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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62화 (62/206)

기적의 IT 재벌 62화

“혹시 중국에 투자할 셈이야?”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파편적인 정보만으로 이런 유추가 가능한 거지?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흩어지자, 다음은 안도감이 몰려온다.

이 사람이 내 편이라 다행이라는, 그런 안도감 말이다.

“뭐야? 정답이었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은 할 생각 없고 차근차근 진행할 생각입니다. 우선은 일본부터 먼저 두드려 볼까 하고요.”

“일본도 괜찮지. 일본인들이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라, 한 번 시장을 장악하면 쭉 간다고 보면 되거든. 닉스 챗과 닉스 서클 반응도 좋다며?”

“예상치는 넘은 정도?”

“그게 좋은 거지.”

매형은 누나가 내려둔 커피를 새 잔에 따르며 말을 계속했다.

“쉽지는 않을 거다. 일본은 야후 재팬이 꽉 틀어쥐고 있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죠.”

“그래. 시도는 해봐야지. 메신저에 포털까지 먹으면 독점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거기서 얻는 이익은 어마어마해질 거다.”

매형은 잔에 담은 커피를 살짝 맛보더니 “으음- 나날이 실력이 좋아지네.”라고 중얼거렸다.

“아무튼, 최대한 많이 땡길 수 있게 신경 써주세요. 유상증자든 전환 사채든 어떤 방법을 써도 상관없습니다.”

“합법적인 선에서?”

내가 살짝 머뭇거리자 매형이 씩 웃는다.

“아직 각오가 안 됐나 보네. 똥물에 손을 담글 각오가.”

“후- 그런가 보네요.”

“그게 좋은 거야. 한 번 물들면 아무리 세탁해도 하얗게는 안 되는 법이거든.”

매형은 내 맞은편에 앉고 눈을 맞췄다.

“우리 똑똑한 처남.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

“예, 말씀하세요.”

슬쩍 커피잔을 옆으로 밀어 넣는다. 표정으로 보아하니 가벼운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뭐가 그리 조급한 거야?”

“예?”

내가 되묻자.

“너 올해로 고작 스물여섯이야. 네 또래 애들은 이제 대학 졸업한다고 취직이니 뭐니 걱정할 땐데. 넌 벌써 조 단위 자산을 가진 기업의 대표라고.”

“…….”

“널 보면 내가 더 급해져.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지. 당장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는데, 오로지 달리는 거밖에 몰라. 쉬는 법이 없어. 왜? 대체 왜?”

“지금은 닉스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

“아니, 절대 아냐. 장담하는데, 넌 1년 후. 아니, 10년 후에도 똑같이 하고 있을 거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왜 이렇게 일만 하고 사는 걸까?

사실, 너무 힘들 때면 나도 모든 걸 내려두고 쉬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안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너, 두 번째 인생을 이렇게 허비할 거야?’ ‘또 그런 꼴로 살다가 죽고 싶어?’ 따위의 내면의 목소리 말이다.

가만 보니 누나를 욕할 때가 아니었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는 새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온다.

“현우야, 워커 홀릭이 나쁘다는 건 아냐. 하지만 넌 그게 심해도 너무 심해. 모바일 메신저 닉스 챗을 만들고, 소셜 미디어인 닉스 서클에 신소재 배터리 개발. 게임에도 손댔다가, 이제는 아예 포털까지? 너 사업한 지 이제 1년이야. 고작 1년이라고.”

체감상 3개월 정도밖에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1년이던가. 정말 쉴새 없이 달리긴 했구나.

“무작정 달리기만 하다가 돌부리에 걸리는 순간, 다시 못 일어나는 수가 있어. 내가 그런 애들을 한두 놈 본 줄 알아?”

“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사업 확장보다 내실 다지기에 들어갈 거고요.”

“그래, 잘 생각했다. 나도 널 최대한 도울 테니까.”

매형은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따뜻한 눈빛과 진심이 담긴 충고.

누나가 나를 향하던 감정과 비슷한, 그런 포근한 느낌이었다.

* * *

다음날 내가 찾은 곳은 IM케미컬의 신소재 연구실이었다.

한국 배터리 연구실이 가동을 시작했기에, 리튬 에어 배터리의 주재료인 CNT의 개발상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메이는 강아지처럼 나를 반기며 자신의 실적을 자랑해댔다.

“대표님, 이거 좀 보세요. 기존의 소재보다 60% 더 효율을 높였어요. 이거라면 당장에라도 배터리에 쓸 수 있다고요!”

“예상보다 빠른 발전이군요. 이제 조금만 더 효율이 올라가면 시제품을 만들어 봐도 되겠어요.”

“그죠? 그죠?”

물개 박수를 쳐대던 그녀는 다른 소재의 샘플을 꺼내 든다.

“이건 이번에 새로 만든 분리막이에요.”

“분리막? 리튬 이온 배터리에 들어가는 그 분리막요?”

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더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맞아요. 리튬 에어든 리튬 이온이든 내부 구조는 비슷하니까, 연구실에 비슷한 소재를 모아서 만들었죠. 두께가 두껍긴 하지만 안정성이 대폭 강화됐다고요.”

소재의 두께가 두꺼우면 부피당 용량은 손해를 볼 것이다.

하지만 리튬 에어 배터리는 기존의 리튬 이온 배터리보다 용량이 곱절은 컸기에 그 정도 손해는 문제도 아니었다.

“샘플로 실험은 해봤어요?”

“물론이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차트 하나를 꺼내 든다.

이번에 새로 만들었다더니, 실험 횟수가 벌써 500번을 넘어갔다.

“현재 흔하게 쓰이는 분리막인 A0보다 저희 샘플이 3배 더 두껍지만 안정성은…… 놀라지 마세요.”

두 손의 손가락을 쫙 다 펴 보이는 그녀.

“무려 10배. 충격에도 발화 현상이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어때요? 어썸하지 않아요?”

“어썸 정도가 아니라 죽여주는 데요.”

“그렇죠?”

메이는 어서 칭찬해달라는 듯 몸을 배배 꼰다. 마치, 꼬리를 필사적으로 흔드는 강아지 같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흠칫 놀란다.

“흠흠, 이거 받으세요.”

“카드? 회식인가요?”

“회사 법인 카드가 아니라 제 개인 카드입니다.”

무슨 소리냐는 듯 메이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신소재 연구팀 전원, 클럽 하나를 빌려서 파티를 여세요. 파티를 어떻게 기획할지는 메이 마음입니다. 그게 부담되면 주말 동안 단체로 리조트를 다녀와도 좋습니다.”

“정말요? 정말, 정말, 정말요?”

“물론이죠. 참고로 그 카드, 한도도 없답니다.”

메이는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예이! 예쓰! 예쓰! 대표님, 짱! 짱! 최고예요.”

그녀는 내 주변을 돌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더니 밖으로 뛰어나갔다.

물론, 카드를 챙겨 들고 말이다.

연구소를 빠져 나온 난, 곧장 샌프란시스코 시가지로 향했다.

빼곡한 빌딩의 숲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랐다.

[cafe lulu]

이곳이 누나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곳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간판으로 볼 때, 루루라는 상호는 중소 규모의 프랜차이즈인 듯했다.

누나는 일을 더 배우겠다며, 당분간은 파트타임으로 일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솔직한 내 바람으론, 지금까지 고생한 누나를 쉬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카페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 데 뭐라 할 수도 없고, 그저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번 방문 역시, 커피 한잔 마시며 분위기만 둘러 볼 생각이다. 신입직원 신분이니 내가 가서 말을 걸면 곤란해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프랜차이즈에서 배울 게 뭐가 있다고 더 다닌다고 하는 건지.”

구시렁거리며 카페 안으로 발을 들인다.

딸랑-

오전이라 그런지 실내는 한산했다.

카운터 앞에 서자, 청소하던 동양인 직원이 쪼르르 달려온다.

“안녕하세요. 카페 루루입니다.”

앙증맞은 웨이트리스 차림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치마가 인상적이다.

“메뉴 좀 보고 주문할게요.”

“예, 메뉴판은 위에 있습니다. 천천히 주문해주세요.”

실내를 둘러보는 척하면서 누나가 어디 있는지 훑는다.

1층에는 없고. 2층에서 청소라도 하는 걸까?

주문을 위해 메뉴를 훑는다.

특색이라곤 보이지 않는 평범한 메뉴들.

이상하게도 누나가 해줬던 핸드드립 메뉴는 보이지 않는다.

“저기, 핸드드립은 안 파나요?”

“예. 저희 매장은 에스프레소 메뉴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결국, 평범하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카운터 주위에서 커피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한국어가 들려온다.

“아닙니다. 저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

카운터 옆에 있는 직원 휴게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이 원두와 우유를 마음대로 가져다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점장님, 그건 한 달이나 지난 폐기 원두였어요.”

“폐기든 뭐든 내 허락 없이 재료를 쓰면 안 되지.”

이거 누나 목소리 같은데. 설마?

직원이 커피 제조에 열을 열중한 틈을 타, 슬쩍 휴게실 문을 열어본다.

끼익-

역시나.

흘러나온 목소리는 누나의 것이었다.

나머지 하나의 목소리는 누나가 점장이라고 부른 동양인 사내의 것이었는데, 억양으로 봤을 때 재미 교포 같았다.

“매니저님이 폐기는 써도 된다고 해서…….”

“점장보다 매니저가 더 높아?”

“아닙니다.”

“당연히 내 허락을 맡았어야 할 거 아냐!”

소리가 커지자 입술을 질끈 깨무는 누나.

아니, 왜 여기서 저딴 대접을 받으며 일하는 거야?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내가 여기서 개입하면 즉시 누나의 카페 생활은 끝날 터.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 더 상황을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니.

“현경아. 내가 널 많이 아끼는 거 알지? 앞으로 재료는 마음대로 써도 되니까…….”

점장의 손은 누나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더니 점점 상의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런 천하의 개썅놈이!

휴게실의 문을 열어젖히려는 순간.

“끄아아악!”

외마디 비명이 카페 안을 가득 메운다.

점장 놈의 손을 누나가 깨물어 버린 것.

“와우.”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분수처럼 피가 솟구친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이때 처음 알게 됐다.

손을 물린 점장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고, 누나는 분이 안 풀렸는지 의자를 집어 들고 점장을 내려찍을 기세였다.

하긴, 누나도 보통 성격은 아니지.

난 더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누나를 막아섰다.

“누나. 거기까지 잠깐 스톱.”

“이거 놔. 오늘 이 새끼 죽여 버릴 거야!”

누나는 손을 뿌리치려다 날 바라본다.

“혀, 현우? 네가 어떻게.”

“일단 의자 내려두고 이야기해.”

의자를 억지로 뺏었는데. 원목의자였다. 그것도 통짜 원목.

무게가, 어후. 이걸 어떻게 번쩍 들었대? 찍었으면 진짜 사람 하나 잡았겠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이, 바닥을 구르던 점장이 상체를 일으킨다.

“너, 너! 내가 불쌍해서 거둬줬더니 이런 식으로 나와?”

삿대질하자 누나의 눈이 확 돌아버린다.

“불쌍? 이 발정난 새끼가!”

다시 의자를 집어 드는 걸, 내가 억지로 뺏어 든다. 손에 쥐여 줬다간 크게 일낼 분위기다.

“누나, 내가 처리할게, 좀 뒤로 가 있어.”

“현우야. 비켜. 내가 오늘 저 새끼 죽여 버릴 거야.”

백화점에서 별별 진상들을 다 만났던 누나다.

그런 멘탈의 소유자가 이 정도로 돌아버린 거 보면 점장 놈의 추행이 한두 번이 아니었나 보다.

“워워, 진정해. 그거로 찍으면 당장은 시원할지 몰라도 나중에 피곤해진다고.”

“그땐 깽값 물어주면 되지. 현우 너 돈 많다며.”

누나의 외침에 점장 놈이 끼어든다.

“그래, 한 번 때려봐! 법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지? 어디 한 번 해보자고!”

소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카페 직원들은 물론이고, 커피를 마시던 손님들까지.

누나에게 뺏어 들었던 의자를 조심히 내려둔다. 하지만 이미 늦은 거 같다.

손을 부여잡고 바닥을 기는 피해자.

의자로 끝장을 내려는 가해자.

거기다 바닥을 적신 흥건한 피까지.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오해받기 딱 좋은 그림이다.

이거, 상황이 안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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