온다.

“아니, 이런 걸 둘이서 계획 했단 말이야?”

“생각보다 쉬웠어. 점장, 그 변태 새끼가 예상대로 잘 움직여 줬거든.”

“이거, 참…… 말이 안 나오네. 카페 차려 달라고 해서 해줬더니.”

누나가 카페 루루 맞은편에 가게를 차리겠다고 했을 땐, 단순히 경쟁으로 로버트를 망하게 할 생각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걸 무대로 함정을 팠을 줄이야.

영상이 계속 흘러간다.

커튼 뒤에서 발견된 누나가 애절하게 비는 모습.

누가 보더라도 방심할 만한, 소름 돋는 연기력이었다.

“연기를 이렇게 잘하면 차라리 배우로 데뷔하는 건 어때?”

“얘도 참. 연기가 아니라 반쯤은 진짜였어. 눈을 딱 마주치는데, 몸이 떨려서 움직일 수가 없더라.”

머리채를 잡혀서 끌려 나가는 장면에는 나도 모르게 손아귀 힘이 들어갈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강수정이 튀어나와 스프레이를 뿌려대는 것까지 확인하고 영상을 껐다.

“후우- 누나.”

“말해, 동생.”

난 진지하게 무게를 잡고 말했다.

“왜 이리 위험한 짓을 한 거야? 이번 일이 아니었다 해도, 녀석이 구속될 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강수정이 건넨 휴대폰의 대화 내용은 복원을 끝낸 상태였다.

그 안에는 입에 담기도 힘든 음담패설이 한가득 들어 있었는데. 내 장담컨대 그 내용만 경찰에 제출해도 녀석은 구속 확정이었다.

“증거가 많은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나와 수정이가 직접 빵에 넣고 싶었어.”

“고작 그거 때문에 이리 위험한 짓을…….”

누나는 내 말을 도중에 끊었다.

“증거 모으는 도중, 변태 놈이 냄새 맡고 튀면 어떡해? 멕시코 같은 데로 가면 잡기도 힘들다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놈이 눈이라도 뒤집혔으면 어쩌려고 했어?”

“대비는 완벽했어. 경찰에도 미리 연락했고 총도 하나 준비했으니까.”

“총? 그건 또 어디서 구한 거야.”

“음…… 수정이가 미리 사둔 건데.”

누나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말을 이었다.

“점장 놈이 선을 넘어서…… 마지막 결심을 하고 샀대. 점장에게 쏴버리고 자살하려고.”

그날 봤던, 강수정의 눈빛.

그녀라면 진짜 거사를 치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굳은 표정을 짓자, 누나는 일부러 시원하게 웃어 보인다.

“아, 좋다. 이번 일 때문에 열 받아서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 이젠 편히 자겠네.”

“어휴, 잘했다, 잘했어.”

“그치?”

“그치는 무슨 그치야. 다음부터 이런 일 있으면, 적어도 내게 말을 하고 하라고.”

누나는 대답 대신 미소로 때워 버린다.

“어찌 됐든, 뒷일은 나와 매형에게 맡겨. 누나는 더 개입하지 말고.”

“어쩔 생각이야?”

“일단 보석으로 못 나오게 단도리 치고. 그다음엔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지.”

너무 상식적인 대답을 해줘서인지, 누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이 정도로 마무리 지을 사람이 아닌데, 하는 표정이다.

다음 날 느지막한 오후.

난 로버트가 갇혀 있는 구치소를 방문했다.

예상했던 대로, 녀석은 날 봄과 동시에 악다구니를 써댔다.

“너! 너! 모두 다 네가 꾸민 짓이지?”

“어이쿠. 왜 그런 오해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 갇혀 있으면 피해망상 같은 게 생긴다더니. 맞는 말인가 보네요.”

“이 개자식이…….”

녀석은 그 후에도 입에 거품을 물며 욕을 해댄다.

“워워, 진정하세요. 제가 당신을 위한 영상편지를 가져왔는데. 계속 짖어대면 보여드릴 수 없잖습니까.”

“또 무슨 수작이야?”

“수작이라뇨. 그냥 영상편지입니다. 당신이 가까이했던 그녀들이 보내는 영상편지요.”

갑자기 얼굴이 딱딱해지는 로버트.

난 그러든 말든 준비해온 노트북을 펼쳤다.

“똑똑히 보세요. 당신이 저지른 죄가 어떤 것들인지.”

영상은 강수정의 것으로 시작됐다.

로버트에게 어떤 일을, 얼마나 당했으며, 어떤 심정으로 진술하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쏟아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다 거짓말이야. 이런 거로 날 자백하게 만들 셈이지? 날 바보 멍청이로 아나 본데…….”

“입 닥치고 영상 계속 보시죠. 아직 끝나려면 멀었으니까.”

이어서 다른 피해 여성의 영상이 나온다.

예상치도 못했던 영상에 로버트의 입이 다물어진다.

한 영상이 끝나면 또 다른 여성의 영상이. 또 다른 영상이. 또 다른 영상이.

연이어 5개째의 영상이 흘러나오던 중, 로버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감싸 쥐었다.

“어, 어떻게…….”

“한 명이 물꼬를 트니, 다른 이들까지 줄줄이 터져 나오더군요. 뭐, 제가 변호사 선임 비용부터 재취업자리까지 전부 도맡아서 처리해준다고 했던 것도 영향이 없잖아 있겠죠?”

“역시 네가 다 꾸민 짓이구나!”

“착각하지 마세요. 모든 근원은 당신이 쌓은 업보입니다.”

난 영상을 틀어둔 채로 말을 계속했다.

“파고 들어가다 보니, 끝이 없더군요. 조사하던 탐정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말이죠.”

“…….”

“아 참. 건드린 사람 중에 미성년자가 있다는 건 알고 계셨습니까?”

미성년자라는 말에 로버트가 고개를 쳐든다.

“거, 거짓말. 난 미성년자는 건드린 적 없어.”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이 걸리긴 하지만 직원 중 한 명이 있더라고요. 미국에서 오래 사셨으니, 이게 무슨 뜻인 줄은 아시죠?”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다.

미국은 성범죄에 엄격한 나라다.

하지만 그 엄격함은 미성년자 성범죄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성년과 미성년의 성폭행은 형량에서부터 곱절은 차이가 났으니 말이다.

“아냐, 난 아니라고.”

절망뿐인 현실을 마주한 그가 머리를 땅에 처박는다. 그러곤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잘못했어. 다 잘못했으니까…… 용서해줘.”

“용서라는 말은 내게 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에게 해야 할 거다.”

“할게, 할 테니까. 만나게 해줘. 제발!”

기다시피 일어나 창살을 부여잡는 로버트.

난 그에게 조소를 보낸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싫다고 해도 법정에서 만나게 될 테니까. 그 전까지 두려움에 떨며 변명거리나 생각해두라고.”

구치소를 나서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뒤늦은 그의 절규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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