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63화
사건 현장에 경찰이 도착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도심지 한가운데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까.
피 칠갑이 된 현장과 사건을 중간부터 목격한 직원들의 증언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적용됐다.
경찰들의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미란다 원칙을 읊으며 다짜고짜 수갑을 채우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우리에게 경찰이 제시한 건 두 가지였다.
경찰서까지 얌전히 간다.
아니면 개처럼 끌려간다.
억울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유리한 증거랄 게 있어야 뭘 비벼보던가 하지.
“점장 놈이 먼저 손을 옷 안으로 넣었습니다. 누나가 손을 깨문 건 그걸 막으려고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고요.”
경찰이 매서운 눈빛으로 날 훑는다. 사람을 발가벗겨서 관찰하면 이런 느낌이지 싶다.
“그때 당신이 휴게실로 들어왔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추행에 대한 증거나 증인은 있습니까?”
“…….”
경찰서에 도착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차라리 누나와 녀석, 단둘만 있었다면 성추행에 대한 공방으로 이어갈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현장에 있었기에 일이 더 꼬이고 말았다.
“둘만 있었기에 증인은 없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다음으로.”
경찰은 서류를 한 장 넘기곤 질문을 계속했다.
“의자를 흉기로 썼나요?”
“저는 상황이 끝나고 들어왔다니까요. 폭행 사실 자체가 없습니다. 카페에 CCTV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거부터 확인해보시죠.”
“피해자는 의자로 위협을 당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도 당신이 의자를 들고 있었다 했고요.”
의자로 내리 찍힐 뻔한 걸 막아줬더니 저딴 누명을 씌워? 진짜, 이 개새끼가.
이를 빠득빠득 갈던 중 매형이 다가왔다.
“됐다. 더는 진술 안 해도 돼.”
“후우- 누나는요?”
“먼저 차에 태웠어. 일단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뒷일은 변호사들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불행 중 다행으로 점장의 상처는 크지 않았다.
손등에서 피 분수가 솟았지만, 혈관이 터진 탓이지 큰 상처는 아니라고 한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누나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한테 뭐가 미안한데? 누나가 뭘 잘 못 했어? 왜 자꾸 사과하냐고! 누나 바보야?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꺼내기도 전에 되담았다. 지금 가장 고통스러운 건 누나일 테니까.
사무실에 도착하고도 시련은 계속됐다.
[카페에서 일어난 혈투. 가해자는 닉스의 대표 대니얼 강.]
[피해자 A씨 “그는 원목 의자로 내 허리를 내려찍었지만, 가까스로 피했다. 만약 못 피했다면…….”]
[참혹한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이 쏟아져.]
이딴 뉴스가 실린 건 사건이 발생하고 단 3시간 만이었다.
지방 신문사긴 하지만 뉴스 타는 속도가 이상하리만치 빨랐다.
게다가 기사에 실은 단어 선택과 증언자의 꼬락서니로 볼 때, 점장 놈이 손을 쓴 게 분명했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현장에서 녀석의 면상에 주먹을 못 박아 넣은 게 한스러울 정도다.
한숨을 뻑뻑 내쉬는 중에 매형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뭐 그리 한숨을 쉬고 있냐. 땅 꺼지겠다.”
“인터넷에 뜬 기사 보셨어요?”
“무슨 기사?”
내가 기사를 띄운 휴대폰을 내민다.
제목만 보고 인상을 팍 찡그리는 매형.
“이거, 저쪽에서 언론 플레이하는 거 맞죠?”
“어, 100%다. 더러운 짓만 골라서 하네. 일단 기사부터 내리게 해야겠다.”
“순순히 내려 줄까요?”
“법적으로 대응한다면서 바람 좀 넣다가 돈 찔러주면 다 내리게 돼 있어. 기자들도 우리가 연락하길 기다리고 있을걸.”
이놈이나 저놈이나.
세상에는 안 썩은 곳을 찾는 게 빠를 정도다.
맹자님,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당신의 성선설은 아무래도 글러 먹은 거 같습니다.
난 나갈 채비를 하며, 매형에게 물었다.
“누나는 좀 어때요.”
“충격이 심하진 않은 거 같아. 점장 놈이 수작을 부린 거보다, 네게 짐이 됐다는 걸 더 신경 쓰는 거 같더라.”
자기 걱정이나 할 것이지. 누가 바보천치 아니랄까 봐.
“사건 처리는…… 일단 우리가 깨문 건 맞으니까. 적당히 합의 보는 쪽으로 진행해야 할 거다.”
내 입에서 으득 하는 이빨 가는 소리가 났다.
“매형은 분하지도 않으세요? 얼마나 심한 짓을 했으면 누나가 저렇게까지 했겠느냐고요!”
“증거와 증언이 모이지 않는 이상, 가해자는 우리 쪽이야.”
“제기랄! 아무리 그래도 저딴 놈이랑 합의를…….”
“나도 분하다. 분해서 미칠 거 같아. 하지만…… 현경 씨가 구속될 수도 있어. 보석은 신청할 수 있겠지만, 그전까지 구치소에서 생활하게 할 수는 없잖니?”
흥분해서 모르고 있었지만, 아까부터 매형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참고 있었구나. 울분을 토해내는 나 보다 꾹 참은 매형이, 더 속앓이했으리라.
냉장고에서 단단한 얼음을 하나 꺼낸다. 그러고는 억지로 씹어댄다.
으득- 으드득-
차가운 고통이 내 머리까지 차갑게 만들어 주길 바라며 더 세차게 얼음을 씹었다.
“현우야, 나도 하나 주라.”
“조심하세요. 이빨 나갑니다.”
“잔말 말고 줘.”
얼음을 건넨다.
으득-
멀쩡한 남자 둘이서 얼음을 씹고 있는 모습이 꼴불견이다.
내가 다시 말을 꺼낸 건 매형이 얼음 다섯 개째를 씹어 먹고 있을 때였다.
“증언은 나왔나요?”
“아니. 지금으로선 없다.”
이번 일의 핵심은 카페 루루의 직원들이다.
평소 누나나 직원들이 성추행당한 증언이나 증거가 나오면 상황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을 테니까.
“그 새끼 상습범이에요. 분명 다른 직원들에게도 껄떡거렸을 겁니다.”
“사실 관계를 떠나서 직원들은 증언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아예 거부한다고요?”
내 질문에 매형이 씁쓸한 표정으로 답한다.
“내가 좀 알아봤는데. 그 점장이라는 놈이 한인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위치에 있나 보더라. 찍히면 이쪽에선 살 수가 없을 정도래.”
어쩐지 카페에 직원들 대부분이 한국인이더라.
타국까지 와서 일하는 동포들에게 그딴 짓을 하고 싶을까?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는 소각이 답이다.
“나가 볼게요.”
내가 가죽 재킷을 집어 들자, 매형이 손목을 잡아챈다.
“현우야. 네 마음 모르는 거 아니다. 나도 미칠 지경이니까. 하지만 로펌에서 해결사들 불렀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응?”
“아뇨. 열 받아서 그냥은 못 있겠습니다. 증거든 증언이든 제 손으로 찾을 겁니다.”
“무슨 짓을 하려고? 혹시, 돈으로 증인을 사려는 건 아니지?”
“필요하다면요. 저는 뭐든 할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해. 여기서 일이 꼬이면 아예 못 뒤집을 수도 있어.”
매형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아마, 평소의 나였다면 고개를 끄덕이고 분을 삭였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를 넘어섰다.
* * *
“저를 만나자고 하신 이유는 알겠지만…… 힘들 거 같아요.”
고개를 푹 숙이는 여인.
짧은 단발머리 안에 비치는 눈빛에 서글픔이 담겨있다.
“이름이 강수정 씨라고 했죠?”
“예…….”
“미국에서 생활한 지 5년 차라고 했던가요. 오랫동안 고생하셨네요.”
맞은편에 앉은 여인에게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말을 잇는다.
“제가 수정 씨를 콕 찝어서 만나자고 한 거. 이유를 아세요?”
“아, 아뇨…….”
“사건 당일 날. 점장이 비명을 지르고 직원들이 휴게실로 몰려들었는데. 수정 씨만 저희 누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봤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수정의 손끝이 살짝 떨려온다.
“피를 철철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있는데,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의 안위를 묻는다?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행동이거든요.”
“그, 그게.”
“혹시, 수정 씨는 휴게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던 거 아닌가요.”
대답 대신 고개를 더 깊게 숙이는 거로 답하는 그녀.
혹시 했던 일이, 역시나로 바뀌는 순간이다.
“수정 씨.”
“예.”
“증언해 줄 수 있어요?”
눈을 마주친 그녀의 동공이 파르르 떨린다.
성폭행당한 여성이 신고나 증언을 하기까지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거기다 그 신고의 대상이 자신의 삶을 움켜쥐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고.
“제가 누군지는 알고 계시죠?”
“예…… 닉스의 창업주인 강현우 씨죠.”
“돈은 충분히 드릴 수 있습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거짓 증언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사실만 증언해주시면 됩니다. 일자리를 잃은 보상은 충분히 해드릴 수 있어요.”
잠시 고민하던 강수정은 힘겹게 입을 연다.
“증언한다 해도 저 혼자서는 힘들 거예요. 점장을 거역하지 못하는 다른 직원들이 반대 증언을 해버리면 효과가 없을 테니까요.”
“점장이라는 사람이 그리 대단합니까?”
“저희 일자리를 끊어 버릴 정도는 돼요. 카페는 물론이고 이쪽 근방의 모든 일자리를요.”
“그래 봐야 파트타임일 텐데…….”
“가난한 유학생에게 일이 끊긴다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돈이 없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마땅찮으니, 결국은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못 견디고 성매매 쪽으로 빠지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녀들도 성공의 꿈을 안고서 미국에 왔을 거다. 하지만 마지막 종착지가 매춘이라니.
안타까움에 한숨이 터져 나온다.
“죄송해요. 별 도움이 못 돼서…….”
“아닙니다. 아, 혹시 다른 증거가 될 만한 건 없나요? CCTV나 문자 내용 같은 거요.”
“CCTV는 없고. 문자는 잘 안 써요. 유학생들은 한국에 연락할 일이 많아서 닉스 챗을 주로 쓰거든요.”
“닉스 챗?”
내가 관심을 보이자 강수정은 손사래를 친다.
“대화 내용이 남아 있다는 건 아니에요. 오래된 일이라 기록이 지워진 지 제법 됐어요.”
“기록이 지워졌다는 건. 증거가 있긴 있었다는 거죠?”
“그, 그렇죠…… 점장님도 애플폰을 쓰시니까요. 혹시 닉스에서는 내용을 볼 수 있나요?”
이번엔 내가 손사래를 친다.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그런 게 가능했다간 개인정보 유출로 난리가 날 테니까요.”
“역시 그렇겠죠.”
그녀는 실망한 표정으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하지만 정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수정 씨의 휴대폰 안에는 암호화된 채팅 내용이 로그로 남아 있을 테니까요.”
“로그? 잘은 모르겠지만 가능하단 말이죠?”
“휴대폰을 닉스 소프트에 가져가서 복호화만 하면 될 겁니다. 남은 건 수정 씨 의지의 문제죠.”
그 말을 들은 강수정은 잠시 주저하더니.
결심을 굳힌 듯 휴대폰을 내게 내민다.
“해주세요.”
“괜찮으시겠어요?”
“아뇨. 안 괜찮아요.”
“예?”
그녀의 눈가엔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현경 언니가 현우 씨 자랑을 그렇게 했거든요. 정말 능력 있고 멋있는 동생이라고.”
“갑자기 그런 말이 왜……?”
“현경 언니가 믿는 현우 씨를 믿어 보려고요. 저도 점장을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하니까요.”
목이 멘 목소리다. 그녀도 점장 놈에게 쌓인 울분이 많았던 거겠지.
두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결연한 의지가 깃들어있다.
방금까지 소심하게 말끝을 흐렸던 사람과 동일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제발, 제 몫까지 벌을 주세요. 아니, 가능하면 카페에 같이 일하는 직원의 몫까지 전부요.”
“입에 발린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난 넘겨받은 휴대폰을 소중히 품에 갈무리한다. 그러고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결과로만 보여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